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하지 않은 보통 사람의 비극 (김재화)
-아더밀러의 세일즈맨의 죽음
☞ ‘성공의 법칙’과 그로부터 소외된 인간
두개의 커다란 가방을 양손에 들고 지친 모습으로 집에 돌아오는 세일즈맨 윌리 로먼(Willy Loman). 이 극의 제목처럼 우리는 막이 열리면 처음부터 죽음 가까이 와있는 주인공을 만난다. 그 가방 속에 어떤 물건이 들어 있는가는 작품 속에 명시되어 있지 않다. 그것이 무엇인가는 사실 이 극에서 전혀 중요하지가 않다. 34년 동안 한 회사 물건을 선전하며 외판하고 다닌 세일즈맨의 삶에서 이제 남은 것은 결국 그 자신을 팔고 다닌 것처럼 소모된 한 인간의 가치임을 보게 되는 것이다.
세일즈맨이란, 팽창 일로에 있는 도시 산업화 시대에서는 이 작품에서처럼 간신히 한 뼘의 햇빛이 드리울 정도의 작은 마당을 지닌 집에 사는 보통 시민이다. 그 집을 둘러싼 빌딩 숲에서는 이미 전원의 향취라고는 한 가닥도 찾을 수 없이 숨막히듯 도시의 냄새만 풍길 뿐이다. 주인공 윌리 로먼은 자신의 돌아가신 아버지처럼 시골에서 플루트나 만들면서 여기저기 떠돌며 그것들을 팔아 유유히 목가적 삶을 영위했던 삶의 방식이 어쩌면 훨씬 더 어울리는 인물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현대 도시 가운데서 첨단 도시인 뉴욕 교외 한 모퉁이에 살면서 뉴잉글랜드 지방을 개척했다는 자부심을 안고 사는 그는 63세인 지금도 세일즈에 일편단심 매달려 있다. 그러나 그의 판매 실적은 나날이 떨어지고 있다.
이렇듯 좌절한 보통 시민의 한 사람을 만나는 관객은 자기들의 일처럼 그를 동정하고 친밀감을 느끼게 된다. 주인공이 갖는 개인적 약점을 제쳐놓고, 그들 자신도 현대 사회에서 성공의 길이 점점 멀어져 감을 절실히 느끼며 살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과거 미국인이 갖는 ‘미국적 꿈’은 개인이 추구하고 노력하는 만큼 성공의 대가가 약속되어 있었다. 그러나 성과가 없으면 도태되고 마는 능률 제일주의의 산업 사회에서 윌리 로먼처럼 구시대적 사고방식을 고집할 때 대개는 실패하기 마련이다. 그의 성공술이란 호감을 주는 인품을 내세우는 것이었고, 그 아들들에게까지 이 막연한 처세술을 심어주려고 한다.
그래서 2대에 걸쳐 로먼 집안은 실패의 길에 접어들게 된다. 자식에게 걸었던 기대마저 좌절되어 최후 수단으로 자살을 하고, 그 보험료를 받아 가족을 살리려 하지만 의미 없는 한 인간의 삶의 종말로밖에 인식되지 않는다.
이 글은 이렇게 ‘보통 사람’의 존엄성의 문제를 다루었다는 점에서 이전의 전통 비극과 다르다. 작가 밀러는 현대 비극의 가능성을 시사하는 글, ‘비극과 보통 사람’에서 그의 현대 비극에 관한 견해를 밝히고 있다. 즉, 전통 비극에서 일반적으로 통용되어 온 비극의 주인공이란 아리스토텔레스의 비극 이론에서 비롯한 ‘위대하고 고귀한 특성’을 지닌 인물이었다. 그런 높은 신분의 인물에게 비극이 일어났을 때 일반 시민들은 경외감을 갖고 운명 앞에 자그마해지는 인간의 비극성을 통감하였다. ‘연민’과 '공포감‘을 통해 ’정신적 정화 작용‘을 갖게 되는 것이 비극을 보러가는 관객들의 목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밀러는 이제 귀족과 평민의 계층 구분이 없어진 현대 사회에서 그런 전형적 주인공은 더 이상 통용될 수 없으며 ‘보통사람’이 당연히 주인공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희랍 시대의 비극의 요인이었던 ‘운명’의 힘은 현대에서는 외부적 압력 요소인 ‘사회’로 바뀌게 되고, 비극적 주인공이 가졌던 성격적 결함도 이제는 그 사회에 대한 주인공의 의지로 바꾸어야 한다고 보았다. 이렇게 볼 때, 윌리 로먼이란 주인공은 현대 사회가 요구하는 ‘성공의 법칙’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여 사회로부터 소외된 비극적 인간인 것이다.
