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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3-12
지혜로운 사람이 되라. / 최낙중 목사
사람이 어떤 일을 성공적으로 잘 마치려 하거나, 또 유능한 지도자가 되기 위해서는 세 가지를 갖추어야 합니다.
첫째는 실력입니다.
어느 분야에서 집중 연구를 해서 상당한 식견을 가져야 어떤 일을 할 수 있습니다.
두번째는 친화력입니다.
아무리 그 사람의 지식이 많고, 똑똑하다 할지라도 사람을 섬길 줄 알고, 여러 흩어져 있는 마음을 묶을 줄 아는 그런 친화력이 없이 자기 혼자 뛰어서는 큰 일을 못 해내기 때문에 친화력이 중요합니다.
세번째는 통찰력이 중요합니다.
통찰력이라고 하는 것은 사물을 꿰뚫어보는 눈이고, 어떤 사건을 접했을 때 그것을 잘 판단할 수 있는 힘입니다.
실력은 공부 열심히 해서 얻을 수 있고, 친화력은 감정지수를 높이고 겸손해야 얻을 수 있고, 통찰력은 많은 경험을 통해서 얻을 수가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이 세 가지 힘을 얻기 위해서 사람들은 부단히 노력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실력을 갖추고, 친화력과 통찰력이 있는 사람들이 가장이 되었을 때 그 가정이 평안합니다. 잘 되어집니다. 그런 것을 갖춘 사람이 나라의 지도자가 되면 대국강성, 강성한 대국을 이루어 나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 세상 살아갈 때 인간의 노력으로 얻어질 수 있는 경험, 지혜, 통찰력, 사람이 노력해서 얻을 수 있는 친화력이나 실력, 그것만으로는 못삽니다.
왜냐하면 인간이 뭘 아는 것 같아도 모르는 게 많습니다. 한 시간 후에 일어날 일을 모릅니다. 또 인간의 지혜와 지식과 통찰력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에서는 말합니다. 여호와께서 집을 지켜주고 성을 지켜주지 않으면 그 경성하고 있는 사람들의 수고도 헛되다고 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인간의 생사화복을 손에 붙들고 계신 절대자시고 완전자이시기 때문에 그 분과 손을 잡고 사는 것이 최고의 지혜인줄 믿습니다. 그래서 여호와를 경외하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이고 지혜로운 사람은 인간이 노력해서 얻어지는 어떤 것보다도 우월하기 때문에 성경은 말하기를 지혜가 제일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 이 지혜로운 사람에 대해서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솔로몬이 나이 이십 세가 조금 넘어 왕이 되었습니다.
왕이 되어서 첫번째로 재판을 하게 되었는데 재판의 내용은 이런 것입니다.
창기인 두 여인이 삼일 터울로 아이를 낳고, 함께 집에 살다가 어느 날 한 여인이 실수해서 자기 아이를 죽였습니다. 아침에 날이 새서 보니까 한 아이는 죽어 있고, 한 아이는 살아있는데 두 창기가 서로 다투었습니다. 죽은 아이는 네 아이고, 살아있는 아이가 내 아이라고 하며 서로 다툰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 증인도 없는데 누가 옳은지 어떻게 알 수 있겠습니까?
며칠 사이에 두 사내아이가 태어났는데 갓난아이들은 얼굴이 비슷비슷해서 구별하기가 어렵습니다. 요즘처럼 과학이 발달했다면 DNA, 유전자를 검색해서 친자식이 누구인지 알 수 있지만 지금부터 삼천년전 이야기인데 어떻게 알겠습니까? 그래서 둘이 서로 옥신각신 다투다가 그럼 우리 왕에게 가서 판결을 받자 해서 솔로몬 왕에게 온 것입니다.
