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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광주대교구 꾸르실리스따 원문보기 글쓴이: 이선정스테파노
2025년 10월 3일 금요일
[(녹) 연중 제26주간 금요일]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말씀의 초대
바빌론에 유배된 이들은, 주님 앞에서 죄를 짓고, 그분을 거역하였다고 고백하며 참회 기도를 드린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말씀을 듣지 않는 고을들에게, 당신을 물리치는 자는 당신을 보내신 분을 물리치는 사람이라고 하신다(복음).
제1독서
<우리는 주님 앞에서 죄를 짓고, 거역하였습니다.>
▥ 바룩서의 말씀입니다. 1,15ㄴ-22
15 주 우리 하느님께는 의로움이 있지만,
우리 얼굴에는 오늘 이처럼 부끄러움이 있을 뿐입니다.
유다 사람과 예루살렘 주민들, 16 우리 임금들과 우리 고관들과 우리 사제들,
우리 예언자들과 우리 조상들에게도 부끄러움이 있을 뿐입니다.
17 우리는 주님 앞에서 죄를 짓고, 18 그분을 거역하였으며,
우리에게 내리신 주님의 명령에 따라 걸으라는
주 우리 하느님의 말씀을 듣지 않았습니다.
19 주님께서 우리 조상들을 이집트 땅에서 이끌어 내신 날부터 이날까지
우리는 주 우리 하느님을 거역하고,
그분의 말씀을 듣지 않는 것을 예사로 여겼습니다.
20 주님께서 우리에게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주시려고
우리 조상들을 이집트 땅에서 이끌어 내시던 날,
당신 종 모세를 통하여 경고하신 재앙과 저주가
오늘 이처럼 우리에게 내렸습니다.
21 사실 우리는 그분께서 우리에게 보내 주신 예언자들의 온갖 말씀을 거슬러,
주 우리 하느님의 말씀을 듣지 않았습니다.
22 우리는 다른 신들을 섬기고
주 우리 하느님의 눈에 거슬리는 악한 짓을 저지르며,
저마다 제 악한 마음에서 나오는 생각대로 살아왔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 음
<나를 물리치는 자는 나를 보내신 분을 물리치는 사람이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0,13-16
그때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13 “불행하여라, 너 코라진아! 불행하여라, 너 벳사이다야!
너희에게 일어난 기적들이 티로와 시돈에서 일어났더라면,
그들은 벌써 자루옷을 입고 재를 뒤집어쓰고 앉아 회개하였을 것이다.
14 그러니 심판 때에 티로와 시돈이 너희보다 견디기 쉬울 것이다.
15 그리고 너 카파르나움아, 네가 하늘까지 오를 성싶으냐?
저승까지 떨어질 것이다. 16 너희 말을 듣는 이는 내 말을 듣는 사람이고,
너희를 물리치는 자는 나를 물리치는 사람이며,
나를 물리치는 자는 나를 보내신 분을 물리치는 사람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우리나라 사람들은 ‘빨리빨리’를 좋아합니다. 모든 일을 빨리하려는 문화 덕에 전 세계에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빠른 경제 발전을 이루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빨리빨리’가 반드시 좋은 것만은 아닙니다. 출세도 빨리하고 싶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도 쉽게 빨리 모으고 싶어 복권은 늘 동이 납니다. 차량 한 대가 차선을 위반하면 다른 차들도 줄지어 그 뒤를 따르고, 교통질서는 금세 흐트러집니다.
이런 문화는 자신이 놓인 상황을 눈치껏, 재주껏 해결하라고 우리를 부추기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렇게 행동하는 사람은, 정작 자신은 손해를 보지는 않지만 규칙을 지키고 정직하게 사는 사람들에게 피해를 입힙니다. 또한 천천히 노력하는 것의 소중함을 잊게 만듭니다. 이렇게 노력하지 않고 잘되기만을 바라는 태도가 과연 우리 삶의 질을 높일 수 있을까요? 그렇게 살면 마음이 편할까요?
