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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세례 요한의 죽음의 역설적인 교
본문| 막6:17-29
17 전에 헤롯이 자기가 동생 빌립의 아내 헤로디아에게 장가 든 고로 이 여자를 위하여 사람을 보내어 요한을 잡아 옥에 가두었으니 18 이는 요한이 헤롯에게 말하되 동생의 아내를 취한 것이 옳지 않다 하였음이라 19 헤로디아가 요한을 원수로 여겨 죽이고자 하였으되 하지 못한 것은 20 헤롯이 요한을 의롭고 거룩한 사람으로 알고 두려워하여 보호하며 또 그의 말을 을 때에 크게 번민을 하면서도 달갑게 들음이러라 21 마침 기회가 좋은 날이 왔으니 곧 헤롯이 자기 생일에 대신들과 천부장들과 갈릴리의 귀인들로 더불어 잔치할새 22 헤로디아의 딸이 친히 들어와 춤을 추어 헤롯과 그와 함께 앉은 자들을 기쁘게 한지라 왕이 그 소녀에게 이르되 무엇이든지 네가 원하는 것을 내게 구하라 내가 주리라 하고 23 또 맹세하기를 무엇이든지 네가 내게 구하면 내 나라의 절반까지라도 주리라 하거늘 24 그가 나가서 그 어머니에게 말하되 내가 무엇을 구하리이까 그 어머니가 이르되 세례 요한의 머리를 구하라 하니 25 그가 곧 왕에게 급히 들어가 구하여 이르되 세례 요한의 머리를 소반에 얹어 곧 내게 주기를 원하옵나이다 하니
26 왕이 심히 근심하나 자기가 맹세한 것과 그 앉은 자들로 인하여 그를 거절할 수 없는지라 27 왕이 곧 시위병 하나를 보내어 요한의 머리를 가져오라 명하니 그 사람이 나가 옥에서 요한을 목 베어 28 그 머리를 소반에 얹어다가 소녀에게 주니 소녀가 이것을 그 어머니에게 주니라 29 요한의 제자들이 듣고 와서 시체를 가져다가 장사하니라
오늘 말씀의 제목은 "선지자의 죽음이 주는 역설적인 진리이다." 역설적이라는 말은? 상반되는 두 개의 명제가 있는데 둘 다 옳은 경우에 역설이라는 말을 씁니다.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는 역설로 아주 유명한 사람입니다. 이 사람이 대표적으로 사용했던 역설은 “하나님은 어디에나 계신다. 그런데 하나님은 아무데도 안 계신다”.이 두 개는 정반대되는 말이지만 옳은 말입니다. 하나님이 어디에나 계시는 것을 체험하고 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불신자의 눈에는 아무리 찾아봐도 어디에도 계시지가 않는 것입니다.
헤롯 왕이 자기 동생의 아내를 취해서 자기 아내를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세례요한이 그 꼴을 보고 가만히 있었으면 되는데 책망을 합니다. 남을 책망한다고 하는 것은 너무나 어려운 일입니다.
일반적으로 책망을 받으면 네 가지로 반응이 일어납니다.
첫째는 악인들은 이를 갈고 대들고 복수하겠다고 합니다. 스데반이 책망하자 돌을 들어서 스데반을 쳐죽였어요. 예수님이 책망하시니까 예수님한테 이를 갈고 있다가 결국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습니다. 이 세상 사람들은 다 자연인이에요. 변화를 받지 못한 사람들이에요.그렇기 때문에 다 중한 죄를 짊어지고 사는데 자기의 약점인 죄를 들춰내면 견디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복수하려고 대듭니다. 그래서 우리 성경에 나오는 위대한 선지자들이 다 순교를 당하는 것입니다.
둘째 부류는 조금 양심이 있어서서 책망을 받으면 슬금슬금 꽁무니 빼는 인간들입니다.요한복음 8장에 보면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혀온 여자를 끌고 와서 예수님 앞에 놓고 "이 여자를 어떻게 하겠습니까 한번 이 여자를 심판해 보시오." 하고 예수님께 다그칩니다. 그때 예수님 이 너희들 중에 누구든지 죄 없는 자가 돌로 쳐라.이 말씀이 얼마나 권위가 있었는지 이 말씀에 무리들이 양심에 찔림을 받고 쳐죽이겠다고 들었던 돌멩이를 그 자리에 놓고 슬금슬금 다 도망가버리고 말았습니다.비겁해서 잘못을 알면 회개하면 되는데 잘못을 알아도 회개할 줄은 모르는 것입니다.
