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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유혹> (350)세상의 기원-1
“싫어!” “벌려 봐.” “싫다니까!” “괜찮다니까!” 온통 깜깜하고 갑갑한 땅굴 같은 통로를 유미는 헤매고 있다. 게다가 바닥은 진흙 펄처럼 푹푹 발이 빠졌다. 여길 어떻게 빠져나가야 하나. 유미는 아득한 기분에 숨이 막혀왔다. 갈수록 더욱 캄캄한 암흑인데 숨은 더 가빠왔다. 여긴 도대체 어디일까? 끝도 없는 갱도일까? 세상의 끝일까? 마지막 숨을 내쉰다는 끔찍한 기분이 드는 순간, 갑자기 빛이 터졌다. 한 남자가 커다란 렌즈를 부착한 카메라를 얼굴에 들이대고 사진을 찍고 있다. 카메라 때문에 그의 얼굴은 보이지 않으나 목소리는 또렷했다. “바보야, 봐봐! 이게 바로 세상의 기원이야.” 카메라를 내린 남자는 활짝 웃으며 말했다. “뭐가 부끄러워? 여기가 바로 인류의 기원이 시작되는 위대한 문인데!” 남자는 이유진이었다. 너, 안 죽었어? 유미는 벌떡 일어나 앉았다. 아아, 꿈이었구나. 커튼 너머 늦겨울의 흐린 날씨가 연회색으로 희붐했다. 벌써 정오가 다 되어가는 시간이다. 일조량이 적은 파리의 겨울은 농담의 차이만 있을 뿐, 늘 수묵 담채화처럼 무채색이다. 왜 그런 꿈을 꾸었을까? 어제 오르세 미술관에서 그 그림, 귀스타브 쿠르베의 ‘세상의 기원(origine du monde)’이란 그림을 보고 왔기 때문일까? 그 그림은 알몸으로 다리를 벌리고 누운 여체의 음부를 적나라하게 그린 그림이었다. 10년 전 여름, 이유진은 유미와 오르세 미술관의 그 그림을 보고 와서 유미의 그곳을 카메라에 담았다. 그때 그날, 둘이서 실랑이를 벌이던 대화를 꿈 속에서 듣다니. 꿈에서 마치 거대한 여자의 질 속을 헤매는 것처럼 질척하고 어둡던 느낌이 되살아났다. 그리고 마지막에 여름 오후의 햇빛 속에서 카메라를 내리고 눈부시게 웃던 이유진의 얼굴도 생생하게 떠올랐다. 너무 현실적인 모습이어서 잠시 소름이 스치고 지나갔다. 그때 찍은 사진도 생생하게 기억났다. 쿠르베의 그림을 그대로 패러디했던 사진. 그때 유미는 유진이 찍은 자신의 그곳을 보고 어쩌면 여자들의 그 부분은 동서양이 이렇게 비슷한 걸까, 생각했다. 추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감탄할 만큼 아름답지도 않았다. 그러나 사진작가 유진은 기쁨과 만족에 들떠 있었다. “아, 정말 아름다운 오브제야.” “엉큼하긴.” “이곳이 바로 역사적인 장소 아니냐? 인류가 여기서 나오고 세상의 역사가 여기서부터 출발한 거잖아.” “맞는 말이긴 하지. 불어에서 몽드(monde)의 뜻이 ‘세상’도 되고 ‘사람’도 되니까. 남자들은 모두 세상 빛을 보게 해준 여자들에게 정말 늘 감사해야 해. 그러니까 여자가 남자보다 더 위대해.” “쿠르베는 어떻게 150년 전에 이런 혁명적인 발상을 한 거지?” “치이, 엄청난 재산가에다 바람꾼인 터키 대사의 주문을 받고 그렸다잖아. 그냥 자위용으로 부탁한 거 아닐까? 세상의 시초가 그곳으로부터 기원한다는 위대한 명분 아래 남자들은 그곳에서 나오는 것에는 관심 없고 오로지 그곳으로 들어가는 것에만 광분하잖아. 세상의 기원, 그런 거 찍으려면 산부인과 분만실 가야 되는 거 아냐? 이거, 자기도 자위용으로 찍은 거 아냐?” |
첫댓글 잘 보고 갑니다
♥ 늘 감사합니다 ♥
잘~~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