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대 이인수 총장의 여학생 혼인빙자 성희롱, 폭행 및
상해에 의한 신체 정신 피해배상 소송 사실
1. 저는 1987년 수원대를 졸업한 학생입니다. 세상의 모든 이들이 충격을 금치 못할 사실로 저는 6년간 이인수 총장으로 부터 인간의 현실이라 할 수 없는 생체실험물이 되고 인생 전체의 살해라는 것 외에 표현의 길이 없는 잔혹한 성적 신체적 가학을 당했습니다. 그간 제가 과거 이인수 총장에게 당하고 지금에 이른 과정에는 도가니 영화의 소재가 되고도 남는 잔학한 광란의 악몽이었고 현실이라 할 수 없을 만큼 고통과 수치의 경악 뿐이었으며 지금까지 이인수 총장의 충격적 행태를 묻어왔습니다.
그러나 수원대 졸업생으로 지금까지 이인수 총장의 인면수심의 행태를 두고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저는 더 이상 자신의 수치와 체면으로 이 모든 것을 더 이상 가릴 수 없어 진실 을 알리기에 나설 것을 결심했습니다. 공인으로도 이인수 총장은 26년간 무수한 학생의 학습과 유린과 교수진의 노예계약과 탄압 그리고 학교를 수천억 교비를 쥐고 무차별 일인 전권을 휘두르며 총장으로서 수원대를 악용한 전무후무한 총체적 비리와 부패로 가공할 사학비리 사태를 보며 안타까운 심정으로 수원대와 이 사회 전체를 위해 진실을 밝힙니다.
2. 저는 세상의 이치를 보며 인간으로 그토록 비참하고 처참히 유린당하고 폐기 당할 수는 없다는 사실로 인해 일생 고통을 겪었습니다. 저는 이인수 총장에게 혼인빙자로 성희롱과 기망을 당했으며 습관적 폭행으로 고관절 골절까지 입힘으로 1998. 1999 두 번의 대 수술을 받고 결국 치명적이고도 영구적인 후유장애를 갖게 되었습니다. 이인수 총장이 해 온 6년간 긴 세월 습관적 폭행과 가학의 행태는 인간이 아니었기에 저는 그 잔인한 손에 아무것도 모른 채 무방비로 짐승처럼 죽어가며 우울증과 거식증으로 한 가닥 숨만을 이어갔던 비참함과 한을 씻을 수 없습니다.
3. 이인수 총장은 2003. 저의 후유증을 인지하고 2005년 치료의 장기적 치료를 위해 거처를 제공했었습니다. 그러나 조선일보와 사돈이 되고 총장이 되자 곧 상해 책임과 치료를 거부하고 기피하며 위 거처를 2010에 강제퇴거 집행을 하였습니다. 이 과정에서 저는 4 차례의 피 눈물의 글을 쓸 수밖에 없었고 그럼에도 이인수 총장은 2012 다시 2 차례나 강제 집행을 했습니다. 급기야 이인수 총장은 총장으로 특수 신분인양 과장하며 저를 마치 길거리 폐기인생이나 자해단으로 매도하고 비하하며 허위주장에 폭행과 상해까지 부인했습니다. 저는 20대 젊음과 미래를 부족함 없는 대기업의 사회생활과 경제적 여건은 물론 결혼과 유학 등을 앞두고 있었습니다. 과거 이인수 총장은 저를 혼인빙자로 기망하여 만나며 임신이 되자 낙태까지 강요했었습니다. 수원대 학생이기도 했던 저에게 가한 행태는 개를 기르다 버려도 그렇게 잔인하게 뼈를 꺽어 폐기하지는 못 할 수위이며 잔인하게 6년을 신체와 정신을 유린하다 일생의 후유증과 통증과 장애를 입힌다는 것은 금수도 그와 같지는 않습니다.
4. 그간 이인수 총장은 치료를 요구하는 저에게 조용히 살라고 협박에 이어 기존의 치료비를 반환하라고 종용하며 2012. 7. 강제집행을 했고 치료비를 아까워하면서 책임을 회피하며 무수한 소송비를 써왔습니다. 이인수 총장의 변호인 법무법인 안원모는 수원대 고문변호사로 수년간 학교의 법적고문이 아닌 이인수 총장개인의 소송사건을 해왔습니다. 두 번의 명도소송과 강제집행, 제가 번적 대응을 결심하자 합의서 작성 대리업무, 이인수총장 형사이인수총장 변호인과 현제 서울중앙지법의 민사 손해배상사건을 하고 있으며 이는 수원대 교비가 총장의 사익에 쓰인 횡령행위입니다.(사건번호 2012 가합 73041) 이인수 총장은 학생의 등록금으로 형성된 교비를 여학생 성희롱과 폭행상해 및 영구장애를 입힌 책임을 지게 되자, 이를 허위 주장하며 거부하기 위한 무수한 소송을 하며 직권남용과 횡령의 불법을 저질렀으며, 사람이라면 최소한 인륜으로 치료를 했어야 할 것입니다. 1차 , 2차 강제집행 전 후 저는 치료를 요청하고 소송을 피하고자 이인수 총장에게 피눈물로 4차례의 서신을 쓴 바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이어 두 차례나 강제 집행을 한 것을 보면 과거부터 저에게 한 행위가 어떠했을지 짐작케 합니다. 총장 직분을 갖고 더구나 과거 어린나이 수원대 여학생이기도 했던 저에게 한 잔인한 행위와 폭행상해의 장애 후유증 소송에서 갖은 허위주장과 작태는 오직 인간이 아닌 인면수심입니다. 이제부터 저는 이인수총장의 가공한 불법비리 행태와 수원대 졸업생으로 현재의 수원대 사태를 보며 영화 “ 도가니” 보다 더한 사학도가니를 학교와 학생들을 위해 밝힙니다.