오늘 복음에 나오는 코라진과 벳사이다와 카파르나움은 예수님께서 활동하시던 주무대인 갈릴래아 호숫가의 도시들입니다. 특히 카파르나움은 예수님께서 행하신 기적을 가장 많이 체험하고, 하느님 나라에 대한 이야기도 가장 많이 들은 고을입니다. 곧 예수님께서 베드로 장모의 열병을 낫게 하시고 중풍 병자를 고쳐 주신 곳이며, 야이로라는 회당장의 딸을 살려 내신 곳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카파르나움에 있던 사람들이 왜 하늘에 오르지 못할 것이라는 말을 들었을까요? 아마도 그토록 많은 기적을 체험하고, 하느님 나라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듣고도, 그저 하늘 나라에 가고 싶어 하기만 하였지 자신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바꾸려는 노력은 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닐까요?
예수님의 말씀을 곱씹고 되새겨 깨달은 바를 자신의 삶에서 실천하며 살아가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이찬우 다두 신부)
내가 머무는 곳이 내가 믿는 행복이다.
전삼용 요셉 신부님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오늘 우리는 루카 복음 10장에서 예수님께서 코라진, 벳사이다, 카파르나움이라는 세 도시를 향해 발하신 준엄한 꾸짖음을 듣습니다.
“불행하여라, 너희 코라진아! 불행하여라, 너희 벳사이다야! 너희에게 일어난 기적들이 티로와 시돈에서 일어났더라면, 그들은 벌써 자루옷을 입고 재를 뒤집어쓰고 회개하였을 것이다.” (루카 10,13)
예수님께서는 이 도시들에서 수많은 기적을 행하셨지만, 그들은 예수님이라는 새로운 사랑의 공동체로 들어오기를 거부했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에게 중요한 질문을 던집니다. “사랑이 행복임을 믿는다고 말하는 너는, 지금 어디에 머물고 있느냐?” 내가 머무는 곳, 내가 선택한 공동체가 바로 내가 어떤 가치를 믿고 그것에서 행복을 찾으려 하는지 말해주기 때문입니다. 나의 공동체가 곧 나의 심판이 됩니다.
구약성경의 소돔과 고모라 멸망 이야기는 이를 극명하게 보여줍니다. 죄악으로 가득 찬 도시에서 두 천사가 롯의 가족을 이끌어내며 “뒤를 돌아보지 말고, 평지에 머물지 말라”고 경고합니다. 이는 하느님께서 이끄시는 새로운 사랑의 공동체로 나아가라는 부르심이었습니다.
하지만 롯의 아내는 천사들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뒤를 돌아보았습니다. 그녀의 몸은 소돔을 떠났지만, 마음은 여전히 죄악과 허영으로 가득 찬 옛 공동체에 미련을 두었기에 소금 기둥이 되고 맙니다.
이는 영화 ‘블루 재스민’의 재스민 프랜시스가 불행을 한탄하면서도 허영의 삶을 놓지 못해 파멸하는 모습과 같습니다.
작은 등불의 어둠을 좋아하는 벌레가 태양의 빛을 좋아할 수 없는 것처럼, 작은 사랑의 공동체조차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어떻게 더 큰 사랑의 공동체인 하느님 나라를 받아들일 수 있겠습니까?
두 천사가 하느님께 파견되어 롯의 가족을 이끌었듯이, 오늘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파견하여 하느님의 사랑의 공동체로 우리를 부르십니다.
“너희 말을 듣는 사람은 내 말을 듣는 사람이고, 너희를 물리치는 자는 나를 물리치는 사람이며, 나를 물리치는 자는 나를 보내신 분을 물리치는 사람이다.” (루카 10,16) 파견된 제자들의 공동체를 물리치는 것은, 곧 하느님의 부르심을 물리치는 것과 같습니다. 내가 지금 어디에 머무느냐가 내가 무엇을 믿고 무엇을 선택하는지 명백하게 보여주는 것입니다.
우리는 먼저 작은 사랑의 공동체에 머무르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그곳에서 우리의 사랑도 점차 증가합니다. 일본 도쿄 시부야 역 앞에는 하치코라는 충견의 동상이 있습니다. 주인이 세상을 떠났음에도 불구하고, 하치코는 10년 동안 매일 같은 시간에 역으로 주인을 마중 나갔습니다.