셋째 부류는 자기가 잘못된 걸 알면서도 결단을 못 내려요. 그렇다고 악인들처럼 잘못을 지적해 준 사람을 죽이려고 하는 것도 아니고 그런 사람들에게 피해서 도망가는 것도 아니고 이 사람들은 당신 말씀이 다 옳습니다. 내가 고치기는 하겠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못 고치고요 조금 이따가 고치겠습니다. 이렇게 차일피일 미루는 인간들입니다. 그게 바로 오늘 본문에 나오는 헤롯 왕이라는 사람입니다. 또 바울을 감옥에 가두어 두었던 벨릭스라고 하는 사람입니다. 가끔 바울을 불러서 복음을 듣긴 듣는데 회개는 하지 않고 그렇다고 바울을 놓아주는 것도 아니고 바울을 그냥 감옥에 가둬놓고 차일피일 미루다가 결국 임기가 끝나자 자기는 다른 데로 가버리고 그 뒤에 온 베스도라고 하는 총독에게 넘겨주었습니다. 헤롯 왕의 경우는 차일피일 미루다가 결국 세례요한을 목베어 죽입니다.
넷째 정말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사람들은 양심에 찔림을 받으면 가슴을 치고 회개하는 사람입니다. 내가 잘못했습니다. 내가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 주여 나를 불쌍히 여겨주시옵소서 하면서 하나님 앞에 눈물을 흘리며 회개하는 사람입니다. 사도행전 2장에 오순절 날 성령이 강림하셨습니다. 베드로가 벌떡 일어나서 저들에게 힘껏 외쳤습니다.성령이 강림하셨는데 이것은 술 취한 것이 아니다. 이건 바로 너희가 십자가에 못박아 죽인 바로 하나님이 보내신 메시야였다. 너희가 십자가에 못박아 죽였지만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셔서 하늘에 올라가셔서 우리에게 약속하신 대로 성령을 우리에게 부어주신 것이다. 이것이 요엘서 2장에 예언된 그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진 것이다.이렇게 외치니까 사람들이 깜짝 놀라서 자기들이 그렇게 바라던 메시야를 자기들 손으로 죽였다고 하는 것에 찔림을 받고 그러면 우리가 어찌할꼬 하고 통곡을 하게 되죠. 그러자 베드로가 말합니다. 너희가 다 회개해라. 그래서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아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게 된다. 그랬더니 그날에 3천 명이나 되는 많은 사람들이 회개하고 성령을 받고 예루살렘에 부흥이 일어났던 것입니다. 오늘도 우리가 내 양심에 찔림을 주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 그냥 흘려보내지 말고 즉시로 회개해서 새롭게 변화받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런데 세례 요한의 죽음은 세 가지의 중대한 역설적인 진리가 들어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첫째 진리는 세례 요한은 어떻게 죽었느냐? 헤로디아라고 하는 악한 여자의 딸이 춤을 추어 헤롯을 기쁘게 하자 헤롯이 그 아이에게 네 소원이 뭐든지 나라의 절반이라도 달라면 주겠다 고 했는데 이 여자 아이가 자기 엄마에게 달려가서 뭘 달라고 할지 물었더니 이 악한 여자가세례 요한의 목을 달라고 요구하도록 시킵니다. 그래서 세례 요한은 결국 이 음란한 여자의 춤 값에 팔려 죽고 말았습니다. 이 어린 아이의 춤 값에 요한은 너무나 싼 값에 죽임을 당한 것입니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면 헤롯이 이 아이에게 제안한대로 나라의 절반이라도 달라고 하면 정말 줬을까요? 아마 그거는 조금 어렵지 않았겠습니까? 다행히도 나라의 절반을 달라고 하지 않고 요한의 목을 달라고 했으니 헤롯이 꼼짝 못하고 결국 요한의 목을 베어 죽이고 맙니다. 그렇지만 그 값은 나라의 절반보다도 더 큰 값이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의인은 가장 싼 값에 죽는 것 같지만 사실은 가장 비싼 값에 죽는 것이다.구약 성경에 나오는 모든 위대한 선지자들, 기독교 2천 년 역사에 나오는 모든 위대한 선지자들이 어떻게 보면 참 싼 값에 죽은 것 같지만 아닙니다. 그들은 천하와도 바꿀 수 없는 가장 비싼 값에 죽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우리의 생명이 온 천하보다도 귀하다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우리는 우리 생명이 얼마나 귀한가를 깊이 깨달아야 합니다. 그래서 이 귀한 생명을 주님께 바쳐서 천국을 건설해 나가는 거룩한 역사를 이 땅에 이루어야 하겠습니다.
