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승원 동심 에세이】
대전 테미문학관에 세워진 김용재 시비 『순환형식』를 바라보며
― 동심의 눈높이에서 손자에게 들려주는 ‘할아버지의 해설’
윤승원 수필가. 전 대전수필문학회장
■ [제1부] ‘수필동화’ - 바퀴에 깔려도 사라지지 않는 것
대전 테미문학관 앞뜰에 김용재 시인의 시비(詩碑)가 세워졌다. 『순환형식』. (2026.3.31. 시비 제막).
시의 분위기랄까? 이미지에 걸맞은 원형조형물. 비(碑)에 새겨진 짧은 시를 한참 바라보았다.
▲ 대전 테미문학관 앞뜰에 세워진 김용재 시인의 시비(詩碑) 앞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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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퀴에 깔려도 햇살은 죽지 않는다 어둠이 다가서면 밀려갈 뿐이다
바퀴에 깔려도 어둠은 죽지 않는다 햇살이 다가오면 밀려갈 뿐이다 - 김용재, 『순환형식』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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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네 줄. 그러나 그 안에는 삶과 죽음, 그리고 사라지지 않는 어떤 것들의 의미가 담겨 있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문득 손자가 떠올랐다.
할아버지의 시각이 아니라 동심(童心)은 이 시를 어떻게 이해할까? 손자가 이곳 문학관을 둘러보다가 이 시비를 발견한다면 어떻게 해석할까?
할아버지는 이 시를 손자에게는 어떻게 이야기해 줄 수 있을까 생각해 보았다.
햇살이랑 어둠 이야기. 손자가 흥미를 느낄 만한 소재였다. 먼저 시를 천천히 읽어 주면서 할아버지 나름대로 해설을 덧붙였다.
“햇살은 낮이고, 어둠은 밤이라고 이해하면 되겠지. 낮이 오면 밤은 밀려가고, 밤이 오면 낮은 사라지는 것처럼 세상의 원리가 순환 구조로 되어있어.”
손자가 흥미로운 듯 반응할 것이다.
“네, 할아버지. 밤이 되면 해는 사라지지요. 그건 자연의 이치잖아요. 상식적인 이야기인데 그런 것이 시가 되나요?”
의문을 제기하는 손자의 대답에 할아버지는 즐겁다. ‘동심과의 대화’를 좀 더 진지하게 이어갈 수 있을 것 같아서였다.
“그런데 말이야, 해가 정말 없어지는 걸까?”
할아버지가 묻자 손자는 막힘없이 답했다.
“아니요, 지구 반대쪽에 있잖아요.”
손자가 제법 ‘지구의 원리’를 아는 것 같아 반가웠다.
“그래, 맞다. 해는 사라지는 게 아니라 잠깐 보이지 않을 뿐이란다. 어둠도 마찬가지야. 완전히 없어지는 게 아니라, 햇살이 오면 물러날 뿐이지.”
여기서 본격적으로 시비에 새겨진 핵심적인 시의 주제를 짚어보고 싶었다.
“이 시는 우리 삶도 그렇다고 말해 주는 거야. 슬픔이 와도 기쁨이 완전히 없어지는 건 아니고, 기쁨이 와도 슬픔이 사라지는 건 아니란다. 그저 번갈아 가며 우리 곁을 오고 가는 거지.”
손자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뜻밖의 말을 했다.
“할아버지, 그럼, 슬퍼도 괜찮네요?”
천진난만한 동심의 대답에 할아버지는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왜 그렇게 생각했니?”
손자의 입에서 명답이 나왔다.
“슬픔도 없어지는 게 아니라 기다리고 있는 거라면, 기쁨도 다시 오는 거니까요.”
순수한 동심의 대답 속에 시인이 말하고자 했던 삶의 철학이 담겨 있었다.
곧바로 손자가 저 멀리 서쪽 하늘을 가리켰다. 석양이었다. 저녁노을과 함께 어느새 해가 지고, 어둠이 천천히 내려앉고 있었다.
“할아버지, 지금 어둠이 이기고 있는 거지요?”
할아버지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지금은 어둠이 잠깐 앞에 다가오는 있는 거야. 햇살은 뒤에서 쉬고 있다가, 내일 다시 올 거란다.”
손자가 웃으면서 말했다.
“그럼 둘이 번갈아 놀고 있는 거네요!”
할아버지는 슬며시 웃음이 나왔다.
“그래, 어쩌면 그것이 가장 정확한 해석일지도 모른다. 삶과 죽음, 기쁨과 슬픔, 빛과 어둠. 이 모든 것이 서로를 밀어내는 것이 아니라, 차례를 바꾸어 가며 세상을 지키고 있는 것이지.”
할아버지는 그날 밤, 다시 『순환형식』 제목의 시를 떠올렸다.
바퀴가 굴러도 사라지지 않는 것들.
시간이 지나도 끝내 없어지지 않는 것들.
