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아가다의 수필세계
이동민
김아가다의 수필세계를 읽기 위해서 그의 두 권의 수필집(희나리와 분이), 그리고 공동저자인 ‘앵무새 키우는 남자’를 읽었다.
대부분의 수필가들은 감성의 바탕에 유년, 고향, 어머니를 두었다. 글쓰기의 초기는 이러한 것들이 소재가 되어 있다. 유년의 기억이 그 작가의 수필세계를 이루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따라서 나도 수필작가의 수필세계를 알아보려면 그들의 유년과 고향부터 읽기를 하였다.
김아가다의 수필을 읽고 느낀 점은 유년이나 고향 이야기가 눈에 별로 뜨이지 않았다. 그는 시골을 고향으로 두지 않았다. 태어나서 자란 곳이 대구이니, 시골을 고향으로 둔 사람과는 감성이 다르리라. 그는 2012년에 월간 ‘한국수필’에 등단하였고, 이후 ‘수필세계’에도 등단하였다. 2016년에 첫 수필집 ‘희나리를 출간하였다. 수필 입문도, 수필집 발간도 비교적 늦었다. 그의 수필에도 긴긴 옛 지난날은 거의 실려 있지 않았다. 마치 그의 인생에서 많은 부분은 생략해 버린 듯이 인생 전부를 가지고 하나의 줄거리로 만들기는 부족해 보인다. 그래도 글의 틈새로 얼핏얼핏 옛 이야기도 비추고 있어서 미루어 복원해 보았다.
그의 첫 번째 수필집 희나리에 제일 먼저 실려 있는 글이 ‘꽃’이다. 꽃을 찬미하는 글이 아니고, 너무 일찍 시들어버리는 꽃의 운명을 안타까워하는 글이다. 수필 ‘꽃’에서 남편과 사별한 이야기가 나온다. 그의 수필은 남편 사별한 이후의 사건들을 아주 많이 다루었다. 김아가다의 수필세계는 6년 전의 그날부터 펼쳐진다고 보아야겠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살아온 여정이 결코 만만하지 않다. ‘꽃’은 그런 사실들을 이야기 한다. ‘꽃’에서 보여 준 만만하지 않았던 그의 삶이 수필세계를 형성하였다.
희나리의 머리말에 이렇게 썼다.
“네 영혼의 소리들이 쏟아져 나와 춤을 추고 있다. 진솔한 나의 알몸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 같아서 부끄럽기도 하지만 한 겹씩 나를 벗겨 내면서 사물을 바라보는 눈이 달라졌다. 나만의 시간이 아니고 우리 모두의 것이 될 수 있다는 객관적인 생각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고백의 문학이고, 성찰의 문학인 수필을 통해 삶의 질이 달라졌다고 할까.
수필은 나의 숨구멍이었다.”
여기서 그가 말하듯이 자신이 겪는 고통을 객관적으로 사고함으로, 다른 사람도 겪는 고통이다, 라고 성찰하면서 자신을 위로하는 뜻으로 읽어진다. 이렇게 생각함으로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는 치유의 방법이 된다는 뜻으로 읽어진다. 그렇다면 수필쓰기는 단순히 글쓰기가 아니고, 종교적인 의미까지 지니게 된다. 김아가다 작가는 수필을 자기의 숨구멍이라고 표현하였다. 왜 숨구멍이 되었을까. 자신의 속마음을 털어냄으로 치유의 효과도 가져왔다고 본다. 독백이고, 성찰이라고 한 작가의 말처럼, 그런 방식으로 자기치료를 하였다고 본다.
자기의 내면을 독백 형식으로 풀어내면 ‘진실’이 담길 수밖에 없다. 김아가다의 수필을 그런 관점에서 읽어보기로 하였다. 작품 ‘꽃’은 자기를 진실하게 드러냈다고 보여, 여기에 소개한다.
꽃
김 아가다
연분홍 드레스를 입은 꽃들의 모습이 화사하다. 그 중 길가 쪽에 맵시 좋은 꽃봉오리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사랑에 취한 듯 미소 머금은 연꽃이 고혹적이다. 행여 누가 볼까 살피면서 꽃을 꺾어 품에 안고 왔다.
그리고 딱 하루였다. 화병 속의 꽃은 하루 만에 고운 모습과 빛깔이 누렇게 변했다. 이승과 저승의 구릉을 오가듯 꽃 한 송이로 인해 기쁨과 서글픔의 혼돈이 왔다. 떨어진 꽃잎을 모아 불을 지폈다. 뽀얗게 피어오르는 연기 사이로 그의 모습이 그려졌다.
남편이 떠난 지 여섯 해가 되었다. 세상의 인연을 다 내려놓고 그가 떠난 날 뜨거운 불가마 앞에서 모든 것이 정리된 줄 알았다. 차안에서 피안으로 안내하는 장의사의 얼굴에 표정이 없었다.
“망자 떠나십니다. 인사 올리세요.”
