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년불규원(三年不窺園)
3년 동안 뜰을 보지 않았다는 뜻으로, 다른 어떤 것에도 한눈 팔지 않고 오로지 학문에만 힘쓰는 모습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이다.
三 : 석 삼(一/2)
年 : 해 년(干/3)
不 : 아닐 불(一/3)
窺 : 엿볼 규(穴/11)
園 : 동산 원(囗/10)
출전 :
*한서(漢書) 권56 동중서전(董仲舒傳)
*사기(史記) 권121 유림열전(儒林列傳) 동중서(董仲舒)
휘장을 내리고 독서하다는 뜻으로, 문을 걸어 잠그고 손님도 사절한 채 전심전력을 다해 공부하는 것을 가리키는 '하유독서(下帷讀書)'라는 고사를 남긴 동중서의 공부법을 나타내는 또 다른 성어다. 공부에 전념하느라 3년 동안 정원에도 나와보지 않았다는 동중서의 고학을 이렇게 표현했다.
훗날 불규원포(不窺園圃), 불규원정(不窺園井), 절규원(絶窺園), 불리전원(不履田園) 등 여러 형식으로 변용되어 공부에 전심전력하는 모습을 나타냈다. 도연명을 비롯한 많은 문인이 이 고사를 빌려 공부를 권하거나 격려하는 문장을 남겼다.
사기(史記) 권121 유림열전(儒林列傳) 동중서전(董仲舒傳)에서 유래하는 말이다. 한(漢)나라 경제(景帝) 때 박사(博士)였던 동중서(董仲舒)가 제자들에게 수업을 하였는데, 휘장을 내리고 강학(講學)하였기 때문에 제자 중에는 그의 얼굴을 한 번도 못 본 이도 있었다.
그의 서재 바로 옆에 예쁜 정원이 있었는데 늘 서재에서 공부하면서 3년 동안 한 번도 들여다보지 않았을 정도로[三年不窺園] 학문에 정진하였다. 모든 행동거지와 마음가짐을 예법에 따라 행하여 많은 사람들이 그를 스승으로 받들고 존숭하였다. 여기서 전하여 삼년불규원(三年不窺園)은 다른 어떤 것에도 한눈 팔지 않고 오로지 학문에만 힘쓰는 모습을 가리킨다.
삼년불규원(三年不窺園)
삼년 동안 자기 집 정원도 보지 않는다
기미독립선언서(己未獨立宣言書)의 민족대표 33인 가운데 유림(儒林) 대표는 한 사람도 들지 못했다. 여러 가지 이유야 있었지만, 어쨌든 유림에서는 크게 반성을 하고 다시 독자적으로 국가 독립을 위해서 무슨 일을 해보자고 의논하여, 유림(儒林)들이 '파리평화회의'에 한국의 독립을 청원하는 '파리장서(巴里長書)'를 보내기로 결정하였다.
이때 유림의 대표로 추앙된 분이 바로 면우 곽종석(郭鍾錫)선생인데, 조선(朝鮮) 말기 대학자이다. 산청군(山淸郡) 남사(南沙) 마을 출신이었는데, 어려서 집이 가난하였다. 그러나 부모들은 자식을 공부시키겠다는 일념으로 글방에 다니게 되었다.
어느 날 면우가 글방에서 공부를 마치고 해질 무렵에 집으로 돌아와서 보니 닭장의 문이 아직 닫혀 있지 않았다. 산골 마을에서 밤에 닭장문을 닫지 않으면 살쾡이 등 야생동물들이 닭을 잡아먹는 일이 발생한다. 그래서 어린 면우는 닭장문을 자진해서 닫고 들어가려고 하였다. 그 어머니가 그 광경을 보고서 부지깽이로 쫓아내며, “누가 너더러 닭장문 닫는 일에 신경 쓰라고 하더냐? 글공부에 마음을 다 쏟아도 될까말까 한데”라고 꾸짖었다.
