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승준 - 지렁이 외1

[정승준]

지렁이

아는가

봄 폭우가 내리면

지렁이도 빗소리 들으며

차 한 잔 마시고 싶다는 것을

수재민 되어 어쩔 수 없어 나왔는데

누구 발길질에 두 동강 되면

아픔은 하나일까 둘일까

삶은 같을까 다를까

상처 아물고 고통은 가라앉아서

무뎌진 몸이 돌덩이가 되고

돌멩이는 울지도 아프지도 않을 건데

지렁이는 더 많이 아프고

더 오래 운다는 것을

가로등

눈빛 한번 없어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세상 행복했던 적이 있었지

네가 내게로

한번 웃어 주었던 것으로

언제까지나

어디서나

그냥 지켜주고 싶었던 거야

세상 힘들고 지친 밤길 걸을 때

있는 듯 없는 듯

은은하게

말 걸던 길동무같이

네가 행복하기를

네 길을 잘 찾아가기만을 바라며

오늘 밤도

그때 그곳에, 그날처럼

잘 볼 수 있는 곳이라서

그냥 서 있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