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순산
우사 불빛이 환하다
보름이나 앞당겨 낳은 첫배의
송아지 눈매가 생그럽다
바싹 추켜 올라간 소꼬릴 연신 얻어맞으며
얼굴 벌겋게 달아올라서,
새 목숨
힘겨이 받아내던 친구는
모래물집에 젖은 털을 닦아주며
우유 꼭지 물리는데
그 모습 이윽히 지켜본 어미 소가
아주 곤한 잠을 청하였다
2. 적멸
깃든 벌레를
오색딱따구리가 파먹고는
숨통 같은 구멍을 내놓자,
표고버섯이 부풀어올랐다
흉한 고사목에 넌출지며 감아든
보랏빛 칡꽃도 얼크러지고
그 나무 밑 감춰둔 상수리 한 알을
입에 문 채 죽은 청설모의
육탈된 흰 머리뼈 틈새로
참나무 움이 여릿하였다
어떤 죽음이 어떤 삶이든 유목의
먼 북방 대륙에서나 보이던 생몰의 조화가
예서 몇 발자국 안 떨어진,
내가 사는 집 근경의 산발치에서도
빈번히 목격되었다
3. 오래된 골목
이 골목에 이십 수년 살아도
가보지 않은 샛길들 많다 이리 굽고
저리 굽어서 한 치 앞을 분간 못하는
발길을 일러주는 애기보살 점집이 있고
앳된 창녀가 이따금 기대는
어슷하게 기운 녹슨 함석 문짝의
전등갓 깨어진 여인숙 불빛이 있고
늘 게슴츠레한 눈빛을 던지던 과수댁의
외상 점방이 있다 꽉 막힌 골목길이란 없다
막다른 끝에 누군가의 집이 있고
케케묵은 거기에 구뜰하게 세 들어 사는
헐값에도 팔 수 없는 싸구려 고물들,
불 꺼진 보일러 화통과 켜켜이 쌓인
빛 바랜 책장들을 저윽히 바라보면
체증 맺힌 명치께처럼 먹먹하고 벅차다
그래서, 그래서 뭐 어쩔 거냐면서도
저물도록 요란스런 고물장수의 목쉰
확성기 소리가 흔들어놓은 이 순간, 깜박하고
이내 꿈틀거리는 외등처럼
오래된 골목 샛길을 자꾸만
바장거리며 되돌아보는 것이다
4. 공밥
어머니 나 밥 먹이며
애써 가르치신 것 한 가지
마당 가운데 널어놓은 멍석에 곡식들 말려놓고,
우르르 몰려오는 햇봄의 갓 깨어난 연노랑 병아리를 쫓는 것도 쫓는 것이지만, 그 병아리 놓치지 않고 쏜살같이 급강하해서 한순간 낚아채 가는 솔개 쫓으라고, 나어린 손아귀에 작대기를 쥐여주곤 했다 세상에는 공밥 없다고, 어지간히도 언질하셨다
5. 중생
때깔 고운 저 연꽃 송이에
흐린 방죽이 일거에 화안하다
물소리 바람 소리 다 말라버린
지난 삼복더위 가뭄에
죽은 생쥐 뱃구레 썩는 데였다
구더기 떼 끓던 자리였다
- 슬그머니, 실천문학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