무슨 일을 이루려고 하면, 그 일에 전심전력(全心全力)해야지 대충해서는 이루어지는 일이 없다. 공부뿐만 아니라 회사 경영이나 농삿일 등 모든 것이 다 그렇다. 이름난 외과의사 한 분이 있었는데, 정치판에서 기웃거리다가 다시 병원으로 돌아와 수술을 하려고 하니, 손이 떨려서 할 수가 없어서 의사라는 직업을 그만두었다.
옛날 한(漢)나라 때의 대표적인 유학자인 동중서(董仲舒)는 어려서 집이 부유하고 장서(藏書)가 많았는데, 천부적으로 글 읽기를 좋아하여 삼 년 동안 자기 서재 바깥에 있는 정원으로 한 번 눈길을 준 적도 없다고 한다. 그는 또 자기가 늘 타고 다녔던 말이 암말인지 수말인지도 모르고 지냈다고 한다. 그만큼 글공부에 전념했다는 것이다. 동중서는 끊임없이 글을 읽어 마침내 학문을 크게 이루었고, 명성이 사방에 알려지자 추천(推薦)을 받아 춘추박사(春秋博士)가 되었다.
한나라 무제(武帝)의 신임을 받았는데, 무제에게 유학만 숭상하고 나머지 여러 학파는 다 축출하라고 건의하였다. 무제가 그의 건의를 받아들여 유학을 국교(國敎)로 하니, 유학의 위상(位相)은 크게 높아졌고. 그 이후 유학은 확고한 지위를 구축하게 되었다. 이는 전적으로 동중서의 공이다.
그리고 '삼강오륜(三綱五倫)' 가운데서 '삼강'이라는 것을 동중서가 구상해 내었고, '하늘과 우리 인간은 하나다'라는 주장을 편 '천인합일(天人合一)'사상도 동중서에 의해서 창시되었고. 하늘의 견책과 하늘의 포상이라는 이런 개념도 동중서가 창안해낸 발상이었다.
한 개인이 근면하게 공부한 결과. 그 자신의 운명은 물론 인류 역사까지도 바꿀 수 있을 정도로 큰 영향을 끼쳤다. 사람은 누구나 정신을 집중하여 노력하면, 얼마든지 위대(偉大)한 인물이 될 수 있고, 산만(散漫)한 생활을 하고 게으름을 피우면, 끝없이 추락할 수 있다. '마음을 오로지 하고 뜻을 다한다'는 뜻인 '전심치지(專心致志)'란 말이 이 말과 유사(類似)한 말이라고 할 수 있다.
독서와 권학문
평소에 독서를 많이 하는 사람치고 성공하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다. 한권의 책을 읽고 타인의 생각과 경험, 지식 등을 빠르면 몇 시간, 길게는 며칠 만에 攄得(터득)할 수 있게 해 주는 것은 독서가 우리에게 주는 최고의 선물이자 축복이다.
한글을 창제한 세종대왕은 지독한 독서광이었다. 세종대왕의 위대한 한글 창제도 독서정신에 기인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역사상 가장 창의적인 CEO로 평가 받는 애플의 스티브 잡스도 잘 알려진 독서광이었고 하버드 대학 졸업장보다 더 소중한 것이 ‘책 읽는 습관’이라고 말한 빌게이츠 또한 독서광인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나폴레옹 또한 전쟁터에 나아가면서 수레에 책을 싣고 말 위에서 책을 읽었다는 것은 유명한 이야기이다.
독서습관이 ‘부자와 가난한자’를 만든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부자 되는 습관’의 저자 토머스 콜리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부자와 가난한 사람은 일상습관이 다르다’고 한다. 그는 223명의 부자와 128명의 가난한 사람을 대상으로 ‘습관’을 조사했는데 부자와 가난한자는 뚜렷한 차이를 보였다는 것이다. 부자들은 매일 30분 이상씩 책을 읽는다는 대답이 88%에 달한 반면, 가난한 사람들은 2%에 불과했다는 점이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책을 쓴 사람과 책 속의 사람들의 생각과 느낌을 함께 나누며 지식과 정보를 얻는 것이다. 즉 좋은 책을 읽는 것은 동서고금(東西古今)을 통해서 역사상 가장 뛰어난 사람들과 서로 마주 앉아 대화를 나누는 것과 같다. 역사적으로 위대한 사람, 성공한 사람, 부자인 사람들의 공통점은 대부분 독서광이었다.