솔로몬 왕앞에 온 두 여인은 거기서도 서로 다툽니다. 죽은 아이는 네 아이이고 살아있는 아이는 내 아이라고. 그러니 솔로몬 왕이 누구의 편을 들어줄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솔로몬이 시험을 하기로 했습니다. 그래, 서로 살아있는 아이가 자기 아이라고 우기니 내가 칼로 살아있는 아이를 반으로 쪼개서 나눠주겠다고 했더니 한 여인은 그 아이를 살리고 싶어서 왕이여 그리하지 마소서. 그 아이를 저 계집에게 주세요 하고 대답하고, 다른 여인은 그렇게 하세요. 반으로 쪼개서 내 것도 저 여자의 것도 못되게 해주세요 하고 대답했습니다.
여러분 판단에 누가 그 살아있는 아이의 어머니겠습니까?
비록 내가 기르지 않고 나쁜 여인에게 맡겨서라도 아이를 죽지 않고 살게 하겠다고 하는 그 어머니가 살아있는 아이의 친어머니인 것입니다.
그래서 아이를 죽이지 말라고 한 어머니가 친어머니다, 살아있는 아이의 어머니이니 그에게 주라 하고 판결을 했습니다. 이렇게 지혜로운 솔로몬의 판결로 인하여 온 나라에 지혜의 왕 솔로몬에 대한 소문이 자자하게 되었습니다.
그 일 뿐만 아니라 열왕기상 4:29-30절 말씀에 보면, 하나님이 솔로몬에게 지혜와 총명을 심히 많이 주시고 또 넓은 마음을 주셨다고 했습니다. 솔로몬에게 주신 지혜는 동양의 모든 사람보다 우월하고 애굽의 모든 사람의 지혜보다 뛰어나게 하셨다고 했습니다.
솔로몬은 재판을 할 때만 지혜로운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문학적으로도 지혜가 넘쳐 나서 그가 쓴 잠언, 전도, 아가서에는 얼마나 지혜로운 말들이 많은지 모릅니다. 뿐만 아니라 이 지혜가 넘친 솔로몬 왕에게 하나님은 성전을 건축할 수 있도록 허락했으니 이렇게 지혜로운 사람은 정치를 바로 할 수 있고, 이렇게 지혜로운 사람은 다른 사람 마음에 평안을 심어줄 수 있으며, 지혜로운 사람은 어떤 문제가 발생했을 때 해결사가 되는 것이니 그래서 잠언서 4:7절 말씀에 보면 지혜가 제일이니 지혜를 얻으라고 했습니다.
솔로몬의 이런 지혜는 자기 노력으로 얻어진 것입니까?
공부해서 얻었습니까?
스스로 공부해서 얻었습니까?
무슨 경험을 통해서 얻은 지혜입니까?
아닙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주신 지혜로 그런 일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예수 믿는 그리스도인들은 노력해야 하지만 노력 이상의 하나님의 능력을 받아야 이 세상 살아가는 동안에 위대한 승리자, 좋은 지도력을 발휘하게 될 줄 믿습니다.
그러면 지혜가 무엇이겠습니까?
우리말 성경에서 지혜라는 말은 히브리 성경으로 보면 호크마라는 단어가 나오는데 호크마란 말은 듣는 마음,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그 마음자체를 호크마, 지혜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잠언서 12:15절 말씀에 보면, 지혜로운 자는 권고를 듣느니라.“ 8:33절에 ”훈계를 듣는 자가 지혜로운 사람이라.” 잠언서 28:7절 말씀에 보면 “율법을 듣고 지키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이라“고 말했습니다.
여러분, 최고의 지혜자가 되기 원하거든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 따라 사십시오. 세상 사람들이 바라볼 때 우직스럽고 좀 미련하게 보일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자가 지혜로운 사람이요, 그 말씀 순종하여 행하는 사람이 최고의 지혜자이니 하나님은 이런 지혜자를 통해서 큰 일을 이루실 줄 믿습니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고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간다고 말씀하시고 그 날에 많은 사람들이 내가 주의 이름으로 이런 일, 저런 일 많이 했다고 자기 공로를 내세우지만 주님은 나는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 불법을 행한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엄한 명령으로 판결할 날이 온다“고 했습니다.
불법이 무엇입니까? 자기 주관대로 믿는 것입니다. 자기 생각대로 믿는 것입니다. 내가 원하는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그것이 불법입니다.