5. 이인수 총장과의 악연의 시작은 1984년입니다. 저는 보수적이며 엄한 부친의 권위에 존경과 순종으로, 3녀 1남의 유교적인 모친아래 성장했습니다. 대학을 다니고 단 한번도 남자친구를 만들지 않은 채 대기업에서 사회생활을 하며 가벼운 친구를 만난 것 외엔 당시 결혼 적령기에서 24세에 약혼을 하는 시기에 있었습니다. 사람과 세상의 부정적인 것은 한번도 겪지못한 채 맞선 본 미국교포인 약혼자의 친구로 우연히 만난 이인수 총장이 첫 번째 인연이었습니다. 저는 상대가 맞선과 동시에 약혼을 서두르는 가운데 있었고, 이인수 총장은 어릴적부터 친구를 잘 안다며 절대 결혼하지 말라고 만류하며 친구보다 저를 위한 배려와 충고를 한다며 접근했습니다. 당시 24세의 저에게 이인수 총장은 30대에 이미 가정에 자녀가 둘이나 있었음에도 불행한 가정사와 저에 대한 마음과 진실을 호소하고 동정을 일으키며 수원대학교를 미끼로 관계의 고리를 만들어 갔습니다.
6. 이인수 총장은 결혼을 물론 유학도 가지 말 것과 수원대 입학하면 교수자리를 약속한다며 집요하게 매달렸습니다. 저에게 있어 이인수 총장은 오랜 사회생활을 해온 만큼 매우 세대차를 느끼는 어른이기에 인격을 신뢰했습니다. 그러나 곧 본래의 포악함이 드러나 견딜 수 없었습니다. 얼마안가 무수히 헤어지려 했으나 대항도 저항도 한계뿐이었고 스토커의 편집증 앞에 자포자기 심정으로 유일한 도피는 학업이었습니다. 한번 잘못 인연되어 여성으로 돌이킬 수 없는 일을 겪은 상태에서 어린나이 나이 많은 이인수 총장의 감정에 대한 판단이 미숙했던 저는 그 다중인격의 변덕과 폭력에 무방비였고 오직 상식과 보수적 기준에서 5년 내내 깊은 우울증과 자괴감에 원래의 환한 웃음을 단 한 번도 지은 기억이 없습니다. 저는 이인수 총장의 혼인빙자의 기망과 거짓을 상상 할 수 없었으며 진심을 믿었기 때문에, 막연한 콤플렉스와 불안감을 이해하려했고 오히려 이인수 총장의 어쩔 수 없는 현실에 대해 자격지심의 아킬레스 같은 아픈 곳을 건드리지는 않는 원칙을 지켰습니다.
7. 저는 세간에 화재가 된 “ 도가니:”란 영화를 지금껏 약자나 여성에 대한 가혹사건이나 기사조차 접하지 못하며 가슴이 뛰고 구토가 나오는 정서적 문제가 있기 때문에 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최근에 용기를 내어 ”도가니“ 영화를 보며, 방어력이 없는 무기력한 약자나 미숙한 대상에게 선으로 가면을 쓴 적나라한 이중성과 잔인성, 감추어진 인간의 폭력과 광기의 유린이 과거나 현재 이인수 총장 행각이 그대로였고 그 행태가 한 치도 다름이 없음에 충격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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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수원대 쓰레기 대학이었군요
학생들이 불쌍하네요
김무성 딸은 무슨과 교수인지 밝혀졌나요?
누군지 밝혀져서 개망신 당해야할텐데
수원대 홈피가면 나이와 김씨 찾으면 쉽게 알수 있을 듯.
수원대 총장 이인수는 남조선 방상훈 사돈이죠....
그리고 빵상과 김무성이는 외사촌-고종사촌간이죠.
인간이 아니무니다~!!! 개쉐들 일본가서 살아라~~ 훈장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