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国家と資本が結託した新たな軍事経済時代を憂慮する / 1/21(水) / ハンギョレ新聞
専門家レポート - 国家主導の経済、資本主義はどこへ?
米国のトランプ大統領はわずか1年の間に、それ以前の100年間で形成されてきた国際経済・政治秩序を根こそぎ揺るがしている。彼はすべての交易相手国に対して関税戦争を宣布することで任期を開始したかと思えば、自国の軍を送って独立国の大統領を拉致するという、猟奇的な立ち回りを繰り広げた。そんな中、世界は人工知能(AI)などの新技術の発達に歓喜している。各国政府はAI競争に死活をかけて莫大な資源を投入しており、ビックテック企業の株価は天井知らずだ。これらは明らかにこんにちの世界を特徴づける現象だが、互いの関係性が薄くも思える。
まず関税戦争をみてみよう。トランプのやり方は独特ではあったが、それによって崩壊した自由主義の国際経済秩序は絶対的真理ではない。本来、資本主義は一つの「世界経済」として登場したが、同時に個別の国民国家単位で組織されて動いている。このような二重性に対する洞察はロシア革命に身を投じたブハーリンが発展させたが、実際の歴史においても、資本主義の「世界性」が肥大化する時期と「国民性」が強調される時期が交互に繰り返されてきた。1870年代~1910年代初頭、1980年代~2010年ごろが「グローバル化」の時代だったとすれば、その間の空白期、特に1940年代半ば~1970年代までは国家主導の内実固めと「国民性」が際立った時代だった。
こうした繰り返しの意味するところは、資本の視点からみると明確になる。19~20世紀の転換期に諸大国は植民地確保をめぐる経済的角逐(帝国主義)を通じて肥え太ってゆき、そのような成長戦略が限界に達した時に第1次世界大戦が起きた。その後、2度の戦争と大不況で疲弊した国を再建し、経済の内実を固める期間がやって来たが、このモデルも1970年代の不況の壁にぶつかって終わりを告げた。資本は再び金融を武器にするとともに世界の開拓に乗り出したが、ここでは前の時代に各国が内的に蓄積した公的資産、そして以前は資本主義の外にあったものの新たに編入された旧社会主義圏などが主な「餌食」となった。近年のグローバル化からの2度目の「後退」は、このモデルの効力の満了を示唆する。実際に世界資本主義は2008年のグローバル金融危機以降、十数年間も長期停滞の沼でもがいているが、この間の通貨政策などの様々な市場中心の解決策は解決策たりえなかった。根本的な次元の突破口が必要なのだ。
このような背景にあって、コロナ禍は世界経済にとっていくら沈滞してもいい口実となり、そうなることでむしろ世界各国に内部整備の機会を、資本に新たな成長の足がかりを提供するかのようだった。破壊された社会・経済インフラを再建するにしても、新たな技術(AI)と価値体系(エコロジカル)の基盤の上に築こうというわけだ。それは国家の支援なしには不可能で、米国のバイデン政権の「よりよい再建(BBB)」や韓国の文在寅(ムン・ジェイン)政権の「韓国版ニューディール」がその例だ。このような内的調整は、かつての米国の「ニューディール」や西欧各国の福祉国家の発達と類似する。しかし上記のような機会は、パンデミックから回復する過程でいつの間にか消え去った。トランプの貿易戦争とそれによる保護主義への回帰は、その機会を奇怪なやり方で復旧しているわけだ。
しかし各国にとって、グローバル化よりも自国の内実を固める方向へと向かうのは、80年前ほど容易ではない。まず、各国がグローバルな供給と金融のきめの細かい網の中で絡み合っているからだ。最強の大国である米国でさえ、もはや自国中心の発展戦略を自力で駆使するのは難しいほどだ。二つ目に、国内的に変化の支持勢力の動員が難しいからだ。今は戦後復興や反共などの前世紀中盤に社会を凝集した大義が不在で、労組などの社会勢力を代表する力が四分五裂しており、国民の利害関係も複雑多岐になっている。
それでも国家の主導性は放棄できない。資本が沈滞から脱するためには新たな技術とエコパラダイムの潜在力が爆発しなければならないが、その実現のためには国家の助けが必要不可欠だからだ。代案は何だろうか。現在の新たな国家と資本の同盟はどこに向かっているのか。