선지자의 죽음이 주는 역설적인 진리 둘째는? 세례 요한이 누구에겐가 바톤을 인계해 줄 사람이 나타나기까지는 죽으면 안 되겠다 그럴지 몰라요. 모세가 죽게 될 때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에게 바톤을 넘겨주게 하셨습니다. 엘리야의 경우도 엘리사라고 하는 후계자를 자기 눈으로 보고 세울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그런데 세례 요한의 경우는 자기 사역을 넘겨줘야 될 후계자가 있어야 되겠는데 자기 눈에 그게 안 보였잖아요. 광야의 소리는 죽었습니다. 그런데 광야의 소리가 다시 살아났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나타나셨습니다.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광야에 나갔더냐? 광야에 나온 백성들은 선지자의 소리를 들으려고 왔습니다. 근데 하나님이 그들 앞에 보여주신 분은 세례 요한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위대한 하나님의 아들 메시야였습니다. 메시야가 그들 앞에 나타났고 그들에게 생명의 말씀을 주셨던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역사는 놀랍고 신기합니다.
셋째는 세례 요한은 억울하게 죽었다. 그때 죽으면 안 되고 좀 더 오래 살아서 하나님의 일을 했으면 좋겠다 그것이 우리가 생각하는 거예요. 그렇지만 하나님의 뜻은 그것이 아닙니다. 세례 요한은 그때 죽어야지만 했다 하는 것입니다. 우리 성경의 역사를 보면 사울 왕의 아들 요나단이 다윗을 얼마나 사랑해 주었습니까? 이렇게 사랑했는데 그 요나단도 더 오래오래 살았으면 얼마나 좋았겠어요 그렇지만 하나님의 뜻은 그게 아니었어요.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서 우리의 생사가 다 결정이 됩니다. 요나단을 하나님이 일찍 데려가심으로 다윗의 왕권이 튼튼해질 수 있었습니다.마찬가지로 세례 요한을 하나님이 일찍 데려가심으로 예수님의 거룩한 사역이 드디어 새롭게 시작될 수 있도록 만드셨습니다. 만약에 요한이 죽지 않고 살아있어서 요한은 요한대로 일하고 예수님은 예수님대로 일한다 그러면 기독교는 처음부터 두 파가 갈라져서 지금까지도 계속될지 몰라요. 그런데 요한이 일찍 세상을 떠나면서 자기의 제자들에게 너희는 예수님께로 가라 예수님을 믿어야 된다 이렇게 가르쳤기 때문에 예수님으로 통합이 될 수 있는 놀라운 역사가 이루어졌다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의 역사를 보면서 하나님 앞에서 정말 아무것도 걱정하지 말고 주님께 맡기고 살아가는 지혜로운 사람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이 마지막 때에 많은 선지자를 찾고 계십니다. 바알에게 무릎 꿇지 아니한 선지자 칠천 명을 유대 땅에 남겨두셨던 것처럼 이 세상에도 얼마나 많은 훌륭한 선지자들이 있겠습니까. 특별히 대한민국 땅에 하나님이 의인들을 많이 세워놓으셨기 때문에 대한민국은 나날이 융성해 갑니다.복음으로 통일되고 세계 만방의 빛을 바라는 그 시각이 지금 시시각각 다가오고 있는 것입니다.이 놀라운 복을 우리가 충만하게 받고 이 거룩한 역사를 이루어 나가야 하겠습니다.
46. 바람아 잔잔해져라
본문| 마태복음 8장 23절~27절
23 배에 오르시매 제자들이 따랐더니 24 바다에 큰 놀이 일어나 배가 물결에 덮이게 되었으되 예수께서는 주무시는지라
25 그 제자들이 나아와 깨우며 이르되 주여 구원하소서 우리가 죽겠나이다 26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무서워하느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하시고 곧 일어나사 바람과 바다를 꾸짖으시니 아주 잔잔하게 되거늘 27 그 사람들이 놀랍게 여겨 이르되 이이가 어떠한 사람이기에 바람과 바다도 순종하는가 하더라
오늘 본문에 있는 말씀을 보면 예수님이 제자들과 함께 배를 타고 한밤중에 바다를 건너갑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종일 사역을 하시고 피곤하셔서 주무시는데 그때 갑자기 큰 풍랑이 일어나고 바람이 거칠게 불자 제자들이 주무시고 계시는 예수님을 깨우지 않고 어떻게든지 이 바다를 잘 건너가 보려고 얼마나 애를 씁니다. 이 사람들은 바다에서 잔뼈가 굵은 아주 능숙한 어부들입니다. 이 사람들이 열심히 노를 저어가면서 배를 몰아서 저쪽 건너편으로 갈려고 하는데 바람이 거세게 불고 풍랑이 일자 금방이라도 배가 뒤집어 엎어질 것 같고 아무리 애를 써봐도 안 되자 결국 주무시는 예수님을 깨웁니다. 주여 우리가 죽게 생겼습니다. 제자들이 정신을 못 차리고 이렇게 난리를 치는데 사실 그게 우리의 모습입니다.
