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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만이 저희 목걸이요
강포가 저희의 입는 옷이며
(시 73:4-9) “저희는 죽는 때에도 고통이 없고 그 힘이 건강하며 타인과 같은 고난이 없고 타인과 같은 재앙도 없나니 그러므로 교만이 저희 목걸이요 강포가 저희의 입는 옷이며 살찜으로 저희 눈이 솟아나며 저희 소득은 마음의 소원보다 지나며 저희는 능욕하며 악하게 압제하여 말하며 거만히 말하며 저희 입은 하늘에 두고 저희 혀는 땅에 두루 다니도다”
4절: ‘저희는 죽는 때에도 고통이 없고 그 힘이 건강하며.’ 사람이 죽을 때 남 고생, 자기 고생, 식구들 고생을 안 시키고 자식들이 지켜보는 가운데서 ‘내가 세상에 왔다가 내 소원대로 다 해 봤으니 여한이 없구나’ 하고 죽는다면 세상사람들은 이 사람을 복되다고 한다. 반대로 하나님의 말씀이 좋아서 말씀을 따라 살다보니 환난과 핍박과 박해를 받아서 산속으로 피하여 숨어서 살다가 발각이 되어서 굶겨놓은 맹수의 밥이 되기도 하고, 나무에 매달려서 횃불이 되기도 해서 죽으면 일반적으로 복된 자라고 보지 않는다. 예수 믿는 사람이 이런 것을 보고 ‘하나님이 정말 계실까?’ 하고 의심을 해서 악한 자들에게 붙어살면 세상은 이런 사람을 보고 잘 했다고 한다.
의인이라고 해서 죽을 때 죽음이 즐겁다는 듯이 미소를 지으며 평화롭게 죽는 것도 아니고, 악인이라고 해서 죽을 때 눈알이 튀어나오고, 혓바닥이 쑥 빠지고, 얼굴이 까맣게 타서 죽는 게 아니다. 의인도 편히 죽는 자도 있고, 비참하게 죽는 자도 있다. 악인도 마찬가지다. 죽는 모습을 보고 그 사람이 천국이나 지옥에 갔다고 판단을 하면 안 된다. 이 세상에서 눈에 보이는 보는 것은 우리들에게 깨달음을 주는 거다. 악한 자들이 잘 되는 것은 예수 믿는 나에게 자극을 줘서 천국 쪽으로 가게 하려는 하나님의 뜻인데, 이것을 알지 못해서 자기를 약 올린다고 하며 세상 쪽으로 가면 어찌 되겠느냐?
‘그 힘이 건강하며.’ 악인이 이렇다는 거다. 악인을 보면 악한 짓을 열심히 하기 위해서인지 운동을 열심히 하기도 한다. 그렇다고 해서 힘이 없는 사람은 선하게 살기 위해 힘을 안 올리는 게 아니다. ‘그 힘이 건강하며’ 라고 하는 것은 악한 자들이 어떤 상황에서건 잘 대처를 하고 어려움 없이 쉽게 넘어간다는 거다. 무엇이든 넉넉하고 준비가 잘 되어 있어서 여유가 있고 남아 돌아간다는 말이다. 이게 부러우냐?
바로 살고 옳게 살기 위해 마음을 곱게 쓰며 정직하게 사는 사람은 열심히 노력을 하고 땀을 흘려도 돈도 얼마 못 버는데 악한 자들은 얼렁뚱땅 빈둥빈둥 하는데도 돈이 어디서 들어오는지 잘 사는 것을 보면 속이 안 상하느냐? 죽을 때도 병이 들어서 고생을 하다 죽는 것도 아니고, 주변 사람들의 애도 먹이지 않고 편히 죽고, 자손들에게 물려줄 재산도 많이 준비해 놓고 죽는 것을 보면 이게 부러우냐?
믿는 사람이 ‘세상은 우리의 누림을 위해 있는 게 아니라 이룰구원을 위해 있다’ 라고 말을 하기는 쉬운데 구석구석 들여다보면 세상은 믿는 우리들에게 약을 올리는 게 많이 있다. 악한 자들로서는 예수를 안 믿을 바에야 그렇게라도 세상을 살아가야 하겠지만 우리는 예수를 믿을 바에야 똑 부러지게 믿어야 한다.