このことで私たちは、近年の経済と軍事の結託に注目しなければならない。かつてそれは「軍産複合体」と呼ばれた。軍産複合体とは、国家の軍事組織と巨大防衛産業、そしてそれを支える政治的利害が結びついて形成された巨大な権力ブロックを指す。それは単なる兵器生産にとどまらず、国家の資源配分の優先順位を定めるとともに、技術革新の方向性を統制する「制度化された戦争経済」の性格を帯びる。かつての冷戦期の軍産複合体は、恒常的な戦時状態を維持することで資本主義の過剰生産問題を解決したうえ、飛躍的な技術発展を遂げた。今、私たちはそのメカニズムの復活を目の当たりにしている。
すでに世界各地の紛争は、大国が直接介入するかたちで激化している。最近の米国のベネズエラ侵攻は、地政学的秩序が一種の決定的な「敷居」を越えたことを示唆する。米国が「世界の警察」の地位を降りたものだから、あらゆる国が自力救済のために国防に金をつぎ込んでいる。ドイツのような戦犯国ですら、再武装の道に足を踏み入れることが自然に容認される雰囲気だ。ストックホルム国際平和研究所(SIPRI)によると、実際に世界の軍事費支出は10年連続で増加し、2024年には史上最高の年間2兆7180億ドルを突破した。マドゥロ大統領拉致直後の8日にトランプ大統領が来年度の国防予算を現在の1.5倍水準の1兆5000億ドルに増額することを要求したのは、偶然ではない。
軍事概念を拡張すると「安全保障(Security)」になる。だが、こんにちにおいて安全保障は国の内外はもちろん、政治と経済を行ったり来たりしつつ無限に広がっており、米中対立であらわになっているように、AIや半導体のような新技術と密接につながりつつある。軍事、経済、テクノロジーが一つに溶け合うこの時代は、第2次軍産複合体時代と呼んでもよいのではないか。英国ロンドン大学クイーン・メアリー校のエルケ・シュワルツ教授は、米国において2019~2022年の間に軍事技術関連のスタートアップに対するベンチャー資本の投資が倍に膨らんだこと、2021年以降に1300億ドルのベンチャー資本が国防技術分野に投入されたことをあげつつ、このことを「ベンチャー資本・軍・シリコンバレーの連携」と呼んだ。その経済的意義を要約すると、次のようになる。
第1に、停滞している経済に強力な有効需要を創出する。安全保障という商品の必要性は客観的な定義が難しい。敵の実体が不明確でも大衆が脅威を確信すれば、その敵は実体を持つことになる。AIとデータの覇権で安保概念が広がり、軍の「テックウォッシング」が進み、そして安全保障の社会的受容性が高まる。必要性が高いため、政府と企業が毎年数百兆ウォンを安全保障に投入しても誰も文句を言わない。今の安保競争が後に非生産的な「無駄」だったと判明することになってもだ。
第2に、国家の積極的な支援の下、企業が公的資源を合法的に私有化する機会となる。技術を実際の生産に用いて利潤を創出することが難しい現実において、安全保障は最も確実で安定した市場となる。安全保障の地位が高まれば高まるほど、市民の血税によって企業の不確実で危険千万な技術開発を補助するという国家の行為は強い正当性を得る。同時に失敗のコストは社会全体が負い、利益は資本が独占するという構造が常態化する。
第3に、この過程は結果的に技術革新を加速させ、有用な副産物を生む。マリアナ・マッツカートが「国家の成功例」と称賛したiPhoneの核心技術やアポロ計画の成果をみるとよい。実はそれらは、それ自体が国家が経済的な目的で開発を主導した「成功例」だったというより、国防と安全保障という多分に遺憾な「ミッション」を遂行した戦争経済の副産物だった。当面は戦争と統制のために開発されるAI技術が、逆説的に遠い将来に人類に役立つ無害な道具へと変貌するというのは、珍しいことではない。
これは杞憂(きゆう)だろうか。現在の新技術の展開のあり方は、こうした懸念に実証的な根拠を与える。最終的には、AIは産業現場を革命的に変えるだろうが、雇用減少と労働の解体に市民が反発するため、その実現には相当な時間がかかると予想される。経済学者の多くもAIの「生産性の逆説」に注目しつつ、技術への投資が実際の生産性の向上につながっていないと指摘している。
