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쓴이 : 김창식 | 날짜 : 10-01-14 10:15 조회 : 1702 |
| | | 접속 아바타
'아바타(Avatar)'*를 3D 입체화면으로 보았습니다. 먼 미래, 행성 판도라에서 새로운 자원을 탈취하려는 지구인과 토착민 나비(Na'vi)족 간의 투쟁을 그린 영화입니다. 주인공인 퇴역 해병대원 제이크 (샘 워딩튼)는 나비 족과 인간 DNA의 합성체인 아바타에 접속, 작전에 투입됐다가 나비 족 여전사인 네이티리(조 샐다나)와 사랑에 빠집니다. 나아가 자연과의 교감을 나누는 나비 족에 동화되어 약탈자 지구인에 대항해 싸우지요. 아바타는 의식이 주입된 또 다른 자아인데, 현실세계와 가상세계의 접합을 가능케 하는 메신저로서의 상징성이 만만치 않습니다.
영화의 가장 큰 강점은 누구나 인정하는 현란한 볼거리입니다. 특히 이모션 캡처 방식(초소형 카메라를 장착한 배우의 연기를 CG로 옮기는 기법)의 촬영기술은 놀랍습니다. 나비 족 캐릭터의 미세한 얼굴 근육 움직임과 내면 감정이 실제처럼 전달됩니다. 이 영화에서 소개된 기술은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골룸'에 사용된 기술보다 진일보한 것이지요.
기존의 다른 영화에서 이미지를 차용, 취합하여 혁신적인 영상미학을 완성하는 제임스 카메론의 재능은 천부적입니다. 이를테면 행성의 아름다운 생태계 묘사와 해파리처럼 생긴 나무 씨앗과 정글 유영은 전작인 '어비스'에 나오는 해저의 정밀한 풍광을 닮았습니다. 키가 500미터에 달하며 광통신망처럼 뿌리를 뻗은 영혼의 나무는 생텍쥐페리의 '어린왕자'에 나오는 바오밥 나무와 생김새가 비슷합니다. 영화의 최대 장관인 공중에 떠 있는 산의 군집(群集)은 미야자키 하야오의 '천공의 성 라퓨타'의 이미지를 빌려온 것이더군요. 이런 장면들을 상상의 극한까지 끌어 올려 재창조하였습니다. '터미네이터2'에서 액체인간을 만들어 영화 팬들을 놀라게 한 감독이니 어련하겠습니까.
환상적이고 아름다운 화면이지만 암울한 미래를 묘사하는 디스토피아 계열의 영화입니다. 문명에 의해 처참히 파괴되는 자연과 자연의 자구적(自救的) 응전이라는 주제는 되풀이된 메뉴여서 식상한 느낌이 있는 데다, 워낙 스펙터클한 장면이 가득해 주제와 감동이 파묻힌 느낌이 있습니다. 제임스 카메론 영화의 특징, 한계(또는 감독의 취향)이기도 한데, 주제와 시각효과가 적절한 균형을 이루었더라면 최고 반열의 SF영화가 되었을 것입니다. 이야기 전개의 밀도와 울림이 상대적으로 처지는 아쉬움이 있지만, 전하려는 메시지를 소홀히 한 것은 아닙니다. 보는 이에 따라 수정주의 서부극이나 베트남 전쟁을 떠올릴 수 있을 것입니다.
이야기 흐름은 수정주의 서부극의 서사구조를 본땄습니다. 백인들에 의한 서부개척사는 인류학적 관점에서 보면 인종차별, 인디언의 시각에서는 영토침탈사지요. 행성의 원주민(Native)인 나비족의 외양, 자연과 교호하는 능력은 인디언(Native American)을 닮았습니다. 총포로 무장한 백인들에게 활과 창으로 대응하는 전투방식 또한 인디언의 그것과 비슷합니다. 주인공이 나비 족을 이해하고 동화되는 과정은 내털리 우드의 '수색자', 케빈 코스트너의 '늑대와 함께 춤을'을 생각나게 합니다. '작은 거인'이란 영화도 있었습니다. 인디언에 의해 길러졌으나, 카스터 장군 기병대의 길잡이 역할을 수행하며 회한에 젖는, 리틀 빅 혼 전투의 생존자 잭 크랩(더스틴 호프만)과 나비 족 모습을 한 제이크는 역할과 운명, 정체성의 혼란이 겹치는군요. 나비 족(Navi)과 원주민(Native)의 음운과 철자법의 상관관계를 살펴보는 것도 흥미롭습니다.
