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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보좌로부터흐르는생명수 원문보기 글쓴이: 하늘산소
강문호목사
미지근은 천국도, 지옥도 싫어한다.
계3;14-22.
단테의 신곡에 이런 말이 나오고 있습니다.
이 가엾은 모습을 이어가는 것은
평생 부끄러움도 사랑할 것도 없이
그런대로 적당히 지내 온
애처로운 영혼들이었나이다.
하나님께 항거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충성하지도 못 하면서
다만 저 스스로를 위하는 천사들의
저 나쁜 무리들 속에 섞여 이끌려 살고 있구나
하늘이 어찌 저들을 쫓아 내지 않으랴
하늘은 결코 더러워 질 수 없는 곳
그러나 깊숙한 지옥마저
저를 받아 드리기 주저하니
이 죄인들이 저들을 인해 어느 영광을
가질까 함이니라
이같이 미지근한 사람은 천국도 거부하고 지옥도 받지 않는다고 단테는 노래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뜨겁지도 않고 차지도 아니한 미지근한 물을 마셔 본 적이 있습니까?
오늘은 미지근한 신앙에 대하여 성경적으로 풀어 드리려고 합니다.
폭염이 내려 쬘 때 시원한 물이 아닌 미지근한 물을 마셔본 경험이 있으십니까? 살을 에는 듯한 추위에 따끈한 차가 아닌 미지근한 물을 마셔 본 일이 있습니까?
소아시아에는 7교회가 있었습니다.
에베소 교회, 서머나 교회, 버가모 교회, 두아디라 교회, 사데 교회, 빌라델비아 교회 그리고 라오디게아 교회등이 복음을 증거하는 대표적인 교회였습니다. 나는 이 교회들을 다 둘러 보았습니다. 이 교회들은 당시 번성하던 교회였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 주변이 모두 회교입니다. 기독교인들이 없습니다. 허무하였습니다. 처량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아팠습니다. 이 곳을 돌며 허물어진 잔해만 남아 있는 모습을 보고 <소아시아 7 교회 재건 운동 본부>를 만들었습니다. 부족한 제가 회장이 되어 일하고 있습니다. 40여명이 매 달 회비를 냈습니다. 지난 달 처음으로 서머나 교회를 개척하였습니다. 선교사 한 분을 파송하였습니다. 겨우 시작입니다.
그러나 모두가 보람을 느끼고 있습니다. 요한 계시록의 교회를 온 세계가 하나가 되어 복원하였으면 좋겠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어떤 교회는 칭찬하시고 어떤 교회는 야단만 치시고 어떤 교회는 칭찬할 것은 칭찬하고 야단치실 것은 야단치셨습니다.
그런데 라오디게아 교회는 토해버리시겠다고 야단만 치셨습니다. 칭찬을 받지 못 하였습니다.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더웁지도 아니 하도다. 네가 차든지 더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더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내치리라>(15-16)
라오디게아 교회가 위치하여 있는 곳 맞은 편에 하에라폴리스라는 산이 있습니다. 그 산은 온천수로 유명하였습니다. 그 온천수가 라오디게아까지 흘러오면 차지도 않고 덥지도 않는 미지근한 물이 되는 것을 주님은 아시고 이렇게 비유하신 것입니다.
주님과 깊은 기도속에 이 말씀을 준비하는 중 주님께서는 내게 대부분의 사람들이 라오디게아 교인들처럼 차지도 덥지도 않은 미지근한 상태라고 지적하여 주셨습니다.
주님은 이런 교인들을 향하여 토하여 내치리라고 무시무시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차지도 안고 덥지도 않습니다. 미지근하니다. 중간입니다.
이를 정치적인 용어로는 회색 분자라고 합니다. 이중 간첩이라고 합니다.
에스겔 47장으로 보면 진펄과 개펄이라는 말이 나오고 있습니다.
