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조조를 따라서 하북을 평정하던 위문제(魏文帝)조비는 원희의 첩이였던 견씨를
아내로 맞이했다. 조비는 후한의 헌제를 폐하고 한왕조를 넘어뜨린 뒤에 스스로 황제
라 칭했다 그리하여 위나라의 초대 왕이 된 조비는 견씨를 왕후로 봉했고, 견씨에게서
아들을 하나 얻었다. 그 아들이 바로 후일 위명제(魏明帝) 가 된 조예였다.
견왕후의 젊음이 시들어 가자. 조비는 그녀를 멀리하는 대신에 아름다운 후궁, 곽귀비
에게 애정을 쏟았다. 두여인 사이에는 시기와 암투가 끊이질 않았다. 점점 심해지던
두 사람의 싸움은, 보다 못한 조비가 끝내 견씨를 죽이고 곽씨를 왕후 자리에 앉히고
나서야 끝이났다. 그런데 왕후 자리에 오른 곽씨는 아이를 낳지 못했다.곽왕후는
자신과의 싸움 끝에 목숨을 잃은 견씨의 아들 조예에게 마음을 붙이고, 조예를 친아
들처럼 길렀다.
세월이 흐르고, 철이 든 조예는 곽왕후를 깍듯이 모셨다. 곽왕후도 친자식처럼 길러서
정이 많이 든 조예에게 사랑을 아끼지 않았다. 그렇지만 조예가 만에 하나라도 친모인
견씨가 자기 때문에 살해당한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자신에게 보복할까 두려워 감히
태자로 앉히지 못하고 있었다.
조예가 왕위에 오른 뒤에 친모의 죽음을 두고 복수심을 갖게 된다면, 온 조정에 피바람
이 불어닥칠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었다 부왕인 조비 역시 아들에게 뛰어난 재질이
있음을 발견하고 몹시 기뻐하면서도 그런 우려 때문에 쉽사리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어느 날, 조비는 시종들과 조예를 데리고 사냥을 나가게 되었다. 사냥을 나서자 마자,
운 좋게도 어린 새끼 사슴 때문에 빨리 도망가지 못하는 어미 사슴을 발견했다. 조비는
활을 쏘아서 어미 사슴을 잡았다. 새끼는 겁에 질려 있었지만 죽어서 꼼짝도 안하는 어
미곁에서 떨고 있을 뿐, 도망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조비는 얼른 아들 조예를 바라
보았다.
"자, 저 새끼 사슴은 네가 잡도록 해라."
그러자 조예는 울면서 이렇게 말햇다.
"아버님, 아버님께서는 이미 저 새끼 사슴의 어미를 쏘아 죽이셨습니다.아버님의 화살
에 죽은 저 어미 사슴의 운명은 어쩔 수 없는 것입니다. 타고난 운명을 어찌 하겠습니
까? 하지만 ,도망칠 줄도 모르는 새끼 사슴까지 꼭 죽여야 하겠습니까?
저 새끼 사슴은 살려 주십시오. 그러면 저 새끼 사슴은 아버님의 은혜를 잊지 않을것
입니다.그리고 죽은 어미 사슴도 아버님을 과히 원망하지 않을 것입니다.
조비는 잠깐동안 생각에 잠겼고 잠시 후에 활을 내던졌다.조예는 죽은 친어미와
자신의 처지를 어미 사슴과 새끼 사슴에 빗대어 얘기하고 있었던 것이다.
"내 아들은 현명할뿐 아니라 인자하기도 하구나. 더 무엇을 바라겠느냐? 천하의 주인
은 따로 있는 것을. 자, 오늘 사냥은 끝났다. 다들 저 새끼 사슴은 살려두고 돌아가자"
조비는 그 길로 조예를 태자로 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