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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안녕하세요 바사모+ 회원 여러분!
2019.05.08일 오늘은 바사모+ 가 창립20주년을 맞이하는날이며
바사모+를 개설한 수신으로선 감개무량한 날 이기도합니다 .
그동안 수많은 바둑동호회가 5년을 버티지 못하고 명멸하는것을 보아
왔기에 20년을 굳건하게 이어온 우리 바사모+ 가 정말 자랑스럽고
대단하다는 자부심을 가집니다
이는 그동안 바사모+를 위해 열정적으로 봉사해온 역대 회장님과
여러분들의 한결같은 협조가 없었다면 결코 이루어질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바사모+ 회원 여러분들께 깊은 감사와 아울러 창립20주년을 축하 드립니다
돌이켜보면, 중앙동 무역회관 맞은편에서 기원을 운영하던 수신이
고객의 기력향상을 위해 복기해설을 하려고 하였으나 나이가 50을 넘으니
기억력이 떨어진건지... 예전처럼 바둑 한판 300 여수를 좔좔
막힘없이 복기하기가 어려워지자 컴퓨터의 힘을 빌려야겠다고
생각하게 되었고 .. 그후 1998년 년말쯤 퇴근길에 서면에 있는
PC방에 들려 천리안 대국실을 접속하여 바둑을 두게된것이
모임을 만든 시발점이 되었습니다
당시 컴맹이었지만 바둑은 가능하기에 생전 첨 만져본 키보드를
독수리타법으로 더듬거리며 대국하다가 자주 만난 사람들끼리
모임을 만들자는데 의견을 모아 그당시 최연장자이며 바둑도
젤 상수인 수신이 총대를 메고 천리안 소모임2에 게시판을
만들기위해 7명의 발기인들을 대표하여 모임개설 신청을 하고
모임개설 충족요건을 채우기위해 30명의 회원확보에 나서
대국실에서 수신과 대국한분들께 일일히 가입권유를 하고 ..
한편으로 3개월간 활발한 활동을 전개한 끝에 마침내
1999.05.08 천리안 소모임2에 바둑동호회 플러스문을 개설하였습니다
2.
플러스문이 출범하자 수신이 무소불위의 문주로 모임을 이끌어 나가기
시작했으며 전회원의 아이디를 달달 외울 정도로 열정을 기울이며
2년간 모임의 발전을 위해 노력하였으며 .. 한때 데이콤 통신요금이
한달에 20만원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문자만 나오는 오피스에 비해
백설공주에 나오는 고깔쓴 난장이가 나타나는 천리안에 접속하려면
찌르르륵~끼익 ! 하면서 한번에 접속이 되기도 하지만 대체로 2~3번
다시 접속을 시도해야만했고 때로는 다운이 되어 5분내지10분은
고생을 해야만 했지요
그러다 ADSL이 나오면서 조금씩 빨라지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우주문, 하나문,천궁문,노털문 등이 우리보다 먼저
바둑동호회 활동을 하고 있었는데...
플러스문이란 다소 특이한 명칭을 사용한것은
"서로서로가 기력향상에 플러스가 되자"는 모토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첫 전국모임을 갖기전인 8월경 천리안 메뉴 변경시
노을님이란분이 명칭을 바사모로 등록하는 바람에....