바른 신앙생활은 내가 원하는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원하는 내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누구든지 내 말을 듣고 이 말씀을 지켜 행하는 사람은 반석위에 집을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비가 오고 바람이 불고 창수가 나도 무너지지 아니함 같으리라.”
누구든지 내 말을 듣고도 실천하지 않는 사람은 모래 위에 집을 짓는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 비가 오고 바람불고 창수나면 무너짐이 심하리라고 했습니다.
모래로 집을 짓는 것은 자기 주관적으로 믿는 것입니다.
반석은 예수님이 반석이고, 하나님이 반석이고, 하나님의 말씀이 반석이기 때문에 말씀대로 믿고, 말씀대로 살아가는 것, 그것이 바로 지혜로운 사람인줄 믿습니다.
그래서 잠언서 9:10절에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한 자를 아는 것이 명철이라“고 하였습니다.
세상 따라 신앙생활 하지말고, 말씀 따라 신앙생활 합시다. 환경 따라 예수 믿지 말고, 말씀 따라 예수 믿으십시다. 그것이 우리가 하나님 뜻대로 사는 것입니다.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 뜻대로 믿는 것입니다. 그래서 가장 지혜로운 사람은 내가 누구인가, 자기 정체를 알고 신앙생활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창조자, 나는 피조물, 그래서 우리는 그 분을 경외하는 것입니다.
경외가 무엇입니까? 거룩한 두려움으로 섬기는 것입니다. 나를 낳아주신 부모님을 모르는 자식이 자식입니까?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가 지금까지 살아왔는데 그 은혜에 감격해서 내가 하나님을 어떻게 즐겁게 할꼬, 거룩한 근심으로 하나님을 잘 섬기는 삶을 여호와를 경외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시편 100:3절 말씀에 보면, “우리는 그의 기르시는 양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목자라면 우리는 그의 양입니다. 수많은 그의 짐승 가운데 양만큼은 목자 없이 못 사는 짐승입니다.
몸집이 크지 못하고, 힘도 약하고, 발이 빠르지도 못합니다. 눈이 밝지 못하고, 아이큐도 높지 못합니다. 양은 병약합니다. 양은 스스로 못 사는 짐승입니다. 그래서 목자가 있어야 살 수 있습니다.
목자가 푸른 초장으로 안내해야 됩니다. 쉴만한 물가로 인도해야 됩니다. 꼴이 어디 있는지, 물이 어디 있는지 양은 모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이 누구입니까? 자기 부족을 느끼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목자, 나는 양, 그 분의 안내를 받기만 하면 푸른 초장이 있고, 쉴만한 물가가 있어서 부족함이 전혀 없을 텐데, 목자의 음성 듣기 싫어 제 고집대로 가는 양, 곁길 가는 양은 길을 잃어버리거나 구렁텅이에 빠지기도 하고, 맹수의 밥이 되거나, 불행한 양이 됩니다.
여러분, 예수님을 따르시기 바랍니다. 어디든지 따라 가십시오. 주님이 있는 곳이 천국이고, 주님이 다스리는 곳에 행복이 있습니다.
지혜 가운데는 마귀가 주는 지혜가 있고, 하나님이 주는 지혜가 있습니다.
마귀가 주는 지혜는 어떤 것이겠습니까?
예수님의 친동생 야고보는 약 3:13절 이하에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너희 중에 지혜있는 자가 누구냐, 총명있는 자가 누구냐, 그의 선한 행실로 너희가 지혜있는 자인 것을 보여라. 만일 너희 마음속에 누군가를 시기하고 다투고 질투하는 마음이 있으면 자랑하지 말라. 진리를 거스려 거짓하지 말라. 이런 시기, 질투, 미운 감정 등은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오는 것이 아니고 세상적이고 정욕적이고 마귀적이니, 시기와 다툼이 있는 곳에는 요란과 모든 악한 일이 있음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위로부터 내려오는 지혜는 성결하고 화평하고 관용하고 양순하고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하고 편벽과 거짓이 없나니 화평케 하는 자들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인간의 마음은 마귀의 조종속에 들어가서 부정적으로 죄를 범하든지, 하나님이 주는 마음을 좇아 선을 행하여 영광에 이르든지 둘 중 하나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의 마음을 잘 지키십시오.
