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학의 총본산인 성균관은 명당과 거리 멀어 ⊙ 조계종 총본산 조계사의 분규도 터와 관련 있는 듯 ⊙ 조선시대 書院들은 非山非野 입지로 명당 거의 없어
명동성당은 남산에서 흘러온 기맥을 받음으로써 한국 가톨릭의 상징과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요즘 SBS가 <대풍수>라는 드라마를 방영하고 있다. 임금이 합방을 할 여인과 사주가 맞는지 안 맞는지, 합방 날짜와 시각은 언제가 적절한지, 왕이 나올 수 있는 조상의 묏자리는 어디가 적절한지 등등 풍수지리, 사주명리, 관상이 우리 선조들의 생활과 얼마나 밀접했나를 보여주는 드라마라고 할 수 있다.
풍수전문가로서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할 당시 알려지지 않았던 공신들로 풍수전문가들을 등장시키고 있는 이 드라마에 관심을 갖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인지 모른다. 무엇보다도 대부분의 사극에서 주변부 인물로만 등장했던 풍수전문가가 주인공으로 등장한 것도 반가운 일이거니와 우리 사회의 풍수전문가를 바라보는 시각의 변화를 느낄 수 있어서 더욱 반갑다.
기실 이 드라마에서처럼 풍수는 우리네 삶과 밀접하다. ‘논두렁 정기’라는 말처럼 우리가 일상적으로 흔히 쓰는 용어도 풍수와 관련된 것들이다. 풍수와는 거리가 멀 것 같은 종교시설들도 풍수전문가 입장에서 자세히 살펴보면 풍수와 아주 밀접하다. 그 종교의 흥망성쇠와 풍수가 밀접하게 얽혀 있는 것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국민성은 어쩌면 ‘종교적’일지도 모른다. 선교 한 세기 반을 겨우 지난 기독교(개신교)가 세계 최대 규모의 교회를 지니고 있고 미국 다음으로 많은 해외에 3만여 명에 달하는 선교사를 파송하고 있다.
다른 종교도 상황은 비슷하다. 유교는 발상지인 중국에서조차 사라진 각종 의례가 우리나라에서 더 잘 보존돼 있고 불교 또한 발상지인 인도나 선종(禪宗)의 시발점이라고 할 수 있는 중국보다 더 선수행에서 높은 경지를 보이고 있다.
대부분의 종교는 현세(現世)보다 내세(來世), 물질보다 정신에 더 높은 가치를 둔다. 그러면서도 종교인은 현세인이라는 시간적 공간적 제약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즉 종교와 종교단체 그리고 종교인들도 다른 사물과 마찬가지로 역사 속에서 태어나고 자라고 늙고 소멸하는 영고성쇠(榮枯盛衰)의 순환을 비켜가지 못한다. 탄생, 성장, 소멸하는 일체의 생명체는 지기(地氣)의 영향을 받는다. 간단히 말하자면 종교도 지기의 영향을 받는다. 명당의 기운을 받는 종교는 번성하고 그 반대의 경우는 쇠퇴해 왔다. 이제 그 증거를 찾아 떠나보자.
퇴계와 율곡의 묘는 명당이 아니다
여의도 순복음교회는 풍수지리학적 입장에서 볼 때 생기처에 자리 잡고 있다.
우리나라는 예부터 종교와 관련된 문화재가 많다. 좋은 터, 좋은 자리에는 예외 없이 종교시설이 들어서 있다. 산을 좋아하는 사람은 발길 닿는 곳마다 그럴듯한 자리에 사찰이 들어서 있는 것을 보고 “명당 자리는 절이 다 차지하고 있다”고 말하곤 한다. 일리가 있는 말이다. 예부터 고승대덕 중에는 도선국사나 무학대사 같은 명 풍수가 많았고 오늘날에도 사찰 건립 등에 풍수적인 고려를 빼놓지 않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유교를 비롯한 전통종교의 각종 시설들도 풍수적인 고려를 바탕으로 건립된 것 또한 물론이다. 적어도 갑오경장 이전의 각종 주요 시설이나 건물은 풍수지리학적인 검토 없이 세운 예가 없었다고 할 정도로 풍수지리학은 문명의 줄기인 토목건축의 기본 요소였다.