세상은 누구나 스트레스를 받는 곳이지만 예수사랑으로 즐겁게 신앙생활을 하며 바쁘게 다니는 사람은 병이 별로 없다. 건강미가 넘친다. 그런데 그러지 않고 마음이 늘 세상 쪽으로 향해 있으면 이 사람은 나쁜 쪽으로 스트레스가 된다. 이미 마음이 닫혀 있기 때문에 ‘왜 나만?’이라고 하게 되니 마이너스로 스트레스가 된다. 우리는 천국 스트레스가 되어야 한다. 하나님의 일에 대해 염려 걱정을 하는 것은 플러스 스트레스다. 성경에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라고 했다.
‘내가 예수를 잘 믿어서 부자가 돼야지’ 하는 것과, ‘이왕 돈을 버는 거 예수 잘 믿기 위해 부자가 돼야지’ 라고 하는 것은 다르다. 앞의 것은 사망적인 정신이고, 뒤의 것은 생명적인 정신이다. 우리는 이왕이면 생명적인 정신으로 일을 해야지 마음 속에서 작용하는 작용성이 사망적인 정신으로 일을 하게 되면 사람이 피곤해진다. 같은 일을 할지라도 자기의 마음상태에 따라 힘이 더 들기도 하고 덜 들기도 한다. 육신을 위한 일은 사망적이기 때문에 더 힘이 든다. 공기도 무거운 공기가 있고, 가벼운 공기가 있다. 날씨가 맑으면 공기가 가볍고, 날씨가 흐리면 공기가 무겁다.
5절: ‘타인과 같은 고난이 없고 타인과 같은 재앙도 없나니.’ 아삽이 볼 때 악인들이 이렇다는 것인데, 타인과 같은 고난과 재앙이 없다고 하는 게 본국 사람이 아닌, 자기 족속이 아닌, 자기 식구가 아닌, 이스라엘인이 아닌, 하나님의 백성이 아닌 이방인을 두고 하는 말인지, 아니면 이스라엘 백성인데, 하나님을 믿는 백성인데 이방인들처럼 사는 자들을 두고 하는 말인지? 인본주의 육본주의로 속화된 교인을 두고 하는 말이다. 전혀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이 악한 짓을 하는데도 세상 일이 잘 된다면 그렇지 않겠는데 같이 하나님을 믿는 백성이 악한 짓을 하는데도 세상 일이 잘 되는 것을 보니 약이 오른다는 거다.
나도 예수 믿고 너도 예수 믿고, 다 같이 하나님을 믿는데 비교를 해 보면 나보다 믿음이 없는 자들이 나보다 더 잘 살면 마음에 핏대가 안 나느냐? 세상주의로 예수를 믿는데도 세상 일이 잘 되는 사람이 멀리 있는 게 아니라 나의 가까이에 있다면 내 마음이 아무렇지도 않느냐? ‘예수 믿으면 부자 되고, 뭐든지 잘 된다’ 라는 식으로 가르치는 교회가 잘 되는 것을 볼 때 진리신앙 길을 가느라고 여러모로 손해를 보는 사람의 입장에서 얼마나 약이 오르겠느냐? 믿는 우리가 이왕이면 이 세상에서도 잘 살고, 천국에 가서도 윗자리에 앉으면 더 좋지 않느냐? 그런데 문제는 자기 생각 속에서 ‘어느 쪽으로 저울추가 올라가느냐?’ 하는 거다. 그게 ‘영이냐, 육이냐?’를 잘 봐야 한다.
‘눈에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다’ 라고 할 때 무엇을 염두에 두고 이 말을 하는 거냐? 세상에서 잘 되는 것을 염두에 두고 하는 말이냐, 아니면 세상에서 잘 된다고 해도 이것이 전부가 아니고, 세상에서 못 된다고 해도 이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말이냐? 후자다. 그러니까 세상적인 것이 잘 됐으면 축복이고, 못 됐으면 저주라고 한다면 이것이 영적인 생각이냐, 육적인 생각이냐?