독서는 타인의 지식에 자신의 경험을 융합해 시너지 효과를 창출하는 것이다. 좋은 책을 만나는 것은 좋은 벗을 만나는 즐거움과 같다. 또한 학문을 권장하는 것은 목적에 맞는 책을 많이 읽는 것이다.
다음은 중국 북송 인종 때의 詞(사)의 대가 유둔전(柳屯田, 990∼1050)과 송나라 재상이자 문필가로 당송팔대가의 한사람인 왕안석(王安石, 1021∼1086)의 권학문(勸學文)을 함께 음미(吟味)해볼까 한다. 유둔전(柳屯田)의 권학문(勸學文)부터 살펴보자.
父母養其子而不敎 是不愛其子也(부모양기자이불교 시불애기자야)
부모가 그 자식을 기르면서 가르치지 않으면 그것은 그 자식을 사랑하지 않는 것이다.
雖敎而不嚴 是亦不愛其子也(수교이불엄 시역불애기자야)
비록 가르친다고 하더라도 엄하지 않는다면 그것도 역시 자식을 사랑하지 않는 것이다.
父母敎而不學 是子不愛其身也(부모교이불학 시자불애기신야)
부모가 가르쳐도 배우지 않으면 그것은 자식이 그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것이다.
雖學而不勤 是亦不愛其身也(수학이불근 시역불애기신야)
비록 배운다고 하더라도 부지런하지 않으면 그것도 역시 그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것이다.
是故養子必敎 敎則必嚴(시고양자필교 교즉필엄)
그러므로 자식을 기르면 반드시 가르쳐야 하고 가르친다면 반드시 엄해야 하며,
嚴則必勤 勤則必成(엄즉필근 근즉필성)
엄하다면 반드시 부지런할 것이고 부지런하다면 반드시 이룰 것이다.
學則庶人之子爲公卿 不學則公卿之子爲庶人(학즉서인지자위공경 불학즉공경지자위서인)
배우면 평민의 자식이라도 공경이 되고 배우지 않으면 공경의 자식이라도 평민이 된다.
다음은 왕안석(王安石) 권학문(勸學文)이다.
讀書不破費 讀書萬倍利(독서불파비 독서만배리)
독서에는 비용이 들지 않고 독서를 하면 만 배의 이로움이 있다.
書顯官人才 書添君子智(서현관인재 서첨군자지)
책은 사람의 재능을 드러내고 책은 군자의 지혜를 더해 준다.
有卽起書樓 無卽致書櫃(유즉기서루 무즉치서궤)
여유가 있거든 서재를 짓고 여유가 없다면 책궤라도 만들라.
窓前看古書 燈下尋書義(창전간고서 등하심서의)
창가에서 옛글을 보고 등불 아래서 글 뜻을 찾으라.
貧者因書富 富者因書貴(빈자인서부 부자인서귀)
가난한 사람은 책으로 부자가 되고 부자는 책으로 귀하게 된다.
愚者得書賢 賢者因書利(우자득서현 현자인서리)
어리석은 사람은 글을 통해 현명하게 되고 어진 사람은 글을 통해 이롭게 될 것이다.
只見讀書榮 不見讀書墜(지견독서영 불견독서추)
글만 읽더라도 영화 누리는 것은 보았지만 독서해서 실패한 일은 보지 못했다.
賣金買書讀 讀書買金易(매금매서독 독서매금이)
황금을 팔아 책을 사서 읽으라 독서하면 황금을 사기 쉬워진다.
好書卒難逢 好書眞難致(호서졸난봉 호서진난치)
좋은 책은 만나기 어렵고 좋은 책은 참으로 만들기도 어렵다.
奉勸讀書人 好書在心記(봉권독서인 호서재심기)
책 읽는 이에게 받들어 권하노니 좋은 글은 마음에 기억해 두라.