기이한 것은 풍수지리학을 한사코 외면하거나 미신의 언저리로 보는 기독교 계통의 주요 시설들, 예를 들어 명동성당이나 영락교회 등이 명당에 자리 잡고 있다는 사실이다. 불교와 기독교 등 주요 종교시설 중 일부가 명당에 자리 잡고 있다는 사실은 우리나라에 들어온 외래 종교들이 크게 발흥한 것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풍수지리학적 입장에서 보면 이들 종교시설이 명당에 자리 잡았기 때문에 크게 발흥한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명당에 자리 잡지 않은 곳도 있다. 성균관, 퇴계와 율곡의 묘소 등 유학의 세 봉우리는 명당이 아니다. 유교의 정식 명칭은 유학(儒學) 또는 유도(儒道)다. 우리나라에 들어와 조선 건국의 이념이 된 유학은 발상지인 중국에서는 신유학이라고 불리는 성리학(性理學)이었다. 조선의 성리학은 도덕적 측면이 강조된 도학 정치 사상으로 심화돼 조선시대에 피로 얼룩진 사화(士禍)의 근원이 되기도 했다. 조선 중기에 이르러서야 퇴계, 율곡과 같은 거장을 배출하면서 중국과 대등한 수준에 이르거나 능가하는 수준이 됐다. 이런 이유로 조선시대 국립대학과 같은 역할을 해온 성균관과 더불어 퇴계, 율곡은 유학의 정점을 이루는 세 봉우리라고 할 수 있다. 조선의 건국이념과 통치이념이 됐던 유학 또는 유교의 풍수지리학적인 조건을 살펴보려면 성균관을 비롯해 퇴계와 율곡의 묘지를 살펴보는 것이 우선일 것이다.
서울 명륜동에 있는 성균관의 핵심 건물은 명륜당과 대성전이다. 명륜당에서 보면 백호가 창경궁과 비원 쪽으로 돌아 서울대 의과대학 쪽으로 흘러버림으로써 형국을 갖추지 못했고 생기도 없다. 성균관 터가 전체적으로 ‘뒷방 늙은이의 터’가 된 까닭이다.
조선 유학의 총본산인 성균관이 풍수지리학적으로 좋은 요건을 갖추지 못함으로써 어떤 일들이 벌어졌을까. 성균관 유생(儒生)들은 걸핏하면 조정에 대고 항거하는 시위를 벌였으나 통치의 대안세력으로 성장하는 데는 한계를 드러냈고 서양의 신문명 앞에서 시들고 말았다.
유교의 지방기관 역할을 한 서원은 전성기에 약 1000여 개소에 이르렀으나 그 적폐가 심해지면서 대원군이 서원 철폐를 단행해 전국에 47개소만 남았다. 그중 문화적으로 귀중한 서원에 한하여 훗날 복원됐으나 전체적으로 서원들이 비산비야(非山非野)에 세워져 큰 명당 대지를 갖지 못했다.
경북 안동 낙동강가에는 안동댐 건설로 인한 수몰을 피하기 위해 옮겨놓은 도산서원을 비롯해 도산면 소재지인 은혜리 일대에 퇴계 선생 태실(胎室)과 퇴계 선생 구택(舊宅) 그리고 묘지가 있다. 유학의 거목인 퇴계 선생의 묘소는 생전 선생의 인품을 대변하듯 질박한 외양이었으나 안타깝게도 생기처는 아니었고 파주의 자운서원 뒤편에 있는 율곡 묘소에서도 역시 생기처를 찾을 수 없었다.
불교 사찰에는 명당이 많아
오대산 상원사(사진) 외에도 불교에는 명당에 터를 잡은 사찰들이 무수히 많다.
반면에 조선조 500년 동안 억불숭유(抑佛崇儒) 정책에 따라 숨도 제대로 못 쉬고 살아야 했던 불교는 전국 사찰이 지닌 그 많은 명당 대지의 힘 때문인 듯 조선의 패망과 함께 화려하게 부활해 교세를 확장했다.
삼보사찰(三寶寺刹)인 해인사, 통도사, 송광사가 경내에 생기처를 가진 것을 비롯해 5대 적멸보궁(석가모니 부처의 진신사리를 모신 사찰)인 오대산 상원사, 태백산 정암사, 사자산 법흥사, 설악산 봉정암, 통도사 금강계단이 모두 생기처에 자리 잡고 있다. 특히 조선 중기 어사로 유명한 박문수(풍수에도 깊은 조예가 있었다고 한다)가 불교를 말살하기 위해 사찰을 순방하던 중 상원사 적멸보궁을 보고 그 지기에 놀라 “이곳 지기 하나만으로도 불교는 앞으로 수백 년 동안 놀고먹어도 되겠다”고 판단해 불교 말살 시도를 접었다는 설화도 전해진다. 상원사 적멸보궁과 같은 맥이 흐르는 명당이 알펜시아 부근 수하리에 있지만 그곳은 지금까지도 비어 있다. 조계종의 총본산인 서울 견지동의 조계사는 명당 터가 아니다. 한때 총무원이 3개나 난립해 분규의 온상이 됐던 것도 그 이유가 아닐까 싶다.