꽃으로 맺은 인연 서른 해를 함께 했던 우리는 불 앞에서 그렇게 헤어졌다. 시든 꽃잎을 태우는 동안 불가마 속으로 뛰어 들어가던 그 장면이 왜 그리 가슴 따갑게 떠오르는지, 먼저 가서 기다리면 곧 뒤따라가겠다고 울부짖던 나는, 아직 이승의 삶에 묶여 서성이고 있다
꺾인 꽃은 자유롭지 못하다. 가정이라는 꽃병 속에 물을 부어주면 그 물로 살면서 한 번도 물 밖으로 나다닌 적이 없었다. 아내로 또 아이의 엄마로 맡은 소임을 충실하게 지켰지만 내 안의 나는 담 너머 세상이 궁금했다. 틈만 나면 깨금발로 바깥을 기웃거렸다. 깨진 사발만 보고 살았는지 여자와 사기그릇은 밖으로 돌리면 금이 생긴다고 주장한 남편이었다. 그건 사랑이 아니라 존재였다. 그의 존재가 없으면 좋겠다는 생각까지도 했다. 이제는 자유로워 졌지만, 그 구속이 사랑인 줄 알고 나니 그리움이 온몸을 휘감는다.
어디로 가야 할까. 목적 없는 이정표에 나를 맡긴다. 설마 잊었거니 했는데 아직 떠나보내지 못했나 보다. 어제도, 오늘도 닮은 사람을 찾아 헤매다가 소스라치게 놀라 돌아보니 내가 그를 붙들고 있다. 검은 머리 파뿌리 되도록 함께 살자 했던 혼인서약을 파기한 죄라면서 옭아매고 있다. 그 언약은 하늘에서도 풀렸다는데 왜 거머쥐고 있는지 모르겠다.
매달 말일이면 이승과 저승의 소통이 이루어진다. ‘딩동’ 스마트 폰의 알림은 유족연금이 들어왔다는 메시지이다. 하늘 은행에서 나에게 보내는 돈이다. 남편이 주는 돈만큼 편한 것이 있으랴. 내가 마음 편하게 쓸 수 있는 이십만 원은 다른 사람의 이백만 원보다 크다. 고맙다는 말을 하며 손에 쥔 전화기에 꾸벅 절을 한다.
잠을 잘 때도 그의 트렁크 팬티를 입는다. 가끔 집에 오는 동생이 뜨악한 눈으로 바라본다. 왜 그렇게 사느냐고 묻지만 궁색한 대답을 하고야 만다. 편해서 그냥 편해서 이렇게 산다고 했지만, 그가 내 곁에 머물러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남편이 아끼던 물건을 침대 머리맡에 두고 한 번씩 눈길을 준다. 언제라도 들고 나갈 준비가 된 가방이다. 금속으로 된 가방에는 카메라와 렌즈가 오밀조밀 주머니에 담겨있다. 그는 척척 자동으로 찍히는 디지털 카메라보다 아날로그를 좋아했다. 상황에 맞는 렌즈로 세상을 들여다보고 초점을 맞추며, 피사체를 조절하는 눈으로 세상에 머물다가 간 사람이다. 사진을 찍고 돌아오면, 렌즈를 닦고 장비를 정리하던 그의 흔적을 차마 지울 수 없어 그러안고 산다.
산사에서 만난 스님이 이제는 인연의 끈을 놓으라고 했다. 타고 남은 잿더미 속에 숨어 있는 추억의 조각들이 전부 공이고 허상이라 한다. 그의 카메라도, 검도를 즐겼던 목검도 또 불속으로 던지란 말인가. 움켜진 내 모습과 놓아야 하는 갈등이 천칭(天秤) 위에서 간당거린다.
단 하루 피었다가 시들어버린 꽃에 향내가 없다. 퇴색한 꽃잎이 내 모습이 아닐까 생각하니 허무하기 짝이 없다. 한 송이 꽃에 매료되어 웃고 울던 어리석음이 한 줌의 재로 남았을 뿐이다. 부질없는 욕심에 매달려 집착했던 나, 아무것도 아니었다. 실체없는 허상을 동경하면서 살아온 삶 그만 내려놓을까 한다. 그의 넋도 이제 보내 주리라. 비록 불의 인연으로 한 줌의 재가 되었을지라도 소멸이 아닌 소박한 한 송이 꽃으로 다시 피어나기를 소망한다.
-희나리, 김아가다. 수필세계사. 2016, 꽃 p12-15.-
첫댓글 김아가다님의 수필세계 잘 보았습니다.
저 역시 오래전 아가다님의 '희나리'와 '분이' 작품집을 정독했습니다만 아가다님의 수필세계, '꽃' 작품을 다시 대하니 또 다른 감동으로 다가옵니다.
이동민선생님!
좋은 작품 올려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이동민 선생님께서 김아가다님의 수필세계
소개글과 꽃 작품 감명깊게 읽었습니다.
감사드립니다.
아가다님의 수필세계를 이동민 선생님을 통해서 접하게 되니 새로운 감동이 밀려오네요
열정으로 삶을 살아가듯 글을 쓰는 자세도 같다고 생각합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한 사람의 일대기를 작품을 통해 유추해내는 일은
우리 작가들만의 영역이 아닐까 싶습니다
김아가다님을 조명하는 이동민 선생님의 시선을 따라가면서
누군가의 생애를 다시 들여다보는 일은
흥미롭고 또 겸허해집니다
이동민 선생님을 통해서 더 아름다운 감동이 깊게 다가옵니다.
김아가다님의 작품을 조명하는 선생님의 시선으로
따라가니 삶의 시선이 다르게 보이기 시작합니다.
글을 쓰는 자세나 삶을 살아가는 마음이 같은 것 같습니다.
선생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