베트남 전쟁에 대한 성찰과 은유로도 읽힙니다. 전쟁을 직접적으로 상기시키는 흔적은 곳곳에서 발견됩니다. 헬기를 동원한 무자비한 학살은 영화 '지옥의 묵시록'에 나오는 마을 공습 장면과 똑같습니다. 막강한 화력을 쏟아 붓고도 재래식 무기로 무장한 원주민에게 승리하지 못하고 철수하는 지구인의 모습은 베트남전의 판박이입니다. 공격 헬기는 코브라 헬기를 닮았으며, 용병대장인 쿼리치(스테판 랭) 대령이 나비 족 마을을 공격할 때 사용한 미사일 이름은 '발키리1-6'입니다. 발키리는 바그너의 악극 '니벨룽의 반지'에 나오는 '발퀴레의 기행(The Ride of the Valkyries)'에서 따온 것인데, 영화 '지옥의 묵시록'에서 킬고어 중령이 마을을 공습할 때 들리는 바로 그 음악입니다. 쿼리치와 킬고어. 두 사람 모두 폭력의 신봉자이고, 영웅주의와 전쟁의 광기에 사로잡힌 인물이지요.
감동을 자아내는 숨은 비밀은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 있습니다. 뜻을 이루지 못한 문명인들이 지구에로의 귀환 길에 오릅니다. 제이크가 읊조리지요. "떠날 사람은 떠나고 소수의 선택된 사람은 남았다. 오늘은 내 생일이다. 생일에 주인공이 늦을 수야 없지." 이어지는 나비 족들의 신비한 의식과 제이크의 의식이 주입된 아바타가 눈을 번쩍 뜨는 마지막 씬. 스포일러가 될 소지가 있으니 자세한 설명은 피하는 게 예의일 듯합니다.
아바타가 SF 영화의 최고 걸작은 아니지만 신기원을 이룩한 영화임에는 틀림없습니다. 비슷한 성향의 거장 감독인 리들리 스콧(블레이드 러너, 에이리언1, 글래디에이터, 블랙호크 다운)과 제임스 카메론(어비스, 에이리언2, 터미네이터2, 타이타닉)의 영화를 비교, 관람해 보는 것은 색다른 재미가 있을 것입니다. 스콧 감독은 좀 더 철학적이고 카메론은 보다 더 대중적입니다. 공통점은…? 두 사람 영화는 무조건 봐야 한다는 것 입니다.
* 아바타(Avatar)는 산스크리트어이며 분신, 제2의 자아의 뜻임. * 자유칼럼 게재 글. (2010, 1. 14 김창식) |
| 박원명화 | 10-01-14 11:38 |  | 아바타 영화를 보셨군요. 저도 시간을 내어 보려고 합니다. 현재와 미래가 일치되는 영화, 아마도 3D의 발전 속도이겠지요. 정말 과학발달의 진수는 어디까지인지, 아날로그에서 디지시대로 따라가자니 힘에 벅찬 일도 많은 데 , 영화대로라면 현실과 가상의 미래가 한데 어울리는 날도 머지 않을 것 같아 두렵고 떨리네요. 사실, 딸아이가 3D 공부한다고 지금 일본미대에서 석사과정을 밟고 있거든요. | |
| | 김창식 | 10-01-14 12:59 |  | 박원명화 사무국장님, 저도 어렵사리 표를 구해 영화를 보았는데 마찬가지 두려움을 느꼈습니다. 미래에는 현실보다 더 현실적인 가상의 세계가 펼쳐질 것 같습니다. | |
| | 임재문 | 10-01-14 12:12 |  | 김창식 선생님 감사합니다. 좋은 글 항상 컬럼으로 보내주셔서 잘 읽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 |
| | 김창식 | 10-01-14 13:03 |  | 임재문 선생님, 아바타는 볼 만한 영화였습니다. 꼭 3D가 아니더라도요... 미래의 디스토피아 적 세계는 인간 책임이라는 주제를 담고 있는 듯합니다.. | |
| | 임병식 | 10-01-14 18:54 |  | 요즘 에비타의 인기가 대단하더군요. 신세대의 감각으로 써내는 글에서 신선함을 많이 느낍니다. 김선생님은 칼럼성 글에 특장을 가지고 있는것 같습니다. | |
| | 김창식 | 10-01-14 19:33 |  | 우연히 칼럼으로 시작했습니다만 마음의 고향은 수필입니다. ^^ 열심히 공부하며 좋은 수필 쓰도록 한층 노력하겠습니다, 회장님. | |
