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양 소쇄원에서 한참을 노닐다.
가을 정자기행의 백미는 누가 뭐래도 소쇄원이다.
광풍각은 공사중이라 들어가지 못하고,
제월당에 앉아서 이렇게 저렇게 노니는 것,
가끔씩 대나무 흔들리느 소리 귓전에 들리고,
담양 소쇄원潭陽 瀟灑園은 전라남도 담양군 남면 지곡리에 있는 조선시대 중종 때 사람인 양산보의 별서정원으로사적 제 304호로 지정되어 있다. 이 정원은 양산보梁山甫가 은사인 조광조가 기묘사화로 남곤 등의 훈구파에 몰리어 전라남도 능주로 유배되어 사약을 받고 죽자 세상의 뜻을 버리고 낙향하여 향리인 지석마을에 은거처을 마련한 뒤, 계곡을 중심으로 조영한 원림園林이다. 소쇄원의 ‘소쇄’는 본래 공덕장功德藏의〈북산이문北山移文〉에 나오는 말로서 깨끗하고 시원함을 의미하고 있으며, 양산보는 이러한 명칭을 붙인 정원의 주인이라는 뜻에서 자신의 호를 소쇄옹瀟灑翁이라 하였다. 이곳은 무등산의 서쪽 기슭에 있는 광주호의 상류에 위치하여 무등산을 정남쪽에 대하고 있으며, 뒤편에는 까치봉과 장원봉으로 이어지는 산맥이 동서로 병풍처럼 둘러져 있다. 또, 뒷산과 까치봉 사이의 골짜기를 흘러내리는 계류를 중심으로 하여 산기슭에 터를 잡은 소쇄원의 바로 앞에는 증암천이 동서 방향으로 흘러 광주호에 들어가고 있다.
마치 비갠 뒤 볕이 나듯이
정원의 평면적인 모습은 계류를 중심으로 하는 사다리꼴 형태이며 흙으로 새메움을 한 기와지붕의 직선적인 흙돌담이 외부와 경계를 이루고 있다. 전체적으로 볼 때, 계곡의 굴곡진 경사면들을 계단상으로 처리한 노단식 정원의 일종이지만, 구성면에서는 비대칭적인 산수원림이다. 약 1,800㎡의 면적을 갖는 소쇄원은 기능과 공간의 특색에 따라 애양단구역․오곡문구역․제월당구역․광풍각구역으로 구분할 수 있다. 애양단구역은 이 원림의 입구임과 동시에 계류 쪽의 자연과 첨경시설을 감상하면서 산책을 즐길 수 있는 공간이다. 애양단이란 김인후金인厚가 지은〈소쇄원사팔영瀟灑園四八詠〉가운데 있는 ‘양단동오陽壇冬午’라는 시제를 따서 송시열宋時烈이 붙인 이름이다. 왕대나무 숲속에 뚫린 오솔길을 따라서 올라오면, 입구 왼편 계류 쪽에 약 18m의 간격을 두고 두 개의 방지方池가 만들어져 있고, 과거에는 물레방아가 돌고 있었다. 이것은 장식용으로 오곡문 옆 계곡물이 홀대를 타고 내려와 위쪽 못을 채우고 그 넘친 물이 도랑을 타고 물레방아를 돌리게 되어 있어, 이것이 돌 때 물방울 튀기며 폭포가 되어 떨어지는 물의 약동을 건너편 광풍각에서 감상하도록 설계된 것이었다. 이쪽 옆에는 계류 쪽으로 튀어나온 대봉대라는 조그마한 축대 위에 삿갓지붕의 작은 모정이 있는데, 이것은 근래에 복원한 것이다. 오곡문구역은 오곡문 옆의 담밑 구멍으로 들어오는 계류와 그 주변의 넓은 암반이 있는 공간을 말한다. 계류의 물이 들어오는 수문 구실을 하는 담 아래의 구멍은 돌을 괴어 만든 높이 1.5m, 너비 1.8m와 1.5m의 크기를 갖는 두 개의 구멍으로 되어 있는데, 그 낭만적인 멋은 계류공간의 생김새와 잘 어울린다. 이와 비슷한 기법은 1100년대(숙종연간)의 이실총이 만든 경기도 부천의 척서정에서 볼 수 있다. 오곡문의 ‘오곡’이란 주변의 암반 위에 계류가 갈지자 모양으로 다섯 번을 돌아 흘러 내려간다는 뜻에어 얻어진 이름이다. 이 부근의 암반은 반반하고 넓어서 많은 사람들이 물가에 앉아서 즐기기에 넉넉한데, 1755년(영조 31)에 만들어진〈소쇄원도瀟灑園圖〉에, 한편에서는 바둑을 두고, 다른 한편에서는 가야금을 타는 모습이 묘사되어 있다. 제월당 구역은 오곡문에서 남서방양으로 놓여있는 직선도로의 위쪽부분을 말하는데, 주인을 위한 사적 공간이다. 제월당 앞의 마당은 보통의 농가처럼 비워져 있으며, 오곡문과의 사이에 마들어진 매대에는 여러 가지 꽃과, 나무들이 심어져 있었다. 광풍각구역은 제월당구역의 아래쪽에 있는 광풍각을 중심으로 하는 사랑방 기능의 공간이다. 광풍각 옆의 암반에는 석가산石假山이 있었는데, 이러한 조경방법은 고려시대의 정원에서 많이 볼 수 있는 것이다. 한편, 광풍각의 뒤쪽에 있는 동산을 복사동산이라 하여 도연명의 무릉도원을 재현하려고 하였다. 제월당의 ‘제월’과 광풍각의 ‘광풍’은 송나라의 황정견이 유학자 두돈이의 사람됨을 평하여 “흉회쇄락여광풍제월胸懷灑落如光風霽月 : 가슴의 품은 뜻의 맑고 맑음이 마치 비갠 뒤 볕이 나며 부는바람 같고, 맑은 날의 달빛과 같다”라고 한 데서 유래한 것이다. 양산보는 소쇄원을 매우 아껴서 “절대로 남에게 팔지 말 것이며 하나도 상함이 없게 할 것이며 어리석은 후손에게는 물려주지도 말라”라고 유언을 했다는데 소쇄원은 1983년 사적 제 304호로 지정되었다.
소쇄원은 계류를 중심으로 하여 좌우의 언덕에 복사나무, 배롱나무 등을 심어 철따라 꽃을 피우게 하였으며, 광풍각 앞을 흘러내리는 계류에는 인공폭포 등 자연과 인공이 오묘하게 조화되어 속세를 벗어난 신선의 경지를 방불케 하는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어 시인, 목객, 문사들의 발길이 그치지 않았던 곳이었으며, 그들이 남긴 시들이 현재까지 전해오고 있다. 이 정원은 경사면의 적절한 노단식 처리라든가 기능적인 공간구획, 대숲 속의 오솔길, 지형에 따라 변화 있는 담장지붕의 선, 담 밑에 뚫린 수문 등 낭만적이고 장식적인 조경으로 원림의 가치를 더욱 돋보이게 하며, 보길도의 부용동원림과 더불어 조선시대의 별서정원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렇게 또 가을이 가는구나.
2023년 11월 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