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평생교육원은 매주 화요일 오전 10시30분부터 오후 5시까지 진행되며 수업료는 1학기 5만원입니다.
□ 평생교육원 가을학기 야외활동 일정 및 이모저모입니다. ㅡ**
1. 일정
시흥영성수련원출발 9시30분
충주영성수련원 12시 찬양 및 기도회
1시 점심식사 10명의 농부
베론 성지로 이동 4시 10분 출발
2. 탐방, 베론성지의 3가지 보물
황사영 백서 토굴
백서가 중국으로 전달되는 과정에서, 편지 심부름을 맡았던 황심 토마스가 그 해 9월 29일 배론에서 체포되어 1801년 11월 5일 서울 서소문 밖에서 대역부도의 죄로 능지처사 되었고, 6일 어머니 이윤혜는 거제도로, 아내 정난주(정명련)는 제주도로, 두 살 된 아들 황경한은 추자도로 귀양을 갔다. 현재 백서의 원본은 로마 교황청 바티칸 민속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성요셉 신학당
성 요셉 신학당은 1855년 프랑스 선교사 메스트로 신부에 의해 설립되었다. 이때 교우촌 회장 장주기 요셉(1803-1866)이 자신의 집을 신학당으로 봉헌하였다.
1856년부터 푸르티에 신부(1856-1866)가 교장으로, 프티니콜라 신부(1862-1866)가 교수로 재직 하였다.
1866년 3월 2일 서울에서 남종삼 요한을 체포하러 온 포졸들이 신학교를 급습하여 두 신부를 체포하였는데, 3월 11일 서울 새남 터에서 순교하였다.
장주기 요셉은 충남 보령 갈매못에서 3월 30일에 순교하였는데 사람들은 그 때 흰 무지개 다섯이 하늘을 뚫고 올라가는 것을 보았다고 전해진다.
성 요셉 신학당은 한국 교회 최초의 신학교임과 동시에 조선 최초의 근대신학 교육 기관이었다는 데에 그 의의가 있다.
최양업 토마스 신부 묘
배론성지에는 우리 나라 에서 두번째로 사제가 된 최양업 토마스(1821-1861) 신부의 묘가 있다. 그의 아버지는 최경환 프란치스 코(1805-1839) 성인이고 어머니는 이성례 마리아(1801-1840) 복자이다.
그는 1836년 12월 김대건, 최방제와 함께 신학생으로 선발되어 중국 마카오로 유학을 가서 신학교육을 받았고, 1849년 4월 15일 중국 상해에서 사제품을 받았다.
그는 귀국 후 11년 6개월 동안 산간 오지에 있는 교우들을 방문하며 목자의 삶을 살았다. 그가 사목하는 구역도 전라도, 경상도, 충청도 등 5도로서 6천여 명의 신자들과 127개의 공소가 있었다.
1861년 6월 15일 경상도 전교를 마치고 서울로 올라오던 중 과로로 문경에서 선종하였고, 그해 11월경 교구장 베르뇌 주교에 의해 당시 신학교가 있었던 이 곳에 묻히게 되었다.
“그의 굳건한 신심과 영혼의 구원을 위한 불 같은 열심, 그리고 무한히 귀중한 일로는 훌륭한 판단력으로 우리에게 그렇게도 귀중 한 존재였습니다. 그는 12년 동안 거룩한 사제의 모든 본분을 지극히 정확하게 지킴으로써 사람들을 성공적으로 구원에 이끌기 위해 힘쓰기를 그치지 않았습니다.(교구장 베르뇌 주교 추도사 중에서)”
평생교육원 원우님들이 찍은 사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