바사모플러스로 변경케 되었으며 이후 바사모+로 줄여
사용케 된것입니다
1999년 09월 04일 전국적으로 흩어져있는 회원들의 열망으로
김천 직지사에서 첫 전국모임을 부부동반으로 가졌으며
그때의 즐거운 추억들은 영원히 잊지못할 것입니다
왼쪽아래 앉아있는 백운님뒤로 행림,로테,질주,무경님
가운데 앞줄에 수신이 보인다. 수신의 오른쪽 뒤끝에 청송님
오른쪽 3번째 플래카드를 잡고있는분이 노을님
2000년초 천리안이 너무비싼 요금제로 쇠퇴하고 바둑싸이트들이
오로,넷바둑,네오스톤등이 생겨나면서 무료로 이용하게됨에 따라
우리는 활동무대를 천리안에서 사이버오로로 옮겼습니다
당시 회원수가 전국적으로 200 여명까지 불어난적이 있었으며
오로의 사정으로 그당시 기록들은 이후 다시 재개될때까지 모두
없어져 버렸습니다
주로 오로에서 온라인상으로 이루어진 대국에서 재미있는 일화는
수신이 하수 약을 잘 올리는 악취미가 있는지라 .. 회원들은
수신과 대국하는 회원들을 일방적으로 응원하면서 하는말이
"수신님과 대국할때는 대화창을 담배갑으로 가리고 두라"고
하는 재미있는 말이 생겼습니다
하수킬러 수신이 하도 대마를 꿀꺼덕~! 하고 잘 잡아먹으니
무경님이 죠스란 별명을 붙여주기도했습니다
하수약을 올리는 악취미를 탓하지 마시고 칼을 갈게끔 만들어
기력향상을 도모코자한 수신의 깊은뜻을 헤아려 주셔야겠습니다
당시 바둑싸이트는 초창기다보니 계가를 할때에도 /s 를 입력해야
헀고 복기기능도 없었고 바둑공부를 할 수 있는 강좌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수신이 생각한것이 PC방에서 컴퓨터2대를 동원하여
각각 다른아이디로 흑백을 번갈아가며 복기를 하며 키보드를 두드려
설명을 하였습니다
강의를 듣던 질주님이 수신님이 귀신인줄은 알지만 진짜 귀신이라고
하였지요
그러던 수신이 바사모+에 고수님이 많이 들어오시고
또. 행림님,무사님 처럼 저보다 약한분들이 기력이 쎄지면서
바사모+를 휘어잡던 바둑이 물바둑이 되어벼렸습니다
아~! 세월의 무상함이여!
나이40 이넘으면 바둑실력이 향상되지 않을거란 선입관이
깨어지고 열심히 공부하는 사람을 당할 재간이 없다는걸
다시한번 깨달았습니다
50~60 이 넘은분들도 희망을 갖고 노력하시길 바랍니다
두점상수와 바둑을 둔뒤 복기지도를 받는것이야말로
기력향상의 지름길입니다
3.
해가 바뀌어 2000년이 되어서 2번째 전국모임을 게룡산 동학산장에서
2000년 5월20일 부부동반으로 1박2일간 실시하였습니다
나는 부부동반모임을 좋게생각하는 편인데 부인들은 밤이면 밤마다
내남편을 잠도 안자고 컴퓨터를 붙들고 바둑을 두게 만드는
대국상대자는 도대체 어떤사람이길래?
뿔이 4개는 달린 도깨비들인가? 하는 호기심에 따라왔다가
남자들은 모두 바둑에만 푹 빠져있고 첨본 여자들끼리 서먹하게
있기도 그렇고 뭘 해야할지 ? 수신의 집사람이 요리에 관한 이야기를
주로 많이 했다고는 하지만... 그 숙제를 풀어주지못한 바람에
차츰차츰 부부동반은 멀어져 갔습니다
반면 신이난 우리들은 1년에 한번 모임은 아쉽다하여
해운대 로드비치 지배인으로 계시는 청송님 주선으로
파격적인 싼 가격에 해운대 글로리콘도에서 2000년 8월12일 ~14일까지
제3회 전국모임을 또 가졌습니다 .
이와같은 전국모임외 매달 온라인상에서 모임을 하고 회의도 하였는데...
가입시킨후 나중에사 알게된 회원중에는 김해초등학교 , 부흥고등학교
학생도 있었습니다
정팅에서 이상한 발언도 하고... 오프모임에 나오겠다고 하여
부모님동반 참석하라고 했지만 ... 학업에 전념해야할 학생은
회원으로 적절치않다고 보아 가입조건을 20세 이상으로 바꾸었습니다.
