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암사지(檜巖寺址) 탐방기
가을이 깊어가던 며칠 전, 서울에서 살고 있는 한 중학교 후배의 안내로 경기도 양주에 있는 회암사지(檜巖寺祉)와 회암사(檜巖寺)를 탐방하였다. 회암사지는 경기도 양주시 회암동 천보산(天寶山) 자락에 위치한 국가사적 제128호(1964.6.10.)로 지정돼 있는 곳이다.
원래 회암사는 1328년(고려 충숙왕 15년) 인도에서 원나라를 거쳐 고려에 들어온 인도승려 지공스님(指空禪師)이 인도의 나란타사(羅爛陀寺)를 본떠서 지은 266칸의 대규모 사찰이다. 그 후에 지공스님의 제자인 고려말 왕사였던 나옹스님(懶翁禪師)이 1378년(우왕 4년)에 중창했으며, 조선조 태조 이성계의 왕사인 무학대사가 왕실의 후원을 받아 크게 성장 시켜 불교중흥의 산실이 되었다. 특히 태조가 상왕으로 물러난 이후에 궁실까지 짓고 살아 ‘왕의 행궁(行宮)’ 역할을 하였으며, 효령대군, 정희왕후, 문정왕후 등의 왕실 인물들의 후원을 받아 조선 최대의 왕실 사찰로서 전국사찰의 본산이 되어 한때는 승려가 3천여 명이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명종의 모후(母后)로서 수렴청정한 문정왕후가 회암사 주지였던 원증국사 보우(圓證國師 普愚, 1301~1382)와 함께 승과(僧科)를 부활하는 등 불교 부흥을 후원했으나 문정왕후 사후에 억불숭유(抑佛崇儒) 정책으로 인해 1565년(명종 5년) 음력4월 초파일 절이 불태워지면서 200여 년간 전국 제일의 왕실 사찰도 폐사되고 말았다.
회암사는 폐사된 뒤에 오랫동안 흙으로 덮여 논밭으로 사용되어 잘 알려지지 않았다. 그러다가 1997년부터 2015년까지 12차례에 걸쳐 발굴조사를 통하여 그 규모와 실체가 세상에 드러났다. 절터는 면적 1만여 평(333,233㎡)으로, 그 위에 반듯하게 쌓아올린 기단과 주춧돌, 일부 석물만 남아 있거나 가람의 원형들이 그대로 남아 있어 조선 최대의 국찰(國刹)의 위엄이 느낄 수 있었다. 고려말 목은 이색(牧隱 李穡)이 지은 「천보산 회암사 수조기(天寶山檜巖寺修造記)」에 ‘집과 모양새가 굉장하고 미려하여 동양에서 첫째’라고 하였다.
회암사의 규모는 번성기 때에는 전각이 총 266간이고, 암자도 17개나 되었으며 또한, 모셔진 불상도 15척짜리 7구나 있었다고 하며, 관음상도 10척이나 되어 당시 회암사는 크고 웅장하며 아름답기가 동국 제일로서 이런 절은 중국에서도 많이 볼 수 없을 정도였다고 전하고 있다. 회암사지 남서쪽에 세워진 3m가 넘는 회암사지 당간지주(양주시 향토유적 13호)를 보면 회암사지의 방대했던 규모를 알 수 있으며, 서북 측 맨 위에 세워져 있는 회암사지 부도탑(浮屠塔: 득도한 대선사가 죽은 뒤에 유골을 안치한 돌탑: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52호)을 보면 부도의 주인공은 알 수 없으나 팔각 원당형의 석조부도로 수작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리고 회암사지 입구에 2012년 건립된 <회암사지 박물관>에는 이곳에서 발굴된 1만 3천여 점의 유물이 전시되어 당시 사찰의 규모를 짐작할 수가 있었다. 그리고 회암사지에서 출토된 유물들은 기와, 자기(瓷器), 도기(陶器), 소조품(塑造品), 금속품, 석제품 등으로 다양하고 품질도 최고급으로 평가되고 있다. 또한 일반 사찰 건축과는 달리 궁궐건축의 건물구조나 방식이 왕실에서만 사용한 용문기와 청기와, 용두(龍頭), 토수, 잡상(雜像) 등의 왕실 전용 자기를 생산하던 관요(官窯)에서 제작된 도자자기 등 당시 왕실과 불교문화의 특징을 살펴볼 수 있었다.
한편 회암사는 폐사된 뒤 1821년(순조 21) 지공·나옹·무학의 부도와 탑비가 고의적으로 훼손되어 조정에서 1828년에 다시 중수하고, 옛터 근처에 작은 절을 짓고 회암사라는 사호(寺號)를 계승하였다. 그리고 1922년에 봉선사 주지 홍월초(洪月初)가 새로 부처를 안치하는 보전(寶殿)을 짓고 불상을 봉안했으며, 지공·나옹·무학의 진영을 모셨다. 그 뒤에 1976년에는 호선(昊禪)이 큰 법당과 삼성각, 영성각(影聖閣) 등을 중건하였다. 법당 동측 능선에는 회암사지 선각왕사비(檜巖寺址禪覺王師碑: 보물제 387호)와 회암사지 무학대사탑(보물 제388호), 회암사지 쌍사자석등(檜巖寺址雙獅子石燈: 보물 제389호), 지공선사부도 및 석등(경기도 유형문화재로는 제49호), 나옹선사 부도 및 석등(경기도 유형문화재 제50호)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51호인 무학대사비(無學大師碑: 경기도 유형문화재 51호) 등의 주요 문화재가 보존되어 있다.
필자가 답사해보니 능선에 맨 위에 나옹선사. 중간에 지공선사 맨 아래 무학대사의 부도(浮屠)와 석등, 비석이 세워져 있었다. 지공선사와 나옹선사 부도에는 표면에 아무런 장식이 없이 소박하고 간결한 대신 이성계가 직접 관여했다는 무학대사의 부도는 조각도 화려했다.
필자는 40여 년 전 군 복무 시절 이 지역에서 근무를 하였다. 그러나 그때는 새로 지은 회암사 절은 있었지만 회암사지의 역사는 잘 알지 못했다. 최근 발굴된 회암사지는 현재 서울의 중앙여자고등학교 소유로서 안내판만 있을 뿐이고, 여기서 800m쯤 올라가서 산길이 끝나는 지점에 현재의 새로 지은 회암사가 있었다. 이 회암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25교구 본사인 경기 광릉에 있는 봉선사(奉先寺)의 말사로 소속돼 있다.
필자는 모처럼 후배 덕분으로 말만 듣고 평소 가고 싶어 했던 양주 회암사지와 새로 지은 회암사, 그리고 지공, 나옹, 무학대사의 세 부도를 직접 살펴보고 그분들의 발자취와 불교문화의 역사를 알게 되어 매우 보람되고 축복받은 하루를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