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전례
결혼식장에 갈 채비를 하느라 몸과 마음이 부산하다. 그런데 뜬금없이 구역장이 성당 안으로 관(棺)을 운구할 형제가 필요하다며 다급한 연락이다. 누군가 싶어 물으니, 우리 구역에서 노인회장을 맡았고 성당에서 위령 회장을 했던 이란다. 그러면서 자신은 병원에 수술할 환자가 예약되어 장례미사에 참석할 수 없다고 덧붙인다. 결혼식장에 가려던 마음을 접고 서둘러 성당으로 향하니, 마당에 까만 리무진 영구차가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관을 운구할 형제는 보이지 않고 자매들만 모여 성모송을 바치고 있다.
세상사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살아생전에 위령 회장을 맡아서 떠나는 이를 수없이 배웅했을 텐데. 정작 그의 귀로는 외롭고 쓸쓸하다. 잠시 머뭇대자, 여성 위령 회장이 다가와서 귓속말을 건넨다. 그간 남성 위령 회가 있었는데 나이가 들면서 돌아가시고 유명무실해졌다는 게다. 이제 장례미사를 드리려면 구역장이 책임지고 시신을 성당 안으로 운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구역장을 대신해 왔으니 내 책임이다. 시골에서는 상여에 시신을 실어 상여꾼이 운구하였으나 도시에서는 형제들이 시신을 넣은 관을 전례 하는 곳으로 옮기는 정도다. 어쨌든 시신을 옮기는 상여꾼이 된 셈이다.
영구차 앞자리 문이 열리고 까만 상복을 입은 여자아이가 나온다. 그 아이는 천당 여권 사진을 품고 있다. 영정 속 얼굴을 보자 어렴풋이 기억난다. 그는 일찍 아내와 사별하고 가끔 딸의 보살핌을 받아 왔다. 식당에서 마주할 때면 그는 식당 주인인 양 문간에서 반갑게 맞았다. 희수가 넘은 나이에도 젊은이들과 술잔을 주거니 받거니 하며 화려했던 젊은 날을 자랑하곤 했다. 정글 속에서 총탄이 비 오듯 쏟아지는 순간의 무용담이나 태양이 이글거리는 사막에서 맞닥뜨린 신비로운 일들. 국가를 위하여 처자식을 위하여 누구보다 치열하게 살았다고 자부심을 늘어놓았다. 지난 모임에서도 술잔을 권하며 영원히 살 것처럼 자신만만했다. 하나 그 후로부터 정확히 일주일 후에 화장실 안에서 죽었다. 그가 숨진 후 그를 배웅할 형제들이 없는 현실이 슬프고 가슴 먹먹하다.
“자매님들이 함께 관을 운구해 가시면 어떨까요?”
청해 보았지만 아무도 선뜻 나서지 않는다. 장례 관습이 남성의 몫으로 굳어져 있어 자매들이 망설이는 게다. 머지않아 자매들도 관을 들어야 할 날이 올 거다. 남녀가 동등한 시대를 살아내야 하기 때문이다. 장례미사 시간이 되자 신부는 내게 알브(Alb)를 갈아입고 오란다. ‘알브’라는 말이 생경하여 찾아보니 성당에서 관을 운구할 때 입는 하얀 옷이다. 전례(典禮) 실에 옷을 갈아입으러 가 보았다. 처음 보는 늙수그레한 형제들이 바람벽에 걸쳐있는 알브를 갈아입고 있다. 키가 깡총하게 작고 까무잡잡한 이가 셋이나 된다. 자세히 얼굴을 보니 외국인 근로자다. 신부님이 다급하여 성당에 일하러 온 이에게 부탁한 모양이다. 그들은 후줄근한 알브를 거쳤는데 체구가 작아서인지 치마가 길어서인지 옷이 바닥에 질질 끌린다.
관은 여섯이 운구하는 게 상례인데 넷뿐이다. 단단히 묶은 들메끈을 잡고 관을 성당 2층 본당까지 엄숙하게 운구하여야 한다. 그런데 외국에서 온 형제들은 다른 문화에서 살아온 탓인지 끈 잡는 법도 서툴고 엄숙한 분위기를 이해하지 못한다. 조용히 하라고 손짓해도 막무가내다.
“비 콰이엇(Be quiet.)”
간신히 한마디 건넸으나, 언어가 통하지 않는다. 그들은 관을 마치 짐작처럼 옮기려 한다. 네 귀퉁이를 잡고 몇 발짝 움직이는데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났다. 갑자기 “앗”하는 소리가 들려서 관 속에 고인이 소리친 줄 알았다. 그게 아니다. 상여꾼 보폭이 맞지 않아 앞에 잡고 가던 이가 넘어진 게다. 뒤에서 성가를 부르며 지켜보던 자매들이 숨을 삼켰다. 키가 작은 이는 앞으로, 큰 이는 뒤로 바꾸어 관을 잡고 조심스럽게 계단을 올랐다. 성당 십자가상 앞에 다 달아 서야 겨우 한숨 돌릴 수 있었다.
마지막 전례인 장례미사를 앞두고 침묵에 잠긴다. 침묵은 그저 말 없는 상태로 축소되는 게 아니라, 내 마음 안에 들려오는 소리를 듣기 위해 자신을 내맡기는 거다. 산 자는 죽어보지 않아 죽음에 대하여 말할 수 없고 죽은 자는 죽은 후라 말할 수 없다. 하나 그 누구도 세월의 칼날을 피하지 못한다.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죽음 앞에 속수무책이다. 고인은 화려하게 살았다고 자랑했으나 마지막 남은 건 고엽제 후유증과 외로움뿐이었다. 관절통과 수면장애뿐만 아니라 우울증에 시달리다가 성당을 찾은 게 그의 마지막 걸음이다.
신부는 죽음에서 생명을 길어 올리느라 장엄한 목소리로 기도를 올린다. “지극히 인자하신 아버지, (중략) 이 형제의 영혼을 아버지 손에 맡겨드리나이다.” 고인은 상여꾼의 불안한 손길에 두려웠으나 신부님의 기도로 편안히 영면하였으리다. 장례미사가 끝나자 무정한 상여꾼은 상여를 매고 고인이 살던 마당을 돌아나가듯 성당을 돌아 국립묘지 대전 현충원에 안장했다.
인생은 아침 안개 같다. 사십 대 중반에 고인을 알았는데, 어느새 내 나이 육십 대 초로가 되었다. 그가 천상으로 떠날 무렵 스스로 허접한 인생을 살았다며 술로 설움을 녹여냈다. 머지않아 산에 둥지를 틀 내게 침묵만 남겨놓았다.
첫댓글 유병덕 수필가님 올려주신 긍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4월 11일에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