또한 이 극을 감상하면서 주목해야 할 점은 이러한 ‘사회와 인간’이란 사실주의적 문제가 담긴 작품을 작가는 표현주의 기법으로 다루었다는 점이다. 즉, 윌리의 현실 세계는 사실주의적 시각에 맞추어져 있고, 한편 그의 내면세계는 표현주의 방식으로 보여준다. 과거와 현재가 무대 위에서 동시에 교차되는, 주인공의 양분된 의식 세계가 삽화적 성격으로 극적 구성을 이루고 있다. 과거의 화산이 자유로이 유동하여 현재 시간의 흐름에 적절히 결합된다.
이런 장면들은 특히 무대 장치나 조명 등에 의해 의도적으로 표현되어 있어 장면의 구분이 명확하지 않아도 무대 분위기에 변화, 또는 어조나 음향 효과 등으로 자연스럽게 관객을 유도해 간다. 한 예로, 윌 리가 과거의 몽사에 빠질 때는 무대 장치의 벽을 자유로이 빠져 나가는 동작을 보게 되며, 플래쉬백 기법, 무대의 색조 변화 등 시각적ㆍ청각적으로 다양하게 그 시제가 표현되고 있다.
그럼 이쯤에서 극의 줄거리를 살펴보기로 하자.
☞ 작업의 실패와 지식에 대한 희망의 좌절
윌리 로먼이 이날따라 갑자기 일찍 집에 돌아오는 것으로 극은 시작된다. 그는 34년 동안이나 줄곧 와그너 회사 외판원으로 근무해 오면서 본사가 있는 뉴욕보다는 뉴잉글랜드 지방의 개척자로서 아직도 그 지역에서 긴요한 인물로 자처하고 있다. 그러나 이제는 차를 몰고 다니는 것도 예전 같지가 않다. 나이 탓만은 아니다. 변하는 세상에서, 점점 높은 건물들이 그의 집을 에워싸 그의 정원이 보잘 것 없이 손바닥만 해진 것처럼 그의 생존도 고립되어 감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그의 아내 린다는 남편이 지쳐 있음을 금세 알아차릴 만큼 그를 이해하고 의지한다. 플로리다에서 휴가를 보내고 온 지가 불과 얼마 전인데 벌서 저렇게 지친 걸 보니 아무래도 뉴욕 근무를 강력히 요구해야 된다고 린다는 생각한다. 오늘 남편이 일찍 돌아온 것도 운전을 하면서 자꾸만 몽상에 빠졌기 때문이라고 하니 정말 차 사고라도 나면 큰일인 것이다.
그러나 윌리는 회사의 젊은 사장으로부터 인정을 못 받고 있는 형편이며, 고정적인 월급도 취소당하고 판매에 따른 커미션만이 수입의 전부다. 사장은 몇 십 년 근무한 직원일지라도 성적에 따라 사정없이 해고시킨다는 능률 우선주의 회사 방침을 세워 놓고 있다. 사장의 선친과 윌리는 각별하게 친밀한 인간관계를 지녀 그는 회사 안에서도 중요한 인물이었으나 그것은 모두 지나간 시절의 일이다.