2001년7월1일 수신으로부터 바톤을 이어받은 2대 회장 청송님이
회장을 맡고부터 주류인 부산분들은 해운대 로드비치 호텔에
무시로 드나들며 호텔방에서 대국을 하고 근처 막걸리집에서
시간가는줄 모르고 막걸리리파티를 하곤 했습니다
2001년 가을에는 경북 청도 풍광이 수려한곳에 위치한 물우님
친척집에서 1박을 하며 모임을 가졌고
그무렵 베스트셀러 가시고기의 저자 조창인님께서 바사모+에 가입하시어
오로에서 대국할때 늘 수신더러 사부님이라고 불렀기에 오직한분 수제자가
되었는데... 로테님이 부탁하여 2001년 11월27일 해운대 고등학교에서
문학강연을 하시어 학생들로부터 우뢰와 같은 박수를 받은바 있었습니다
그후 가시님 초청으로 경기도 시흥근처 월곶이란곳에서 모임을 가져
오륙도횟집에서 회를 푸짐하게 대접받기도 하였는데 그뒤 얼마후
대부도로 들어가 오랫동안 오로지 집필에만 전념하신다고 바사모+에
오지않으므로 자연스레 연락이 끊어지게 되었습니다
다음해 2002년 2월23일 첫 전국모임의 추억을 되살려 또다시
중간지점인 김천직지사에서 제4회 전국모임을 가졌고
2002년8월 영주부석사에서 제5회 모임을 가졌습니다
2003년 2월에 경주 보문단지에서 제6회 모임을 가졌고
2003년 2월3일 뒤늦게 만들어진 타이젬에 청송회장님이 바사모+를 개설하고
오로에서는 수신+ 처럼 이아디를 사용하다가 나중에는 +수신으로 바꾸어
오로에서 모일때 대기실 맨상단에 자동정렬되어 올라가게 만들었지만
타이젬에서는 +기호를 사용치 못하게 되어서 수신99처럼 아이디를 통일되게
하였습니다
청송회장님 시절이 지금도 그립지만 아쉽게도 부산을 떠나셨는데 ..
포항에서 대구로 가다 우연히 만나게되어 그뒤 무경님과 함께 가서
만난적도 있었는데 ..지금은 연락이 되지않고 있습니다
청송님이 계셨더라면 영어도 잘 하시지만, 유창한 일본어로
청교사와 교류전시 통역문제는 걱정이 없을텐데...
정말 아쉽기 짝이없습니다.
4.
2003년 7월1일 바사모+ 제3대회장으로 뚜벅님이 회장을 맡으셨고
대구에서 수시로 부부동반하여 부산에 내려오셨습니다
석달뒤 2003년 10월에 계룡산 동학산장 에서 제7회 전국모임을 하였고
이사진오른쪽에서 3번째 곤색양복을 입고 계시는 설악님은
속초에 사시는분인데 대학교수이시며 이후에도 바사모+가
너무좋다고 그먼 속초에서 중절모자를 쓰고 부산에 자주 오셨습니다
바사모+회원을 속초로 초대하여 시원하게 탁 트인 동해바다를 배경으로
오징어회라든지 해산물을 푸짐하게 대접한적도 있었습니다
2004년 2월에 구미 금오산에서 제8회 전국모임을 하였는데
잔디밭에 바둑판을 놓고 대국하는맛도 괜찬았습니다.