어른들만을 위한 시가 아니었다. 동심으로 이해하고, 순수한 상식과 자연의 이치대로 해석하니 새로운 깨달음이 ‘테미공원’ 꽃바람처럼 신선하고 향긋하게 다가온다.
손자의 천진난만한 웃음이 들려오는 것만 같다. 어떤 어둠에도 깔려 사라지지 않을 하나의 ‘햇살’이라는 것을 일깨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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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2부] 시인에 대한 추억 – 김용재 시인 추모글(『한국문학시대』 2024년 여름호 특집) 회고
형님 같은 따뜻한 문인이었다
― 김용재 시인(국제 펜 한국본부 이사장, 1944.03.05.~2024.04.29.)의 온화한 인품을 회고하며
윤승원 수필가. 전 대전수필문학회장
‘딱 한 잔만 해야지’ 작정하고 참석한 자리인데, 소주 4병을 비웠다.
김용재 시인(국제 펜 한국본부 이사장), 송하섭 문학평론가, 권오덕 전 대전일보 주필, 그리고 필자, 이렇게 4인의 참석자가 각 1병을 비운 셈이다.
그날이 2021년 11월 6일이었다. 대전 둔산동의 어느 맛집. 품격이 느껴지는 ‘꽃무늬 벽지’가 유난히 인상 깊었던 조용한 분위기의 음식점.
‘권오덕 주필 수필집 출간 축하 오찬 모임’이었다. 송하섭 원로 문학평론가가 마련한 축하 자리였다.
▲ 좌로부터 김용재 시인(국제 펜 한국본부 이사장), 권오덕 수필가(전 대전일보 주필), 송하섭 문학평론가(전 단국대 부총장), 윤승원 수필가(전 대전수필문학회장) (사진= 둔산동 L 맛집 주인 찍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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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분 원로 문인 모두 팔순 연세였다. 술잔을 연거푸 비울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건강이 뒷받침하고 있음을 증명하는 것. 참석자 모두 합창하듯 말했다.
“좋은 사람과 함께 하면 술맛이 더 나는 법이거든!”
특히 김용재 시인의 기분이 그날따라 유달리 좋아 보였다. 홍조(紅潮) 띤 얼굴이 유난히 ‘기분 좋은 취기(醉氣)’를 말해 주었다.
▲ 김용재 시인(국제 펜 한국본부 이사장, 대전문인총연합회 상임고문) - 기분 좋게 취기가 올랐다. 홍조 띤 얼굴이 보기 좋았다. 지팡이를 짚고 오셨지만 얼굴은 건강해 보였다. (사진=필자 윤승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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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집에 돌아와 그날의 풍경을 인터넷 카페와 블로그에 올리면서 김용재 시인을 이렇게 소개했다.
『목소리는 잔잔하지만 명쾌한 논리와 설득력 있는 웅변술, 영문학자로서의 풍부한 지식과 대학 강단에서 축적된 문학적 역량을 아낌없이 문단에 베푸시는 영역 시(英譯 詩)의 달인.
인생의 멋과 낭만을 시에 접목해 온 온화한 인품의 김용재 국제 펜 한국본부 이사장.
단 몇 분간만이라도 멋쟁이 원로 시인 곁에서 ‘조곤조곤 톤’의 말씀을 듣고 있노라면 누구나 인간적인 매력에 홀딱 빠지기 마련.』
대전지역 각종 문학 행사에서 김용재 시인을 뵈었을 때 언제나 그런 풍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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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뜻하지 않은 반가운 전화를 주셨다.
“오늘 아침 조선일보에 실린 윤 선생님의 에세이를 읽고 가만히 있을 수 없었어요. 대전에 이렇게 좋은 글을 쓰시는 분이 계시다는 것이 흐뭇하고 자랑스럽습니다.
유력 일간지 오피니언면의 필자 소개에 <대전수필문학회장>이라고 돼 있으니, <대전 문단>을 빛내시는 일이지요.”
김용재 시인은 당시 ‘대전문인총연합회장’으로서 <대전>이란 지명이 들어간 필자의 직함이 특별히 ‘자랑스럽다’라고 아낌없는 격려의 말씀을 주셨다.
대전지역 문학단체라는 소속감과 연대감을 강조하는 덕담이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김용재 시인은 ‘국제 펜(PEN) 한국본부 이사장’으로서 가장 최근에 이런 축하의 글을 썼다.
필자가 참여하는 《한국경찰문학》 제23호(2023)에 실린 <축사> 한 대목이다.
▲ 《한국경찰문학》 22호 <축사> - 김용재 시인(국제 펜 한국본부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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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前略) 모름지기 ‘경찰문학’이 전 현직 경찰과 시민들의 작품을 싣고 소통 교류하는 것은 우리 펜(PEN) 문학과 지향이 다르지 않습니다.
오늘날 문학은 지친 현대인들을 위무하고 치유한다고 말합니다.