여러분의 마음이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전이 될지언정 마귀가 활동하는 운동장이 되지 않도록 마음 단속을 잘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우리 마음 단속을 잘 하는 사람과 못 하는 사람, 마귀의 운동장으로 내어주는 사람과 성전으로 내어주는 사람을 어떻게 구별할 수 있겠습니까?
한 예를 들면, 감정 처리하는 것을 보면 금방 알 수 있습니다.
혹시 여러분들은 화가 잔뜩 났을 때 분노의 감정을 어떻게 처리하십니까? 불신자의 경우 남자들은 술을 마시거나 담배를 피웁니다. 고함을 크게 지르거나, 그것도 안되면 폭력을 휘두릅니다.
여자일 경우, 화가 잔뜩 났을 때 이불을 뒤집어쓰고 운다든지, 집 밖으로 뛰쳐나간다든지, 수다를 떨거나 실컷 음식을 먹는다든지 여러 가지 방법으로 스트레스를 해소하려고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그런 방법으로는 근본 해결이 되지 않습니다.
의사들이 쓴 책이나, 심리학자들이 쓴 책들을 보면 재미있는 것들이 많습니다.
그 중에 의사인 맥밀란이란 박사님이 쓴 <무병>이란 책을 보면 사람이 분노할 때 몸에 있는 독소, 아드레날린이라는 독소 분비물이 온 몸에 퍼지게 되면 피가 상하게 되고, 그리고 여러 가지 병이 생긴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어떤 것을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마음을 기쁘고 편안하게 가지면 엔돌핀이란 분비물이 나와서 독소를 다 추방시켜서 피를 맑게 하고 건강하게 한다고 했습니다.
어떤 동물학자가 연구 보고한 것을 읽어보니까 사자는 오래 살아야 25년을 산다고 합니다. 그런데 거북이는 150년을 넘게 산다고 합니다. 사자를 보면, 사소한 일에도 신경질적이고 화를 잘 내는데, 거북이는 웬만하면 화를 잘 안 낸다고 합니다. 그러니 오래 살려면 화를 안 내야 한다는 것입니다.
거북이가 화내는 것 봤습니까?
누가 건드려도 머리를 쑥 집어넣을 뿐입니다.
사자는 파리만 와도 어홍 어흥, 파리가 와서 귀찮게 하면 입을 있는 대로 다 벌리고 화를 내니 그 성질 때문에 25년도 못 산다는 것입니다.
사자같이 살지 말고 거북이처럼 살아야 된답니다.
인간에게도 동물적인 요소가 있지 않습니까? 만일 인간에게 영혼이 없다면 동물과 똑같을 것입니다.
우리가 어떤 감정 처리하는 것 하나만 가지고도 그 사람의 신앙과 인격을 드러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최고의 지혜자는 누구인가 하면 예수님을 닮은 사람이 되는 줄로 믿습니다.
예수님은 온유하고 겸손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병이 나서 돌아가신 게 아니고, 우리를 구원하려고 대속의 죽음을 죽으신 것뿐입니다.
그러면 솔로몬이 어떻게 전에도 없고 후에도 없는 이 뛰어난 지혜를 하나님께로부터 받을 수 있었겠습니까? 그리고 솔로몬이 통치한 40년 동안에 그런 평화와 번성이 있을 수 있었겠습니까?
물론 솔로몬이 말년에 노망이 들었는지 곁길로 간 것은 참 안타까운 일이지만, 그가 왕이 된 초년때 정말로 하나님 앞에서 바로 섰습니다. 대부분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솔로몬에게 은혜 주시고 지혜 주신 것은 기도를 했기 때문이라고 말하는데 기도보다 먼저 귀한 것이 있었습니다.
바로 본문 3절에 있는 말씀입니다. “솔로몬이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 부친 다윗의 법도를 행하되 오히려 산당에서 제사하며 분향하더라.”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솔로몬이 하나님을 사랑했다 하는 것입니다. 이게 중요합니다.