그 변치 않는 사랑이 하치코를 움직이는 유일한 원동력이었고, 그 사랑이 하치코를 주인이 있는 '공동체'에 머물게 했습니다. 하치코의 이야기를 통해, 사랑이 어떻게 공동체를 향한 의지를 만들어내는지 배웁니다.
이 원리를 더욱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가 '야생 소녀' 옥사나 말라야입니다. 3살부터 8살까지 개들과 함께 자란 그녀는 인간 사회에 적응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그러나 동물 치료 시설의 전문가들이 보여준 헌신적인 사랑 덕분에, 그녀는 점차 인간 공동체에 속할 수 있었습니다.
옥사나가 먼저 개의 공동체를 떠나 '사람의 공동체'에 머물 수 없었다면, 결코 하느님의 공동체에 들어올 수 없었을 것입니다. 사랑은 그 수준을 점진적으로 높여가야 하는데, 기본적인 인간의 사랑 공동체조차 감당할 수 없다면, 교회 공동체에서 하느님의 무한한 사랑을 깨닫는 것은 더욱 어렵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가정을 꾸려 행복해지려는 마음이 없다면, 즉 가장 기본적인 사랑의 공동체를 외면한다면, 교회 공동체에서 하느님의 크신 사랑을 깨닫는 것 또한 어렵습니다.
우리가 사랑이 행복임을 진정으로 믿는다면, 우리는 점차 더 큰 사랑을 갈망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궁극적인 종착지는 하느님의 사랑이 가장 완전하게 구현된 공동체, 곧 교회입니다. 빅토르 위고의 ‘파리의 노트르담’에는 끔찍한 외모 때문에 세상으로부터 버림받았던 콰지모도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의 유일한 공동체는 노트르담 대성당의 종탑이었고, 자신을 거둔 프롤로 주교뿐이었습니다. 하지만 아름다운 집시 여인 에스메랄다가 목마른 그에게 물 한잔을 건네주는 작은 사랑을 보여주었을 때, 콰지모도의 세상은 완전히 뒤바뀝니다.
그는 프롤로 주교의 그릇된 욕망보다 더 순수하게 에스메랄다를 사랑했고, 그녀를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쳤습니다. 그는 에스메랄다라는 '사랑의 공동체'에 자신을 완전히 맡겼고, 그 안에서 자신의 추한 외모를 넘어선 인간의 존엄성과 사랑의 가치를 발견했습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오늘 강론을 통해 우리는 깊은 진리를 깨닫습니다. 내가 머무는 곳, 내가 선택한 공동체가 바로 내가 어떤 가치를 믿고 그것에서 행복을 찾으려 하는지 말해주며, 그것이 곧 나의 심판이 된다는 사실입니다. 사랑이 참 행복임을 믿는다면, 우리는 사랑이 있는 공동체에 머물 것입니다.
그리고 그중에 가장 완전한 사랑은 이 세상에서 가족과 같습니다. 부모가 자신을 전부 내어주어 만든 공동체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더 넓게 보면, 교회 공동체만큼 큰 사랑을 요구하고, 또한 가장 완전한 사랑을 체험할 수 있는 곳은 없습니다. 교회는 혈연을 넘어, 착한 사마리아인처럼 모르는 사람까지도 이웃으로 사랑하게 만드는 공동체입니다.