<그 진펄과 개펄은 되살아 나지 못 하고 소금 땅이 될 것이며>(겔 47;11)
이 세상은 두 가지 밖에 없습니다. 물 아니면 땅입니다. 그런데 진펄과 개펄은 물이 아닙니다. 땅도 아닙니다. 물이 들어오면 바다입니다. 물이 나가면 땅입니다. 알송 달송합니다. 뜨겁지고 차지도 않습니다. 미지근합니다.
사도행전 20장에 유두고라는 청년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바울이 전도여행을 하던 중에 드로아에 갔습니다. 일주일 머믈다가 내일이면 떠나는 날이었습니다. 헤어지기가 아쉬웠던지 사람들이 인산 인해를 이루었습니다. 사람들이 많아서 다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유두고가 창가에 걸터 앉았습니다. 마지막 밤이라 바울의 설교가 길어졌습니다. 성경에는 정확하게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밤 12시간 넘었을 지도 모릅니다. 설교가 길었습니다. 유두고가 졸다가 떨어져 죽었습니다. 바울이 기도하여 죽은 자를 살리는 장면이 나오고 있습니다. 유두고는 교회에 들어 온 것 아닙니다. 그렇다고 나간 것도 아니었습니다. 중간에 앉아 있다가 죽었습니다.
알송 달송한 사람입니다.
우리 중에는 교인도 아니도 세상 사람도 아닌 중간에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나는 미국 훌러 신학교에서 유명한 맥가브란 강의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는 말하고 있습니다. 교회안에는 깨어서 활발하게 일하는 교인이 대개 10%입니다. 살짝 자고 있는 사람이 80%입니다. 그리고 푹 자고 있는 교인이 10%라는 것입니다. 목회가 무엇입까? 10%의 깨어 움직이는 교인들과 활기차게 일하여야 합니다. 살짝 자고 있는 80%를 깨워야 합니다. 그리고 푹 자고 있는 10%는 건드리지 말라는 것입니다. 푹 자고 있는 사람 10%를 깨우면 깨고 나서 신경질을 부린다는 것입니다.
미지근한 교인이 교회마가 80%라는 것입니다.
에브라함 링컨이 남북 전쟁을 할 때였습니다. 남군과 북군의 경계선에 란카스타라는 마을이 있었습니다. 언제 누가 쳐들어 올지 모르는 상황이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의논하였습니다.
<우리는 비상시를 대비하자. 언제 북군이 들어 올지, 언제 남군이 들어 올지 모른다. 위에는 북군의 옷을 입자. 밑에는 남군의 옷을 입자. 갑자기 북군이 쳐들어 오면 우리 위에 옷을 입었다고 살릴 것이다. 남군이 갑자기 쳐들어 오면 우리 남군의 옷을 입었다고 살릴 것이다.>
그래서 그렇게 하였습니다. 그런데 북군이 쳐들어 와서는 남군의 아래 옷을 입은 것을 보고 죽였습니다. 남군이 쳐들어 와서는 북군의 위에 옷을 입었다고 죽였습니다. 이래 저래 다 죽였습니다. 중간은 안 됩니다.
누구나의 친구는 누구의 친구도 아닙니다.
미지근하면 토하여 낸다고 주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차든지 덥든지 하여야 합니다.
이렇게 미지근한 사람은 주님이 기뻐하시지 않는 토하여 내치겠다고 베르시는 사람들입니다.
라오디게아 교인들을 향하여 예수님은 미지근하다고 하였는 데.무엇이 미지근하다고 하시는 것일가요?
라오디게아 교인들은 다음과 같은 5가지 면에서 미지근하였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들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1) 죄에 대하여 미지근하였습니다.
본문은 말하고 있습니다.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더웁지도 아니 하도다. 네가 차든지 더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더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내치리라.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도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 하도다>(15-17)
라오디게아 교인들은 3부가 있었습니다. 부자, 부요, 부족없음 이 세가지였습니다. 그러나 5가지에 대하여 미지근하였습니다.
라오디게아 교인들은 곤고하였습니다.
