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1월 13일 오후에 국립경주박물관에 갔다. 신라금관 특별 전시회를 볼 수 없어 야외와 월지관 등 갈 수 있는 곳만.
몇 년 전에 이곳에 왔지만 그때는 지금보다 무지했을 때다.
삼층석탑
경주남산 삼릉계 석탑으로 높이 2.22m. 이 석탑이 있던 자리엔 지금 석조여래좌상(보물)이 있다. 9세기에 만든 작품.
승소골 삼층석탑
9세기 말에 만든 작품. 남산 승소골에 있었으며 높이 3.77m이다. 1층 몸돌에 안상(상다리무늬)을 새기고 사천왕상을 새겼다.
비석 받침(귀부)
고산사터에 있던 것.
고산사터에서 나온 석부재
관음보살상
경주 낭산에 있었던 불상, 8~9세기 만든 것으로 높이는 3.76m. 왼손에 정병을 들고 있다.
머리, 몸통, 연화좌대 등은 따로 지내다가 1997년 4월에 한 몸이 되었다.
불두
경주 남산 철와골에서 발견, 8세기 말~9세기 초. 머리 크기를 감안하여 전체 높이를 추정하면 6m쯤, 몸체는 아직 못 찾았다.
석등
경주 읍성에 있었음. 하대석과 간주석(화석 밑부분, 팔각기둥) 외는 박물관에 세울 때 맞춘 것임. 8세기~9세기.
상다리무늬(안상)에 팔주신중을 조각하였다.
나한상 모서리 기둥
높이 1.29m, 정확히 어떤 건축 구조물의 모서리 기둥이었는지 원형을 맑히긴 어렵다. 8세기~9세기
고선사터 삼층석탑, 몇 년 전에 봤을 때 그저 석탑으로만 봤다. 다시 보니 새롭다. 규모도 상당한 게 늠름하다.
고선사터 삼층석탑 /국보
고선사터가 덕동댐 건설로 수몰할 수 있어 석탑과 여러 부자재를 박물관으로 옮겼다.
덕동댐은 함월산과 무장산 계곡에서 흐른 물을 담고 있으며 보문호 상부댐 역할을 한다.
고선사는 원효대사가 머물렀던 절이며, 감은사지 삼층석탑과 전체 모습은 비슷하다. 높이 10.2m
석조
8세기~9세기. 석조에 여러 글씨가 새겨져 있는데 이는 조선시대 때 새긴 것이다.
손에 주머니를 쥐고 뛰는 상
그림을 자세히 봐도 잘 모르겠다. 건축물 어디에 썼는지 알 수는 없다.
사자.공작 무늬 돌
8세시~9세기
수묵당과 고청지
부처가 새겨진 석탑 몸돌
9세기, 경주 입실리 절터, 본래 오층석탑으로 동서 쌍탑이었다. 오른편이 서탑 몸돌.
숭복사터 쌍거북 비석받침(귀부)
숭북사터(경주 외동읍 말방리)에 있었던 쌍거북 비석받침. 이 받침 위에 세웠던 비석에 새긴 글은 최치원이 썼다고 한다.
경주에서 이런 쌍거북 비석받침은 창림사터와 무장사터 등에 있다.
부처상이 새겨진 몸돌
척화비
선덕대왕 신종 종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