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유사 욱면설화(郁面說話)]
"신라 경덕왕 때 강주의 남자 신도 몇십 명이 뜻을 극락세계에 두고
고을 경계에 미타사를 세우고 1만일을 기한하여 계(契)를 만들었다.
이때 아간(阿干) 귀진(貴珍)의 집에 욱면이라는 한 계집종이 그 주인을 따라 절에 가 뜰에 서서 스님을 따라 염불했다.
주인은 그 종이 일을 하지 않는 것을 항상 미워해서, 곡식 두 섬을 내주면서 이것을 하루 저녁에 다 찧으라고 했다.
그러나 그 종은 그 곡식을 초저녁에 다 찧어 놓고 절에 와서 염불하기를 밤낮으로 게을리 하지 않았다.
(속담에 '내 일 바빠 주인집 방아 바삐 찧는다'는 말은 여기서 나온듯)
욱면은 뜰 좌우에 긴 말뚝을 세우고 두 손바닥을 뚫어 노끈으로 꿰어 말뚝에 매서
합장하고 좌우로 흔들면서 자기 자신을 격려했다.
그 때 공중에서 소리가 나기를 "욱면은 법당에 들어가서 염불하라" 하니,
절 안의 스님들이 이 소리를 듣고 그를 권하여 함께 법당에 들어가 염불했다.
얼마 안 되어 하늘에서 들려오는 음악 소리가 서쪽에서 들려오더니,
욱면은 몸을 솟구쳐 대들보를 뚫고 밖으로 나갔다.
그는 서쪽으로 가다가 교외에 이르러 육신을 버리고 부처로 변하여
연의대(蓮衣臺)에 앉아서 큰 빛을 내뿜으면서 천천히 사라져 가니,
이때 음악소리는 공중에서 그치지 않았다.
당시 그 법당에 구멍이 뚫어진 곳이 지금도 있다."
※고려시대엔 법당에 아무나 들어갈 수 없었고, 귀족계급이나 특별한 사람만 들어갈 수 있었다.
그리고 바닥은 마루가 깔려 있지 않고, 그냥 전돌의 바닥으로 되어 있었는데
이후 조선시대부터 마루바닥으로 되었다. <국민대 김개천 교수 /btn> http://cafe.daum.net/santam/IZ0A/245
※우리나라 불교는 왕실불교, 귀족불교, 평민불교 순으로 내려왔는데
당시에 벌써 노비의 성불 이야기가 있었다는 것은 매우 획기적인 것이다.
☞ 극락엔 앵무새 없다, 여자도 없다 <자현스님> http://cafe.daum.net/santam/IQZL/499
여자는 성불할 수 없다? http://cafe.daum.net/santam/IQZL/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