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7월 8일 연중 제14주간 (금) 복음 묵상 (마태 10,16-23) (이근상 신부)
“나는 이제 양들을 이리 떼 가운데로 보내는 것처럼 너희를 보낸다. 그러므로 뱀처럼 슬기롭고 비둘기처럼 순박하게 되어라. 사람들을 조심하여라. 그들이 너희를 의회에 넘기고 회당에서 채찍질할 것이다. 또 너희는 나 때문에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끌려가, 그들과 다른 민족들에게 증언할 것이다. 사람들이 너희를 넘길 때, 어떻게 말할까, 무엇을 말할까 걱정하지 마라. 너희가 무엇을 말해야 할지, 그때에 너희에게 일러 주실 것이다. 사실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안에서 말씀하시는 아버지의 영이시다.(마태 10, 16-20)
이미 각자의 입장이 적대적이라면 한편에서 뭘해도 관계는 파국을 면키어렵다. 채찍질하겠다는 사람들 앞에서 뭘 어떻게 해도 그에게서 채찍을 빼앗는게 아닌 다음에야 도리가 없다. 맞는 수 밖에. 그러니 사람들 속으로 제자를 파견하는 주님의 마음 한구석에는 이미 결말이 담겨져 있었을텐데... 뱀처럼 슬기롭고 비둘기처럼 순박하라니...
슬기롭다로 번역한 '프로니모스'는 뜻이 좀 복잡하다. '외적행동을 규율하는 내적인 직관'을 의미하는데 보통 실천적 지혜라고 한다. 그러니까 생각과 행동이 함께 있는 지혜. 이를테면 무슨 일을 맡겨도 잘 해 낼 것같은 사람에게 쓰는 말이다. 그에 반해서 순박하다로 번역한 '아케라이오스'는 순수한 마음, 뭔가 뒤섞이지 않은 마음을 뜻한다.
풍진세상에서 무슨 일을 맡기려면 이런 저런 경험이 있고, 이런 저런 상황을 재빠르게 파악하여 그 때 그 때 순발력있게 응답하는 자가 좋기는 하다. 그런 이들을 슬기롭다로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그것만이 아니라 순박해야 하니까 문제다. 갈라지지 않은 마음, 오롯한 마음을 가진 자가 무슨 수로 임기응변에 능하랴!
주님은 두 개의 형용모순적 품성을 제자들에게 요구하는 것 같다. 세상은 이거 아니면 저거를 선택해야할 것 같은데... 정말이지 주님이 요구하는 건 이 두 가지. 어느 하나도 버릴 수 없는 이 두 가지. 기도할 수 밖에 없고, 이도 저도 아니기에 계속해서 당신께 매달릴 수 밖에 없는...
출처: https://www.facebook.com/simonksyi/posts/pfbid025QCZL7FUxVHas9DRbQpt2srEzVRTPwgQkMexBmBkSctjHgzZoxFnFZBPrbeiKgVw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