사랑이 참 행복임을 알고 믿는다면, 우리는 교회 공동체에 머물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오늘 하루, 우리 자신에게 이 질문을 던져봅시다. "사랑이 행복임을 믿는다면서, 나는 지금 어디에 머물고 있는가?" 그 대답이 우리의 삶을, 그리고 영원한 행복을 향한 우리의 길을 결정할 것입니다. 아멘.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님
성령 세미나를 이끄는 신부님이 성당의 감실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감실에 대한 본인의 느낌을 설명해 주었습니다. 저는 2년 동안 감실을 보았지만, 신부님처럼 자세히 본 적이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한다.’라고 말씀하셨는데 저에게 하시는 말씀 같았습니다. 신부님은 감실에 있는 그림을 자세히 보았습니다. 감실에는 태양, 새, 물고기, 성합과 성체가 있었습니다. 신부님은 감실의 모습에서 하느님의 천지창조를 보았다고 했습니다. 하느님의 천지창조는 순서가 먼저 장소를 창조하시고, 다음에 그 장소에서 머물 수 있는 생명을 창조하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빛’을 창조하셨습니다. 그 빛은 과학자들이 말하는 빅뱅일 수 있습니다. 그 빛이 ‘우주’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제자들에게 ‘너희는 세상의 빛’이 되라고 하셨습니다. 빛은 밝게 드러나야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하늘의 궁 창과 하늘 아래 물을 만드셨습니다. 하늘의 궁 창에는 해, 별, 달을 만드셨습니다. 땅 아래 물에는 물고기를 만드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땅을 만드셨습니다. 땅 위에 많은 생명을 만드셨고, 그 생명을 다스릴 수 있도록 하느님을 닮은 사람을 만드셨습니다. 이렇게 하느님께서는 먼저 장소를 만드셨고, 그 장소에 머물 수 있는 생명을 만드셨습니다. 우리 본당의 감실은 그런 하느님의 천지창조를 표현하고 있었습니다. 감실에 모셔진 ‘성체’는 창세기 3장에서 이야기한 ‘생명나무’입니다. 묵시록 22장에서 이야기한 ‘생명나무’입니다. 우리는 생명이신 성체를 받아 모시니 생명의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친절, 온유, 기쁨, 절제, 평화, 사랑, 희망의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천지창조의 신비를 품고 있는 본당의 감실을 보면서 하느님께 감사드리면 좋겠습니다. 본당의 감실을 보면서 천지창조의 신비를 묵상할 수 있도록 알려 주신 신부님께도 감사드립니다.
오늘 독서는 이스라엘 백성의 ‘성찰, 통회, 결심’을 전해 주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주 우리 하느님께는 의로움이 있지만, 우리 얼굴에는 오늘 이처럼 부끄러움이 있을 뿐입니다. 유다 사람과 예루살렘 주민들, 우리 임금들과 우리 고관들과 우리 사제들, 우리 예언자들과 우리 조상들에게도 부끄러움이 있을 뿐입니다. 우리는 주님 앞에서 죄를 짓고, 그분을 거역하였으며, 우리에게 내리신 주님의 명령에 따라 걸으라는 주 우리 하느님의 말씀을 듣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바빌론의 유배지에서 철저하게 자신들의 잘못을 성찰하였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성찰과 통회를 보시고 고향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이끌어주셨습니다. 느헤미야와 에즈라를 통해서 예루살렘 성전을 다시 세울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유배지에서 돌아와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하느님을 찬미하였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감격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예수님께서도 회개의 눈물을 흘렸던 베드로를 용서하셨고, 베드로에게 천국의 열쇠를 맡겨 주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죄가 진홍같이 붉어도, 우리의 죄가 다홍같이 붉어도 우리가 진심으로 성찰하고, 회개한다면 다시는 죄를 짓지 않도록 결심한다면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죄를 눈과 같이 희게 해 주십니다.
성찰은 지금 내가 어디에 있는지 돌아보는 것입니다. 지하철을 타고 역에 내리면 많은 사람이 지도를 봅니다. 지도에는 한결같이 ‘현 위치’라는 표시가 있습니다. 지금 내가 어디에 있는지 알아보는 것은 바로 반성과 회개입니다. 반성과 회개를 하는 신앙인들은 바른 신앙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반성과 회개를 하지 않아서 그릇된 길로 가곤 합니다. 사다리를 오를 때도 올바른 방향으로 사다리를 놓아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반성과 회개입니다. 예수님께서 처음 복음을 전하실 때도 이렇게 말씀하였습니다. ‘회개하십시오. 하늘나라가 가까이 왔습니다.’ 회개하지 않는 사람은, 반성하지 않는 사람은 하느님 나라가 가까이 온 것을 깨닫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신자들이 매일 드리는 저녁기도에도 반성의 기도가 있습니다. 주님 오늘 생각과 말과 행위로 지은 죄와 의무를 소홀히 한 죄를 사를 뉘우치오니 저를 바른길로 이끌어주소서.