一方、AIが最も威力を発揮する分野は、市民に対する監視と統制だ。また、自国の外の敵を相手にするだとか、国家的生存を担保するという大義名分の下では、果敢な技術的実験が安全保障の名の下に躊躇(ちゅうちょ)なく行われるだろう。すでに莫大な水準となっている米国の国防費は、ロッキード・マーティンのような伝統的な軍需企業よりも、パランティアのようなシリコンバレーのテック企業との契約の方に次第に使われるようになるだろう。
私たちは一時代を風靡(ふうび)した「グローバル資本主義」の理想からは遠ざかる代わりに、国家単位でインフラを再整備し、内部の力量を結集する局面に足を踏み入れつつある。しかしその様相は、国内の社会勢力同士の協約にもとづいた「ニューディール」ではなく、国家と資本の結託を通じた新たな軍事経済というかたちで具体化しつつあるようだ。この過程が国家、特に米国などの大国の政府によって主導されていることが、警戒心を高めている。
キム・ゴンフェ|慶尚大学教授(経済学) (お問い合わせ japan@hani.co.kr )
https://news.yahoo.co.jp/articles/5aa4530a4f0465585b5edbca855598cce2de16ca
국가와 자본이 결탁한 새로운 군사 경제 시대를 우려한다 / 1/21(수) / 한겨레 신문
◇ 전문가 리포트 - 국가 주도의 경제, 자본주의는 어디로?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은 불과 1년 사이에 그 이전 100년 동안 형성돼 온 국제 경제·정치 질서를 송두리째 흔들고 있다. 그는 모든 교역 상대국에 대해 관세전쟁을 선포하는 것으로 임기를 시작하는가 하면 자국군을 보내 독립국 대통령을 납치하는 엽기적인 난투극을 벌였다. 그런 가운데 세계는 인공지능(AI) 등 신기술의 발달에 환희하고 있다. 각국 정부는 AI 경쟁에 사활을 걸고 막대한 자원을 투입하고 있어 빅테크 기업들의 주가는 천정부지다. 이것들은 분명히 오늘의 세계를 특징짓는 현상이지만, 서로의 관계성이 희박하기도 하다.
먼저 관세전쟁을 보자. 트럼프의 방식은 독특하긴 했지만 그로 인해 붕괴된 자유주의 국제경제질서는 절대 진리가 아니다. 본래 자본주의는 하나의 세계경제로 등장했지만 동시에 개별 국민국가 단위로 조직돼 움직이고 있다. 이런 이중성에 대한 통찰은 러시아 혁명에 투신한 부하린이 발전시켰지만 실제 역사에서도 자본주의의 세계성이 비대해지는 시기와 국민성이 강조되는 시기가 번갈아 반복돼 왔다. 1870년대~1910년대 초, 1980년대~2010년대쯤이 '세계화'의 시대였다면 그 사이의 공백기, 특히 1940년대 중반~1970년대까지는 국가 주도의 내실 다지기와 '국민성'이 돋보였던 시대였다.
이러한 반복이 의미하는 바는, 자본의 시점에서 보면 명확해진다. 1920세기 전환기에 강대국들은 식민지 확보를 둘러싼 경제적 각축(제국주의)을 통해 살이 찌고, 그런 성장전략이 한계에 다다랐을 때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났다. 이후 두 차례의 전쟁과 대불황으로 피폐해진 나라를 재건하고 경제의 내실을 다지는 기간이 왔는데, 이 모델도 1970년대 불황의 벽에 부딪혀 끝을 맺었다. 자본은 다시 금융을 무기로 함과 동시에 세계의 개척에 나섰는데, 여기서는 이전 시대에 각국이 내적으로 축적한 공적 자산, 그리고 이전에는 자본주의 밖에 있었지만 새롭게 편입된 구 사회주의권 등이 주된 「먹잇감」이 되었다. 최근의 세계화로부터의 두 번째 「후퇴」는 이 모델의 효력 만료를 시사한다. 실제로 세계 자본주의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십여 년간 장기 정체의 늪에서 허우적거리고 있지만, 그동안의 통화정책 등 여러 시장 중심의 해법은 해결책이 되지 못했다. 근본적인 차원의 돌파구가 필요한 것이다.