이러한 전국모임에 많은회원들이 참석하기란 쉽지 않은일이고
부산에 계시는분들이 서울에 가서 모인적도 있었지만
지리적으로나 시간관계상 서울,부산과 중간지점인 김천,
또는 대전에서 모임을 하는것도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점차적으로 서울쪽에 계시는분들은 모임에 참석하는수가 줄어들고
개별적으로 승우님처럼 부부동반으로 부산에 내려오기도 하고
바사모+ 발기인중 한분인 둥굴곰님은 러시아에 계셨는데
어느날 보드카를 한병들고 부산연산동에 나타나는가하면
또다른 발기인인 먹통님도 부부동반하여 부산에 오신적이 있었습니다
서울에서 학원을 운영하시는 삼수님은 최근에 울산으로 내려오셨다가
바사모정모에 참석치 못하고 얼마전 포항으로 가신다고 연락이 왔었습니다
동대문에서 신발도매업을 크게하시는 태양님은 몇년전 까지만해도
부산에 가끔 오셨는데 요즘은 거의 오시지 않듯이
먼길을 꾸준하게 온다는건 사실 어려운일이겠지요
그렇듯 서울분들은 따로 삼소문을 만들어 지금까지 동호회 활동을
잘 유지하고 있습니다 .
자연스레 바사모+ 회원분포는 대구에 계신분들과 부산분들로
구성되어 가고있었지요
뚜벅님은 대구에서 의류제조업을 하고 계신분인데
아마도 바사모+ 역대 회장님들은 모두 한복두루마기 한벌씩
선물을 받은걸로 알고 있습니다
회장을 맡아 1년정도 열정적으로 봉사하셨고 그후
부부동반하여 몇년전까지만해도 부산정모에
빠짐없이 참석하셨고 대구분들과도 여러번 오셨습니다
8 년전 대구 내당동 홈프러스옆에 바둑사랑기원을 만들어
타이젬에서 대구 바사모+를 새로 출범시킨뒤로도 부산분들이
대구로 가기도하고 서로 내왕하였는데 근래와서는 조금
소원해진듯합니다
하튼 부인인 젊고 예쁘신 경애님과 샘이 날 정도로
금슬이 너무좋아보이고 바둑도 다소 장고파이긴 하시지만
7단으로 고수인 뚜벅님을 자주 뵙지 못하여 너무나
섭섭하기 짝이 없었는데 20주년에 오신다니 반갑기 그지없습니다.
5.
2004년9월1일 로테님이 바사모+ 제4대 회장으로 모임을 이끌어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로테님은 해운대 고등학교에 재임중이셨고 초창기 바사모+ 총무를 맡으시기도 했습니다
같은학교에 근무하는 무경님과 아주 좋은 술벗으로 무경님한테 9점을 깔고 바둑을
배우셨는데... 바둑판을 놓고 바둑을 배운게 아니라 술자리에서 얘기하면서
바둑을 배우셨다는데.. 놀랍게도 초고속으로 승급 지금은 2점치수가 되었습니다
이런분이 천재가 아니라면? 누가 천재일까요?
국문학박사 . 대입 입시출제위원.
삼국지를 통달하시어 조자룡이 언제 태어나 몇년도에 돌아가셨다고
줄줄 읊어대시는데 입이 떡 벌어지지 않을 수가 없었지요
한번 로테님댁을 방문 했을때 서가에 빽빽하게 꽂혀있는 수많은
전문서적을 보고 또 한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답니다.
지금은 서울대를 한해 수십명씩 입학시키는 명문으로 유명한 거창고등학교
교감선생님으로 머지않아 교장승진이 유력한 분이십니다
안타깝게도 2004년9월 이후 사진자료들이 별로 없어서.....
바사모+ 발기인중 수신을 제외하고 유일하게 남아있는 질주님 집들이
사진을 올립니다
김천직지사에서 첫 전국모임을 할때 애인과 함께 온 막내질주님이
소방관이 되어 그때 그애인과 결혼하여 아이의 아빠가 되었습니다
요즘 근무가 119쪽으로 매우 바쁘기도 하지만 집이 멀어서 자주
정모에 오지 못하는데 20주년기념행사때 꼭 오라고 했습니다
2006.7.22. 질주님 집들이 모습
사진왼쪽아래부터 시계방향으로
경애님,행림님 ,질주님,로테님.수신,뚜벅님,무경님
인터넷 바둑은 차츰차츰 속도나 기능들이 개선되기는 했지만.....