윌리 로먼의 집에는 때마침 오랜만에 두 아들이 돌아와 있다. 큰 아들 비프는 34살이 되는 지금도 아직 안정된 직업이 없다. 고등학교 시절 축구 선수로서 인기가 있었던 그였지만 졸업 직전에 수학 시험에 낙제하여 그 후 이것저것 직업을 바꾸며 살아 왔다. 둘째 아들 해피는 취직도 하고 아파트도 지니고 얼핏 화려하게 사는 것 같지만 실은 진정한 인간관계, 진실한 사랑을 바탕으로 한 여성과의 교제를 이루지 못하고 허황되게 산다. 아들들의 출세를 꿈꾸며 살았던 윌리로서는 여간 실망스러운 것이 아니다. 회사 일과 더불어 두 아들의 이런 처지가 지금 그의 좌절과 고민의 원인이 되고 있다.
비프로서도 그 나름대로 좌절의 이유를 갖고 있다. 학생 시절 수학 점수 때문에 황급히 아버지와 의논하기 위해 보스턴의 호텔을 찾은 적이 있다. 그곳에서 그는 출장 중의 부친이 여자와 함께 있는 부도덕한 행적을 목격하고는 충격을 받는다. 사춘기 소년에게 그 동안 우상처럼 자리했던 아버지의 절대적 영상이 완전히 깨어진 것이다. 대학 진학의 희망을 버린 것도 그때이다.
그럼 아버지 로먼의 삶은 어떠한가. 집에는 착한 아내가 있었고 월부로 집도 한 채 장만하고, 그의 변명대로 집 밖 거리를 돌아다닐 때 때로는 고독해져서 여자를 만나기도 하고, 미래 희망을 걸었던 자식들도 있고, 일면 독선적이라 할 만치 단순한 삶을 살아 왔다. 그러나 속으로는 월부로 시달리는 생활이었다. 주택과 냉장고 등의 월부금, 또한 보험료를 내야 되고, 지금은 그 걱정에 자동차 운전이 위험할 만큼 환상에 휘말리고 있는 것이다. 그는 아내의 걱정과 권유로 젊은 사장을 만나 외판원에서 뉴욕 본사 내근직을 요청해 보지만 일언지하에 거절당한다. 그뿐 아니라 흥분하여 횡설수설하는 바람에 아주 회사를 그만두라는 말까지 듣고 집으로 돌아온다.
한편 비프도 직장을 구하나 실패하고 만다. 실은 그가 오랜만에 집에 온 것도 그 동안 절도죄를 범하여 약 3개월 동안 형무소에 들어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실토한다. 비프는 이러한 불행의 원인이 아버지의 지나친 기대감, 그가 평범한 샐러리맨에 불과하면서도 필요 이상의 자부심으로 현실 감각을 상실한 탓에 있다고 그를 원망한다.
윌리에게 한때 운명을 바꿀 수 있었던 기회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과거에 그의 형 벤은 그보고 세일즈맨을 그만두고 광산에 가도록 권유한 적이 있다. 그러나 자신의 직업에 대한 허세와 안정된 현 직업에 안주하려 하는 아내의 영향도 있어 그런 기회를 놓쳐버린 것이다. 형에 대한 환상은 지금 그의 가슴에 엄습해 오는 회한으로 점점 심해져서 그는 형이 아프리카에 건너가 다이아몬드 광산을 발견하여 대성공한 모습을 환영으로 뒤쫓는다. 그런 환상 속에서 윌리는 정신없이 자동차를 몰고나가 스스로 자살의 길을 택한다. 그의 죽음으로 받은 보험금은 결국 마지막 월부금을 지불하는 데 쓰여진다. 이렇듯 극의 시작부터 불길한 예감을 갖게 한 자동차로 윌리는 끝내 파멸의 길을 택했다. 그의 장례식 날 묘지 앞에 모인 사람이라고는 아내와 두 아들 그리고 옆집의 찰리뿐이다. 아내 린다가 이제 집의 월부금 내는 일도 다 끝난 마당에 정작 집에 살 사람은 가고 없다고 슬퍼하는 데서 이 극은 끝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