예수 믿는 사람이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을 다 구하고, 무당 식으로 예수를 믿는데도 이런 자들이 병이 든다거나, 사업이 망한다거나, 집안이 망한다거나, 홍수에 씻겨간다거나, 지진에 매몰이 되는 등의 하나님의 형벌이 있어야 하는데 하나님께서 이걸 아는지 모르시는지, 하나님이 계시는지 안 계시는지 그런 사람들이 양심의 가책도 없이 잘 사는 것을 보니 아삽은 도무지 이해가 안 간다는 거다.
6절: ‘그러므로 교만이 저희 목걸이요 강포가 저희의 입는 옷이며.’ ‘교만’의 일반적인 뜻은 쟁취하고 뽐내며 방자한 거다. 나밖에 없다는 거다. 남을 무시하는 거다. 신앙 면으로 ‘교만’의 뜻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치 않는 것을 말한다. 본 절은 믿는 사람을 보고 하는 말이니, 믿기는 믿는데 말씀에 순종치 않는 신앙을 교만이라고 하는 거다. ‘그의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 라는 말씀에 순종해야 하는데 세상 것을 구하는 게 교만이다. 말씀에 순종하지 않고 종교적 사역적 자기 주장으로 나가는 게 교만이다. 이런 사람은 입으로는 하나님을 부르지만 종교적인 사역에 관한 부르짖음이지 인격적인 면에서 마음과 정신을 고치려는 생각은 하나도 없다. 이것은 하나님을 떠난 마음이고, 이런 사람은 이룰구원 성화구원이 쫄딱 망한다. 사람 자체가 망한다.
‘그러므로 교만이 저희 목걸이요.’ 목걸이는 자기의 영화나 존귀성을 나타내는 것인데, ‘교만이 저희 목걸이요’ 라고 하는 것은 자기 스스로 똑똑한 척을 하지만 그 교만으로 인해 자기의 목이 조여져서 질식을 해서 죽거나, 목이 잘려서 죽게 된다는 거다. 한 마디로 교만은 멸망의 선봉이다. 인간에게는 다 교만성이 있는데, 우리는 진리이치의 신앙은 모른 채 성경구절만 둘러쓰고 있는 인간의 교만성도 알아야 한다. 진리 자체화로 되면 교만이 아닌데, 이렇게 되면 모든 면에서 대처가 지혜롭다. 그러나 교만한 자가 되면 고집불통으로 나온다.
‘강포가 저희의 입는 옷이며.’ ‘교만’은 인간의 타락적 주관적 지식에서 나오는 것이고, ‘강포’는 교만으로 인해 겉으로 나타나 보이는 악한 활동들인데, 행동적인 강포가 있고, 말로써 공갈 협박을 하는 강포가 있다. 압제자들은 사람을 구타하고, 내려 누르기도 하고, 사람을 자기의 수하로 삼기 위해 공갈 협박으로 가두어 놓기도 한다.
예수이름으로 육적인 공갈 협박을 하는 것 전부가 강포다. ‘너 그렇게 믿다가는 세상에서 가난뱅이가 되고 빌어먹는다’ 라고 하면 공갈 협박이다. 왜냐? 믿음이 없어도 부자로 사는 사람이 많으니까. 그러나 ‘네가 그렇게 믿다가는 네 이룰구원은 망한다’ 라고 하면 맞는 말이고, 이건 공갈 협박이 아니라 예언으로 들어가는 거다.
행동적인 강포는 세상에서 많이 볼 수 있고, 말로써 하는 강포는 세상적으로 가르치는 교회에서 흔히 볼 수 있다. 구복주의, 신비주의, 사역주의 교회에서 얼마든지 볼 수 있다. 목사들이 공갈 협박을 많이 하는데, 목사 자기는 세상 육본주의로 나가면서 ‘내 말을 안 들으면 저주를 받는다느니, 내 말을 안 들으면 너희 집이 망한다느니, 아들이 사고가 난다느니, 사업이 망한다느니’ 라고 하는 것은 전부가 강포다. 강포적인 신앙사상은 인간의 주관적 세상적 지식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그 자체가 교만이다. 여기에는 진리이치가 없다.
‘강포가 저희의 입는 옷이며.’ ‘강포로 입는 옷’이라는 말은 전부는 그런 식으로 자기를 쌌다는 거다. 학생들을 보면 말만 하면 아예 처음부터 욕을 하는 애들이 있다. 악한 자들은 이런 식으로 자기를 강포로 싼 거다.