어느 소설가는 ‘책을 읽지 않는 사람은 한 번의 인생을 살지만 책을 읽는 사람은 여러 번의 인생을 산다’고 했다. 평소 모르는 것이 있으면 늘 배우고 독서하는 즐거움을 가슴으로 느껴보자.
자식 교육
養子不敎父之過, 訓導不嚴師之惰.
父敎師嚴兩無外, 學文無成子之罪.
자식을 가르치지 않음은 아비의 허물이요, 가르침이 엄하지 않다면 스승의 게으름이다. 아비는 가르치고 스승은 엄한데도 학문을 이루지 못함은 자식의 죄다.
북송(北宋)시대 재상 사마광의 '권학문' 중 첫 부분이다. 자식을 가르치는 건 아버지의 의무고, 스승은 엄해야 한다는 것이다.
재산 때문에 골육상쟁을 초래하는 보도를 종종 접한다. 어떻게 해서 이런 패륜행위가 일어나는지 개탄하며 자식 교육을 생각한다.
우리 사회는 교육열이 높다. 부모들은 자식 교육을 위해 엄청난 돈을 쏟아붓고 있다. 이런 교육열이 한국의 성장을 뒷받침해 왔다고 본다. 그러나 요즘은 교육이 도를 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대학입시는 전쟁터로, 학교와 학원은 지식을 사고파는 장터로, 스승은 지식을 파는 사람이 되고 있다. 스승이 엄격해질 수 없다.
우리는 19세기에도 교육에 힘을 쏟았다. 그러나 그 내용이 실용적이지 못해 시대 흐름을 따라가지 못했다. 그래서 나라를 잃었다. 무엇을 가르치느냐가 중요하다. 지금은 실용이 지나쳐서 기능적인 교육, 즉 입시와 취업을 위한 공부에 치중하고 있다.
분업도 지나친 듯하다. 자식 교육은 학교나 학원에 떠맡기고, 부모는 돈만 내면 된다고 생각한다. 이런 상황에서 도덕 교육이 제대로 될 리가 없다. 도덕 교육의 일환으로 봉사활동 등에 가점을 주고 있으나, 입시를 위한 점수 따기가 되고 있다.
유대인은 모세5경 등 율법을 자식에게 가르침으로써 유대인의 정체성을 유지한다. 율법은 바로 도덕률이다. 수천년간 나라 없이도 민족을 지탱할 수 있었던 비결이 도덕 교육에 있는 것이다.
삼성 현대 같은 거대한 조직이 가능했던 것도 ‘도덕과 예’라는 교육이 기저에 있어서가 아닐까. 상사가 마음에 안 들어도 대들지 않고, 전체적인 분위기를 맞추려는 노력도 ‘예의 힘’이 아닐까.
우리 전통교육은 착하게 사는 걸 중시했다. 명심보감, 소학 등은 모두 도덕과 관계가 있다. ‘베푼 집안에 경사가 있다(積善之家 必有餘慶)’는 말이나 인과응보의 교리를 철석같이 믿었다. 제삿밥도 나눠 먹었고 잔치는 베푸는 장소로 생각했다. 생활 속에 도덕 교육이 배어 있었다.
부모의 역할이 필요하다. 도덕은 모범을 보이는 게 중요하기 때문이다. 스승이 엄할 수 있는 환경도 부모가 조성해 줘야 한다. 밥상머리 교육부터 시작해야겠다. 가훈도 정해 보자. 패륜문제가 남의 일 같지 않다.
학문을 권장하는 이유
사람으로 태어나 배운다는 것은 죽는 날까지 계속되어야 하는 과제이다. 나날이 발전하여 깊고 넓어진 학문을 정해진 짧은 시간 내에 모두를 배운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렇다고 지레 포기할 수는 없다. 그래서 평생교육이라 하여 각자의 개성에 맞추어 전문화, 취미, 교양, 여가선용 등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이 시행되고 있다. 100세 시대의 도래를 앞든 시점에서 그 필요성은 점차 증가하는 추세이다.
살아가면서 자주 듣게 되는 말 가운데는 “아는 만큼 보인다.” 혹은 “사람은 원하지 않는 것을 배울 수 없다.”라든가, “보는 대로 얻는다(what you see is what you get).” 또는 “알아야 면장을 하지”라는 말들로 배워야 할 이유를 잘 설명해 주고 있다.