성공의 결과는 기쁨입니다. 죽음의 결과는 슬픔입니다. 승리의 결과는 자랑입니다. 그러나 죄의 결과는 곤고입니다. 곤고는 죄에서 오는 현상입니다.
라오디게아 교인들은 죄를 버리지 못 하고 있었습니다.
바울 사도는 자신도 의롭게 산다고 하면서도 죄에 이끌려 살 때마다 곤고를 느꼈습니다. 그래서 죄에 이끌려 사는 삶을 이렇게 말했습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 내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롬7;24-25)
성도들이 죄를 버리지도 않습니다. 그렇다고 편안하게 죄를 즐기는 것도 아닙니다. 죄를 짓는 것도 아니고 안 짓는 것도 아닙니다. 자기가 자기를 압니다. 왠지 모르게 곤고를 느끼는 상태가 차지도 덥지도 않은 미지근한 태도입니다.
나는 지리산을 오르다가 거대한 나무가 쓰러져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벼락을 13번 맞으면서도 끄떡없었던 나무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강하였던 나무가 쓰러진 이유를 조사하여 보았습니다. 조그만 딱정 벌레들이 나무 밑을 파먹은 것이 원인이었습니다. 아무렇지도 않은 것같이 사소하게 여겼던 것으로 넘어지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지 알아야 합니다. 차지도 덥지도 않은 미지근하게 죄를 대처하면 안 됩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대로 죄를 지을 때 팔을 잘라 버릴 정도로, 또는 다리를 자를 정도로,또는 눈을 뺄 정도로 단호하지 않습니다. 죄를 지으면서 곤고함을 느끼는 성도가 라오디게아 교회 성도같은 성도입니다. 주님은 이런 사람은 토하여 내치리라고 하셨습니다.
(2) 하나님의 일에 미지근하였습니다.
라오디게아 교인들은 가련하였습니다. 가련하다는 말은 한 달란트를 받은 자가 일을 하지 않고 파묻어 두었다가 빼앗기고 이를 갈며 슬피울며 내쫓긴 것과 같은 언어입니다.
부요하지만 일을 하지 않고 있어서 가련하게 보이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지 않습니다. 확끈하게 하나님께 봉사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노는 것도 아닙니다. 미지근합니다.
나는 지난 주 성 중경 목사님으로부터 죤 워나메이커의 이야기를 듣고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는 얼마나 하나님께 봉사를 많이 하였는 지 대통령이 체신부장관을 하여 달라고 불렀을 때 대통령에게 주일학교 교사를 하여야 하기에 장관을 할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그 때 대통령은 감동을 받고 주일은 안 부를 테니 장관을 허락하여 달라고 오히려 사정하였습니다. 그는 그렇게 하여 줄 것을 약속받고 기꺼히 승락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의 본업은 주일학교 교사요 부업이 장관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는 데 미지근하면 주님이 토하신다고 하셨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하나님! 나를 크게 사용하여 주시옵소서!> 그러나 하나님 보시기에 하나님이 쓰실 사람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지난 주 큰 교회 장로님들 몇 분이 저를 찾아 와서 부탁하였습니다.
<목사님에게 전권을 맡길 터이니 우리 교회 목사님 좀 찾아 주세요.> 나는 그 날 밤 감리교 목사님들 주소록을 펴 놓았습니다. 715페이지입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을 짚어 나갔습니다. 장마철에 마실 물이 없다는 데 사람은 많은 데 사람이 없었습니다. 당당하게 소개할 사람이 없었습니다.
겨우 한 사람을 찾았습니다. 성실한 사람입니다. 목사도 그렇고 장로도 그렇습니다. 아무도 없는 그 곳에서 냉정히 인정받을 수 있는 하나님의 사람이 아쉽습니다. 예루살렘에서 한 명의 의인을 못 찾았고, 소돔과 고모라에서 10명 의인이 없었습니다. 진실하고 싶습니다.
하나님의 일에만 뜨겁고 싶습니다.
(3) 헌금 생활에 미지근하였습니다.
