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장은 수아 사람 빌닷의 변론입니다. 욥이 마지막 부분에서 내가 죄를 지은들 하나님께 무슨 손해가 있습니까 하는 투의 말을 했습니다. 빌닷은 욥이 하나님의 정의를 묵살하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단호하게 말합니다. 4절 “네 자녀들이 주께 죄를 지었으므로 주께서 그들을 그 죄에 버려두셨나니” 욥이 문제가 있어서가 아니라 욥의 자녀들 10명이 하루 아침에 죽은 것은 그들이 주께 죄를 지었기 때문이라고 단정을 짓습니다. 하지만 이 말이 욥에게 위로가 될 수 있습니까?
빌닷은 계속 5~6 “네가 만일 하나님을 찾으며 전능하신 이에게 간구하고 또 청결하고 정직하면 반드시 너를 돌보시고 네 의로운 처소를 평안하게 하실 것이라” 이 말 자체는 틀리지 않습니다. 그러나 빌닷이 모르는 것이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을 찾고 구함으로 하나님께 은혜를 입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무슨 수학적인 공식처럼 이루어지지는 않습니다. 하나님 앞에 순결한 삶을 살기 때문에 더 역경 가운데 처할 수도 있습니다.
물론, 이후 욥은 그의 의로움을 인정받았기에 하나님께서 그를 회복시켜 주십니다. 그러나 회복은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입니다. 빌닷은 우리가 번영을 이루기 위해서 하나님께 무엇인가를 보여주어야만 하나님께서 우리를 번영시키실 것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흥정의 느낌이 있습니다.
또한 빌닷은 말합니다. 7절“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 우리는 이 말씀을 정말 좋아합니다. 이 말씀대로 우리 성도님들에게 은혜가 있기를 축원합니다.
그러나 빌닷은 이 말씀을 흥정으로 다루었습니다. “네가 정직한 자라면 이런 어려움에 처하지 않았어야 했고, 또 어려움을 당해도 하나님이 곧 구해주실 것이다. 그런데 지금 몇 달씩 이 고생을 하는 것 보니 네가 하나님 앞에 문제가 있는 것이 분명하다. 번영을 원한다면, 너는 너의 죄를 회개하고 돌이켜야 한다!”
그러면서 11절 이하에서 빌닷은 자연에서 발견하는 증거들을 제시합니다. 왕골과 갈대는 물이 없으면 말라 죽습니다. 지금 욥은 말라 죽어가고 있습니다. 이렇게 된 데에는 원인이 있는데 욥은 위선자라는 것입니다. 또한 14~15에서는 거미줄을 언급하는데 우리가 거미줄에 기대어 안전히 지탱할 수 있느냐? 아무리 확신을 가져 보아도 거미줄은 끊어지고 말 것이라고 합니다. 지금 욥이 아무리 무죄에 대한 확신이 있어도 거미줄처럼 끊어지고 떨어질 것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마땅히 하나님을 찬양하며 감사하며 송축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눈에 보이는 물질적인 번성과 축복 때문에 섬기면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다 이해할 수 없습니다. 오늘 우리의 삶이 우리의 찬양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하나님을 섬기는 자세가 되길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