범죄와 일선에서 맞닥뜨리며 치안 질서 확립과 시민 안녕을 지키는 경찰관과 그 역정을 거친 선생님들의 글과 시는 우리를 감동시키기에 충분합니다.(下略)』
김용재 국제 펜(PEN) 한국본부 이사장이 필자의 작품 활동에 유난히 따뜻한 관심을 주시고 격려해 주신 뜻도 역시 ‘축사’에 담겨 있다.
김용재 시인의 온화한 인품이 느껴지는 잔잔한 어조의 격려 말씀을 들을 때마다 나는 장형을 떠올린다.
교육자였던 나의 장형과 닮은 점은 <지기추상 대인춘풍(持己秋霜 待人春風 )> 생활 철학이다. 사람들은 <지기추상>은 깊이 모른다. <대인춘풍>에서 인간적인 따뜻함을 느꼈다.
<대인춘풍>은 늘 사랑을 베푸는 인정 넘치는 인품에서 나온다. 강물처럼 막힘없는 유려한 언변에서 높은 학식을 짐작한다.
어느 공식적인 단상(壇上)이 됐든, 사석(私席)이 됐든 말씀을 잘한다는 것. 단순히 ‘달변(達辯)’을 뜻하는 것만이 아니었다. <인품의 향기>와 <문학의 향기>가 어우러진 고품격 메시지를 담고 있었다.
지팡이를 짚으시더라도 영원히 함께하실 줄 알았는데, 홀연히 떠나시니, 슬픔이 크다.
남기신 주옥같은 작품과 인상 깊은 말씀이 한국 문단에 강물처럼 흐르니 영원히 떠나시는 것이 아니라 <잠시 여행> 하시는 줄 알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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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중이신 김용재 이사장님,
둔산동 축하 모임에서 존경하는 송하섭 원로 문학평론가께서 펼쳐 보이신 친필 서예작품 기억하시지요? 아름다운 추억처럼 자꾸만 떠오릅니다.
▲ 송하섭 문학평론가(전 단국대 부총장)의 친필 글씨(사진=필자 윤승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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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千江有水千江月(천강유수천강월) / 萬里無雲萬里天(만리무운만리천)’
하늘에 달은 하나지만 천 개의 강에 천 개의 달이 비치는 것이지요. 만 리나 되는 하늘에 구름 한 점 없으면 그대로 만 리가 다 맑은 하늘이지요. ■
2024. 5. 1.
윤승원 회고 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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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페이스북에서 방경태 작가님 응원 메시지
네이버 '청촌수필' 블로그 박경순 시인 댓글
네이버 청촌수필 블로그 K교수님 댓글
노래로 듣는 시 《순환형식》
https://www.youtube.com/watch?v=MOHJPQhODz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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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리 소통망 메시지
◆ 배병철(목사, 전 경찰관) 2026.4.1. 18:40
詩碑에 새겨진 시를 놓고서 손자와 철학적 대화를 나누시는 작가님은 참 행복한 분이십니다.
그런 품격 있는 삶은 누구나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젊었을 때 삶속에서 뿌린 씨앗들이 열매를 맺는 것이라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시인은 햇빛과 어둠으로 인생에 닥치는 일들을 보고 시로 읊은 것 같습니다. 그분은 깊은 통찰을 통해서 인생에 닥치는 일들을 보았을 것입니다.
솔로몬은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생각하라. 하나님이 이 두 가지를 병행하게 하사 사람으로 그 장래 일을 능히 헤아려 알지 못하게 하셨느니라”(전도서 7장 14절) 라고 했습니다. 같은 맥락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리고 작가님께서 저명한 인사들과도 마음을 터놓고 만나는 삶을 사시는 것도 인생의 내공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자랑할 만한 일이고, 경찰공무원으로서 현직에 있을 때 표면적인 영광이나 이익을 추구하느라 아등바등 살았던 분들은 결코 얻을 수 없는 행복일 것입니다.
벚꽃과 개나리 등 꽃이 만개했습니다. 화사한 봄날을 행복하게 지내시기를 소망합니다.
▲ 답글 / 필자 윤승원
목사님은 참으로 자상하십니다.
저의 졸고를 정밀하게 읽으시고 문학평론가 못지않은 분석과 해석을 해주셔서 크게 감동합니다.
과분한 칭찬이어서 몸 둘 바를 모르겠으나 따뜻한 격려와 위로라 생각하니 영광스러운 마음입니다.
살아가면서 제가 기록하는 삶의 이야기는 손자와도 카톡으로 또는 이메일로 공유하기 때문에 초등학생도 이해하기 쉽게 글을 쓰려고 노력합니다.
온갖 꽃이 만개하는 계절에 인정 넘치는 목사님과 따뜻한 이야기 나눌 수 있어 행복합니다. 감사합니다.
인기 급상승. 독자 여러분의 따뜻한 관심 덕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