오늘날 세상에 얼마나 거센 풍랑이 일어납니까? 거센 바람이 불고 있습니까? 하루도 바람 잘 날이 없어요. 한국에도 풍랑은 일어납니다. 태풍이 불어옵니다. 중국 땅에도 그렇습니다. 러시아도 그렇습니다. 구라파도 지금 난리입니다. 우리가 해야 될 일은 이렇게 망해가는 세상을 바라보면서 하나님 이 풍랑을 잔잔하게 해주세요 하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생각을 고쳐야 됩니다. 예수님이 여기 나와 함께 계시는 거를 알면 주님께 나에게 이러이러한 문제가 있습니다. 주님 고쳐주세요! 도와주세요! 살려주세요! 내가 하겠다고 하는 생각을 다 버리고 주님께서 도와주시도록 주님이 말씀해 주시도록 하셔야 합니다. 그러면 주님이 바람아 잔잔해져라! 바다야 잔잔해져라! 한마디 하시면 모든 게 잔잔해지잖아요. 그래서 우리 가정에 평화가 오는 거예요. 이 나라에 평화가 오는 거예요.
근데 세상은 날이 갈수록 평화가 없습니다. 끊임없이 전쟁이 일어납니다. 세상은 끊임없이 소용돌이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런 속에서 하나님께서 왜 우리를 이렇게 두셨느냐 우리보고 먼저 깨달아서 기도하는 사람이 되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열심히 기도합시다. 나라를 위해 기도해야 됩니다. 세계평화를 위해 기도해야 됩니다. 전세계에 나가서 복음 전하는 많은 선교사님들을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또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나라를 위해서 기도해야 됩니다. 우리의 조국을 위해서 기도해야 됩니다. 우리가 그런 사명을 가지고 하나님이 여기에 보내셨습니다. 깨닫지 못하는 백성들에게 그리스도의 구원의 복음을 전하고 평화의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돈이 있으면 평안한 줄 알고 돈을 잔뜩 쌓아놓고 평안하다 배부르다 어리석은 부자처럼 내가 평생 먹고 살 만큼 재산을 쌓아 놓았으니까 내 영혼아 이제는 편안히 좀 쉬자 그러는데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라도 내가 너의 영혼을 데려가면 네가 쌓아놓은 그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우리는 죽음이라고 하는 거를 의식하면서 살아야 하겠다. 자꾸 나이가 많아져 가면서 죽음이 눈 앞에 한 걸음 한 걸음 다가오고 있습니다.
그런 속에서 우리가 오늘 하루를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그래서 우리가 주님께 기도하고, 주님의 도우심을 받고 살아야 됩니다. 평소에 주님의 도우심을 늘 의지하고 주님께 기도를 많이 해서 주님의 도우심을 구체적으로 받으면서 사는 사람은 큰 환난 날에 넉넉하게 도움을 받고 구원을 받을 수 있지만 평소에 주님과 가까이 지내지 않은 사람은 큰 환난이 일어나도 주님께 도와달라고 기도할 수 있는 염치가 없어서 망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불행해지는 인간들이 그래서 많이 생깁니다.
