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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의 인물
세계 최초 'UFO 유도기지' 세운 전일 스님
(글 출처:2001년 1월 13일 여성동아 기사면)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건물인 무량수전이 있는 부석사에서 10km 떨어진 해발 818m의 깊은 산 속에 'UFO 유도기지'를 세운 스님이 있다.
7년 전 법화종을 탈종한 전일 스님이 바로 그 주인공. 암자에서 혼자 기거하며 매일 두세 차례 우주를 향해 호출의식을 벌이는 그의 이색적인 생활.
서울에서 경북 봉화군 물야면으로 전일 스님을 찾아 떠나는 길에서 ‘스님과 UFO’를 떠올렸을 때 가장 먼저 든 생각은 부조화였다. 세상에는 만나서 어울릴 것 같은 조합과 만나서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조합이 있다.
‘스님과 UFO’는 아무래도 후자의 조합에 가까운 것같아 ‘고전과 첨단’의 만남 같은 다소 어색한 선입견으로 다가왔다.
그러나 단양, 영주를 지나 우리 나라 최고(最古)의 목조건물이 있는 곳으로 유명한 부석사 무량수전에서 10km 떨어진, 일명 범바위골이라고 불리는 오전리에 들어선 뒤 도저히 승용차로는 가기 어려운 꼬불꼬불, 울퉁불퉁한 산길을 헤쳐 전일 스님이 기거하는 해발 818m 봉황산 산중에 들어섰을 때는 ‘스님과 UFO’의 만남이 있음직도 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차가 없으면 장정 걸음으로 1시간 남짓한 시간을 꼬박 걸어서야 암자에 도달할 만큼 외진 그곳은 대낮에도 호랑이가 튀어나올 것 같은 골 깊은 산골짜기라서, 목적을 가지고 지구를 찾아온 외계인들이 몸을 숨기고 ‘첩보활동’을 하기에 알맞은 장소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출가한 스님이라고 하지만, 그래도 여자분인데 어떻게 이런 곳에서 혼자 사십니까?” 라며 인사말을 건넸을 때 전일 스님은 “한 달이 가도 여기까지 찾아오는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라고 한다. 험한 길에 대한 인사말은 자연스럽게 “집짓기가 쉽지 않으셨겠네요”로 이어졌고, 스님은 “그렇습니다.
6·25때 이곳에서 많은 사람들이 죽어, 암자를 짓기 위해 땅을 파 들어갈 때마다 유골들이 쏟아져 나와 인부들이 질겁을 하고 도망가는 바람에 공사 진척이 쉽지 않았지요”라고 한다. 올해 나이 예순인 전일 스님은 8년 전 노후를 보낼 적당한 터를 물색하던 중 인연에 이끌려 이곳에 와서 살게 되었다고 했다.
신도가 찾아오는 것도 마다하는 전일 스님은 인적이 뜸해 사람으로 인한 방해를 받지 않아 수도 정진하며 살기에 이곳만큼 좋은 장소가 없다고 한다.
비료 없이 무공해로 농사를 짓는 태평농법을 익혀 쌀, 보리, 콩, 팥 같은 곡류는 물론 깨, 배추, 무, 파, 고추, 사과 등 채소와 과일 농사도 조금씩 짓고 산 주위에 지천으로 깔려있는 두릅, 더덕, 취나물 등을 뜯어먹으며 모든 것을 자급자족하고 산다는 전일 스님. 주변엔 놓아 기르는 닭과 염소도 몇 마리 있어 유정란도 취하고 가끔 원하는 사람이 나타났을 때 손에 들려 보내기도 한다.
한밤중의 방문객, 눈사람같은 발광체에 무서워 떨어 “4년 전 일이었어요. 자다 깬 후 잠이 오지 않아 창(산 아래를 굽어보는 벽 한 면이 통유리로 되어 있다)을 통해 별을 바라보고 있는데 산중에서 무슨 소리가 들려요. 쿵쿵 울리는 것이 음악소리 같았어요.
언뜻 시계를 보니 자시경(밤 11시~새벽 1시)이었어요. 낮에도 사람 구경하기 어려운 곳인데 한밤중에 무슨 일인가 싶었어요. 잘못 들었나 싶었는데 그 다음날도 한밤중에 음악소리가 들려왔어요.
" 전일 스님은 며칠동안 계속해서 음악소리를 들었는데 어느 날 그 소리가 끊겼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번엔 소리만이 아닌 다른 것을 목격하게 되었다고 한다.
“비슷한 시각이었어요. 또 자다 깨서 잠이 안 들어 창 밖의 별을 바라보고 있는데 밖에서 플래시 불빛 같은 것이 다가오고 있었어요. 점점 다가오는 불빛을 자세히 보니 눈사람처럼 생긴 형태가 대여섯명이 들어서는데 발광체는 플래시 불빛이 아니었어요.
