<성명서>
하청노동자는 그러면 누구와 교섭을 하란 말인가!
현대차비정규 3지회의 원청·하청 상대 쟁의조정신청에 노동위원회는 모조리 행정지도
하청업체들을 상대로 쟁의조정신청을 넣었는데 2차례나 행정지도, 이번엔 실질사용주인 원청을 상대로 쟁의조정신청을 넣었더니 그마저 “교섭 상대방인지 여부는 부당노동행위 구제신청을 하라”며 사실상 각하하는 의미의 행정지도! 그렇다면 도대체 하청노동자들은 누구와 교섭을 해야 한단 말인가?
대법원도 인정한 원청 사용자책임을 부정한 중앙노동위원회
현대자동차 생산공장의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설립한 현대차비정규지회(울산), 현대차아산사내하청지회, 현대차전주비정규직지회 등 3개 지회가 올해 임·단협을 진행함에 있어, 예년처럼 원청과 하청 모두를 상대로 교섭을 요구해왔으나, 원·하청 사측은 지난 2개월 간 단 한 차례의 교섭에도 응하지 않았다.
현대차 사내하청 비정규노동자들이 원청을 상대로 교섭을 요구하는 것은 매우 당연한 것이다. 매년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임금인상과 노동조건은 원청이 결정해 왔으며, 하청업체는 단순히 원청이 임금인상분을 반영하여 도급비를 내려보내면 이를 충실하게 전달하는 ‘바지사장’에 불과하다. 게다가 지난 3월에는 현대중공업 원청이 하청노동자들에 대한 부당노동행위를 한 것이 인정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오는 등, 사법부에서도 하청노동자에 대한 ‘원청의 사용자책임’을 인정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원청인 현대자동차가 일체의 교섭에 응하지 않아 7월 6일에 현대차비정규 3지회가 원청을 상대로 쟁의조정신청을 낸 것에 대해, 중앙노동위원회는 7월 16일 조정회의를 연 자리에서 “현대차가 교섭의무 있는 사용자인지 여부를 판정받으려면 부당노동행위 구제신청을 하라”는 취지의 결정을 내렸다.
현대차가 교섭 상대방인지 여부를 조정회의에서 결정하면 되는데, 애써 이를 피해가고 만 것이다. 아니, 중노위가 정치적 부담을 피해가기 위해 하청노동자의 노동기본권이 빼앗겨야 한단 말인가? 현대중공업 대법원 판결 취지를 보면 현대자동차가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사용자임이 분명한데도 말이다.
“현대중공업 대법원 판결로도 부족한가? 그럼 개별 사건들이 있을 때마다 5~6년씩 걸리는 대법원 판결을 받아와야 한단 말인가?” 조정회의에 참석한 하청노동자들이 강력하게 항의했지만 중노위는 요지부동이었다. 마치 하청노동자들의 ‘파업권’을 가로막는 것이 중노위 지상최대의 과제인양!
그러나 현대자동차가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사용자임은 너무나 분명하다. 예를 들어 현대차가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시급을 264원 올리기로 결정하면, 80여개의 하청업체 소속 노동자들 모두가 263원도, 265원도 아닌, 꼭 264원의 시급이 올라간다. 업체별로 차등이 있는 것도 아니고 100% 동일하다. 정규직·비정규직 노동자가 완전 혼성작업을 하고 있기에, 작업에 대한 전반적 지시도 원청의 관리자인 조·반장들이 직접 수행한다. 하청노조가 파업을 벌이면 원청 현대차가 직접 하청노조와 하청노동자들에게 고소고발과 손해배상을 청구한다. 상황이 이토록 명명백백한데, 중노위는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는 것인가.
하청업체들을 상대로 한 쟁의조정신청에 대해서도 2차례나 ‘행정지도’
그뿐 아니라 부산·충남·전북 지방노동위원회는 각각 울산·아산·전주의 3지회가 개별적으로 하청업체들을 상대로 쟁의조정신청을 한 것에 대해서도 7월 2일과 19일, 2차례에 걸쳐서 행정지도를 내리고 말았다. 교섭할 의사가 없는 사측에게 “교섭을 더 해보라”는 행정지도를 내리는 것은, 사실상 노동자들에게 “당신들에게는 파업의 권리가 없다”고 선언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각 지방노동위원회에 출석한 하청업체 사장들은 “현대차 임금교섭이 끝난 후 도급계약이 체결되어야 제시안을 제출할 수 있다”며, 뻔뻔하게도 자신들이 ‘바지사장’임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상황이 이렇다면 ‘교섭불능’ 상태로서 마땅히 ‘조정종료·중지’ 결정이 내려져야 함에도, 3개 지방노동위원회는 모두 같은 날짜에 진행된 조정신청에 2차례에 결쳐 모조리 ‘행정지도’를 내리고 만 것이다.