비슷한 것으로 명심보감 성심편 상에 “하나의 일을 경험하지 못하면 하나의 지혜가 자라나지 못한다(不經一事 不長一智/불경일사 부장일지)”라 하였다. 그리고 근학편에 “태공이 말하길, 사람이 배우지 아니하면 어둡고 어두운 밤길을 가는 것과 같다(太公曰 人生不學 如冥冥夜行/태공왈 인생불학 여명명야행)”하였습니다.
학교에 다닐 때는 왜 그리도 공부하기가 싫었는지 모르겠다. 책상에 앉아 있는 시간보다는 밖으로 나돌아 다니는 시간이 더 많았다. 그렇다고 특별한 놀이나 학습에 도움이 되는 일도 없었지만, 자연 그대로의 산천이 모두 자연학습장이요, 친구들과 어울려 뛰노는 일들이 강한 체력과 우정을 돈독하게 만드는 산교육이었음을 뒤늦게 깨달게 된다. 나이 드신 분들이 학교에 다니지 못했던 한을 풀기 위해 초등학교에 입학하여 한글을 배우는 장면을 TV화면으로 보고 있노라면 가슴 한편이 뭉클해지며 자연스레 숙연해 진다. 저런 열정을 가지고 학교를 다녔는가 하는 반성과 함께.
학문에 뜻을 두는 나이를 논어에서는 15세로 하고, 서른이면 학문과 지조가 굳어진다고 하였다. 주자는 “학문과 독서에 있어서는 권태와 번뇌를 참아야 한다.”고 하였다. 학문하는 뜻을 괴테는 “이 지구상에는 아직도 큰 사업을 일으킬 여지가 있다. 그러나 나에게는 일하고 공부하는 것이 전부이다. 내가 원하는 것은 스스로의 지배력이지 명예가 아니다.”라고 천명하였다.
명심보감 권학편에 “주자가 말하길, 오늘 배우지 아니하고서 내일이 있다고 말하지 말며, 올해에 배우지 아니하고서 내년이 있다고 말하지 말라. 날과 달은 가서 세월은 나를 위해 더디 가지 않는다. 아! 늙었도다. 이 누구의 허물인고”하였고,
朱子曰: 勿謂今日不學而有來日 勿謂今年不學而有來年 日月逝矣 歲不我延 嗚呼老矣 是誰之愆.
(주자왈 물위금일불학이유내일 물위금년불학이유내년 일월서의 세불아연 오호노의 시수지건)
근학편에 “주문공이 말하길, 집이 만약 가난하더라도 가난으로 학문을 폐해서는 안 되고, 집이 만약 부유하더라도 부유함을 믿고 학문을 게을리 해서는 안 되는 것이니, 가난한 자가 부지런히 배우면 몸을 세울 수 있고, 부유한 자가 부지런히 배운다면 이름이 빛나고 영화로울 것이다. 오직 배운 자가 현달한 것을 보았으며, 배운 자가 성취하지 못하는 것을 보지 못하였다. 배움은 곧 몸의 보배요, 학자는 세상의 보배다. 고로 배우면 군자가 되고, 배우지 않으면 소인이 되니, 후에 배우는 자는 마땅히 각각 힘써야 한다”하였다.
朱文公曰: 家若貧 不可因貧而廢學 家若富 不可恃富以怠學 貧若勤學 可以立身 富若勤學 名乃光榮 惟見學者顯達 不見學者無成 學者 乃身之寶 學者 乃世之珍 是故 學則乃爲君子 不學則爲小人 後之學者 宜各勉之.