| | 이진화 | 10-01-16 23:03 |  | 김창식 선생님, 아바타를 보고 심도 있게 감상평을 하셔서 많이 배웠습니다. 영화에 대한 해박한 지식이 돋보입니다. 매번 느끼는 거지만 매트릭스도 그렇고 아바타도 그렇고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도도한 흐름을 뒤집는 힘은 역시 사랑이더군요. 인상 깊은 대사는 '신은 누구의 편도 들지 않는다. 단지 균형을 이룰 뿐...'이었습니다. | |
| | 김창식 | 10-01-17 13:36 |  | 판도라의 신인 에이와를 설명하는 감동적인 대사였죠, 이진화 선생님. 이번 글은 영화에세이라기보단 그냥 이해를 돕기위한 해설로 쓴 것입니다.^^ | |
| | 정진철 | 10-01-16 23:47 |  | 스콧과 카메론을 아주 명쾌하게 정리하셨습니다. 이영화를 한번 보려고 했는데, 너무 재미있게 설명과 요약이 되어 있어서 그자체만으로도 네타바레가....ㅎㅎㅎ | |
| | 김창식 | 10-01-17 13:37 |  | 정진철 선생님, 죄송합니다. 아직 보지 않은 분들께 스포일러가 되지 않았나 걱정됩니다. | |
| | 최복희 | 10-01-17 10:44 |  | 영화를 본지 오래된 저는 덕분에 간접적으로나마 즐거움을 맛보게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여전히 신선함을 느끼게 합니다. 새해에도 좋은 글 많이 남기십시오. | |
| | 김창식 | 10-01-17 13:40 |  | 오래전 영화를 보셨군요, 최복희 선생님. 신세대 감성을 지니신 실버넷 명기자님. | |
| | 박영보 | 10-01-21 21:52 |  | 아직 이 영화를 감상하지 않았지만 아내의 휴무가 있는 날 함게 볼 생각입니다. 사전에 상세한 해설이나 평론과 같은 내용들을 읽을 수 있어 감상을 하며 이해를 하기에 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잘 읽고 갑니다. | |
| | 김창식 | 10-01-22 20:47 |  | 박영보 선생님, 혹 제 해설글이 오히려 방해가 되지 않을까 걱정됩니다. | |
| | 정희승 | 10-01-22 22:00 |  | 분석적이고 깊이 있는 글 잘 읽었습니다. 우리 애들은 새벽 2시 심야에 아바타를 보았습니다. 새벽에 들어오면서 감탄사를 연발하더군요. 아무튼 대단한 영화인 모양입니다. 저도 한번 봐야겠군요. | |
| | 김창식 | 10-01-24 18:40 |  | 정희승 선생님, 오랫만에 뵙는군요. 한국수필 1월호 연재글 잘 읽었습니다. 저는 선생님이 돌 구워드셨다는 이야기를 믿는 편입니다. ㅎㅎ | |
| | 최원현 | 10-02-26 21:15 |  | 저도 오늘 아바타를 3d영화관에서 보고 왔습니다. 영화! 참 대단하단 생각을 했습니다. 하지만 작은 것들을 다룬 우리네 영화에서 느껴지던 감동보다는 그저 놀라움이었고 충격이었습니다. 세시간여를 영화를 보고난 후 가슴에 남는 것은? 로마 교황청에서 특별담화를 발표 했다더니 그럴만도 하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러나 꼭 보고는 넘어가야 할 영화였습니다. | |
| | 김창식 | 10-03-08 07:57 |  | 최원현 선생님, 스펙타클한 풍광과 볼거리에 비해 주제가 파묻힌 느낌이 있어 안타까운 느낌을 주기도 하였습니다. 교황청은 범신론적 관점을 우려한 듯합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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