조계종과 함께 한국 불교 최대 종단 중 하나인 태고종은 총무원이 서울 신촌 봉원사에서 성북동으로, 성북동에서 현재의 사간동으로 옮겨다녔다. 봉원사를 가장 정통성 있는 사찰이라 여기고 기맥을 살폈으나 주산이 갈라져 화합을 이루기가 어려운 형국이었다. 태고종이 신경 써야 할 부분이 아닌가 싶다.
이들 종단을 제외한 불교 종단 중 본산 사찰의 지기가 승한 곳은 천태종 본산인 단양의 구인사가 가장 뛰어났다. 구인사는 주산의 봉우리마다 생기가 솟았고 청룡과 백호가 뚜렷했다. 천태종이 50년의 비교적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전국에 300개소의 말사를 거느리고 있는 힘이 거기에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판단이다.
강증산 계통의 여러 종파 중 하나인 대순진리회는 창건자 숙소가 있는 중곡동에 기가 있었으나 안타깝게도 이 집은 창건주 사망 후 지금까지 사용하지 않고 보존만 해오기 때문에 생기를 살리지 못하고 있는 편이다.
종교인 가운데도 풍수전문가 많아
기독교 계통으로는 크게 구교인 가톨릭과 신교인 개신교로 대별되는데 천주교는 명동성당이 남산에서 흘러온 기맥을 받아 한국 천주교의 상징과 같은 역할을 다하고 있다. 전국에 산재한 천주교 공원묘지 중에도 생기 있는 곳이 더러 있어 가톨릭 사제 중 풍수지리학적 소양이 있는 분들이 많음을 알 수 있다.
개신교의 경우 명동성당과 같은 상징적인 교회는 없으나 세계 최대의 교세를 자랑하는 여의도 순복음교회와 이명박 대통령 형제가 장로로 시무한 소망교회가 모두 생기가 넘치는 명당에 자리 잡고 있다.
신흥종교 중 통일교는 최근 문선명 교주의 사망으로 교세가 위축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를 낳고 있다. 경기도 가평에 있는 본부 건물이나 용산구에 있는 주요 시설이 생기가 없는 자리였다.
기독교 사회주의를 실험해 관심을 모았던 박태선의 전도관도 경기도 부천 복사골에 세운 제1신앙촌, 경기도 덕소의 제2신앙촌, 부산시 기장의 제3신앙촌 모두 풍수지리학적 요건을 무시한 입지 선택 때문에 옛날의 교세를 회복하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불교 사찰을 중심으로 많은 종교단체의 시설들이 의식적이든 아니든 간에 명당 생기처에 자리 잡고 있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다. 이들은 어떻게 생기처에 자리를 잡게 됐을까.
첫째는 여러 종교 유파에 속한 승려나 사제 등 종교인 중에도 상당한 수행을 통해 지기를 교감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 많을 것으로 짐작된다. 둘째, 종교시설들 중에는 비록 생기처는 아니지만 형국상 명당의 국세를 지닌 곳이 많은데 풍수전문가가 점지하지 않아도 마음이 편해지고 영혼이 맑아지는 자리를 선택하다 보니 생기처가 가까운 자리에 자리를 잡는 경우가 많았다는 점이다. 서울의 영락교회와 예천의 소수서원이 그런 예에 속한다.
필자가 일일이 발품으로 확인한 바에 의하면 발전하고 흥성하는 종교에는 뭔가 특별한 이유가 있었다. 그것은 지도자의 탁월한 종교적 카리스마와 교조적인 능력 외에도 풍수적인 여건이 불가결한 요소였다. 말하자면 풍수지리학적으로 명당 생기처를 지닌 종교는 흥하고 그 반대의 경우 쇠잔해지는 기운을 읽을 수 있었다.
물론 종교의 발전에 풍수적인 요소가 절대적이라고 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그러나 종교에 있어서 풍수적 요건이 절대적이지는 않더라도 필요 불가결한 요소임은 분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