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 전 능엄주·절수행…성격 극복
집착 욕심 버리니 포용력, 이해 생겨
어느 날 법당에서 새 초에 불을 켰다. 심지가 새 것이라 쉽게 불이 붙지 않았다. 심지의 불은 가물가물 흔들리며 꺼질듯 말듯 초 몸을 향하여 가는데 마치 꺼질듯 하던 작은 불꽃이 초를 만나는 순간 불꽃이 ‘우뚝’ 제 모습을 하고 여여하게 웃는 듯 보였다. 마치 애쓰고 기도하는 내 모습이 그곳에 있는 듯하다.
시댁이나 친정이 불교집안이라 일 년에 한두 번 절에 가곤 했었는데 10년 전 쯤 불교대학을 다니면서 불교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늘 소심하고 내성적인 성격이 스스로를 좁은 세상에 가두어 힘들게 살았는데 불교를 알고 절 수행을 접한 이후 그러한 욕구불만을 아마도 절을 하며 풀었던 것 같다. 108배, 300배, 500배, 1000배, 3000배로 수를 늘려가며 땀을 실컷 흘리면 밖으로만 돌던 마음이 다소 편안해지는 것 같았다. 처음엔 300배 만하여도 24시간 온통 절만 한 기분이었다. 300배 절을 하느라 애 쓴 마음이 인생사 건성건성 살고 있는 하루를 온통 덮고 남았을 것이다.
사실 처음 절 할 때에는 온몸, 뼈마디마디가 쑤시고 아팠다. 몸의 세포와 마음의 의식이 그동안 제대로 쓰여 지지 않아 오랜 세월 동안 잠들어 있었는데 힘든 절로 인해 잠들어 있던 세포들이 잠에서 깨어나느라 온 몸이 아우성 쳤다. 세포들이 아프다고 아우성치니 잠자고 있던 의식도 시끄러워 몸과 마음이 야단법석이었고 힘든 삼 천배 하느라 아파서 죽을 것 같아도, 기운을 다 써서 죽을 것 같아도, 사실은 죽어가는 세포와 의식을 살려 놓아 힘이 생기는 일이라 생각하며 정성껏 한 배 한 배 절을 했다.
잠자던 세포들이 모두 깨어나면 아마도 아픔이 잠잘 것 같고 잠자던 의식이 깨어나면 세상이 밝게 보일 것이라는 희망을 가슴에 되새기면서 말이다.
점차 숫자를 늘려 절과 능엄주를 하면서 인생사의 집착과 욕심을 기도로 옮겨와 죽기 살기로 헐떡이며 했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열심히 2년 정도 하다 보니 몸에 기운이 다 빠지고 욕심도 집착도 기운 없는 만큼 내려놓게 되는 것 같았다. 그 때가 나의 관심사가 세상이 아닌 기도로 바뀌는 길목이었던 것 같다.
절수행이 몸에 익을수록 밖으로 나갔던 의식을 불러들이고 몸으로 돌아온 의식은 절 할 때마다 내 몸을 살피고 몸과 마음을 읽어 내려 밖으로 향하던 의식이 내 자신의 몸과 생각을 살피기 시작했다. 아픔이 커도 숨어있던 생각들이 되살아나고 아파서 고민하는 마음이 큰 번뇌가 되어 새로이 만들어내는 번뇌는 있을 자리가 없게 되니 어느덧 하루일과를 절 수행으로 시작과 끝을 맺게 됐다.
쉬지 않고 꾸준히 하다보면 점차 아픔이 사라지면서 아픔에 매였던 의식이 없어지는 것만큼 번뇌가 없어지고, 헤매던 번뇌 속에는 지금까지 살아온 모든 생각과 만났던 모든 인연들에 애증이 있었음을 자연히 알게 됐다.
어느 날 애들이 낮잠을 자고 있는 모습을 가만히 보고 있다보니 아이들의 마음을 알 것 같았다. 절 할 때 내 마음처럼 공부를 하고 싶어도 몸이 잠자라고 하니 어쩔 수 없이 몸이 하자는 대로 할 수밖에 없는 아이를 보니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절을 하면서 자신을 보게 되는 만큼 상대가 조금씩 이해가 되기 시작된 것이다.
주부(47·경기도 산본)
911호 [2007-08-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