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남도 기념물 제 1호인 식영정은 담양군 남면 지곡리에 있는 조선시대의 누정이다. 정면 2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건물로 그 안에 작은 방이 하나 꾸며져있는 식영정은 명종 15년에 서하당을 세우고 지내던 김성원이 새로 이 정자를 지은 뒤 스승이며 장인이었던 석천 임억령에게 드렸다. 임억령은 해남 출신으로 1525년에 문과에 급제한 후 여러 벼슬을 지냈다. 을사사화가 나던 1545년에 동생 임백령이 소윤 일파에 가담하여 대윤의 선비들을 추방하자 그는 자책을 느끼고 금산 군수직에서 물러나 해남에 은거했다. 나중에 다시 등용된 후 1557년에는 담양부사가 되었다. 임억령은 천성적으로 도량이 넓고 청렴했으며 시와 문장에 탁월했지만 관리로 일하기에는 부적당하다고 당대 사람들은 말하였다.
식영정이란 ‘그림자가 쉬고 있는 정자’라는 뜻으로서 임억령이 쓴〈식영정기〉에는 이런 내용이 있다.
“(〈장자〉에 나온 자기 그림자를 두려워하여 도망치는 사람 이야기를 말하고 나서) 그림자는 언제나 본형을 따라다니게 마련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사람도 자연법칙의 인과응보의 원리에서 벗어나지 않는 것이다.…… 그러는 처지에 기뻐할 것이 무엇이 있으며 슬퍼하고 성내고 할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내가 이 외진 두메로 들어온 것은 꼭 한갓 그림자를 없애려고만 한 것이 아니다. 시원하게 바람을 타고, 조화옹과 함께 어울리어 끝없는 거친 들에서 노니는 것이다.…… 그러니 식영이라고 이름짓는 것이 좋지 아니하냐”
옛 이름이 자미탄紫薇灘인 청계천 변의 식영정은 수많은 문인과 학자들이 즐겨 찾았던 곳이다.
송순, 김윤제, 김인후, 기대승, 양산보, 백광훈, 송익필, 김덕령……. 그중에서도 임억령, 김성원, 정철, 고경명은 식영정에 사선四仙이라 불리다. 그들은 식영정에서 보이고 들리는 풍경들을 시제로 하여 수많은 시를 남겼다. 그러나 이곳을 가장 유명하게 한 것은 송강 정철의〈성산별곡〉이다.〈성산별곡〉은 계절에 따라 변화하는 성산 주변의 풍경과 그 속에서 노니는 서하당 식영정 주인 김성원의 풍류를 그리고 있다.
식영정 뒤편에는 배롱나무 서너 그루가 있어서 이제는 사라진 자미탄의 모습을 그려보게 한다. 임억령은 “ 누가 가장 아끼던 것을 산 아래 시내에다 심었나 보다”라고 자미탄을 노래했다. 식영정 아래 부용당은 1972년에 지어졌고 그 뒤에 김성원이 거처하던 서하당 자리가 있다.
가을이 깊어가는 계절 11월에 떠난 무등산 자락 답사는 노란 은행잎으로 노랗게 노랗게 물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