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번째 참가하는 옥스팜트레일워커 대회지만, 올해는 특별히 62년 동갑내기 혼성팀인 Running Tigers를 꾸려 인제로 향했다. 막걸리 한잔 하며 최선을 다해 경기에 임하자고 다짐했다.
새벽 6시 출발신호와 함께 선수 여러 명이 달려 나갔다. 족히 5~6개 팀 정도는 앞서 나간 것 같다. 속도로 봐선 5~6 분주에 이를 만큼 다들 빠르다. 첫 번째 만나는 산길은 경사도가 만만치 않은 데다 바닥이 미끄러워 진을 다 빼놓았다. 두 팀을 추월해 도착한 1cp는 박달고치 정상에 위치해 있었다. 방울토마토를 먹으며 숨 고르기를 한 후 달려 내려섰다. 자작나무숲길 오름길에서 시그널을 확인하지 못해 2~3km를 우회했지만 크게 문제 될 것은 없었다. 2cp에서 된장국에다 갖가지 산채나물로 아침식사를 했다. 누군가 혼성팀 1등이라 했다.
설악산 서북능선을 조망하면서 계속하여 달려 내려갔다. 화장실을 들러서 그런지 식사를 했음에도 금세 허기가 졌다. 4cp 인근에서 희종형님과 재문형님이 자봉차 오셨다가 근육이완제와 진통제를 건넸다. 왠지 오늘은 내가 대원들한테 민폐를 주는 것 같았다. 허벅지와 골반의 묵직한 통증이 발목을 잡았다. 아이스커피를 마시고 내린천변을 따라갔다.
조금씩 몸이 풀리는 느낌이 들었다. 왜골입구에서 포장도로 따라가다 동물이동통로가 있는 5cp에 이르렀다. 백두대간 매봉재라고 하는데, 전혀 감이 없다. 백두대간을 세 번이나 다녔지만 아주 낯설다. 다른 곳인가?
봉사 나온 분들로부터 시원한 냉커피를 얻어마시고 가파른 임도를 걸어 올라갔다. 포장도로로 내려선 다음 6cp까지는 달렸다. 정자리 다목적 회관에서는 비빔밥 한 그릇을 깨끗하게 다 비웠다. 내리막 도로임에도 대원들이 계속하여 달려주지는 못했다. 시간을 단축하고 싶었지만 여기저기 아프다는 하소연들이 점점 많아졌다.
7cp에 맡겨둔 랜턴과 바람막이를 챙겨 야간주행에 대비했다. 희종형님이 혼성팀 2위라 했다. cp마다 자원봉사자들이 1위라 했는데, 그 말을 듣는 순간 맥이 풀렸다. 미약골 임도는 계속하여 올라가야 했다. 다행히 주로의 잡풀을 정리해서 주변 풍광이 눈에 들어왔다. 정상에서 다시 임도를 따라 달려 내려와 남면 로터리공원 cp에서 추어탕을 먹었다. 체크포인트마다 적절하게 식사를 제공하여 저녁식사로 대체하기에 충분했다. 8cp에서 우리 팀은 확실하게 혼성팀 2위로 확인이 되었다.
이때부터는 뛰지 말고 그냥 걷기로 했다. 달려 나갔으면 1시간에서 1시간 30분 정도의 기록단축이 있었겠지만 뒤따라오는 주자도 없고, 이미 혼성팀 1위는 골인했다고 하니 야간 등반하는 셈 치고 천천히 가기로 한 것이다.
소양호변 구간을 지나가지만 어두워서 그런지 길 찾기가 쉽지 않다. 예년처럼 시그널이 촘촘하게 달려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38 휴게소 밑 하천에서 출구를 찾지 못해 헤매면서 시간허비도 많았다. 가장 이상한 구간은 국도 44번 길이다. 갓길로 걷게 되면 참가자들이 위험하다고 차에 태워 2.4km를 이동하는 방식을 취했다. 고깔콘으로 보차분리하고 2~3명이 안내하면 충분할 것을 집행부는 완주시간에 제외하면 된다고 아주 단순하게 생각한 모양이다. 9cp에서 몇 가지 불만사항을 얘기했지만, 나로선 이번 대회가 마지막이니 강하게 어필하지는 않았다.
9cp에서 골인지점까지도 만만치 않았다. 갑자기 산길로 안내하더니 시그널이 거의 없다. 분명히 갈림길은 없는데, 긴 구간 시그널이 없기는 처음이라 불안했다. 랜턴으로 계속하여 좌우를 살펴야 했다. 네이버 지도를 켜고 방향을 보니 진행방향이 틀리지는 않았지만 걷고 있는 내내 걱정거리를 떨쳐내지는 못했다. 소양강 둘레길을 따라 시그널을 확인하며 자전거도로에 이르자 안도의 한숨이 절로 나왔다.
17시간 25분으로 넷이 함께 골인했다. 7cp까지 자원봉사자들이 1등이라고 그렇게 칭찬했는데, 거의 다 와서 "뻥이었어"라고 하는 것 같아 기분이 썩 좋지는 않았다.
사진 몇 장 찍고 불도 들어오지 않은 화장실에서 대충 몸을 씻은 후 차에 몸을 실었다. 새벽 2시 안양 24시 식당에서 막걸리를 주고받으며 서로를 격려했다. 긴 시간 동갑내기 친구들이 추억거리 하나를 남겼다고 생각하면 될 일이었으니 기분 나빠할 일도 아니었다. 얼큰하게 취한 채 두런두런 얘기하다 보니 날이 밝아왔고 첫차로 세종에 내려올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