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문명(人類文明)의 역사(歷史)
28. 예루살렘(Jerusalem) 성전과 통곡의 벽(Wailing Wall)
예루살렘 성전 터 / 통곡의 벽 / 예루살렘 시내 모습
예루살렘 성전은 믿음의 조상(祖上) 아브라함(Abraham)이 아들 이삭(Isaac)을 제물로 바칠 제단을 쌓았던 곳이라고 하는데 BC 957년 지혜의 왕 솔로몬(Solomon)이 이곳에 성전을 건축하니 바로 예루살렘 제1 성전으로, 계약의 궤(契約櫃-Ark of the Covenant)를 안치하였고, 백성 전체가 모이는 장소였다고 한다.
계약궤는 모세가 구약시대,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2개로 된 십계명 돌 판을 보관했던 나무상자를 말한다.
그런데 예루살렘 성전은 이웃 나라였던 바빌로니아(Babylonia)의 느부갓네살(Nebukadnessar) 2세가 쳐들어와 BC 604년과 BC 597년에 성전 보물들을 노략질했고, BC 586년에는 성전을 파괴해버렸다.
성전이 파괴되고 BC 586년과 BC 582년에 유대인들이 바빌로니아에 포로로 잡혀가는데, 지금도 합창곡으로 너무나 유명한 베르디(Verdi)의 오페라 나부코(Nabucco)의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이 그것이다.
나부코(Nabucco)는 이태리어로 느부갓네살(Nebukadnessar)을 줄여서 발음하는 것이라고....
이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은 그 노랫말이 너무도 가슴에 와 닿아 듣는 사람들의 가슴을 먹먹하게 한다.
이후 페르시아가 바빌로니아를 정복하고 키루스(Cyrus) 2세는 BC 538년 칙령을 내려 포로로 잡혀 온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성전을 재건하도록 허락했고 성전 재건 작업은 BC 515년에 끝났다고 한다. 이후, BC 20년 유대의 왕 헤로데(Herod)는 제2 성전을 세웠는데 이미 계약의 궤는 사라진 후였고 그 이후 영원히 찾지 못했지만, 이곳은 이스라엘 민족 생활의 중심이 되었다고 한다고 한다.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 / 계약의 궤 / <영화 포스터> 잃어버린 성궤를 찾아서
영화 인디아나 존스의 ‘잃어버린 성궤를 찾아서(Raiders of the Lost Ark-1981)’가 기억에 생생하다.
사람들은 사라진 성궤를 찾으려고 수많은 노력을 하지만 끝끝내 그 행방을 알지 못했다고 한다.
예루살렘 성전은 고대 유대인들이 대단히 거룩하게 여긴 곳이었는데 AD 70년 로마인들에 의해 제2 성전도 파괴되고 벽만 남아있는데 이곳이 오늘날 남아있는 ‘통곡(痛哭)의 벽’이다.
결국, 유대가 멸망하고 유대인들이 전 세계에 뿔뿔이 흩어지게 되었는데 삶의 터전을 잃은 유대인들이 유적으로 남은 이 벽에 모여 통곡을 하였다고 하여 ‘통곡의 벽’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이 벽은 이슬람의 바위 사원과 알 아크사 모스크를 둘러싸고 있는 커다란 벽 일부도 이루고 있어 유대인들과 아랍인들이 관할권을 놓고 오랫동안 투쟁해왔으나 1967년, 아랍연맹과 이스라엘이 벌인 제3차 전쟁이 6일 만에 이스라엘의 승리로 돌아가 ‘6일 전쟁’이라고 일컬어지는데 이때 이스라엘이 옛 예루살렘을 점령하면서 이곳 통곡의 벽에 대한 관할권은 이스라엘이 차지하게 되었다고 한다.
현재 예루살렘 구시가지는 무슬림/기독교인/유대인/아르메니아인의 네 구역으로 나누어져 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