‘세상에 누가 날 찾아올 사람이 없는데’하는 생각이 들자 무서워서 견딜 수가 없었어요." 집터에서 두개골과 무릎, 정강이뼈가 나왔어도 전혀 겁내지 않고 손수 유골들을 거둬 절구에 빻아 가루로 만든 후 밥에 버무려 산에 놓아주었을 만큼 담력 강한 스님도 이번엔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고 한다.
눈사람처럼 생긴 대여섯명이 마치 수색을 하듯 집 뒤로 올라가자 와락 겁이 난 스님은 옆의 목탁을 집어들고 앉아 정신없이 두들겨대며 “마귀야 물러가라”고 외쳤다고 한다. 얼마쯤 시간이 지났을까. 불빛도 사라지고 사방이 고요해지자, 사시나무 떨듯 벌벌 떨던 스님은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진정을 하고 서너시간이 지나자 날이 밝았다.
간밤에 본 것이 대체 무엇이었나 싶어, 주변을 둘러봤더니 아무런 흔적도 찾을 수 없었다. ‘마음이 허해서 헛것을 본 것이 아니었을까’ 싶어지는 순간이었다. 그런데 다음날에도 전일 스님은 전날과 같은 체험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역시 눈사람처럼 생긴 발광체들이 다가와 스님이 사는 집 주위를 둘러보는 것이었다. 스님은 첫날보다는 덜 무서웠지만 그래도 무서워 그날 밤도 목탁을 두들기며 “마귀야 물러가라”를 외쳤다고 한다.
“그 사건은 1주일동안 계속해 일어나다 사라졌어요. 그런데 한밤중의 이상한 일이 뚝 끊기자 조금 서운한 생각이 들더라고요. 무서웠지만 오늘밤엔 어떤 또 다른 일이 벌어질까 싶은 기다림도 있었거든요." 전일 스님은 이번엔 하늘에서 이상한 것을 보게 되었다. 밤하늘이 번쩍대면서 혜성 같은 것이 보였다. 그것은 커졌다 작아졌다 하며 운행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혜성 같은 것은 앞에서 경험했던 것과는 다르게 밤에만 보이는 것이 아니라 낮에도 보였다. 오후 3, 4시경 밭을 매다가 하늘을 보면 해도 달도 별도 아닌 혜성 같은 물체가 하늘에 걸려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것은 봉황산 자락 동쪽, 남서쪽, 북쪽 등에서도 발견되었다. 전일 스님은 자신이 본 것이 무엇이었는지 궁금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혜성인지, 혼령 많은 골짜기에서 나타나는 귀신불이었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수소문끝에 한국UFO(미확인비행물체)연구협회를 찾아 서울로 갔다. “회장을 만났는데 ‘스님이 봤다는 게 이런 겁니까?’하며 비디오를 몇 개 보여줬어요.
비디오를 보니 불덩이가 왔다갔다 하는 게 제가 본 것이 거기에 다 있었어요. ‘맞다’고 했더니 UFO라는 거예요.
그제서야 제가 본 것이 UFO임을 알게 되었지요. 그러면서 그 회장은 ‘우주인이 스님을 조사하고 간 것입니다’ 라고 하더군요." ‘무슨 이유로 나를 조사했나?’ 이번엔 그것이 의문이었다.
그리고 겁도 났다. 산을 떠날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다가 ‘에이, 죽으면 죽고 살면 산다’하는 배포가 생겼다. 한국UFO연구협회 회원들도 몇 번 찾아와 관찰을 했다.
차츰 스님에겐 목적이 생겼다. 자신이 본 것이 UFO임을 확인하고 나자 겁만 낼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우주인과 대화를 나눠보고 싶은 욕심이 생기게 된 것이다.
“심심해서 염소 몇 마리를 키우는데 매어 놓지를 않아 가고 싶은 곳으로 마냥 돌아다니며 살아요. 그러다 집에 오고 싶으면 돌아오는데 문 앞에 와서 끙끙거리면 염소들이 무엇 때문에 끙끙거리는지 알 수 있죠. 어떤 날은 내 손바닥에 먹을것을 얹어놓으면 부지런히 핥아먹고 사라집니다. 눈이 수북이 쌓인 한겨울엔 토끼나 멧돼지도 와서 기웃거리고요.
배가 고파 왔구나 싶어 먹을 것을 주면 정말 맛있게 먹어요. 사람과 동물도 대화를 하는데 우주인이라고 못할 것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전일 스님은 우주인을 만나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에 이르렀다.
어떻게 만남을 시도할 수 있을까, 골똘히 생각하게 된 스님은 ‘11조 문자 우주어’를 개발한 고 정희철 선생과 만남을 갖게 되었다. 무언가 간절히 바라면 꿈에서라도 그 방법이 찾아진다는 말이 있다. 실제로 위대한 발명이나 연구의 시초나 끝맺음에 있어 꿈이라는 무의식이 작용을 하는 사례를 역사자료에서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다. 전일 스님은 자신이 정희철 선생을 만나게 된 것도 이런 맥락이 작용했다고 보면 이해가 쉬울 것이라고 설명한다.