하나님께 지혜를 얻으려거든 하나님을 사랑하십시오.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해서, 뜻을 다하고 목숨을 다해서 하나님을 사랑하십시오.
그 사랑하는 방법이 제사 드림이었습니다. 2절 말씀에 보면, 그때까지 여호와의 이름을 위하여 성전을 건축할 때가 아직 아니었으므로 백성들이 산당에서 제사할 때였습니다. 그래서 4절 말씀에 보면, “이에 왕이 제사하러 기브온에 가니 거기는 산당이 큼이라. 솔로몬이 그 단에 일천번제를 드렸다”. 이게 아주 중요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함이 제사 행위로 나타났으니 구약 시대에 제사는 신약 시대에 예배입니다.
예배에 성공하십시오. 예배를 정성껏 드리십시오. 중심으로 예배를 드리십시오. 하나님 사랑함을 예배로 보이십시오. 그러면 하늘의 지혜가 임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자를 하나님은 찾아주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솔로몬 당시, 아직 성전이 건축되기 전이었으므로 예배장소가 산에 있었고, 기브온이란 산은 예루살렘에서 약 12km정도 떨어진 곳입니다. 교통수단이 오늘처럼 발달되지 않은 시대이니, 12km를 걸어가면 몇 시간 걸릴 것입니다. 한두 시간 정도 걸리는 먼 곳에 가서 일천번제를 드렸다는 것입니다.
일천번제를 연구해 보니, 천일 동안, 즉 2년 9개월 동안 하루 한 마리씩 소를 바쳐 제사드렸다는 의미가 아니고 불과 며칠 사이에 일천 마리 소를 계속 연속해서 드린 것입니다.
번제는 하나님 은혜에 감사하여 드리는 감사 제사입니다. 주를 위해 살겠다고 하는 헌신을 다짐하는 제사가 번제입니다.
솔로몬은 나이 이십세에 왕이 되었습니다. 이십세이면 성인이라고 하지만 아직 경험이 부족합니다. 그러나 그는 아버지 뒤를 이어서, 아버지 신앙을 계승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는 데는 앞장섰습니다. 일천 마리의 황소를 갖다 바치는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게 아주 중요합니다.
오늘날 우리는 어떤 방법으로 제사를 드려야겠습니까?
무엇을 주 앞에 바쳐야겠습니까? 주님이 원하는 것은 우리의 몸입니다.
로마서 12:1절에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는 산 제사로 드리라”
우리 몸을 주 앞에 드려야 합니다. 마음을 주님께 드려야 합니다. 그것이 중요합니다. 우리 몸이 있는 곳에 시간도 있고, 돈도 있고, 몸이 있는 곳에 재능도 있는 것입니다. 마음으로만은 안됩니다. 몸이 있어야 합니다. 마음으로만 하나님 섬기지 말고 여러분의 몸이 주일날 주 앞에 나와 예배드리고 정한 시간에 나와 또 예배드리고 기도하며 몸을 드리십시오.
솔로몬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번제드림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그를 사랑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천이라는 개념은 그냥 천이라는 것이 아니고 무한대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출애굽기 20:5절 말씀에 보면, “그 부모가 하나님의 법도와 율례와 규례를 지켜 살면 수천 대까지 은혜를 베푼다”고 했는데 그 천대는 무한정 복을 준다는 말입니다.
신명기 1:11절 말씀에 현재의 복보다 천배로 복 주신다는 말씀이 있는데 거기서 말하는 천배도 무한한 복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에게 약속된 복은 무한한 복인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뭔가 주 앞에 바치는 것을 보면 그들의 진실로 어느 정도인지 드러납니다. 우리 예수님은 누가복음 7장에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바리새파 사람 중 시몬이라고 하는 사람이 예수님을 대접하기 위해서 초청을 했습니다. 예수님이 식사에 초대받아 그 집에 갔습니다. 그런데 식사 중에 이웃에 살고 있던 죄 많은 여인이 와서 눈물로 예수님 발을 적시고 자기 머리털로 그것을 씻고 예수님의 발에 입을 맞추고 향유를 가지고 와서 예수님의 몸에 부었습니다.
