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8년에 충청도 어느 지역에서 살았던 어느 유학(儒學)을 공부하는 할아버지께서 자손들한테 남긴 일기(日記)에 대략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알 수 없는 죽음의 질병이 유행하여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3-4일 앓다가 쓰러져 죽었다. 불과 2-3개월 사이에 수십 만 명이 죽어 쓰러졌고 산과 들에 있는 모든 새들이 다 죽어서 땅에 떨어졌다.
충청도 진천에서 괴산으로 넘어가는 한 고개를 넘어가면서 온 사방을 둘러보니 모든 새들과 사람들이 다 죽었다. 집 근처에 있는 야생 새들이 모두 죽어 땅에 떨어져서 썩어가고 있었다. 개천가에 있는 가창오리, 청둥오리 같은 물새도 죽고 산에 있는 산새들도 다 죽었다. 청둥오리도 죽고 박새도 죽고 독수리도 죽고 멧새도 죽고 고니도 죽고 모든 야생 새들이 전멸했다.
온 산과 들에 새 울음소리가 끊겼으나 사람이 사는 민가에 오니 죽지 않고 살아 있는 새들의 울음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사람이 사는 마을에는 죽지 않고 살아남은 새들이 세 종류가 있었으니 그것이 어떤 종류의 새인 줄 알 수 있겠는가?
그 새들은 첫 번째는 닭과 오리를 비롯한 가금(家禽)들이고 두 번째는 참새이며 세 번째는 까치다. 어떻게 하여 산과 들, 물가에 있는 다른 모든 새들이 죽었는데 마을에는 세 가지 종류의 새들이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
닭과 오리, 참새와 까치가 조류독감으로 죽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사람이 군불을 때거나 밥을 지을 때 굴뚝이나 아궁이에서 나오는 풀이나 나무가 타는 연기를 쐬었기 때문이다.
옛날에는 집집마다 부엌에 있는 아궁이에서 나무로 불을 때서 밥을 지었고 바깥이나 헛간에 있는 가마솥에 쇠죽을 끓였으며 저녁이면 장작불로 군불을 때서 온돌방을 따뜻하게 데웠다. 집집마다 아궁이와 굴뚝이 있어서 아침저녁으로 밥을 지을 때마다 초목이 타는 연기가 모락모락 솟아올라 옆으로 퍼져서 안개처럼 온 마을을 덮는 정경을 날마다 볼 수 있었다.
닭이나 오리는 마당을 돌아다니면서 바깥에 있는 아궁이와 굴뚝에서 나오는 초목 연기를 맡을 수 있다. 참새 역시 사람이 사는 집 근처에서 먹이를 찾기 때문에 인가(人家) 가까이를 떠나지 않는다. 까치도 집집마다 있는 감나무나 배나무 같은 과일나무 위에 집을 짓고 살면서 굴뚝에서 나오는 연기를 코로 들이마신다.
옛날에는 집집마다 있는 아궁이와 굴뚝이 마을에 공기로 전염되는 유행성 전염병을 막아주는 파수꾼이었다. 아궁이와 굴뚝이 괴질을 막아주는 보건소와 같은 역할을 했다.
굴뚝에서 연기가 나오지 않는 집은 사람이 살고 있지 않은 빈 집이거나 흉가(凶家) 뿐이었다.
수십 년 전까지만 해도 산골이나 시골마을에는 아침저녁마다 밥 짓는 연기가 자욱한 풍경을 볼 수 있었다.
지금은 그런 풍경을 애써 찾아보려고 해도 볼 수가 없다.
할아버지께서 자손들한테 남긴 일기는 다음과 같이 계속된다.
“사람도 새들과 마찬가지로 풀이나 나무가 탈 때 나오는 연기를 가까이하지 않는 사람들은 모두 죽어서 쓰러졌다. 부엌에서 일을 하지 않는 귀부인들과 바깥에서 일을 하지 않는 양반이나 돈이 많은 부호들이 대부분 죽었고 부엌이나 아궁이에서 늘 초목이 탈 때 나오는 연기를 맡으며 요리를 하거나 쇠죽을 끓이는 하인들이나 가난한 사람들은 대부분이 살아남았다.
양반 중에서는 곰방대로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만 살아남았고 담배를 피우지 않는 사람들은 모두 죽었다.
내가 얼굴도 알 수 없고 이름도 알 수 없는 손자야, 이 할아버지의 부탁을 반드시 기억하고 들어주기를 간절하게 바란다.
내가 가장 걱정하는 참혹한 일이 너희들이 살아 갈 시대에 일어날 것이다. 그 때에는 밥을 지을 때 굴뚝이 없는 솥을 사용하게 될 것이며 굴뚝이 없이 불을 때서 방을 데우게 될 것이다. 그 때에는 모든 사람들이 1년이 지나도 초목(草木)이 타는 냄새를 한 번도 맡지 못할 것이고 기름이 타는 냄새만 날마다 맡게 될 것이다.
그런 때가 오거든 네가 반드시 기억해 두어야 할 것이 오직 한 가지 있다. 네 생일을 잊고 살아도 좋고 조상들의 제삿날을 잊고 살아도 좋으나 절대로 담배를 피우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되느니라. 그 시대에서는 담배를 피우는 사람은 살아남을 것이나 담배를 피우지 않는 사람은 모두 죽어서 이 세상에서 사라질 것이니라.
앞으로 모든 사람이 담배를 피우는 것을 적으로 여기는 시대가 올 것인데 그것이 내가 가장 걱정하는 일이 시작되는 징조가 될 것이니라.
그 때가 오면 때에는 알 수 없는 괴질이 유행하여 사람들이 말하다가도 죽고 길을 가다가도 죽고 밥을 먹다가도 죽을 것이므로 산 속으로 수십 리를 들어가서 산다고 해도 시체들이 썩는 냄새가 진동하여 코를 막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 때에는 백 명 중에 한 사람이나 천 명 중에 한 사람도 살아남기 어려운 시대가 될 것이다.
그 때에는 담배를 피우는 사람만이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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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옻닭 하려고 사놨던 옻나무 조각이 있어서
이거 태우는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