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받고 싶은 상(賞)
임병식 rbs1144@daum.net
이즘 연말이 되면 수상소식이 여기저기서 들려온다. 연말에 그런 소식이 몰려서 들려오는 건 연말이면 주로 한해의 결실을 평가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소식을 들으면 부러운 한편으로 나도 하나 받아보았으면 하는 마음이 저절로 든다.
보드레이의 말에 따르면 "탁월한 자라면 굳이 훈장이나 무슨 상을 원하겠는가. 그것들은 무능한 자들을 빛나게 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라는 혹평도 했지만, 평범한 범민으로서야 그 유혹에서 벗어나기란 어렵다.
내가 부러워하는 상이란 아무거나 욕심내는 것은 아니다. 적어도 그 상의 주체자가 이미지가 깨끗하고 존경하는 인물일때 구미가 당긴다. 한데 그런 상은 경쟁이 치열하여 고소원(固所願)이지만 가망은 거의 없다.
그러함에도 나는 기회가 된다면 ‘조경희문학상’을 한번 받아보고 싶다. 상의 비중도 있지만 여기에는 이유랄까, 어떤 당위성도 있다. 생전에 조경희회장님으로부터 내 글에 대해 평가를 받았는데 좋은 말씀을 해주셨던 것이다. 그런만큼 나는 회장님의 이름이 새겨진 상을 꼭 받아보고 싶다.
사연은 2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나는 다니던 직장에서 정년을 1년 앞두고 수필집 ‘당신들의 사는 법’을 펴냈다. 등단 후 사실상 두 번째 수필집으로 십여 년 만에 펴낸 것이었다. 여기에다 비교적 잘 썼다고 생각되는 작품을 선집형태로 묶었다.
책을 낸 후, 내가 아는 문단의 원로와 당대에 활동하던 수필가에게 두루 보내드렸다. 책을 받고서 많은 분이 답신을 해온 가운데, 특별히 전화를 주신분이 계셨다. 걸려온 전화를 받아보니 조경희회장님이셨다.
“ 임병식씨, 나 조경희요. 임작가는 수필이 무엇인지 알고 쓰는 작가예요. 반가워서 전화했어요. 열심히 쓰세요.”
깜짝 놀랐다. 그도 그럴 것이 그때까지 나는 회장니을 먼발치에서 뵌 적은 있어도 가까이 다가가 인사도 드린 적도 없었다. 무엇보다도 감격스런 것은 글에 대한 칭찬이었다. 물론 등단한지 일천하고 지방에서 글을 쓰고 있으니 격려차원의 말씀임을 감안한다 해도 ‘수필을 알고 쓴다’는 말씀은 나를 흥분시키기에 충분했다.
그래서 당시 작가회 총무를 맡고 있던 류인혜 선생에게 회장님이 전화를 주신 내용을 알렸다. 그랬더니 다음과 같은 말이 돌아왔다.
“회장님은 남의 작품에 대해 일체 말씀을 안 하신 분이에요. 특별하게 보신 것 같네요.”
그러면서 ‘곧 한국수필문학상 마감일이 다가오니 응모를 해 보세요’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급하게 응모를 하여 지방에서는 거의 신인에 해당하는 신분으로 상을 받게 되었는데, 이는 전적으로 회장님이 밀어주신 것으로 알고 있다.
그 일이 생각나 나는 회장님이 돌아가셨을 때 불원철리 한달음에 서울까지 달려가 문상을 했다. 이런저런 일을 생각하면 회장님의 인정을 받은 사람으로서 회장님 명의로 주는 문학상도 타는 것이 순리가 아니겠는가. 그래서 욕심을 부려보는데 나중 상을 받게 되면 기대에 어긋나지 않았다고 말씀해 주시지 않을까.
또 다른 하나는 근자에 신설한 ‘고동주 문학상’이다. 고 선생님은 금년 초에 타계하셨는데 가족과 후배들이 힘을 모아 문학상을 제정하였다. 이 상은 지방에서 만든 상인만큼 비중이 있는 상은 아니다. 하지만 매우 의의가 있다고 생각한다. 한 인간의 성공신화를 넘어 바른 삶, 치열하게 써온 수필인생을 살았기 때문이다.
특히 공직생활을 함에 있어서는 모범적으로 청빈함을 실천함으로써 올곧은 공직자 상을 정립했다는 평을 받는다. 인격 또한 훌륭한 분이다.