이런 배경에서 코로나는 세계 경제에 아무리 침체해도 좋은 구실이 되고, 그렇게 됨으로써 오히려 세계 각국에 내부 정비 기회를, 자본에 새로운 성장 발판을 제공하는 것 같았다. 파괴된 사회경제 인프라를 재건하더라도 새로운 기술(AI)과 가치체계(에콜로지컬)의 기반 위에 세우자는 것이다. 그것은 국가의 지원 없이는 불가능하며, 미국 바이든 행정부의 '더 나은 재건(BBB)'이나 한국의 문재인(문재인) 행정부의 '한국판 뉴딜'이 그 예다. 이런 내적 조정은 과거 미국의 뉴딜이나 서방 각국의 복지국가 발달과 유사하다. 그러나 위와 같은 기회는 팬데믹에서 회복하는 과정에서 어느새 사라졌다. 트럼프의 무역전쟁과 그로 인한 보호주의로의 회귀는 그 기회를 해괴한 방식으로 복구하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각국으로선 세계화보다는 자국의 내실을 다지는 방향으로 가기가 80년 전처럼 쉽지 않다. 우선 각국이 글로벌 공급과 금융 촘촘한 그물망 속에서 얽혀 있기 때문이다. 최강대국인 미국조차 이제 자국 중심의 발전전략을 자력으로 구사하기 어려울 정도다. 둘째, 국내적으로 변화의 지지세력 동원이 어렵기 때문이다. 지금은 전후 부흥이나 반공 등의 전세기 중반에 사회를 응집한 대의가 부재하고, 노조 등 사회세력을 대표하는 힘이 사분오열하고 있으며, 국민의 이해관계도 복잡 다방면이 되고 있다.
그래도 국가 주도성은 포기할 수 없다. 자본이 침체에서 벗어나려면 새로운 기술과 친환경 패러다임의 잠재력이 폭발해야 하는데 그 실현을 위해서는 국가의 도움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대안은 무엇일까. 현재의 새로운 국가와 자본의 동맹은 어디로 향하고 있는가.
이 일로 우리는 최근의 경제와 군사의 결탁에 주목해야 한다. 과거 그것은 '군산복합체'로 불렸다. 군산복합체는 국가의 군사조직과 거대 방위산업, 그리고 이를 뒷받침하는 정치적 이해가 결합되어 형성된 거대한 권력 블록을 말한다. 그것은 단순한 무기생산에 그치지 않고 국가 자원배분의 우선순위를 정하는 동시에 기술혁신의 방향을 통제하는 제도화된 전쟁경제의 성격을 띤다. 과거 냉전기의 군산복합체는 항상적인 전시상태를 유지함으로써 자본주의 과잉생산 문제를 해결하고 비약적인 기술발전을 이루었다. 지금 우리는 그 메커니즘의 부활을 목격하고 있다.
