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쟁적인 정치적 공격이 표적으로 삼는 주요 대상은 200을 훨씬 넘어서는 것으로 측정된다.
(그것은 355에서 무한(Infinity)에까지 이른다. 평균은 455 )
그리하여 갈등은 사실 정치적인 것이 아니라,
200 이하의 집단적 수준과 200 이상 수준들 간의 사회적 충돌,
즉 낮은 마음의 감정성과 높은 마음을 나타내는 논리 및 이성 간의 충돌을 나타낸다.
그것은 또한 진화가 덜된 마음의 학식 그 자체에 대한 적의를 반영한다.
저변에 깔려 있는 환상은,
공격을 통해 경기장 바닥을 평평하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이지만 그것은 명백히 거짓이다.
왜냐하면 진실과 온전성의 효과는, 어떠한 공격에도 다치지 않는 그 비선형적 근원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거짓은 합리화될 수 있지만 오직 낮은 힘(설득, 감정성)만을 나타낼 뿐이고,
진실은 중력과 마찬가지로 본래부터 낮은 힘에 면역이 되어 있다.
감정주의가 주의를 분산시킬 수는 있지만, 진실 자체는 묵묵히 살아남는데,
왜냐하면 낮은 힘은 동의를 필요로 하는 반면에 진실은 중력처럼 홀로 서 있으며
진실의 법칙은 침해받지 않기 때문이다.
합리성을 그리고 논리와 진실에 고유한 질서를 철학적/학문적으로 폄하하는 것의 허위성이,
두 가지 의미심장한 사례를 통해 노출되었다.
첫 번째 사례는 가짜 평론을 양산하는 유명한 '포스트모던 평론 발생기'이고
두 번째는 악명 높은 '소칼 사건'이다.
소칼 사건은 어느 물리학자가 순전히 엉터리로 그리고 화려한 용어를 동원하여 쓴 유사 과학 논문이
듀크 대학교에서 『사회적 텍스트(Social Text)』라는 제목으로 출판된 사건이다.(자세한 내용은 인터넷에 있다.)
'권위에 의문을 제가하라'는 범퍼 스티커의 최종 결과는 미성숙으로의 퇴행이다.
과학을 모독하는 것은 기것해야 지적 포즈일 뿐이다.
상대주의자 자동차 정비공이나
180에서 190 사이의 의식 수준에서 수술하는 뇌 신경외과 의사를 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철학적 오류의 근원은, '포스트모더니즘'과 기타의 지적 표현을
예술(스트라빈스키, 피카소, 달리)이나 의미론에 관한 연구에 적용할 때 그것은 의미롭게 유효하지만,
그러한 것을 지적 능력, 사회현실, 자연, 혹은 영적 실상의 세계에 잘못 적용할 때
(예: 올슨의 『선(禪)과 포스트모던 철학의 기술(Zen and the Art of Postmodern Philosophy)』)는
철저히 부적합하다는 것을 알아보지 못한 데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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