나는 그간 고 선생이 어느 사건이 크게 터졌는데도 불구하고 무사한 것이 한동안 궁금했다. 그게 뭐냐 하면 1995년에 일어난 시프린스호 사고인데, 엄청난 기름이 남해안 바다를 뒤덮어 막대한 피해를 입혔던 것이다. 그 기름은 남해안 일대를 덮치고 통영앞바다까지 오염시켰다.
정유회사에서는 급한 대로 국회의원과 기관장들의 입막음에 나섰다. 그 결과 대다수 기관장들이 매수가 되어 뇌물을 받아먹었다. 여수지역만 해도 현역 국회의원이 입건되고, 군수가 웃을 벗었다. 경찰관서장은 물론 해양경찰, 해수부 직원들이 옷을 벗거나 징계처분을 받았다.
기름은 통영앞바다까지 흘러갔다. 그런데도 고동주시장님만 별일 없이 무사했다. 어느 날 그 궁금증에 대해 물어볼 기회가 있었다. 서울에서 늦은 시각 작가회 연말행사를 치르고 집행부에서 정해준 호털에서 함께 자게 되었던 것이다.
“다른 기관장들은 대부분 입건이 되거나 옷을 벗었는데 어떻게 용케 무사하셨어요?”
대답이 단호했다.
“제가 왜 그런 부정한 돈을 받습니까. 저는 그런 돈 안받습니다.”
하는 게 아닌가. 그러면서 한 말이다. 회사에서 돈을 가져와 한사코 안기려 해서 단호히 거절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다른 이야기도 덧붙였다. 통영앞바다에는 모래가 많은데 골재 채취업자가 어떻게나 심히 로비를 시도하는지 물리치느라고 애를 먹었다고 했다. 끝내 거절하니 온갖 모함으로 괴롭혔다는 것이다. 이것은 지역민도 잘 모르는 일일 것이다.
이것만 보아도 얼마나 훌륭한 공직자인가. 이런 청렴결백과 강직함은 이 시대에 가장 요구되는 최고 공직자의 덕목이 아닐 수 없다.
얼마 전에도 불미스런 사건이 터지지 않았던가. 지방경찰청장이 갑자기 자살을 했는데, 뇌물과 연관이 있는 것으로 추측한다. 거기까지 오르는 데는 수많은 시간과 열정이 바쳐졌을 테고, 가족의 현신이 있었을 텐데 아름답지 못한 마무리를 한 것은 얼마나 본인의 불명예와 가족에게 허탈감을 안긴 것인가. 이런 점만 보아도 공직자의 청렴의무는 만 가지의 근본이 아닌가 한다.
나는 일찍이 그것을 깨닫고 공직생활을 시작하면서부터 끝마칠 때까지 실천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그래서 일부러 민원부서는 피하고 현장근무를 하면서도 일체 그러한 부정한 돈은 사약을 보듯이 기피하였다. 그런 점에서 볼 때 나는 고동주선생과 닮은 점이 있지 않나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고동주문학상을 욕심내 보는 것이다. 상의 취지에도 부합이 되지 않는가 생각한다. 이 상을 욕심내보는 것은 또 다른 이유도 있다. 이왕에 상이 마련되었으니 이것이 선생의 인품에 걸맞은 문학상으로 자리 잡으려면 내가 하나의 기준점이 되어서 보다 격이 높게 평가되는 문학상이 되었으면 하는 것이다.
이런 말을 하고 보니 내가 마치 상이나 욕심내는 사람처럼 되어 버렸지만 그러나 진의는 내가 상을 타는 것은 두 번째고 부디 이 두 분의 상이 튼튼하게 뿌리를 내려 모든 수필인이 받고 싶어 하는 기대치 높은 문학상이 되었으면 한다.(2023)
첫댓글 조경희 선생과의 특별한 인연은 두고두고 잊을 수 없는 일대사건이군요 남의 작품에 대해 좀처럼 평하지 않으시는 선생으로부터 최상의 칭찬과 격려를 받으셨으니 그 감동을 어찌 잊을 수 있겠어요
고동주 선생은 수필 이전에 존경해마지 않던 분이었지요 공직자들에게 청백리의
본이 되신 분이니 선생님과 청렴DNA를 공유하셨군요
원하신 상을 받기를 소원합니다 하나 수상 여부를 떠나 선생님께선 이미 두 분의 발자취에 부족함이 없는 세계를 일구어 오셨습니다
두분의 문학상은 제가 욕심을 내보는 상입니다. 그렇지만 마음대로 탈 수 있는 상은 부디 라마건대는
이 문학상이 잘 자리를 잡아갔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