우리가 정말 주님 앞에 기도하기를 힘쓰고 주님께서 잔잔하게 해주시는 이 놀라운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내 마음에서 일어나는 풍랑 이것도 주님이 잔잔케 하신다. 이 세상은 풍랑이 가득한 세상입니다. 바다의 물결이 요동치는 세상에 삽니다. 금방이라도 배가 뒤집어질 듯한 위험 속에서 우리가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런 때일수록 더욱더욱 주님 의지하고 기도에 힘써서 기도에 승리를 맛보는 사람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이렇게 해서 체험적인 신앙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이 되자. 주님이 나와 함께 계신다. 주님이 나를 도와주신다. 주님은 내 편이 되어 주신다. 주님이 나를 너무너무 사랑해 주신다. 주님이 나를 지켜 인도해 주신다. 내 걸음걸음을 주님이 인도하시고 주장하시고 복을 내려주신다. 그렇게 해서 나는 하나님으로 말로 다 할 수 없는 큰 복을 받은 사람이다. 주님 감사합니다. 주님 찬송합니다. 주님 영광 받으시옵소서. 이렇게 우리가 주님께 늘 감사하고 주님의 크신 은혜에 감격하며 살아가는 그런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47. 왕보다 앞서서 달려가자
본문| 열왕기상 18장 41절~46절
41 엘리아가 아합에게 이르되 올라가서 먹고 마시소서 큰 비의 소리가 있나이다 42 아합이 먹고 마시러 올라가니라 엘리야가 갈멜 산 꼭대기로 올라가서 땅에 꿇어 엎드려 그의 얼굴을 무릎 사이에 놓고 43 그의 사관에게 이르되 올라가 바다 쪽을 바라보라 그가 올라가 바라보고 말하되 아무것도 없나이다 이르되 일곱 번까지 다시 가라 44 일곱 번째 이르러서는 그가 말하되 바다에서 사람의 손 만한 작은 구름이 일어나나이다. 이르되 올라가 아합에게 말하기를 비에 막히지 아니하도록 마차를 갖추고 내려가소서 하라 하니라 45 조금 후에 바람과 구름이 구름과 바람이 일어나서 하늘이 캄캄해지며 큰 비가 내리는지라. 아합이 마차를 타고 이스르엘로 가니 46 여호와의 능력이 엘리야에게 임하매 그가 허리를 동이고 이스르엘로 들어가는 곳까지 아합 앞에서 달려갔더라
오늘 말씀의 제목은 <왕보다 앞서서 달려가자>입니다. 오늘 본문 46절 마지막 절 맨 끝에 하나님의 능력이 엘리야에게 임했더니 엘리야가 아합 보다도 앞에 서서 달려갔다는 말씀이 있어요. 아합은 마차를 타고 가요. 엘리야는 맨발로 뛰는 거예요. 뛰어가는 사람하고 마차를 타고 가는 사람하고 경주가 되겠습니까? 그래서 누가 먼저 갔느냐? 그랬더니 오늘 본문에 말씀하시기를 엘리야가 왕보다도 더 앞에 서서 이렇게 달려가더라. 이 말씀을 가만히 생각을 해보니까 우리 크리스찬들은 세상 사람들보다 앞서서 달려가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선지자는, 우리 목사는 대통령보다 앞서서 달려갈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참 그리스도인들은 이 세상에 지혜롭다고 하는 사람들, 세상에 잘났다고 하는 사람들, 세상에 많이 안다고 하는 사람들보다도 더 앞서서 달려갈 수 있어야 하겠다.
그런데 사실 우리의 현실을 보면 오늘날 교회가 이 세상 사람들을 통해서 많이 배웁니다. 그런데 이것은 사실 세상을 따라가는 거죠. 세상보다 우리가 앞장서서 이리 와라 하고 끌고 가야 되는데 세상 가는 길을 보고서 우리가 뒤따라 가기도 지금 힘들어서 허덕허덕거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세상을 따라가다 보면 결국은 지옥행입니다. 목사들이 앞장서서 너희는 나를 따라와라 하고 이렇게 끌고 나가면 천국 가는 건데 그렇게 되지 못하고 오히려 교회가 세상을 따라가기에 급급해 있으니 결국은 세상이 전부 지옥으로 가는 것처럼 우리 교회도 소경이 소경을 따라가면 구덩이에 빠진다고 우리 교회들도 세상 따라가다가 보면 전부 이 불덩이에 빠지고 지옥에 빠지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세상 따라가지 말라고 성경에서 거듭거듭 우리에게 가르칩니다. 물론 세상에 사는 것 가운데서도 좋은 것,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이 많이 있어요. 우리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을 세상 사람들이 오히려 더 지혜로워서 그런 일을 이룹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런 것을 배울 거는 배워야 하지만 그러나 천국이냐 지옥이냐 확실하게 이 방향을 잘 정하고 우리가 바른 방향으로 세상을 끌고 나갈 수 있어야 한다 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보다 앞장서서 세상을 끌고 나가는 게 복음의 능력입니다. 마귀의 거짓말에 속지 말고 정말 세상을 앞장서서 가는 사람들이 되어야만 하겠습니다.