7절: ‘살찜으로 저희 눈이 솟아나며 저희 소득은 마음의 소원보다 지나며.’ 살이 쪘다는 것은 강포와 교만으로 세상의 성격과 성질 성분으로 가득 찼다는 거다. 세상화 되어 버렸다는 말이다. 이게 세상부자다. 안 믿는 사람은 실질적으로 돈이 없을지라도 그 마음 속은 세상으로 가득 차 있다.
어느 곳에 몇 번 가더니 아예 그 사람으로 되어버리기도 하고, 술친구 몇 번 만나더니 그만 술주정뱅이가 되기도 하듯이 그 교회에 몇 번 나가더니 이상한 것이 옮아와서 집에 와서 문을 잡가 놓고 예언 방언을 하고, 어린아이도 따라가더니 그만 그게 옮아와서 집에 돌아와서 어머니 아버지 머리에 안수를 하고, 귀신을 쫓겠다고 손가락으로 눈을 찌르고 하는 것은 그런 정신으로 살이 찐 거다. 세상 것을 먹으면 세상의 살이 찌고, 영적인 것을 먹으면 천국의 살이 찐다. 먹는 대로 된다. 살은 하루아침에 찌는 게 아니다.
‘살찜으로 저희 눈이 솟아나며.’ 일반적으로 사람을 만나면 상대의 눈부터 본다. 눈을 쳐다보며 말을 한다. 상대의 눈을 쳐다보며 말을 할 때는 영적인 면이던 육적인 면이던 어느 한 쪽을 염두에 두고 말을 하는 거다. 사상과 정신이 천국 쪽이 아니면 땅 쪽을 염두에 두고 말을 하는 거다. 장사꾼들은 무슨 말을 해도 마음 속에서 ‘돈을 많이 벌어서 부자가 되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어 있는 것과 같다.
상대의 눈을 쳐다보며 말을 하는데, 상대의 눈이 솟아있으면 ‘무엇을 얼마나 먹고 눈알이 저렇게 솟았을까?’ 라고 생각을 한다. 정신 면을 보는 사람은 ‘이 사람이 어떤 정신 사상을 먹고 눈알이 저렇게 솟았을까?’ 라고 생각을 한다. 세상에서는 높이 솟아있는 사람을 높이 보는 버릇이 있다. 그리고 자기도 그렇게 솟아보려고 한다. 현재 예수 믿는 자기는 세상에서 어떻게 커진 사람을 부러워하느냐?
‘저희 소득은 마음의 소원보다 지나며.’ ‘저희 소득’은 이란 물질이 들어오는 소득을 말한다. ‘마음의 소원보다 지나며’ 라고 하는 것은 자신들의 소득이 자기의 마음의 소원보다 더 많이 들어왔다는 거다. 사람들은 ‘이 정도면 쓰고 남겠다. 이 정도는 모자라겠다’ 라는 헤아림이 있다. 그런데 마음 속으로 계산한 것보다 물질이 엄청나게 더 많이 들어온다는 거다. 예수 믿는 사람이 이런 일을 겪으면 ‘할렐루야, 영광받으시옵소서’ 라고 한다. 그러나 아삽은 이런 것을 볼 때 약이 오른다는 거다. 그러니 아삽의 눈도 튀어나올 만도 하다.
이 말의 의미는, 첫째 해석은 인간의 욕심이 끝이 없다는 것을 말한다. 두 번째의 해석은 예수 믿는 사람의 마음의 소원은 진리말씀의 생수인데, 이것이 아닌 물질에 대한 소원 목적을 품고 이를 위해 수단 방법을 썼더니 물질이 풍부하게 들어와서 이제는 뭐든지 할 수 있다는 거다.
비진리의 교회가 교인도 많고 헌금도 많이 들어오면 뭐든지 할 수 있다. 금융기관을 만들 수도 있고, 신문사를 만들 수도 있고, 공장을 만들 수도 있고, 백화점을 만들 수도 있다. 이렇게 해서 교인들이 장도 되고, 점원도 되고 하면 서로 좋은 게 아니냐? 이런 식으로 해서 상업계나, 공업계나, 정치계에, 그리고 외국에까지 문어발처럼 발을 벋칠 수 있다. 이런 것을 보는 아삽이 생각하기를 하나님께서 어떤 수단을 쓰던 그들에게 형벌을 줄줄 알았는데 오히려 더 잘 되게 하고 축복을 주니 은근히 신경이 쓰이고 약이 오른다는 거다.