라오디게아 교인들은 헌금에 대하여도 미지근하였습니다. 라오디게아라는 말은 <백성의 권리>라는 말입니다. 그들은 권리만 주장하였지 의무를 다 할 줄 몰랐습니다.
그들은 부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가난하였습니다>(17)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께서는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고 하셨는 데 마6;9) 하늘 저금 통장에 저금액이 있으나 적다는 말입니다. 이 땅에서는 부자인데 하나님에게 쌓아 놓은 것은 가난하였습니다. 땅에서는 부자인 데 하늘에서는 가난하였습니다. 없는 것이 아닙니다. 있는 데 가난하였습니다. 차지도 덥지도 않았습니다. 물질에 미지근하였습니다.
집에는 재산이 많은 데 하나님 바구니는 비어 있습니다.
목사님이 구제 설교를 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움직이는 방법은 회개와 기도와 구제라는 설교였습니다. 설교가 감동으로 이어졌습니다. 아주 인색한 부자가 이 설교를 들으며 만원 헌금하려다가 2만원, 3만원....10만원으로 자꾸만 액수가 올라갔습니다. 설교가 끝나고 헌금 바구니가 다가 오고 있었습니다. 10만원에서 자꾸만 줄어 갔습니다. 5만원, 3만원, 만원..... 드디어 헌금 바구니가 앞에 왔습니다. 그는 망설이다가 수 백만원 들어 있는 지갑을 꺼냈습니다. 지갑까지 올려 놓으며 그는 속으로 외쳤습니다.
<내 인색한 성품은 예수 이름으로 사라져라.>
그 순간 그에게 한없는 기쁨이 강물처럼 몰려 왔습니다. 자기는 부요하고 하나님은 가난하게 한 이들이 라오디게아 교인들이었습니다.
주님은 이런 자를 토하여 내고, 내치리라도 경고하셨습니다.
(4) 기도 생활에 미지근하였습니다.
라오디게아 교인들은 기도에 대하여도 미지근하였습니다.
<눈 먼 것과>라는 말은 그들이 육적으로 장님이 되었다는 말이 아니라 기도하지 아니하여 영적으로 장님이 되었다는 의미입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비밀을 알 수 있는 통로입니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 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렘33;3)
그런데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영적 장님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범하지 말아야 합니다. 기도하는 데 미지근한 사람을 주님은 토하고 내치리라고 하셨습니다.
(5) 판단에 미지근하였습니다.
라오디게아 교인들은 <벌거벗은 것>(17)을 알지 못 하였습니다. 그들이 옷을 벗고 다녔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벌거벗은 것처럼 부끄러운 데 부끄러움을 모른다는 말입니다. 부끄러운 말을 하고도 부끄러움을 모릅니다. 부끄러운 행동을 하고도 부끄러움을 모릅니다. 판단력이 마비되어 있습니다. 주님은 이렇게 부끄러움을 모르는 이들을 토하고 내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새벽기도에 빠지지 않는 어느 할머니가 새벽기도에 가려고 일어나 보니 연탄불이 꺼져 있었습니다. 그는 옆 집으로 갔습니다. 그리고 잘 타는 연탄과 바꾸어 놓고 새벽기도에 가서 기도하였습니다. 그렇게 하고도 부끄러움을 모릅니다.
어느 가게 주인이 자기 가게에서 물건을 사가고 외상값을 주지 않는 사람 이름을 목사님에게 가지고 왔습니다. 자기 교회 교인들의 이름이 수두룩 하다는 것입니다. 부끄러움을 모르고 삽니다.
구제사업을 한다고 크레딧 카드로 잔 뜩 돈을 뽑아 쓰고 갚지 못 하는 성도들이 많다는 이야기를 은행원으로부터 들었습니다. 성경을 읽기 위해 남의 촛불을 훔쳐오지 말라는 말이 있습니다. 벌거벗고도 부끄러움을 모릅니다. 라오디게아 교인들이 그랬습니다. 라오디게아 교인들이 이같이 5가지 면에서 미지근하였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여야 하는 가요?