오늘 본문에 3년 6개월 동안 이스라엘 땅에 비가 내리지 않았어요. 그러니 얼마나 피폐해졌겠습니까? 먹을 것이 뭐가 있었겠습니까? 이렇게 완전히 황폐해진 이 땅에 하나님께서 드디어 단비를 내려주십니다. 이런 역사가 일어나는데 그다음에 일어나는 일은 하나님의 능력이 엘리야에게 임해서 엘리야가 왕보다도 앞서서 달려가더라 그런 말씀입니다.
그런데 그보다도 더 먼저 일어난 일이 갈멜산 제단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 850명이 모인 곳에 엘리야는 자기 혼자 전쟁을 합니다. 위로부터 불이 내려져 제물을 홀랑 태우는 신이 참 신이다. 그래서 바알의 선지자들이 먼저 자기들의 신 바알에게 불을 내려달라고 악을 쓰고 애를 쓰며 소리 질렀지만 결국 불은 못 내리고 실패합니다. 그 후 엘리야가 하나님 앞에 불을 내려달라고 간절히 기도할 때 하늘에서부터 불이 내려 제물을 홀라당 다 태웁니다. 그래서 하나님만이 참 신이시라고 하는 것을 모든 사람 앞에서 증명을 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제일 먼저 나타나야 될 것은 하나님의 제단에는 불이 내려야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교회, 교회들에 불이 내려야 된다. 성령의 불이 내려야 된다. 성경이 우리에게 말하는 것은 성령의 불을 받으라고 하는 것입니다. 먼저 성령의 불이 우리 제단에 임해야만 합니다. 내가 설교를 하려고 강단에 딱 설 때 성령께서 불을 내려주시면 오늘 예배는 하나님이 받아주시는 예배로구나, 오늘 예배에 하나님이 말씀을 주시고 은혜를 주시는구나 깨닫는데 강단에 딱 섰어도 불이 내리지 않는 때가 있어요. 아무런 감동이 없고 가슴이 뜨거워지는 게 없고 이거는 하나님이 받지 않으시는 제사입니다. 아벨의 제사는 받으시고 가인의 제사는 안 받으셨다. 어떻게 알 수 있느냐? 가인의 제사를 안 받으신 것은 불이 안 내린 거예요. 아벨의 제사를 받으셨다. 불이 내린 거예요.
그런데 성경에는 불이 내렸다 안 내렸다 하는 말씀이 거기에는 안 나타나요. 성경에 불이 내려서 이렇게 제물을 홀라당 태운 이야기가 세 번 이렇게 나타납니다.
첫째로 레위기 9장에 아론이 처음 대제사장이 되어서 하나님 앞에 제사를 드릴 때에 하늘에서부터 불이 내려와서 제물을 싹 태웠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본 백성들이 하나님이 정말로 살아계시고 하나님이 정말로 우리 예배를 받으시는구나, 우리 제물을 받으시는구나를 직접 목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살아계시다고 하는 것, 하나님이 우리 예배에 함께 하신다는 것, 하나님이 우리 기도를 들어주신다는 것, 이 모든 것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살아가도록 역사해 주셨다고 하는 것입니다.
둘째로 다윗의 이야기에 나옵니다. 사울 왕이 기브온 사람을 죽인 일로 하나님께서 재앙을 내리실 때에 있었던 일입니다. 그때 3년 동안 기근이 있었는데 다윗이 하나님께 왜 이런 일이 생겼습니까? 물었더니 하나님께서 가르쳐 주시기를 사울이 죄 없는 기브온 사람을 죽여서 이렇게 했다. 그래서 기브온 사람들에게 찾아가서 어떻게 해야 너희 원한을 풀어줄 수가 있겠느냐? 묻고 사울의 자손 7명을 그들에게 넘겨주어서 그들을 처형하게 하게 합니다. 그 일로 하나님 앞에 잘못했다고 빌고 용서해 달라고 할 때 하나님께서 아라우나의 타작마당에 가서 거기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라고 합니다. 거기에서 제사를 드리게 될 때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서 제사를 받으셨다는 말씀이 나옵니다.
셋째로 오늘 본문에 나오는 역사입니다. 엘리야의 갈멜산 제단에 위로부터 불을 내려서 이 불이 제물을 홀라당 태우신 이 놀라운 역사가 여기에 기록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가장 중요한 건 하나님 앞에 향기로운 제사를 드려야 됩니다. 하나님 앞에 드리는 예배가 살아있을 때 그 나라에는 비가 내립니다. 불이 내려오고 비가 내려오고 모든 게 풍성해집니다. 그래서 때를 따라서 비를 내려주시고 새벽에는 이슬을 내려주시는 이것이 하늘의 보물들입니다.