8절: ‘저희는 능욕하며 악하게 압제하여 말하며 거만히 말하며.’ ‘능욕’이란 남을 업신여기고 욕을 보이는 것인데, 세상에서는 자기가 돈 많고, 재산 많고, 세상에서 유명해지면 자기가 가진 재산을 미끼로, 돈을 미끼로 사람을 이용하고 욕을 보이는 일이 많다. 교회도 그럴 가능성이 많다. 조심해야 한다.
‘악하게 압제하여 말하며.’ 권력으로, 재력으로, 세력으로, 무력으로, 완력으로, 말로, 행동으로, 물질로 성도의 기를 죽이고 사람의 기를 죽이는 것은 하나님 앞에 악한 짓이다. 이런 사람들은 자기의 잘못을 감출 때도 그런 방법을 써서 상대를 압제해서 자기의 잘못을 말을 못하게 한다. ‘거만히 말하며.’ ‘겸손한 말’이란 진리의 말씀이다. 이게 아닌 하나님 앞에서 육을 두둔하며 인간 것이나 세상을 내세우는 것은 거만한 말이다.
9절: ‘저희 입은 하늘에 두고 저희 혀는 땅에 두루 다니도다.’ 먹는 것은 위로 먹고 아래로 내보낸다. 말은 귀로 먹고 마음에 정리를 해서 입으로 낸다. 음식은 입으로 먹고, 말은 입으로 나온다. 창조주 하나님께서 사람의 입을 만들어 놓은 것은 영양가 있는 음식을 먹고 진리생명의 말씀을 잘 듣고 새겨서 진리를 말하는 입이 되라는 거다.
‘저희 입은 하늘에 두고.’ 첫째는 하늘나라의 정신은 없이 말로만 하늘나라 천국을 말한다는 거다. 두 번째는 사실은 사람을 땅으로 처박는 것인데 이것을 감추기 위해 화려한 언변으로 사람의 마음을 기분이 좋도록 하늘 쪽으로 붕 띄운다는 거다. 그럴듯하게 듣기 좋은 말을 해서 사람의 마음을 혹하게 만든다는 거다. 교회에서 사기꾼 목사들이 ‘축복을 받아라’ 라고 하면 이 말을 듣는 사람은 마음이 좋다. 그러나 그 말을 따라가면 그 사람의 정신은 땅에 박힌다.
요즘 다단계 판매자들이 많은데, 이들의 말을 듣고 투자를 하면 금방 부자가 될 것 같다. 아니, 마음은 이미 부자가 되어 있고, 그대로 따라 하기만 하면 돈을 끌어 모으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생각을 한다. 그러나 그 말대로 했다가는 하면 할수록 모든 것을 다 날려버린다. 이게 마귀의 수단 방법이다. 힘 안 들이고 쉽게 돈을 번다고 하는 것은 마귀의 수법이고, 예수 믿는 사람이 이런 식으로 돈을 버는 것은 하나님의 뜻에 합당치 않다.
‘저희 혀는 땅에 두루 다니도다.’ ‘누구를 잡아먹을까? 어떤 어리벙한 사람을 잡아먹을까? 어떤 사람을 속여먹을까? 어떤 사람을 채어갈까?’ 하며 삼킬 자를 찾기 위해 두루 다닌다는 거다. 삼켜서 자기 수하에 두고 이용을 해 먹으려는 거다. 악한 자들이 자기 패거리를 만들려고 사방으로 찾아 돌아다니는 것도 있다. 기도할 때 기도로 온 세상을 돌아다니는 것도 있다.
‘저희 입은 하늘에 두고 저희 혀는 땅에 두루 다니도다.’ 믿는 사람이 이런 짓을 할 수 있고, 이단자들도 이런 짓을 할 수 있다. 이런 자들에게 끌려가면 사망이다. 이룰구원 면에서 쫄딱 망한다. 사망이다. 반대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님을 찾아가면 사는 거다. (계속)
▲김경형 목사
김경형 목사는 교역자 및 신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신학 및 성경 연구 모임을 통해 성경 중심의 말씀과 신학을 전하는 사역을 해온 인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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