이같이 죄에 대하여 차지도 덥지도 않고 미지근합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는 데, 헌금을 드리는 일에, 기도하는 데 그리고 판단하는 데 덥지도 않고 차지도 않고 미지근하면 주님은 토하고 내치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이런 사람들은 어떻게 하여야 주님이 기뻐하실가요? 주님께서는 이런 미지근한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이게 하라.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18-19)
본문에 2 가지 해결 방안이 나오고 있습니다.
1. 예수님으로부터 3가지를 사야 합니다.
(1) 금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우리가 미지근함에서 벗어나기 위하여는 금을 사라고 하셨습니다. 무슨 금입니까? <불로 연단한 금>입니다. 라오디게아 지방은 금이 많이 나오는 지방으로 알려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라오디게아 금은방에 가서 금을 사라는 것이 아니라 분명히 <내게서>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금장사이십니다. 예수님으로부터 금을 사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금은방 주인이십니까? 아닙니다. 금은 믿음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려 함이라>(벧전1;7)
믿음은 주님이 주시는 선물입니다.
믿음을 가지면 미지근하던 신앙이 뜨겁게 됩니다.
(2) 흰 옷
예수님은 옷 장사이기도 하십니다. 미지근함을 벗어나기 위하여 흰 옷을 주님으로부터 사라는 것입니다.
라오디게아 지방에는 특별히 검은 옷이 많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주님은 대조적으로 흰옷을 입으라고 하였습니다. 흰 옷은 죄를 버린 성도들이 입는 깨끗한 성결의 옷입니다.
<그에게 허락하사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게 하셨은 즉 이 세마포는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라>(계19;8)
믿음의 주인도 주님이시지만 성결의 주인도 주님이십니다. 죄를 버리고 깨끗하게 사는 사람은 뜨거운 믿음으로 살 수가 있습니다. 미지근한 믿음에서 해방됩니다.
(3) 안약
라오디게아에는 의과대학이 있었고 많은 의학품이 있었다고 합니다. 온천 지대이기에 수많은 병자들이 치료하기 위하여 몰려 들었습니다.
주님은 미지근한 믿음을 가진 자들에게 주님으로부터 안약을 사서 눈에 바르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은 약방을 하고 계시다는 의미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영안을 뜨면 영계가 보이고 그러면 미지근한 믿음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주님은 말씀하시고 계시는 것입니다.
바울은 예수님은 만나기 전에는 가브리엘 문하에서 공부하였습니다. 학력이 자랑 스러웠습니다. 로마시민권을 가지고 당당하게 살았습니다. 당시 온 세계는 로마가 지배하고 있었기에 로마 시민권이면 최고의 신분이었습니다. 히브인중에 히브리인이요 바리새인중에 바리새인이라는 가문이 그렇게 자부심을 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을 만나 정오의 빛보다 더 밝은 빛을 보고나서 눈에서 비닐같은 것이 떨어지고 나서는 그 자랑하던 모든 것들을 배설물과 같이 분토와 같이 버렸습니다.
보이던 것이 안 보이게 되고 안 보이던 것이 보이게 되었습니다.
이같이 미지근한 믿음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우리가 주님으로부터 사야할 것은 금과 흰 옷과 안약입니다. 주님의 영적 슈퍼 마켇에는 이 세가지 물건이 가득차 있습니다. 누구든지 와서 사가기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감독회장 선거 운동을 하러 대전에 내려 갔을 때였습니다. 식사를 하는 데 내가 세어 보니 21명이었습니다. 올라오는 데 내게 전화가 왔습니다.
<몇 명 모였나요?>
<21명이요.> 옆에 앉아 같이 올라오던 이가 말했습니다.
<21명이 아니라 14명입니다.>
<내가 세어 보았는 데 분명히 21명이었는 데요.>
<그 중에 표가진 이는 14명입니다.>
나는 깜짝 놀랐습니다. 그런데 앞에 앉아 있던 이가 말했습니다.
