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철 아름다운 꽃을 피워냈던 벚나무들은 노랗게 물든 잎들을 조용히 떨구어 낸다. 산책로 주변에는 갈색 낙엽들이 켜켜이 쌓여가고 나무들은 겨울을 위한 이른 준비를 시작한다. 긴 추석 연휴가 끝나고 10월에 접어드니 아침저녁으로 제법 쌀쌀해져 가을이 왔음을 체감한다.
필자는 지난 9월 1일 자로 남구에 소재한 새 학교로 부임했다. 약간의 긴장과 설레임 속에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느라 한 달이 쏜살같이 지나간 듯하다. 9월 첫날 교문 입구에 들어서니 ‘미래를 여는 교육, 모두가 행복한 학교’라는 현수막이 제일 먼저 반겨주었다.
‘모두가 행복한 학교’라는 문구가 유독 눈에 띄었다. 교사가 행복해야 배우는 학생도 행복하고 모든 교육공동체가 행복할 수 있음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일 것이다. 그러나 여름부터 줄곧 학교 현장에서는 위태롭고 안전마저 확보되지 않는 일들이 속출하고 있어 마음 한편이 무겁다. 안전하고 행복한 학교를 만들기 위해 열심히 노력해야겠다는 다짐을 하며 첫 출근을 시작했다.
꽃들이 가득한 교정을 지나 중앙 현관에 들어서니 아트 갤러리에 온 것처럼 깔끔하고 아름답다. ‘사막이 아름다운 건 어딘가에 우물을 감추고 있기 때문이야’ 북카페가 조성된 중앙 현관에는 생텍쥐페리 『어린 왕자』의 한 대사가 새겨져 있다.
명화 액자들이 전시된 복도와 깨끗한 계단, 밝은 미소로 반갑게 인사를 건네주는 학생들과 선생님들. 이렇게 멋진 학교에서 근무할 수 있게 된 것에 감사할 따름이었다. 정돈된 학교 환경, 밝은 표정과 웃음소리가 넘쳐나는 ‘행복한 학교’의 모습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깨닫는 데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필자의 학교에는 사막에 감춰진 우물 같은 존재들이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이른 아침 학생들의 안전 등교를 위해 힘써주시는 시니어 클럽 어르신들과 학교 지킴이 선생님, 아침맞이와 등교지도를 하시는 학생안전부 선생님, 학교 시설과 안전을 위해 늘 점검하고 손수 정원을 가꾸는 행정실장님, 점심시간 학생들과 탁구도 함께 치며 사제동행을 실천하는 교장 선생님. 누구보다 학생들의 생활지도와 수업에 열정을 쏟는 선생님들. 학생들의 복지와 자치활동을 위해 노력하는 학생회. 이들은 모두 학생들의 배움과 성장, 행복이라는 공동의 목표를 위해 노력하는 학교의 주인공들이었다.
필자의 학교는 아름다운 갤러리로 조성된 교실 복도가 유명한 학교이다. 고흐나 고갱, 모네, 클림트, 베르메르, 모지스 같은 유명 화가의 작품이나 김홍도의 풍속화, 김정희의 세한도, 민화 작품들이 1, 2층에 전시되어 있고 학생들의 다양한 작품도 3, 4, 5층 복도에 전시되어 있다.
갤러리 작품을 전시하고 관리하는 환경부장님은 남들보다 일찍 출근하셔서 복도 갤러리를 깨끗하게 정리하고 조명을 밝히는 일로 하루 일과를 시작한다. 학생들과 선생님들이 아름다운 작품을 잘 감상할 수 있도록 최적의 환경을 만들어 주기 위함이다. 어쩌면 사소한 일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어떤 이는 갤러리의 조명이 켜져 있는지 꺼져 있는지, 또 누가 조명을 켰는지조차 모를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런 사소함도 성실하게 실천하시는 모습이 마치 오아시스에 숨어 있는 우물같이 아름답다는 생각이 든다.
복도 갤러리에 있는 품격 있는 미술 작품들은 학생들의 인성교육에 도움이 되고, 심미적 감성역량을 기를 수 있는 체험의 장이 되고 있다. 심미적 감성역량은 2015 개정 교육과정에서 제시한 창의 융합형 인재가 갖추어야 할 핵심역량 6가지 중의 하나이다. 인간에 대한 공감적 이해와 문화적 감수성을 바탕으로 삶의 의미와 가치를 발견하고 향유하는 역량으로 예술과도 가장 관련성이 높은 역량이다.
교육부는 2023년을 ‘교권 회복의 원년’으로 삼고 학생ㆍ교원ㆍ학부모가 상호 존중하는 ‘모두의 학교’를 만들기 위한 고시를 제정하고 교권 회복과 보호를 위한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교육공동체 모두가 하나의 목표를 향해 책임과 의무를 다할 때 ‘모두의 학교’, ‘모두가 행복한 학교’가 실현될 것이다. 점심시간이면 방송에서 학생들이 부르는 익숙한 노래가 흘러나온다. 우리 모두 다 같이 책·공·존(책임·공감·존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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