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 1762~1836)
정조 이산의 ‘기기도설(奇器圖說)’
당시 정조가 정약용을 책임자로 세우고, 수원화성을 축조하는 대역사를 시행하게 된다. 그 당시 중국과 조선에 문화, 사회 각 분야를 망라 큰 영향을 끼친 우리 카톨릭 선교의 활략상이 드러나게 된다.
예수회의 특징은 교육과 학문을 통한 봉사와 선교에 있으며 특히 일반교육사업을 일상적 업무에 넣은 최초의 수도회이다. 수련과 활동에 있어 다방면에 걸친 학문적 성취는 본회의 중요한 힘이 되고 있으며 이를 바탕으로 하여 16세기 이후 유럽의 고등교육의 융성과 교황을 보조하여 가톨릭 개혁운동에 기여한바 크다.
또한 명·청대(明淸代)에 걸쳐 중국에 진출한 마테오리치. 아담 샬. 페르비스트 등은 서양 역법과 과학서적 등 서구문명을 동양에 소개하였다.
이태리 출신의 예수회선교사 마테오 리치, 중국명 이마두(利瑪竇:1552~1610)는 1583년 광동(廣東)에 상륙했을 때 불교도로 소문났었다. 그를 중국사회에 안착시킨 지식은 신학이 아니라 서양 과학지식이었다.
고대 그리스 수학자 유클리드의 '기하원본(幾何原本)'은 그가 가져온 것을 서광계(徐光啓)가 번역해 동양에 소개된다. 1601년에 마테오 리치는 북경으로 올라와 자명종(自鳴鐘)과 만국도지(萬國圖志) 등을 신종(神宗)에게 바쳐 북경 거주를 허락받는데, 이때부터 명(明)의 지식층에서 서학(西學) 학습 풍조가 생겨 약 150여 종의 서학서가 번역 출간되었다.
마테오리치는 '곤여만국전도(坤輿萬國全圖)'를 편찬하고, '천주실의(天主實義)'를 지어 선교에도 박차를 가했다.
독일 출신의 예수회 선교사 아담 샬, 즉 중국명 탕약망(湯若望:1591~1666)은 1622년 중국에 도착한 직후 한때 서안(西安)에서 고초를 겪었다. 그러나 1630년 세상을 떠난 스위스 출신의 선교사이자 과학자였던 테렌쯔(중국명 등옥함·鄧玉函)의 뒤를 이어 북경으로 올라와 명(明) 의종(毅宗)의 호감을 사면서 환관 40여명과 궁녀 50여명을 개종시킨다.
이자성(李自成)의 농민군이 북경을 함락시켰을 때도 아담 샬의 집은 무사했고, 1645년 북경을 점령한 청나라 세조(世祖:順治帝)는 아담 샬을 천문·역법 등을 맡는 흠천감(欽天監) 감정(監正)으로 임명했다.
아담 샬은 북경에서 청의 인질이었던 조선의 소현세자를 만나 서양 과학서를 전해주는데, 정조가 정약용에게 기중기(起重機)를 연구하라며 내려주었던 궁중 비장(秘藏)의 '기기도설(奇器圖說)'도 그 중 하나였다.
테렌쯔가 쓴 이 책은 물리학의 기초와 도르래를 이용한 기계 장치에 관한 책이다. 정조도 이런 책들을 통해 깊은 과학지식을 갖게 되었다. 중국 과학기술은 이들 선교사들에 의해 획기적으로 발전했다.
모든 문명은 소통과 교류 속에서 서로 발전한다.
출처: 영원에서 영원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