너무 속기전이라 콩뽂듯이 따닥 ! 탁! 하며 두니 신중치 못하고
또, 매너가 불량한 사람들이 계가를 지연시키기도 하고
별의별짓을 다하니깐 점차 식상해져 갔습니다
게다가 마우스 미스 , 시간패등 ...
우리회원끼리 두면 그런일은 없겠으나 대신 시간약속이 어려워서..
진지한대국은 쉽게 이루어지지 않게 되었죠
6.
2006년8월1일 무경님이 바사모+ 제5대 회장님이 되셨습니다
무경님은 수신과 초등학교 ,중학교 동기로 서울대학교를 나와
교단에서 후학을 가르치다 은퇴 하신분입니다.
전공이 물리라서 그런지 매사 논리적인 사고방식으로 올바른
결론을 추출하여 최선의 결과를 만들어 내고자하시는분입니다
바사모+ 초창기부터 수신을 도와 천군만마의 조력자로서
또는 회장을 역임한다던지 현재까지 운영자를 계속해오면서
역대회장을 도와 바사모+의 발전에 기여한 공로는 실로
막대하다할것입니다
컴퓨터 세대가 아니지만 근무중 전산실장을 하신분으로
수신이 자극받아 모르는것은 무경님께 물어보고 또는
검색을 통하여 스스로 깨쳐 오늘날 홍대미대를 다닌 알량한
디자인감각으로 카페대문을 꾸민다던지 태그를 구사하여
음악을 올리는 일들을 할 수 있었던것은 다 무경님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요즘도 테스트 해보고 시행착오가 있으면 끊임없이 파고들고
연구하여 오히려 젊은세대를 능가하는 실력을 갖춘것으로 압니다
이부분에서 앞으로 무경,수신의 뒤를이어 누가 바사모+를
위해 봉사해 줄것인지? 또는 그간의 경험을 바탕으로한 노하우를
전수받을분이 있을런지?
앞으로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나이가 되다보니 걱정이 앞섭니다
바사모+가 오로로 옮겨가서 사용하기시작한 바사모+ 로고마크를
무경님이 만드셨는데 수많은 다른 동호회마크에 비해 심플하면서도
눈에 확 잘뛰어 단연코 역작이라고 말씀 드릴 수 가 있겠습니다
무경 15.01.01. 18:46 답글
"바사모 마크는 '바'자의 ㅂ에 바둑판 노란색을 칠한 것인데,
술잔에 갈리아노 술이 반쯤 찬 것으로도 상상하지요.
술잔에 술이 반밖에 안 남았나요?
술잔에 술이 반이나 남았나요? "
지금 카페대문에 사용하는 마크는 조금 변형시켜
아래와 같은 로고마크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7.
2006년8월 양산 배넷골에서 제9회 모꼬지를 실시 합니다
이즈음부터 전국모임이라고 하기엔 참석자들이 대구와 부산분들이
대부분이서 어울리지 않게 되어버렸습니다.
2007년6월 경주산내에서 실시한 제10회 모꼬지에서 앞줄 가운데
앉아계신 샤워님이 전문가의 솜씨로 장어를 몇시간동안 땀을 뻘뻘
흘리시며 굽는다고 고생하는 모습이 기억납니다.
모두들 노래방에 간 사이 수신이 평상에 도깨비 난장판처럼 늘어놓은
맥주병과 반찬그릇을 몇시간 걸려 겨우 치웠더니 새벽4시에 와서
또 술잔치를 벌려 도로아미타불이 되기도했습니다 ^ ^
2008년 7월24일 무경님이 다음카페에 바사모+를 개설 하였습니다.
바둑싸이트 오로나 타이젬에서 사용하는 동호회게시판은 용량이 작아
글쓰기가 상당히 불편합니다
회원들과의 소통이 원활치못하자 다음카페를 활용코자 한것인데 아것은
곧 단칸방에서 60평아파트로 이사하는만큼 대단한 진전이었습니다
용량이 비교할 수 없이 큰만큼 글쓰기가 자유롭고 게시판이 잘 분류되어
있어 마치 중앙도서관처럼 편하게 이용할 수 있었고 바사모+의 역사를
남기고 후일 찾아보기가 수월하게 된것입니다 .