“행복하여라! 밤낮으로 주님의 가르침 되새기는 사람. 그는 제때 열매를 맺으리라.”
<벗들에게 내님을>
상지종 베르나르도 신부님
“너희 말을 듣는 이는 내 말을 듣는 사람이고, 너희를 물리치는 자는 나를 물리치는 사람이며, 나를 물리치는 자는 나를 보내신 분을 물리치는 사람이다.”(루카 10,16)
벗들에게
깨끗한 눈길을
벗들이
내님의 눈길을
마주볼 수 있도록
벗들에게
고운 목소리를
벗들이
내님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벗들에게
따뜻한 손길을
벗들이
내님의 손길을
느낄 수 있도록
벗들에게
착한 발길을
벗들이
내님의 발길을
맞이할 수 있도록
벗들에게
오롯한 마음을
벗들이
내님의 마음을
품을 수 있도록
오늘의 성인
성녀 마리아 요세파 로셀로 (Mary Josepha Rossello)
활동년도 : 1811-1880년
신분 : 설립자
지역 :
같은 이름 : 메리, 미리암, 요세빠, 요셉파
이탈리아 북서부 리구리아(Liguria)의 사보나(Savona)에서 가까운 알비솔라 마리나(Albisola Marina)에서 짐꾼의 아홉 자녀 가운데 하나로 태어난 성녀 마리아 요세파 로셀로(Maria Josepha Rossello)는 어려운 가정 형편 때문에 어려서부터 집안 살림을 돕기 위해 여러 가지 일을 하였다. 어려서부터 신심이 깊었던 그녀는 일찍이 수도생활을 원했으나 건강 등의 문제로 뜻을 이루지 못하였고, 16세 때에 작은 형제회의 3회원이 되었다.
1837년 그녀의 재능을 알아 본 사보나 교구의 주교가 그녀에게 집을 한 채 주고 소녀와 처녀들을 가르치는 일을 하도록 하였다. 이렇게 소규모로 출발한 이 단체는 나중에 병원과 학교 등을 거느린 ‘자비의 모후 수녀회’로 크게 발전하였다. 성녀 마리아 요세파 로셀로는 40년 이상 이 수녀회를 운영하는데 헌신하였다. 그녀가 설립한 수녀회는 이미 그녀의 생전에 이탈리아와 라틴 아메리카 등으로 활발히 퍼져 나갔다. 1880년 12월 7일 선종한 그녀는 1938년 11월 6일 교황 비오 11세(Pius XI)에 의해 시복되었고, 1949년 교황 비오 12세에 의해 시성되었다
성 제라르도 (Gerard)
활동년도 : 880?-959년
신분 : 신부, 수도원장
지역 : 브로뉴(Brogne)
같은 이름 : 게라르도, 게라르두스, 제라드, 제라르두스, 제라르드
성 게라르두스(Gerardus, 또는 제라르도)는 880년경 벨기에 나무르(Namur) 교구의 포스(Fosse) 근교인 스타브(Stave)의 귀족 집안에서 상티오(Santio)의 아들로 출생하였다. 어머니 플렉트루드(Plectrud)는 리에주(Liege)의 주교인 스테파누스(Stephanus)의 조카였다. 당시 귀족 신분의 자제들처럼 성 게라르두스 역시 기사 교육을 받았는데, 군대 안에서도 그의 경건함은 모든 이들의 눈길을 끌었다. 그는 자신의 영지인 브로뉴에 있는 한 경당을 크게 재건하고 성 에우게니우스(Eugenius)의 유해를 안치했다.