그것을 지켜보고 있던 시몬이 예수님을 의심합니다. 이 분이 선지자라면 저 여자가 얼마나 부정한 죄인인지 알 것인데 부정한 여인이 자기 몸을 만지는데도 가만히 있는 것을 보니 이 분이 과연 선지자인가 의심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예수님이 그 속마음을 아시고, 시몬아, 내가 네게 이를 말이 있다하니 네, 말씀하십시오 하고 대답합니다. 어떤 사람이 빚주는 사람에게 오백데나리온의 빚을 주었고, 오백 데나리온의 돈은 우리나라 돈으로 환산하면 이천오백만원 정도의 돈이 됩니다. 다른 사람에게는 오십 데나리온의 돈을 주었느니라.
우리나라 돈으로 이백오십만원 정도 빚을 준 것입니다. 그런데 그 두 사람 다 형편이 너무 어려워서 빚 갚을 수 있는 형편이 아님을 불쌍히 여기사 둘 다 탕감해 주었느니라. 네 의견에는 어떤 사람이 그 빚 준 자를 더 사랑하겠느냐 하고 물으니 탕감을 많이 받은 사람입니다. 네 판단이 옳도다. 그런데 시몬아, 너는 내가 네 집에 들어올 때에 발 씻을 물도 주지 아니하였다. 그런데 이 여자는 눈물로 내 발을 씻었고, 머리털로 닦았다. 너는 내게 감람유도 붓지 아니하였는데 이 여인은 향유를 부었느니라. 이러므로 내가 네게 말하노니 저의 많은 죄가 사하여졌느니라. 이는 저의 사랑함이 많으니라. 사함을 받은 일이 적은 자는 적게 사랑하느니라. 죄를 철저하게 회개하고 죄사함을 많이 받은 사람일수록 주님을 많이 사랑하고, 조금 사함 받은 사람은 주님을 조금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열매를 보면 나무를 알 수 있습니다. 입으로 큰 소리를 친다 할지라도 그것은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주님의 몸에다 향유를 갖다 붓고 겸손히 무릎꿇어 눈물을 흘리며 발을 씻어주는 이 여인이야말로 분명히 과거에는 죄많은 여인이었지만 이제는 예수님을 믿고 의지하고 사랑하기 때문에 주님이 그 여인을 향하여서, 여인이여, 그대의 죄가 다 사해졌느니라 하고 구원을 선포한 것입니다.
주님을 사랑함이 뜨거운 사람은 죄사함을 받았다는 확실한 증거입니다. 만 가지 죄를 다 주님이 사했다, 그러므로 나는 내 생명 다 바쳐 주를 위해 살겠다. 죄사함과 헌신을 이렇게 주님이 가르쳐 주셨습니다. 죄 문제가 철저하게 해결되지 않은 사람은 헌신을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죄 사함에 대한 감격이 있을 때 누가 시켜서 하는 게 아니고, 주님이 너무 좋아서, 주님 없이는 살 수 없기 때문에, 주님은 나의 생명, 나의 기쁨, 나의 소망, 나의 삶의 의미요 가치요 목적이라, 예수님만이 나의 생애의 전부라, 그렇게 믿어지기 때문에 주를 위해서 몸, 시간, 재능, 다 바쳐도 아깝지 않습니다.
솔로몬이 그런 감정으로 일천번제를 바쳤습니다.
그 날밤에 꿈에 하나님이 나타나셔서 “솔로몬아, 내가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 원하느냐?” 하고 물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이 뜨거우면 구하기도 전에 줄 것부터 생각하시는 하나님, 어떤 이는 많이 구했는데도 응답이 없고, 어떤 이는 아무것도 안 구했는데도 하나님이 먼저 필요한 것이 무엇이냐고 물어보는 사람이 있으니, 하나님을 사랑하시기를 바랍니다. 사랑이 그렇게 중요합니다. 사랑하면 아깝지 않고 다 주고 싶습니다. 미우면 준 것도 빼앗고 싶습니다. 우리 삶이 하나님의 눈에 보시기에 사랑스러운 존재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 때 무엇을 구했습니까?