“꿈에 본 낯익은 길을 따라 간 곳이 경남 함안땅이었습니다. 거기서 1918년부터 1994년까지 생존했던 정희철이라는 과학박사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이미 돌아가신 후라 그분이 남기신 저작물을 통해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분은 열 살에 초등학교를 입학하고 졸업한 것이 학력의 전부이지만, 1954년 대한민국 박람회에서 무곡병기관(無曲柄機關) 원동기로 대상을 받고 일식과 월식, 일출과 일몰, 월출과 월몰, 조수간만의 차이 등을 관측하여 천문역법인 우주조력을 창안하시기도 했습니다."
전일 스님에 의하면 정희철 선생은 앞서 말한 무곡병기관을 비롯하여 기억독서, 담화타자기(談話打字機), 원동력기관, 만국시간 대조시계, 부차종(浮車種) 등 특허를 받은 것만도 5가지나 된다고 한다. 미래시대를 조화주의 시대로, 신이 하지 못한 일을 인간이 하며 인간이 신보다 더 위대해지는 시대로 예견한 정희철 선생은 지구촌 인류가 하나가 됨은 물론 전우주와도 일심일의가 될 것으로 내다보았다고 한다.
“선생께서는 우주와 교통을 하기 위해서는 먼저 복잡한 언어체계가 통일되어야 한다고 보셨어요. 국제어인 에스페란토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하시고 성음과 육음으로 된 11조 문자우주어를 개발하셨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우주어, 부호 적힌 UFO 기지 세우고 만남의 장 열어 전일 스님은 명상을 통해 정희철 선생의 메시지를 깨달을 수 있었다고 한다. 명상의 세계에서 정희철 선생과 대화를 나누며 으-미-프-피-오-음으로 이어지는 11조 문자우주어의 원리를 깨칠 수 있었다고 한다.
“작년 초 한국UFO연구협회 허영식 회장과 전화 통화를 하는데 ‘UFO가 오도록 불러 보면 어떻겠느냐’ 하는 말이 나왔어요. 동의하자 허회장이 협회 측에서 기초설계를 맡겠다고 했어요. 저는 건의를 했지요. 과학적인 이론도 중요하지만, 하늘과 뜻이 맞아야 한다고." 그래서 전일 스님은 정희철 선생이 개발한 우주어와 부호를 가미하기로 했다.
공사는 99년 봄부터 시작되었다. 직경 30m 원판 착륙장에 바닥재는 아스팔트 및 시멘트, 바닥채색은 백색 형광 페인트색으로 하고 직경 10cm 짜리 점멸등 10개를 설치했다. 중앙의 서치라이트는 태극마크로 하고, 태극마크를 둘러싼 붉은 원은 태양을, 그 주위엔 행성을 의미하는 10개의 점멸등을, 그리고 음양의 이치를 뜻하는 갖가지 부호를 넣어 상징화했다. 유도기지는 산 위에서 내려다보면 마치 헬리콥터장같은 형상이다.
7개월만에 완공했는데 축대가 세 차례 폭우에 쓸려가고 무너지는 등 난관이 많았다. 특히 굴착기를 봉황산 7부 능선까지 끌어올리기가 쉽지 않았고 인부들을 설득하는 데도 어려움을 겪었다.
전일 스님은 하루 두세차례씩 문자 우주어를 읊조리며 우주인을 불러들이는 호출의식을 갖는다. 밤에는 중앙의 서치라이트와 10개의 점멸등에서 우주로 불빛을 쏘아댄다. 이런 전일 스님을 보고 산 아래의 마을사람들은 미쳤다고 한다. “남들이 뭐라고 하든 상관 안해요. 또 내가 하는 이러한 의식이 옳다고 세상을 향해 목소리 높여 주장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나는 다만 내 뜻에 충실할 따름입니다." 우주인과 대화를 못할 이유가 없다는 스님은 언젠가는 뜻이 통해 UFO가 유도기지에 내려앉고 우주인과 만나 대화를 나눌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스님은 앞으로 임야 3만평을 개발해 안테나, 최첨단 자동 카메라, 비디오녹음장치, UFO와 별 관측소, 학습토론장, 비디오상영관 등이 있는 세계 최고의 UFO메카를 건설할 계획이다.
[끝-UFO연구동호회]
첫댓글 굿 좋은 생각 입니다! 그 체험 소중하게 간직 하시길~~제가 꿈에서 본 장면과 매우 유사 하네요 제꿈에선 어두운동굴에서의 조우 였는데 몸에 광체가 나는 작은 사람들 이엿습니다 ^^
외계인이어디있습니까?인성을 되찾으시길.,....
다녀오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