그리고 카페통계를 통하여 회원활동을 데이터화 하여 볼 수 있고
전체메일발송및 회원관리가 용이한 장점이 있습니다
이를 계기로 온라인 대국의 문제점 ,즉 중국사람들의 비매너대국은
물론, 저단자의 아이디를 빌려 장난치는 상수들,계가지연, 초속기대국으로
인한 시간패 , 마우스 미스등으로 차츰차츰 오프라인대국쪽으로 선호도가
기울어지게 된것입니다
참고로 요즘 오로에 들어가면 5~6단을 잘 볼 수가 없고 어쩌다 대국신청이
들어와 수락하면 영락없이 상대가 흑을 잡고 혼자서 흑,백돌을 주르륵
이상한곳에 착점해 중단코자해도 안되고 대국중 나갈 수도 없고
결국 내가 불계패를 선언하고 나가야 되는일이 비일비재합니다
당연 몇수 진행되지 않았지만 패점이 기록되곤 합니다
이런일을 방지하지못한다면 오로의 앞날이 어둡게 보입니다
이런일들을 일본싸이트에서는 볼 수 없는 광경이겠지요
이지음부터 서면 국제기원에서 모임을 하고 그후 동래구청옆
동성기원에서 모임을 하다 2009년12월부터 수영로타리에 있는 주차장도 있고
기원이 깨끗하고 미모가 출중한 부원장 그린님도 계신 센텀기원을
모임장소로 자주 이용하게 되었습니다 .
여기서 만난 무사님을 제가 바사모+에 가입토록 권유하였는데
가입을 미루다가 결국 1년뒤에 가입하셨습니다 .
그땐 분명 수신보다 바둑이 약했는데 ..지금은 막강해졌지요
자연 전국모임을 여러차례 해봤지만.. 서울쪽도 삼소문으로 빠지는등
많은회원이 참석하는것도 아닌데 운영진만 힘들고 장거리를 다니느라
교통비도 많이 들고 시간만 낭비하고 대구팀도 매달 참석한다는게
쉬운일이 아니다보니 핵심멤버인 부산사람들이 원하는대로
부산지역모임으로 탈바꿈이 된것입니다
전국모임쪽으로 계속 갔다면 회원수가 천명을 넘겼을수도 있었겠지만...
욕심을 버리고 순리대로 부산지역의 오프라인모임으로 바사모+가
방향을 틀어 걸어온것이 옳은판단이었다고 생각합니다
2008년 8월 경주산내에서 가진 제11회 모꼬지 모습 (산야초 단식원 )
2008년12월 매너님께서 제공한 도시광안 아파트에서 대국하는 모습
빨간잠바입은 양돌님(송양석)은 연구생출신으로 몇년전 프로로
입단한 송홍석님의 친형입니다
프로로 입단전 바사모+회원들과 지도대국을 가진적이있습니다
부산에서 서울로 올라간 양돌님은 회원수가 300명정도 되는
네이버카페 2030클럽(타이젬 싸이월드)의 클럽마스타로 활발한
카페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2009. 3월 대구 대회에서 우승한 로테님께 우승 상패 전달 ( 8월 수련회 때)
이무렵 총무를 맡은 민채(소미)님 모습도 보이네요 (2008.7.25 카페가입)
물우님이 전각한 우승상패
5월대회 우승자 허심님
2009년8월22일 바사모+10주년 행사를 무사히 마치고
2009년 10월1일 행림님께 회장을 넘길때 까지 역대회장중 제일긴
3년동안 수고를 많이 하셨습니다
거기에다가 계속하여 카페지기를 하셨고 운영자를 현재까지 하고
계시니 그동안의 수고와 공적이 이루 말할 수 없이 크다고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