917년경 나무르 공작은 성 게라르두스에게 프랑스 사절의 임무를 맡겼다. 파리에 도착한 그는 수행원들을 파리에 머물게 하고 자신은 생드니(Saint-Denis) 수도원에서 머물렀다. 그곳에서 수도승들의 삶에 깊은 감명을 받은 그는 사절의 임무를 마친 후 나무르 공작과 스테파누스 주교의 허락을 얻어 다시 생드니 수도원으로 돌아갔다. 그곳에서 수도자가 되어 생활하였고 사제품을 받았다. 그 뒤 브로뉴로 돌아온 그는 수도원 근처의 작은 골방에 칩거하면서 엄격한 금욕생활을 하였다. 919년 그는 성 베드로와 성 에우게니우스에게 재봉헌된 브로뉴의 성당에 토지를 기증하였다.
923년 새 수도원의 아빠스가 된 그는 수도원이 자리를 잡고 평화롭게 성장하던 934년, 로렌(Lorraine)의 지슬베르(Gislebert) 공작으로부터 에노(Hainaut)에 있는 수도원을 베네딕토회의 규칙을 준수하도록 개혁해 달라는 임무를 받았다. 이러한 그의 개혁 운동은 플랑드르(Flandre) 지방에서만 일곱 개의 수도원에서 행해졌는데, 그 후 이 운동은 노르망디(Normandie) 지방으로까지 확산되었다. 그러나 그의 모든 개혁이 성공을 거둔 것은 아니었다.
953년 일선에서 물러난 그는 브로뉴로 돌아가 몽 블랑델(Mont-Blandel) 수도원의 아빠스가 되었다. 그는 로마로 교황을 방문하고 돌아오는 길에 자신이 개혁한 공동체들을 방문하였다. 그 후 브로뉴에서 머물다가 959년 10월 3일 세상을 떠났다. 그의 유해는 브로뉴에 안치되었고, 1131년 리에주의 주교인 알렉산데르(Alexander)는 교황 인노켄티우스 2세(Innocentius II)의 대리로 성인의 시신을 기리는 예식을 거행하였다. 이 예식은 사실상 시성과 동등한 효과를 지닌 것이었다. 17세기 이후 게르마누스는 성인으로 불리기 시작하였다.
성녀 테오도라 게랭 (Theodore Guerin)
활동년도 : 1798–1856년
신분 : 수녀원장, 설립자
지역 :
같은 이름 : 게렝, 구에린, 데오도라, 데오도로, 데오도루스, 떼오도라, 떼오도로, 떼오도루스, 테오도로, 테오도루스
성녀 테오도라 게랭(Theodora Guerin)은 1798년 10월 2일 프랑스 서쪽 브르타뉴(Bretagne) 반도의 이타블리 쉬르 메르(Etables-sur-Mer)라는 마을에서 안느-테레즈 게랭(Anne-Therese Guerin)이란 이름으로 태어났다. 그녀의 부모는 나폴레옹 보나파르트(Napoleon Bonaparte) 휘하에서 해군 장교로 근무한 로랑 게랭(Laurent Guerin)과 르페브르(Lefevre) 가문 출신의 이자벨 게랭(Isabelle Guerin)이었다. 안느-테레즈가 태어난 때는 프랑스 혁명(1789-1794년)이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기였다. 혁명의 여파로 프랑스는 갈가리 찢어졌고, 학교와 성당들이 강제로 문을 닫고 사제들이 추방되거나 단두대에서 희생됨으로써 가톨릭 교회 또한 위기에 봉착한 시대였다.
로랑과 이자벨은 네 명의 자녀를 두었는데 안느-테레즈와 마리-잔느(Marie-Jeanne)만이 어른이 될 때까지 살아남았다. 안느-테레즈는 어릴 때부터 하느님과 가톨릭 교회에 대한 애정을 갖고 있었다. 그녀는 10살 때 첫영성체를 허락받았는데, 당시 본당신부는 그녀가 언젠가는 수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어린 안느-테레즈는 종종 집 근처의 해안가 바위에서 홀로 오랜 시간 동안 묵상과 반성 그리고 기도에 열중하는 모습으로 발견되곤 하였다. 아버지 로랑이 나폴레옹의 해군에 복무하며 몇 년 동안 집을 떠나 있었기 때문에 자녀들의 교육은 주로 어머니 이자벨에 의해 집에서 이루어졌다. 이자벨은 신앙과 성경을 중심으로 자녀들을 하느님의 사랑으로 양육하였다. 안느-테레즈가 15살 때 아버지가 가족을 방문하기 위해 집으로 오다가 강도에게 살해당하는 불행한 일이 발생했다. 남편을 잃고 큰 충격을 받은 어머니를 위해 안느-테레즈는 여러 해 동안 어머니와 어린 여동생을 돌보는 책임뿐만 아니라 가사와 정원일까지도 감당해야 했다. 이런 고난과 희생을 겪으면서도 그녀의 신앙은 흔들리지 않았고, 하느님께서 항상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굳게 믿었다.