이미 세계 각지의 분쟁은 강대국이 직접 개입하는 식으로 격화되고 있다. 최근 미국의 베네수엘라 침공은 지정학적 질서가 일종의 결정적 문턱을 넘어섰음을 시사한다. 미국이 세계의 경찰 지위에서 내려왔으니 모든 나라가 자구책을 위해 국방에 돈을 쏟아붓고 있다. 독일 같은 전범국에서조차 재무장의 길로 들어서는 것이 자연스럽게 용인되는 분위기다.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SIPRI)에 따르면 실제로 세계 군사비 지출은 10년 연속 증가해 2024년에는 사상 최고인 연간 2조7180억달러를 돌파했다. 마두로 대통령 피랍 직후인 8일 트럼프 대통령이 내년도 국방예산을 현재의 1.5배 수준인 1조5000억달러로 증액할 것을 요구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군사 개념을 확장하면 '안전보장(Security)'이 된다. 하지만 오늘날 안보는 국가 안팎은 물론 정치와 경제를 넘나들며 무한정 확산되고 있으며, 미중 갈등에서 드러나고 있듯이 AI나 반도체 같은 신기술과 밀접하게 연결되고 있다. 군사 경제 테크놀로지가 한데 어우러지는 이 시대는 제2차 군산복합체 시대라고 불러도 좋지 않을까. 영국 런던대 퀸 메리대 엘케 슈워츠 교수는 미국에서 2019~2022년 사이 군사기술 관련 스타트업에 대한 벤처자본 투자가 배로 불어난 것, 2021년 이후 1300억 달러의 벤처자본이 국방기술 분야에 투입된 것을 들며 이를 '벤처자본·군·실리콘밸리 연계'라고 불렀다. 그 경제적 의의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정체된 경제에 강력한 유효수요를 창출한다. 안전보장이라는 상품의 필요성은 객관적인 정의가 어렵다. 적의 실체가 불명확하더라도 대중이 위협을 확신하면 그 적은 실체를 갖게 된다. AI와 데이터 패권으로 안보 개념이 확산되고 군의 '테크워싱'이 진행되며 안보의 사회적 수용성이 높아진다. 필요성이 높기 때문에 정부와 기업이 매년 수십 백조원을 안보에 투입해도 아무도 불평하지 않는다. 지금의 안보경쟁이 나중에 비생산적인 낭비로 판명되더라도 말이다.
둘째, 국가의 적극적인 지원 아래 기업이 공적 자원을 합법적으로 사유화하는 기회가 된다. 기술을 실제 생산에 이용해 이윤을 창출하는 것이 어려운 현실에서 안전보장은 가장 확실하고 안정된 시장이 된다. 안보의 위상이 높아질수록 시민의 혈세에 의해 기업의 불확실하고 위험천만한 기술개발을 보조하겠다는 국가의 행위는 강한 정당성을 얻는다. 동시에 실패의 비용은 사회 전체가 지고, 이익은 자본이 독점한다고 하는 구조가 상태화한다.
셋째, 이 과정은 결과적으로 기술 혁신을 가속시켜 유용한 부산물을 낳는다. 마리아나 매츠카트가 '국가의 성공 사례'라고 칭송한 아이폰의 핵심 기술이나 아폴로 계획의 성과를 보면 된다. 사실 그것들은 그 자체로 국가가 경제적인 목적으로 개발을 주도한 '성공례'였다기보다 국방과 안보라는 다분히 유감스러운 '미션'을 수행한 전쟁경제의 부산물이었다. 당장은 전쟁과 통제를 위해 개발되는 AI 기술이 역설적으로 먼 미래에 인류에게 도움이 되는 무해한 도구로 변모한다는 것은 드문 일이 아니다.
이것은 기우일까. 현재의 신기술 전개의 기본방향은 이러한 우려에 실증적인 근거를 부여한다. 궁극적으로 AI는 산업 현장을 혁명적으로 바꾸겠지만 고용 감소와 노동 해체에 시민들이 반발하기 때문에 그 실현에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경제학자 상당수도 AI의 '생산성 역설'에 주목하면서 기술에 대한 투자가 실제 생산성 향상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반면 AI가 가장 위력을 발휘하는 분야는 시민에 대한 감시와 통제다. 또 자국 밖의 적을 상대한다거나 국가적 생존을 담보한다는 명분 아래 과감한 기술적 실험이 안보의 이름으로 거침없이 이뤄질 것이다. 이미 엄청난 수준인 미국의 국방비는 록히드 마틴 같은 전통적인 군수기업보다는 팔란티아 같은 실리콘밸리의 테크기업과의 계약 쪽으로 점차 쓰이게 될 것이다.
우리는 한 시대를 풍미했던 글로벌 자본주의의 이상에서 멀어지는 대신 국가 단위로 인프라를 재정비하고 내부 역량을 결집하는 국면에 접어들고 있다. 그러나 그 양상은 국내 사회세력간 협약에 따른 뉴딜이 아니라 국가와 자본의 결탁을 통한 새로운 군사경제라는 형태로 구체화되고 있는 듯하다. 이 과정이 국가, 특히 미국 등 강대국의 정부에 의해 주도되고 있다는 점에서 경각심을 높이고 있다.
김건회 | 경상대 교수(경제학) (문의 japan@hani.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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