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장년층에서 자주 쓰는 말 중에 ‘와이로’ 라는 말이 있다. 특정인에게 “너 와이로 먹었나?” 등 가끔 듣고 쓰는 용어이다. 우리가 평상시 자주 사용하고 있는 말은 분명하나, 그러나 그 말이 일본말인지 아니면 우리말인지가 궁금하다. 실제는 와이로(わいろ)는 뇌물을 뜻하는 일본어로, 일제 강점기부터 지금까지 널리 쓰이고 있는 말이다.
와이로와 비슷한 말로는 ‘사바사바’가 있다. 일제시대에 고등어(さば,사바) 두 마리를 순사에게 뇌물로 주어 일을 해결했다하여 나온 말이다. 이도 정당하지 못한 뒷거래를 일컬을 때 주로 쓰인다. 일각에선 윗사람의 비위를 잘 맞추고 아부를 잘 떨며 손을 비비는 것을 ‘싸바싸바’라 칭하기도 한다.
여하튼 뒷거래나 아부나 부정을 통해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는 사람의 행위나 그 사람을 표현하는 단어로 사용하는 셈이다. 와이로와 사바사바가 너무 성행하여 제한을 받게 된 법도 생겼다.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일명 ‘김영란 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2016.9)’이라고 한다.
중년 이후에게 ‘와이로’는 옛 기억의 흔적이지만 젊은 세대에겐 어휘집에 없는 낯선 말이다. 과거 국립국어원은 일본어인 ‘와이로’를 쓰지 말고 ‘뇌물’로 쓰도록 했다고 한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와이로’가 우리나라에서 전래 된 말이라고 알고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와이로’에 대한 유래는 고려 말의 유명한 학자인 ‘동국이상국집’, ‘동명왕편’을 저술한 이규보(李奎報)선생이 몇 번의 과거에 낙방하고 초야에 묻혀 살 때 집 대문에 붙어있던 글에서 나온 말이다.
고려 19대 명종이 민생시찰을 나갔다가 깊은 산중에서 날이 저물었다. 다행히 민가를 하나 발견하고 하루를 묵고자 청했지만 집주인(이규보)은 누추하다고 거절하며 인근의 주막을 권유했다. 그런데 대문에 ‘유아무와 인생지한’(有我無蛙 人生之恨) 글귀가 붙어 있었다. 즉, ‘나는 있는데 개구리가 없는 것이 인생의 한이다’는 임금으로서 어느 정도의 지식은 갖추었기에 개구리가 뜻하는 걸 생각해 봤지만 도저히 감이 잡히지 않았다.
주막의 주모에게 그 집에 대해 물어보니 그 젊은이는 과거시험에 몇 번 낙방하고는 주로 집안에서 책만 읽고 살아간다고 했다. 이에 궁금한 명종은 다시 그 집에 가서 집주인에게 대문 글귀의 대해서 물어보니, 자신의 처지를 적은 것이라며 사연을 이야기했다.
사연인 즉, 새들의 나라에 노래를 잘하는 꾀꼬리와 노래를 못하는 까마귀가 있었는데, 하루는 까마귀가 꾀꼬리한테 노래자랑 내기를 하자고 제안을 했다. 3일 후에 노래시합을 하되 심판은 백로(白鷺:황새)가 보기로 하자는 것이었다. 꾀꼬리는 어이가 없었지만, 까마귀가 도전해 온다니 시합에 응해 주고는 3일 동안 목소리를 가꾸고 연습했다.
그러나 까마귀는 노래연습도 안 하고 그동안 마대자루를 들고 논두렁의 개구리만 잡으러 돌아다녔다. 잡은 개구리를 백로에게 다 주고 심판을 잘 봐달라고 했다. 약속한 3일 후에 꾀꼬리와 까마귀는 노래 한 곡씩 부르고 심판인 백로에게 판정을 기다렸다. 꾀꼬리는 승리를 장담하고 기다렸는데 백로는 까마귀의 손을 들어 주었다. 왜 패배한 지 알아보니, 3일간 잡은 개구리를 백로에게 뇌물로 바쳤기 때문이라고 한다.
즉, ‘개구리 와(蛙)’, ‘이로울 이(利)’, ‘백로 로(鷺)’자로 이규보는 자신이 생각해도 실력이나 지식은 어디에 내놔도 안 떨어지는데 과거를 보면 꼭 떨어진다는 것이었다. 자신은 노래를 잘하는 꾀꼬리와 같은 입장이지만, 까마귀가 백로한테 개구리를 상납한 것처럼 뇌물을 주지 못해 과거에 번번이 낙방하여 초야에 묻혀 살고 있다고 했다.
그 말을 들은 명종은 이 젊은이의 품격이나 지식이 고상하기에, ‘자신도 과거에 여러 번 낙방하고 전국을 떠도는 떠돌이 인데, 며칠 후에 임시과거가 있다’해서 개성으로 올라가는 중이라고 거짓말을 했다. 그리고 궁궐에 돌아와 즉시 임시 과거를 열 것을 명했다.
과거를 보는 날 이규보는 시험장에서 마음을 가다듬으며 준비를 하고 있을 때 시험관이 내 걸은 시제가 바로 “有我無蛙 人生之限”이란 여덟 글자였다고 한다. 응시자들은 그게 무엇을 뜻하는지를 생각하고 있을 때, 이규보는 임금이 계신 곳을 향해 큰 절을 한번 올리고 답을 적어 냄으로서 장원급제해 유명한 학자가 되었다고 한다. 이때부터 ‘와이로’(蛙利鷺)란 말이 생겨났다고 한다.
빽 없고 돈 없는 서러움, 연줄 없는 고독감, 학연.지연.혈연이 없는 좌절감, 이것이 어떤 이에게는 현실이다. 안타까울 뿐이다. 그러나 이젠 우리 사회에서 와이로와 사바사바의 문화가 사라지고 공정한 세상에 땀 흘린 만큼 보상받는 세상이 오기를 기대해 본다.
첫댓글 와이로와 사바사바, 아마도 우리 아이들 세대는 잘 모르는 말일듯^^
정말 와이로가 한자인줄은 생각도 못했지 뭡니까 ㅋ
일식집에서 사바를 먹을때에도 그게 사바사바와 관련있는 줄도 역시 생각도 못했고요ㅎㅎ
개구리와 고등어를 볼 적마다 이 글 생각날듯요! ^^👍
와이로는 기 알고 있었지만...
저도 이번에 자료 조사하면서 사바사바에 대한 새로운 사실도 알았지요...
야송샘은 "백로가 개구리를 좋아하는 것을 꿰뚤어 보는 까마귀의 지혜도 대단합니다ㅡㅋ
저는 역발상으로 까마귀에서 한수 배웁니다 ㅋ" 라고 했는데, 역시 야송다운 생각입니다...
와이로는 그저 뇌물을 뜻하는 일본어, 사바사바는 손을 비비는 동작의 의태어 정도로만 알았는데 정확한 유래를 알게해주시니 또다른 재미가 있네요. ^^
감사합니다
채헌주님 자주 뵙기를 희망 합니다.
국립국어원 담당자들이 역사를 잘 알았다면 쓰지 말 라고 하지말고
의미를 바꿔 버렸을 텐데~아쉽군요.
깊은 의미가 묻혀있어서~~~
감사합니다.
회장님덕분에
새로운 지식을 더합니다.
넵 감사...오늘도 좋은 하루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