그런데 먼저 이 불이 내려온 다음에 비가 내리기 전에 엘리야가 바알의 선지자들을 다 잡아서 전부 쳐죽였습니다. 이런 역사가 먼저 있어야 된다는 거죠. 그러므로 무엇보다도 먼저 해야 될 일은 내 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이 모든 죄의 법, 악한 법을 깨뜨려야지 우리가 이 세상을 왕보다도 앞서서 달려갈 수 있는 사람이 될 수가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다음 단계에서 하나님이 비를 내려주셨습니다. 그런데 비를 내려주신 게 그냥 저절로 비가 내려진 게 아니고 엘리야가 하나님 앞에 먼저 기도했습니다. 오늘 본문에 있는 말씀을 보면 엘리야가 그의 얼굴을 무릎 사이에 넣고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중요한 것이 엘리야의 기도입니다. 엘리야의 기도에는 세 가지 중요한 특징이 있습니다. 첫 번째 특징은 간절한 기도입니다. 얼굴을 무릎 사이에 넣고 간절히 기도하였습니다. 둘째 특징은 확신의 기도입니다. 하나님이 비를 내려주실 것을 확실히 믿고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셋째로는 끈질긴 기도입니다. 엘리야는 비가 내릴 때까지 기도했습니다.
그다음 단계는 하나님의 능력이 임해야 하겠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모든 성도들이 능력을 받아야 합니다. 이것이 예수님이 너무나 간절히 소원하셨던 일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의 고난을 받으시고 승천하셔서 성령의 불을 내려주셨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예수님 믿는다고 하면서도 많은 사람들이 성령을 몰라요. 성령에 관심도 없어요. 불 받아라 하는 소리가 무슨 소리인지 몰라요. 우리는 성령의 불을 받아야 합니다. 불이 없이 일하려고 하면 얼마나 힘이 들겠습니까? 모든 거를 내 힘으로 전부 하려고 하면 얼마나 힘이 들겠어요. 그렇지만 성령의 능력이 임하시면 성령으로 합니다. 성령께서 하시면 무슨 일이든지 다 이룰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성령의 능력을 받아 세상을 앞서서 달려가는 아름답고 승리로운 백성들이 다 되어야 하겠습니다. 이 역사를 이루시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48. 라마 나욧 같은 교회
본문| 사무엘상19:19~24
19 어떤 사람이 사울에게 전하여 이르되 다윗이 라마 나욧에 있더이다 하매 20 사울이 다윗을 잡으러 전령들을 보냈더니 그들이 선지자 무리가 예언하는 것과 사무엘이 그들의 수령으로 선 것을 볼 때에 하나님의 영이 사울의 전령들에게 임하매 그들도 예언을 한지라 21 어떤 사람이 그것을 사울에게 알리매 사울이 다른 전령들을 보냈더니 그들도 예언을 했으므로 사울이 세 번째 다시 전령들을 보냈더니 그들도 예언을 한지라 22 이에 사울도 라마로 가서 세구에 있는 큰 우물에 도착하여 물어 이르되 사무엘과 다윗이 어디 있느냐 어떤 사람이 이르되 라마 나욧에 있나이다 23 사울이 라마 나욧으로 가니라 하나님의 영이 그에게도 임하시니 그가 라마 나욧에 이르기까지 걸어가며 예언을 하였으며 24 그가 또 그의 옷을 벗고 사무엘 앞에서 예언을 하며 하루 밤낮을 벗은 몸으로 누웠더라 그러므로 속담에 이르기를 사울도 선지자 중에 있느냐 하니라
구약성경에서 제일 위대한 인물은 모세와 사무엘이다. 사무엘은 사사시대에서 왕들이 다스리는 시대로 건너가는 길목에 서있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사울에게 기름을 부어서 왕으로 세웠고,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서 또 왕으로 세웁니다.
사무엘 한 사람이 탄생하기 위해서 그의 어머니 한나라고 하는 분이 고난을 많이 당했어요. 이런 엄청난 고난을 통해서 사무엘이라고 하는 위대한 인물이 태어나는 것입니다. 사무엘은 기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내가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절대로 범하지 아니하겠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사무엘은 기도하는 사람이었고 우리도 다 기도하는 사람이 되어야 우리 자녀들 가운데 위대한 인물이 나옵니다. 하나님은 기적을 행하시고 우리의 자녀들 가운데 세계적인 인물을 일으키십니다. 우리가 이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열심히 기도해야지 됩니다.