25살 무렵에 안느-테레즈는 루이에 쉬르 루아르(Ruille-sur-Loir)의 천주 섭리의 수녀회에 입회하여 테오도라라는 수도명을 받았다. 이 수녀회는 어린이들에게 교육의 기회를 제공하고 가난하고 병들고 죽어가는 이들을 돌봄으로써 하느님을 섬기는 젊은 수녀 공동체였다. 그녀는 1825년 9월 8일 첫 서원을 하고 이어서 1831년 9월 5일에 종신서원을 발했다. 수련기 중에 테오도라 수녀는 프랑스 중부의 프레이이 쉬르 클레즈(Preuilly-sur-Claise)로 파견되었는데, 그곳에서 천연두로 추정되는 병에 걸려 거의 죽을 뻔하였다. 다행히 병은 나았지만 소화 계통에 심각한 손상을 입어 평생을 부드러운 음식과 액체만을 소화할 수 있었다. 그 후 테오도라 수녀는 렌(Rennes)의 생토뱅(Saint-Aubin) 본당 학교와 앙제(Angers) 교구의 술렌느(Soulaines)에서 병자와 가난한 이들을 방문하고 교육하였다. 이 기간 중에 그녀는 앙제 학술원의 장학사로부터 교육적 공로에 대한 훈장을 받기도 했다.
프랑스에서의 활동에 이어 테오도라 수녀는 일단의 수녀들과 함께 미국으로 건너가 인디아나(Indiana) 주(洲)의 빈세네스(Vincennes) 교구에서 학교를 설립하고 개척자들과 함께 하느님을 사랑을 나누기 위해 수녀원의 미국 모원을 설치할 책임자로 사명을 부여받았다. 겸손하며 자신의 능력을 한없이 부족하게 느꼈던 테오도라 수녀는 자신이 수행하기에는 너무 벅찬 사명으로 생각했다. 또한 자신의 허약한 육체적 조건 역시 수녀원의 요청을 수락하기 어렵게 만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테오도라 수녀는 오랜 기도와 원장수녀와의 대화를 통해 결국 새로운 소명을 받아들였다. 만약 자신이 하지 않는다면 하느님의 사랑을 나누기 위해 황무지로 떠나는 모험을 할 사람이 아무도 없을 것 같은 마음에서 두려움을 안고 수용한 것이다.
하느님을 섬기기 위해 어려운 결정을 한 테오도라 원장수녀와 다섯 명의 동료 수녀들은 프랑스를 떠나 1840년 10월 22일 저녁 미국 인디아나 주의 세인트 메리 오브 더 우즈(Saint Mary-of-the-Woods)에 도착했다. 새로운 사명의 땅에 도착한 그들은 즉시 진흙탕과 좁은 길을 따라 성당으로 사용할 작은 통나무 오두막집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그곳에 무사히 도착하여 안전한 여행에 감사하며 새로운 사명을 위해 하느님의 축복을 청하는 미사를 봉헌하기에 앞서 무릎 꿇고 기도를 바쳤다. 깊은 숲속 산골짜기 협곡에 위치한 구릉지에 테오도라 원장은 모원과 학교를 설립하였고, 그들이 남긴 사랑과 자비와 정의의 유산이 오늘날까지 계속되고 있다. 슬픔과 평화의 시간을 보내면서 테오도라 원장은 하느님의 섭리에 굳게 의지하며 현명하게 수녀들을 이끌었다. 그녀는 수녀들에게 “하느님의 손길에 부드럽게 자신을 맡기라”고 강조하였고, 프랑스로 보내는 편지에서도 “우리의 희망은 하느님의 섭리 안에 있고, 하느님의 섭리는 지금까지 우리를 지켜주었고, 우리의 미래에 필요한 것을 어떻게든 마련해 줄 것”이라고 언급하였다.
