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긴 하나 성경이 기록된 시대적 상황을 반영하고 있어서 특히 구약성경은 남성 중심으로 기록되었다. 그것은 하나님이 남녀 차별을 하시는 분이라는 뜻이 아니라 그 시대의 상황을 이용하여 그분의 뜻을 성취해 가시는 것이다. 아브라함이나 야곱이 다수의 여인을 아내로 맞이한 것도 그렇다. 일부일처가 하나님의 창조 질서에 맞는 원칙이지만 부조들이 주변의 문화에 물들어서 하나님의 본뜻과는 다른 결정을 한 것이지 하나님이 그들에게 여러 아내를 맞이하도록 한 게 아니다. 이렇게 남성 중심의 세계에서도 간혹 여성의 지도력이 발휘되는 경우들이 있었는데 이스라엘 4대 사사였던 드보라가 그중에 한 사람이다. 드보라는 그냥 여러 사사 가운데 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녀가 이스라엘을 구원한 역사를 기록한 분량이 사사들 가운데 삼손과 기드온을 제외하고는 제일 많은 분량을 다루고 있다.
남성 중심의 세계에서 이스라엘이 이십 년 이상을 가나안 왕 야빈에게 압제를 받고 있을 때 하나님이 구원자로 일으킨 사람은 한 연약한 여성이었다. 아니 그녀는 결코, 연약하지 않았다.
(삿 4:6) 드보라가 사람을 보내어 아비노암의 아들 바락을 납달리 게데스에서 불러다가 그에게 이르되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명령하지 아니하셨느냐 너는 납달리 자손과 스불론 자손 만 명을 거느리고 다볼 산으로 가라
야빈에게 시스라라는 군대 장관이 있었다면 드보라에게는 바락이라는 장군이 있었다. 그러나 야빈과 드보라의 전쟁에서 주인공들은 남자들이 아니라 여인들이었다. 바락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싸움에 나가는 것을 주저했다. 그리하여 드보라의 출전 여부에 따라서 자신이 전투에 나갈 것인지를 결정하겠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드보라는 이렇게 말했다.
(삿 4:9) 이르되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가리라 그러나 네가 이번에 가는 길에서는 영광을 얻지 못하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시스라를 여인의 손에 파실 것임이니라 하고 드보라가 일어나 바락과 함께 게데스로 가니라
그 전쟁에서 시스라는 패했고 바락의 추격을 피해 홀로 도망가다가 유목민 겐사람 헤벨의 집에 숨어서 은거하기를 원했다. 시스라가 지친 몸을 이끌고 헤벨의 집에 들어가서 그의 아내 야엘이 주는 우유를 마시고 침상에 잠이 들었을 때 결심하고 그를 죽인 사람은 헤벨의 아내 야엘이었다. 그녀는 과감히 말뚝과 망치를 가지고 들어가 잠든 시스라의 관자놀이에 박아버린 것이다. 여인이 하기에는 너무 무서운 행동이었지만 주저 없이 시스라를 처단해 버린 것이다. 이 사실을 드보라는 노래를 지어서 불렀다.
(삿 5:24) 겐 사람 헤벨의 아내 야엘은 다른 여인들보다 복을 받을 것이니 장막에 있는 여인들보다 더욱 복을 받을 것이로다 (삿 5:25) 시스라가 물을 구하매 우유를 주되 곧 엉긴 우유를 귀한 그릇에 담아 주었고 (삿 5:26) 손으로 장막 말뚝을 잡으며 오른손에 일꾼들의 방망이를 들고 시스라를 쳐서 그의 머리를 뚫되 곧 그의 관자놀이를 꿰뚫었도다
남성들이 머뭇거릴 때 결단하고 나서서 과감히 행동으로 믿음을 나타낸 사람들은 여성들이었다. 진정한 용기와 용맹함은 성별로 구분되는 것이 아니며 이 세상은 남성 중심의 세상도 아니다. 누구라도 하나님의 부름을 받아서 믿음으로 자신이 가진 재능을 기꺼이 드린다면 그가 남성이든 여성이든 하나님의 손에 들린 위대한 능력의 도구가 될 것이다.
남자들이 주저하고 머뭇거릴 때마다 가장자리에서 신속히 역사의 중심부로 들어와서 위대한 행동을 보여 주었던 수많은 여인처럼 하나님은 오늘날도 드보라와 야엘과 같은 여성들을 부르고 계신다. 그리고 21세기는 특히 그런 여성들의 역할을 더 많이 요구하고 있다.
하나님 아버지! 드보라의 전쟁에서 수많은 사람이 무관심과 무대응으로 일관했습니다. 메로스는 민족이 전쟁을 벌이는데도 방관하고 돕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연약한 여인의 몸으로 결단하고 나서서 적장을 죽인 야엘처럼 하나님의 부르심에 성별을 따지지 않는 다는 것을 보여준 드보라처럼 21세기 연약한 교회를 이끌어 가는 믿음 있는 여성들이 많이 나타나도록 이 시대의 드보라와 야엘이 많이 일어나게 해 주십시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