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식, 이태리식, 한식 면(麵)을 모두 만나다
서울의 북쪽에 일산이 있다면 서울의 남쪽에는 분당이 있다.
흔히 ‘분당’이라고 하지만 분당은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이다. 지방 도시 사람들은 분당이 ‘시(市)’라고 생각하는 경우도 있다. 분당은 ‘분당구’다.
분당의 도시 형성 배후지는 서울 강남구, 송파구 일대다. 서울에서도 비교적 소득계층이 높은 사람들이 많이 모였다. 당연히 분당구는 성립 초기부터 얼마쯤은 부촌의 냄새가 났다. 한때 이 지역에 대한 선호도가 높았을 때는 “천당 위에 분당이 있다”는 우스갯소리도 들렸다.
도시가 생기고 사람들이 모여 산다고 해서 바로 ‘맛집’이 생기는 것은 아니다. 돈이 많고 좋은 음식을 원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맛집이 바로 생기는 것도 아니다. 더러는 도시가 생긴 후 100년의 세월이 흘러도 제대로 된 지역 음식이 나오지 않는 경우도 있다.
그 이전부터 사람들이 모여 살기 시작했지만 ‘도시 분당’은 이제 30년 정도다. 서울 강남 지역의 나이든 세대들이 많이 모여 들면서 음식도 그 세대들에게 적합한 것이 많이 생겼다. 대표적인 것이 일식 우동 집들이다.
‘사누키우동’은 일본 사누키(讃岐) 지방의 우동이다. 사누키는 일본 시코쿠(四國)의 카가와(香川)현의 옛 이름이다. 즉, 카가와 현의 우동이 바로 사누키우동이다. 사누키우동의 시작은 ‘세토우나이카이의 해물로 만든 육수’ + ‘카가와 현의 밀가루로 만든 우동’이다. 지금은 일본 역시 밀가루 소비량의 대부분을 뉴질랜드 등에 기대고 있다. 세토우나이카이의 고등어, 멸치 등이 좋다지만 일본 역시 생선의 대부분을 수입하고 있고 국내 생산은 지극히 한정적이다.
사누키우동은 쫄깃한 면발이 독특하다. 일본인들도 사누키우동의 면발이 마치 “떡 같다”고 표현한다. 일본 전역을 평정한 사누키우동은 한국에 상륙, 1990년대 홍대 인근의 몇몇 집을 시작으로 전국적으로 확산되었다.
분당구 구미동의 ‘야마다야’는 2000년대 중반 분당에 사누키우동을 소개했다. 가게에 들어서면 일본 ‘야마다야’ 본점의 사진이 걸려 있다. 분당에 처음 사누키우동을 소개한 공로가 있다. 손님들은 튀김과 우동을 동시에 맛볼 수 있는 세트메뉴를 주로 선택한다.
주방인력들이 바뀐 탓인지 면발의 상태가 들쑥날쑥일 때가 많다. 사누키우동의 맛은 면발의 쫄깃함에서 시작한다. 실제 카가와 지방 사람들 사이에는 “하루에 우동을 12그릇 먹고” 우동 면발은 끊지 않고 쫄깃한 면발을 그대로 목구멍에 넘긴다는 허풍 같은 이야기가 떠돈다.
‘오사야’는 정확히는 분당이 아니라 용인시 수지구에 있다. 수지가 분당과 멀지 않아서 더불어 적는다. ‘오사야’는 형제가 운영하는 사누키우동 전문점으로 특히 ‘찌구다마붓가케’가 유명하다. 반숙달걀을 우동에 얹고 약간 짠 맛이 도는 조미간장을 뿌려서 비벼 먹는다. 반숙달걀 특유의 고소한 맛과 쫄깃한 면발이 잘 어우러진다. 가게 입구에서 면을 작두로 썰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소박한 분위기의 소박한 우동 맛이다. 일본풍의 깔끔한 맛이 도드라진다.
최근에 분당에서 가장 주목받고 있는 사누키우동 전문점은 ‘겐(弦)’이다. 음식에 MSG를 사용하지 않고 매일 일정량의 수타우동만 파는 집으로도 널리 알려졌다. 재일교포 3세가 아버지의 대를 이어 2대째 우동을 만들고 있다. 돈카츠 정식 등 점심메뉴도 있고 저녁에는 ‘이자카야’ 같이 가볍게 술잔을 기울일 수 있는 집이다. 우동 면발과 조미간장(쯔유)의 맛은 수준급이다. 면발의 냉수처리도 수준급.
분당 서현역 부근의 ‘돈 파스타’는 수준급의 ‘이태리 국수집’이다. 인공화학조미료를 사용하지 않고 마치 ‘가정집 밥’ 같은 깔끔한 음식을 내놓는다. 이 가게는 음식 이외에도 몇몇 특이한 점으로 널리 알려졌다.
은퇴한 노부부가 운영한다. 남편은 주방에 부인은 홀에서 일한다. 마치 가정집에 방문객이 들어간 느낌이 든다. 음식 값은 비교적 높은 편이고 단골들이 꾸준히 찾는 집이다. 음식을 주문하면 상당히 느리게 제공된다. 때로는 30분씩 기다릴 때도 있다. 하지만 주방이나 홀 모두 ‘인원 보충’은 없다. 물론 재료가 동이 나면 문을 닫는다. 많이 팔린다고 더 장만하지도 않는 눈치다.
음식 내용물은 소박하다. 대단히 향이나 맛이 강하지 않고 그저 자연스런 맛 그대로이다. 가을이면 노부부가 이탈리아로 ‘음식 조리 여행’을 떠난다. 맛있는 음식을 먹고 여행을 하면서 새로운 음식 조리법을 배워 온다. 2013년 가을에는 “화덕피자 만드는 방법을 배워서 화덕피자를 내놓겠다”는 소문이 들린다. 마니아들은 “파스타나 넉넉하게 빨리 먹었음 좋겠다”고 눙친다.
분당에서 서판교로 들어서는 길목의 ‘능라’는 한국식 메밀국수 ‘냉면’집이다. 100% 메밀면을 내놓는다고 알려진 다음 올여름 내내 북새통이었다. 손님이 많아지면 어차피 서비스는 허술해지기 마련이다. 100% 메밀 냉면과 북한식 왕만두 등이 좋았던 집이다. 업력에 비해서는 수준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