원청을 상대로 교섭을 요구하면 “우리는 교섭 당사자가 아니다”고 하고, 하청을 상대로 교섭을 요구하면 “원청이 결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없다”고 한다. 그렇다면 결국은 노동자들이 직접행동과 실력행사를 통해 실질적으로 결정권한이 있는 자본가가 교섭석상에 나오도록 하는 방법 밖에 없다. 그런데 중앙노동위원회건 지방노동위원회건 원청 자본과 하청 자본이 내세우는 ‘핑계’들을 그대로 수용하여 행정지도를 남발한다면, 하청노동자들은 그냥 앉아서 죽을 날만 기다리라는 것인가?
우리의 우려는 이미 현실로 다가왔다. 현대차 울산 2공장에서는 구형 투싼의 단종(생산 중단)에 따른 인원협상 과정에서 생산관리부서 16명, 의장부서 50명 도합 66명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해고하기로 결정하여, 빠르면 이번 주 중에 해고 통보가 이뤄질 예정이다. 이들에 대한 해고는 당연히 공정 변화에 따라 원청인 현대자동차가 결정한 것이고, 형식적으로 해고 통보만 하청업체들이 하게 된다. 그런데 원청을 상대로도, 하청을 상대로도 행정지도를 남발한다면, 이들 66명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해고되더라도 가만히 앉아서 당하라는 말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게다가 울산 2공장 비정규직 집단해고 사태는 신호탄일 뿐, 올해 안에 신차 투입과 구형차 단종에 따라 울산 1공장과 4공장, 아산공장 비정규직 노동자들 수백명이 집단해고의 위협 앞에 서게 된다. 사람이 짤리는데 악 소리도 지르지 말라는 말인가.
원청 사용자책임 인정은 거스를 수 없는 대세이며, 간접고용 비정규직 투쟁으로 솟구칠 것!
비단 현대차나 현대중공업만의 문제가 아니다. 기아차에서 가장 잘 팔리는 ‘모닝’을 생산하면서도, 인간이 아니라 기계 취급을 받고 있는 동희오토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양재동 현대기아차 본사 앞에서 원청과의 직접교섭을 요구하며 용역깡패의 살인적 탄압 속에서도 꿋꿋이 농성투쟁을 이어가고 있다.
대구의 동산병원 환자식당 노동자들은 동산의료원 측이 환자식당을 외주화한데 이어, 이번에는 계약업체를 풀무원으로 바꾸면서 풀무원 측이 “필요 인원은 전원 파견업체를 통해 사용하는 것이 회사의 방침”이라며 2차 하청화 시키려는 것에 맞서 최고 원청사인 동산의료원을 상대로 힘차게 투쟁을 이어가고 있다. 의료원 측은 5월 30일에 50명에 달하는 식당 노동자들 전원을 해고하고 폭력적인 탄압을 일삼고 있지만, 식당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이에 굴하지 않고 원청을 상대로 투쟁을 벌이고 있다.
건설현장 또한 마찬가지이다. 군포당동의 LH 건설현장에서 건설노동자들이 하청업체인 정박건설과의 교섭을 통해 사실상의 합의에 도달하여 임단협 조인식(5월 27일)을 눈 앞에 두고 있었다. 그러나 조인식을 앞에 두고 원청사인 경남기업은 ‘자금상의 문제 때문에 본사와 상의해야 한다, 공정상의 차질에 대한 약속을 해라...’는 등의 이유를 대면서 건설노조와 정박건설 간의 임단협 조인에 지배개입하여 가로막고 나섰다. 결국 정박건설은 원청의 눈치를 보다가 결국 지방노동위원회 조정안 마져도 수용하지 않고 노사합의 사항을 파기한 채 공사를 포기하기에 이르렀고, 원청인 경남기업은 하청업체를 교체했다는 명분으로 건설노조 조합원의 현장 출입을 가로막는 사태가 벌어졌다. 이에 건설노조 중서부건설지부 김태범 지부장과 조합원 1명이 7월 15일 새벽 4시경, 인천부개 LH 현장에서 군포당동 경남기업 현장에 이어 단체협약과 고용승계를 요구하며 현장의 타워크레인 고공농성에 돌입했다.
아무리 부정해도 가릴 수 없는 현실! 원청사용자성 인정을 위한 하청노동자들의 처절한 투쟁은 계속될 것이다! 그 투쟁의 대상은 이를 부정하려는 원·하청 자본, 노동위원회, 노동부 모두를 항하게 될 것이다. 전국비정규노조연대회의는 간접고용 비정규노동자들의 원청 사용자책임 인정을 위한 투쟁에 힘차게 연대하고 함께 싸워나갈 것이다.
2010년 7월 20일
전국비정규노동조합연대회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