“하나님, 나는 하나님 앞에서 작은 어린아이와 같습니다. 나에게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이 많은 백성을 나에게 맡겼는데, 그 때 당시는 삼권분립이 없는 때라 왕이 되면 입법, 사법, 행정을 혼자 다 할 때입니다. 주님, 내가 어떻게 법을 세우고, 이 백성을 다스리며, 어떻게 판단할 수 있겠습니까? 내가 너무 무거운 짐을 졌습니다. 나에게 지혜로운 마음을 주십시오,” 그랬더니 “하나님이 대답하기를 너는 다른 왕과 다른 데가 있구나. 다른 왕은 오래 살게 해주세요, 건강하게 해 주세요, 부귀영화를 누리게 해 주세요, 우리 원수를 갚아주세요, 그렇게 구하는데 너는 수도 구하지 않고 부도 구하지 않고, 원수를 갚아달라고 하지도 않고 내 백성을 잘 통치하고 다스리겠다고, 내 백성을 바로 섬기겠다고, 네가 지혜를 구하니 네 마음이 내 마음에 합하도다. 그러므로 네가 구하는 지혜도 주고, 총명도 주고, 구하지 아니한 부귀와 영화도 누리게 하겠노라”. 그 나라와 의를 먼저 구했더니,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구했더니, 구하지 아니한 것도 덤으로 주셨습니다. 이게 바로 중요한 것입니다.
솔로몬은 주의 백성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여러분은 무슨 기도를 하십니까?
여러분들이 20 년도에 이루고자 하는 소원이 무엇입니까? 여러분들께서 12월 31일밤 송구영신예배 드릴 때 20 년도에 이루기를 원하는 소원을 내가 노트에 정리했습니다.
어떤 분은 성령 충만 받기를 원합니다.
어떤 분은 좋은 배필 만나 시집 장가가길 원합니다.
어떤 분은 대학교에 들어가기 원합니다. 어떤 분은 사업이 번창해서 천만원 이상 십일조 뗄 수 있기를 원합니다.
어떤 분은 더 많은 영혼을 전도하여 나는 일년 동안에 오백명 전도할 수 있는 힘을 달라고 이런 것들을 다 내가 노트에 정리하고 내가 그것을 요즘 외우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주의 백성을 위한 기도, 교회를 위한 기도, 나라와 민족을 위한 기도, 솔로몬의 기도에는 자기를 위한 기도는 하나도 없습니다.
이 백성을 어떻게 하면 복받게 합니까?
사명 감당과 백성을 위한 기도를 했더니 솔로몬이 구하지 않은 것도 주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마태복음 6:33절에 나온 말씀입니다.
그 나라와 의를 먼저 구했습니다. 그 나라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그 백성은 그 나라의 백성입니다.
나라가 이루어지기 위해서 삼대 요소가 있어야 됩니다. 영토, 주권자, 백성, 백성이 많은 나라가 큰 나라입니다. 그 나라와 의를 위해서 구하십니까? 더 많은 영혼 구원하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백성 없는 나라가 나라입니까? 백성이 많은 나라가 큰 나라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더 많은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서 기도하기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백성이 꼭 말씀대로 살아서 하나님의 복 받기를 위해서 기도했던 솔로몬, 그래서 하나님이 지혜를 주신 것입니다. 지혜를 구해야 됩니다.
야고보서 1:5절 말씀에 보면, “너희 중에 지혜가 부족하거든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고 했습니다.