테오도라 수녀 일행이 도착한 1840년 가을, 세인트 메리 오브 더 우즈의 현실은 작은 통나무 오두막집 성당과 사제를 위한 숙소 그리고 작은 규모의 농장이 전부였다. 이곳에서 테오도라 원장 수녀는 프랑스에서 함께 온 수녀들과 다른 몇 명의 지원자들과 함께 살았다. 처음 맞이한 겨울 내내 북쪽에서 불어오는 매서운 바람이 작은 농장을 뒤흔들었고, 수녀들은 종종 추위와 굶주림을 겪어야 했다. 하지만 그들은 성당 입구를 변경해 보잘것없는 모원이지만 성체성사의 현존 안에서 위로를 받을 수 있게 하였다. 그녀는 “예수님과 함께라면 무엇이 우리를 두렵게 하리오?”라고 말했다. 사실 사도직 초기에 수많은 시련들이 몰려왔었다. 가톨릭을 반대하는 편견, 특히 여성 수도자들에 대한 편견, 배신과 오해, 프랑스 본원과의 분리 작업, 참담한 화재로 모든 수확물을 잃고 곤궁함과 굶주림에 시달리며 때때로 생명의 위협을 느끼는 질병 속에서 살아야 했다. 이런 상황에서도 테오도라 원장은 “모든 것 안에서 그리고 모든 곳에서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희망을 안고 견디어냈다.
세인트 메리 오브 더 우즈에 도착한 지 일 년이 못 되어 테오도라 원장은 수녀회의 첫 번째 학교를 개교하였고, 1842년 인디아나 주의 재스퍼(Jasper)와 일리노이(Illinois) 주의 세인트 프랜시스빌(St. Francisville)에도 학교를 열었다. 1856년 5월 14일 선종할 때까지 테오도라 원장은 인디아나 주 전역에 학교를 설립했고, 천주 섭리의 수녀회 또한 더 강한 생명력을 갖고 발전하며 높은 평가를 받았다. 테오도라 원장은 수녀회의 성장과 성공에 대해 항상 하느님과 예수님의 어머니인 성모 마리아의 공으로 돌렸다. 테오도라 원장의 성덕(聖德)은 그녀를 아는 사람들 안에서 명백히 드러났고, 많은 사람들이 그녀를 ‘성인 같은 사람’으로 생각했다. 그녀는 사람들 안에서 그들이 생각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얻도록 가장 좋은 것을 끌어내는 탁월한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사랑은 테오도라 원장수녀가 지닌 가장 큰 특징 중 하나였다. 그녀는 하느님과 그분의 백성, 천주 섭리의 수녀회 수녀들과 가톨릭 교회 그리고 그녀가 섬겼던 모든 사람들을 사랑했다. 또한 자신의 사도직과 기도로부터 누구도 배제하지 않고, 사람들이 하느님을 알아 더 나은 삶을 살도록 돕는데 일생을 바쳤다. 테오도라 원장은 그녀 혼자 할 수 있는 것은 없지만 하느님 안에서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녀는 시련과 고난 그리고 부당한 대우마저도 기회로 받아들였고, 괴로움의 한가운데서 진실하고 충실한 하느님의 여인으로 남았다. 테오도라 수녀는 세인트 메리 오브 더 우즈에 도착한 후 16년 만에 세상을 떠났지만 그 기간 동안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그녀가 다음 세대에 물려준 선물은 성덕과 덕행, 사랑과 신앙의 모범으로서 그녀의 삶 자체였다. 테오도라 원장수녀는 1998년 10월 25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에 의해 시복되었고, 2006년 10월 15일 교황 베네딕투스 16세(Benedictus XVI)에 의해 바티칸의 성 베드로 광장에서 다른 세 명의 복자들과 함께 그를 시성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