첫째, 우리 자녀들이 훌륭하게 되기를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약속하십니다. 나는 너희가 기도하는 대로 다 이루어준다. 그런데 왜 기도 안 합니까? 기도 안 하기 때문에 우리 자녀들이 잘못되잖아요. 하나님은 우리 가운데서 우리 자녀들 가운데서 위대한 인물을 일으키시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둘째는 내가 너희에게 의로운 도로 가르치기를 쉬지 아니할 것이다. 둘째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겠다고 하는 겁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배워야 할 것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 말씀입니다. 오늘날 교회 다니는 사람은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성경을 읽지 않습니다. 읽어도 처음에는 무슨 소린지 하나도 깨달아지지 않아요. 그냥 졸립기만 해요. 그렇지만 그거를 이겨야 돼요. 때가 되면 드디어 확 열리는 때가 있어요. 하나님은 그런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그래야 진리의 사람이 됩니다. 예레미야 5장 1절에 하나님은 공의를 행하는 사람, 진리를 찾는 사람을 찾으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사울왕이 다윗을 죽이려고 이렇게 애쓰고 쫓아다녔어요. 그래서 다윗이 이리 도망가다 저리 도망가다가 결국 사무엘이 있는 곳으로 가면 괜찮겠다 생각을 해서 그리로 찾아갔어요. 그곳이 라마라고 하는 곳에 있는 나욧이라고 하는 작은 동네입니다. 그런데 다윗이 거기에 갔다는 얘기를 듣고 사울이 또 잡으러 왔어요. 그런데 사무엘이 있는 곳에 가까이 오자 다윗을 잡으러 온 사람들에게 갑자기 성령이 임했습니다. 그랬더니 이 사람들이 다 예언을 했습니다. 내가 지금 다윗을 잡으러 왔는데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다윗이 왕이 될 것이다. 그러니까 다윗을 잡으러 왔던 사람들이 잡지를 못하고 다 돌아가 버립니다. 사울왕이 또 사람을 보냈습니다. 또 온 사람들도 예언을 합니다. 세 번째 또 보냈습니다. 그런데 또 돌아왔습니다. 사울이 이번에는 내가 직접 가야겠다. 그리고 자기가 직접 군사를 끌고 다윗을 잡으러 왔는데 사무엘이 있는 곳 가까이 오니까 갑자기 성령의 불이 임합니다, 불을 받으니까 너무 뜨거워서 견딜수가 없어요. 그러니까 겉옷을 벗어 버렸어요. 그리고 종일 밤까지도 거기에 누워서 예언을 했다고 합니다.
우리가 성령을 받아야 됩니다. 예수님은 너희가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갈 수 없다하고 강조해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교회 그다니는 게 문제가 아니고 성령 충만하게 받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사울은 하나님에 대해서 귀로 듣기만 하고 그냥 그렇게만 배웠어요. 그런데 성령이 사울에게도 임했습니다. 자기 입으로 다윗이 왕이 될 것이다 하는 거를 선포했습니다. 하나님을 그냥 남들이 가르쳐주는 소리만 듣고 배워가지고 아는 게 아니고 하나님을 직접 만나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이 오셔서 하신 일이 병자를 고치시고 소경의 눈을 뜨게 하시고 앉은뱅이를 일으키시고 문둥이를 깨끗하게 하시고 귀신을 쫓아내시고 죽은 자를 살려내셨습니다. 얼마나 엄청난 기적입니까? 주님은 우리에게도 이런 기적을 보여주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을 귀로만 듣지 말고 몸으로 만나야 하나님이 과연 살아계시구나.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이구나 이거를 우리가 깨달을 수 있습니다. 나의 생각이 바뀌어야 합니다. 내가 얼마나 큰 최악 덩어리인가 하는 게 깨달아져야 합니다. 내가 얼마나 무능력한 사람인가 하는 게 깨달아져야 합니다. 그래서 주님 앞에 무릎 꿇고 주님의 은혜를 간구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예나 이제나 똑같이 역사하십니다. 이 마지막 때에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 앞에 찾아오십니다. 예수님을 꼭 만나야 됩니다. 그분이 우리에게 생명을 주십니다. 그분이 우리를 지켜주십니다. 우리 자녀들을 길러주십니다. 사무엘과 같은 위대한 인물이 되도록 만들어주십니다. 오 주님이시여 우리를 지켜주십시오. 우리가 이 땅에 제2의 사무엘이 되기를 원합니다. 우리 자녀들 가운데 위대한 인물이 나오게 해주세요. 이 세상을 살려야 합니다. 미국을 살려야 합니다. 세계를 살려야 합니다. 하나님은 그 새로운 인물을 우리 가운데서 일으켜 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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