지혜를 구하십시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지혜를 구하십시오. 맡겨준 사명 감당을 위해서 지혜를 구하십시오. 영리한 머리 자랑하지 말고, 무릎을 꿇으십시오. 홍해가 갈라졌던 것, 인간의 경험으로 된 것이 아닙니다. 지식으로 실력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기도했더니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지팡이를 들고 바다위로 내밀라, 그게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인간이 볼 때에 그것은 웃기는 것이요 장난치는 것입니다. 하늘의 지혜를 갖고 사시기를 바랍니다. 하늘의 지혜를 갖고 살면, 인간의 눈으로 볼 때, 웃기는 사람처럼 보입니다. 정신이 돌았나, 미쳤나, 예수를 믿더니 저 사람 아주 버렸구먼. 십자가의 도는 망할 사람에게는 미련하게 보입니다. 무슨 금식이냐, 철야냐 하고 비웃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 십자가의 비밀을 깨닫고 난 이후에 과거에 그렇게 자기가 자랑스럽게 여겼던 것들을 다 분토처럼 배설물처럼 버렸습니다. 예수님을 아는 지식이 너무나 고상하기 때문에 이 십자가의 놀라운 비밀을 깨닫고 난 이후에 마치 진주를 캐는 것처럼 보화를 얻은 것처럼 다른 것 다 버렸습니다. 예수님 붙들었더니 그 속에 다 있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과 손잡은 솔로몬처럼 주님 손잡고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하면 그가 함께 할 때 악한 자가 손 못 대도록 하시고, 그와 함께 하면 어려운 문제도 아주 편안하고 쉽게 풀어지게 될 줄로 믿습니다.
사무엘상 13:14절에 보면 “여호와께서는 그 마음에 맞는 사람을 구하여 그 백성 지도자를 삼으셨다”고 했습니다.
하나님 마음에 맞는 자가 무릎꿇는 자요, 주의 도움을 구하는 자이고, 말씀대로 사는 자입니다. 여호와의 신이 우리에게 임하면 지혜가 올 뿐아니라 총명도 오고, 모략과 재능도 임하게 되는데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에게 이러한 신을 보내준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육신을 입고 살아가는 동안에 하나님 말씀 앞에 언제나 예만 하고 아니오 없이 살았더니 하나님이 예수님께 어떻게 하셨습니까?
사도행전 10:8절에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권능을 기름 붓듯 하셨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가난한 사람에게 복음 전파하고 병든 사람은 고치고, 귀신 들린 사람을 자유케 하셨습니다. 그렇게 하나님은 지혜주십니다.
우리가 이성주의와 합리주의에 빠지지 말고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는 믿음 가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런 뒤에 하나님이 장래 이렇게 하리라 하고 응답이 왔을 때 솔로몬은 어떻게 했습니까?
15절 말씀에, “솔로몬이 깨어보니 꿈이더라, 이에 예루살렘에 이르러 여호와의 언약궤 앞에 서서 번제와 수은제를 드리고 모든 신복을 위하여 잔치하였더라.”
은혜 받기 전에 하나님께 제사 드리고, 응답 받고 난 뒤에 또 번제 드리고, 이번엔 수은제까지 드렸습니다. 수은제라는 말은 받은 바 은혜에 감사해서 드리는 제사를 수은제라고 합니다.
응답 받기 전에는 매달려 기도하던 사람이 응답 받고 난 뒤에는 기도는 안하고 잠만 자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솔로몬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응답 받기 전에도 일천번제 드렸고, 응답 받고 난 뒤에도 또 제사를 드렸습니다. 늘 몸을 드리고 마음을 드렸습니다. 주님을 향한 열정이 대단했습니다. 그래서 솔로몬과 함께 했던 것입니다.
여러분, 교회 와서 시간 바치는 것은 낭비가 아닙니다. 허비가 아닙니다. 예배드리는 것, 기도하는 것, 찬양하는 것, 성경 읽는 것, 심방하고 전도하는 것, 교회에서 봉사하는 것, 그것은 확실한 투자입니다. 분명하고 확실한 투자입니다. 그것은 축복의 씨앗을 심는 것입니다. 힘들고 어려워도 눈물을 흘려가면서라도 심어보십시오. 반드시 기쁨의 단을 가질 날이 올 것입니다. 선을 행하다가 낙심하지 마십시오. 피곤하지 아니하고 때가 되면 이루어 질 줄로 믿습니다.
솔로몬의 하나님이 우리의 하나님임을 믿습니다. 그런 은혜가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