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 6:13]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 야고보는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아니하시고 친히 사무도 시험하지 아니하시느니라"라고 말한 바 있다. 그러므로 본문의 시험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이 아니다. 사실 신약성경 여러 곳에는 성도들이 시련이나 역경을 만나더라도 그것을 기쁘게 여기라고 가르치는 말씀들이 나온다.
하지만 이러한 시련은 하나님께서 성도들의 신앙을 연단하여 더 큰 믿음을 낳게 하려는 것으로 본문의 시험과는 엄격히 구분된다. 혹 어떤 이들은 '시험'이란 주의 재림 때에 있을 종말론적 환난, 즉 배교를 의미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본문의 시험 페이라스모스란 단어에 어떤 한정사가 첨가되지도 않았을 뿐 아니라 문맥상 본문의 기도가 단지 종말에 국한시켜야만 할 이유가 없다는 점에서 위의 주장은 받아들여질 수 없다.
한편 본문을 허용적 뉘앙스를 지닌 문장으로 이해하여 ' 의하여 시험에 빠지지 않게 해주옵소서'라고 해석하기도 한다. 이는 '시험'이라는 말이 '타락의 결과를 가져오는 유혹'을 뜻하는 것으로 가장 많은 지지를 받고 있다. 여하튼 이 간구는 분명 시험에 날마다 노출될 수 밖에 없으며, 또한 사악한 악마의 미혹에 쉽게 넘어질수 밖에 없는 인간의 한계를 깊이 자각한 자만이 드릴 수 있는 기도이다.
실로 우리는 감당할수 없는 시련에 빠져들지 않도록 기도해야 할뿐 아니라 그러한 시험에 직면했을 경우라 할지라도 능히 극복케 해달라는 기도를 잇지 말아야 한다. 다만 - 이는 '그러나', '도리어'라는 뜻의 반의적인 접속사로서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라는 앞의 간구와 분명히 대조되는 또 하나의 간구 일곱 번째 기도임을 보여 준다.
즉 이 '알라'라는 접속사는 바로 전의 간구가 소극적이고 피동성이 강한 기도였다는 전제를 깔면서 바로 이어지는 간구는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면이 강할 것이라는 암시를 준다. 사실 이어지는 간구는 악에 대한 능동적 승리를 기도한 것이다. 악(루 포네루) - 이 말은 남성 또는 중성 소유격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를 중성으로 해석할 경우는 추상명사로서의 악을 가리키고 남성으로 이해할 경우는 악한 자로서의 사단을 가리킨다.
그러나 신약성경의 여러 곳을 종합적으로 검토할 때 이는 분명히 남성인 것으로 보인다. 구하옵소서 - 이는 사단의 공격에서 보호하고 지켜달라는 간구이다. 우리는 사단 앞에서는 전혀 대항할 수 없는 무력한 존재로서 그를 이길 수 있는 주님 만이 우리의 보호자가 될 수 있다.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있사옵나이다 아멘 -
고대의 유력한 사본 및 본문과 평행을 이루는 누가 복음에는 나와있지 않는 내용이다. 따라서 이 부분은 기도의 끝에 반드시 송영이 뒤따랐던 유대인들의 관습에 따라 후대 기독교회가 주기도문을 완전한 기도문의 형태로 만들기위해 첨가 내지는 삽입한 것 같다. 한편 본문의 송영 자체는 신학적으로 심원하고 문맥상으로 적절하다.
특히 마지막 세 간구들 안에 삼위일체에 대한 암시가 내포되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이 송영이 문맥상 더욱 적절하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그들은 이 송영안에 삼위일체이신 하나님의 각각의 사역에 대한 내밀한 암시가 내포되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즉 그들은 성부의 창조와 섭리는 우리에게 양식을 공급해 주고, 성자의 속죄는 우리의 용서를 확보해 주며, 성령의 내주하는 능력은 우리의 안전과 승리를 보장한다고 말한다.
한편 '나라'는 하나님이 왕으로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나라를 가리킨다. 따라서 그 나라를 유지하시고 당신의 백성에게 선한 약속들을 성취시킬 권세와 거기에 수반되는 모든 '영광'이 다 하나님께 속해 있는 것이다. 이처럼 앞의 주기도문과 깊은 연관성을 지니고 있는 본문의 송영은 전통깊은 교회의 신앙 고백적 찬양으로서 오늘날 우리들에 의해 계속 낭송되어져야 마땅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