<내가 세어 보니 28명이었습니다.>
<왜요?>
그가 말했습니다.
<한 명이 한 명씩은 친한 이들이 있거든요. 한 명을 두명으로 보아야 선거가 됩니다.>
같이 앉아 있었는 데 보는 눈이 다 달랐습니다. 내 눈만 보이는 것만 보았습니다. 눈에 영적인 안약을 발라서 남이 못 보는 것을 볼 줄 알게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눈에 안약을 바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2. 회개하고 열심을 내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18-19)
무엇이나 열심히 하려고 하는 이에게 뜨거움이 생기게 되어 있습니다. 미지근하다는 원어는 클리아로세인데 이는 열심이 없다는 뜻입니다. 회개하고 열심히 하려고 하는 자에게는 열심히 할 수 있는 하나님의 은총이 따르게 되어 있습니다.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나님은 하늘에서도 매어 주시고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 하나님은 풀어주십니다.
그래서 주님은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이런 이야기를 듣고 큰 감명을 받았습니다.
어느 술주정뱅이가 자기 친구에게 자기 아내 자랑을 하였습니다. 자기 아내는 신앙생활을 잘 하는 아내였습니다. 아무리 밤중에 밥을 차려 오라고 하거나 술을 차려 오라고 하여도 짜증을 부리는 것을 보지 못 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친구들은 믿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정말 그런지 친구들이 실험적으로 불시에 그 집을 찾아 가기로 하였습니다. 남편과 술을 늦게까지 마셨습니다. 자정이 넘은 시간이었습니다. 그 남자는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친구들을 우르르 몰고 들어 갔습니다. 밥과 술을 차려 오라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정말 아내는 얼굴빛이 조금도 상하지 않으며 밥상을 차려왔습니다.
그래서 친구들이 친구 아내에게 물었습니다.
<어떻게 당신은 그런 못 된 명령도 그렇게 잘 들어 주십니까?>
아내는 대답하였습니다.
<예. 내 남편과 나는 결혼할 때는 다같은 죄인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후 하나님께서 나만 구원시켜 주셨습니다. 나는 철저히 회개하였습니다. 나는 남편도 구원받기 위하여 간절히 기도하고 있습니다. 만일 남편이 지금 죽는다면 지옥에 간다고 생각하니 불쌍하여 견딜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짧은 인생 최대한으로 잘 하고 있습니다. 나는 내가 살아 있고 남편이 살아 있는 한 최대한으로 마음을 편하게 하여 드리려고 작정하였습니다.>
이 말을 들은 모든 친구들은 감동을 받아 예수를 믿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열심히 주님을 섬기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열심은 쇠덩어리같은 마음도 녹이는 능력이 있습니다.
교회에 가장 열심히 다닌 사람 기록이 발표되었습니다. 1976년까지 통계입니다. 미국 아이오와주 케오쿡(Keokuk)에 있는 제일침례교회의 성도 린퀴스트 여사라고 기록되었습니다. 그는 1888년부터 88년 동안 꾸준히 주일 예배에 참석하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 는 88년 동안 모든 예배에 단 한번도 빠진 적이 없었습니다. 88년 동안 그는 교회의 담임목사가 15번 바뀌는 것을 보았습니다. 8,000번 이상의 설교를 들었습니다. 4,000번 이상 기도회에 참여하였습니다. 29,000번 이상 취침기도를 드렸습니다.
린퀴스트 여사는 50년 이상 주일학교 교사로 봉사하였습니다. 제자들 중에 목회자가 수없이 나왔습니다. 열심있는 사람으로 기록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미지근한 믿음에 빠지게 되면 주님은 토하여 버리고 내치리라고 경고하셨습니다. 일년 중에 제일 무더운 여름 철 신앙이 미지근하여 지기 쉬운 계절입니다. 차든지 덥든지 하라고 하시는 말씀을 기억하며 열심히 신앙생활하는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