(주문공왈 가약빈 불가인빈이폐학 가약부 불가시부이태학 빈약근학 가이입신 부약근학 명내광영 유견학자현달 불견학자무성 학자 내신지보 학자 내세지진 시고 학즉내위군자 불학즉위소인 후지학자 의각면지)
오늘에 할 일을 내일로 미루지 말라는 말이 있다. 하루하루 미루다 보면 평생이 다가도 하지 못 한다. 따라서 아무리 가난하여 먹고 살기에 급급하다 하여도 공부를 포기한다면 자신이 현재에 겪고 있는 힘든 상황을 벗어나기 힘들다. 인생에서 일 이년의 지연은 그리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더 큰 문제는 완전히 포기하는 것이다. 가난하고, 어려우며, 힘들 때일수록 공부를 포기하여서는 안 된다. 미래의 희망과 꿈을 성취하기 위해서는 하나라도 더 배워야 한다. 배움은 꿈에 날개를 달아주며, 희망에 메시지를 주기 때문이다.
배움도 시기가 있다고 한다. 나이가 들어 배우기보다는 혈기왕성한 청소년기에 배우는 것이 효과적이고 바람직하다. 학문에 정진하지 못하고 한눈을 팔 수도 있는, 모든 것에 대한 호기심과 달콤한 유혹에 빠지기 쉬운 취약한 때이기도 하다. 인내심과 절제능력이 많이 부족한 때이기도 하다. 반면에 무모하게 보이지만 미지에 대한 모험과 도전을 망설이지 않게 하기도 한다.
길고 영원할 것 같지만 젊음은 짧아 휭 하니 지나간다. 흔한 말로 '눈 깜빡할 새'라 표현하지 않는가? 그렇다고 “노세노세 젊어서 놀아 늙어지면 못 노나니”하라는 말은 아니다. 늙어서 한탄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누구의 잘못도 아닌 자신의 잘못인 걸.
배우지 못하면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로 들어도 알지 못하며, 생각은 있어도 말로 표현함이 서툴러 정확한 의사전달이 되지 않아 손해를 보게 된다. 일생을 어두운 밤길을 걷듯이 더듬거리고, 답답한 속내를 어디에다 하소연도 못하고 속으로 삭혀야 한다. 어찌 사람으로 살아가는 모습으로 보이겠는가? 그래서 배워야 합니다.
▶️ 三(석 삼)은 ❶지사문자로 弎(삼)은 고자(古字)이다. 세 손가락을 옆으로 펴거나 나무 젓가락 셋을 옆으로 뉘어 놓은 모양을 나타내어 셋을 뜻한다. 옛 모양은 같은 길이의 선을 셋 썼지만 나중에 모양을 갖추어서 각각의 길이나 뻗은 모양으로 바꾸었다. ❷상형문자로 三자는 '셋'이나 '세 번', '거듭'이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三자는 나무막대기 3개를 늘어놓은 모습을 그린 것이다. 고대에는 대나무나 나무막대기를 늘어놓은 방식으로 숫자를 표기했다. 이렇게 수를 세는 것을 '산가지(算木)'라 한다. 三자는 막대기 3개를 늘어놓은 모습을 그린 것이기 때문에 숫자 3을 뜻하게 되었다. 누군가의 호의를 덥석 받는 것은 중국식 예법에 맞지 않는다. 그래서 중국에서는 최소한 3번은 거절한 후에 상대의 호의를 받아들이는 문화가 있다. 三자가 '자주'나 '거듭'이라는 뜻으로 쓰이는 것도 이러한 문화적 배경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三(삼)은 셋의 뜻으로 ①석, 셋 ②자주 ③거듭 ④세 번 ⑤재삼, 여러 번, 몇 번이고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석 삼(叁)이다. 용례로는 세 해의 가을 즉 삼년의 세월을 일컫는 삼추(三秋), 세 개의 바퀴를 삼륜(三輪), 세 번 옮김을 삼천(三遷), 아버지와 아들과 손자의 세 대를 삼대(三代), 한 해 가운데 셋째 되는 달을 삼월(三月), 스물한 살을 달리 일컫는 말을 삼칠(三七), 세 째 아들을 삼남(三男), 삼사인이나 오륙인이 떼를 지은 모양 또는 여기저기 몇몇씩 흩어져 있는 모양을 일컫는 말을 삼삼오오(三三五五), 삼순 곧 한 달에 아홉 번 밥을 먹는다는 뜻으로 집안이 가난하여 먹을 것이 없어 굶주린다는 말을 삼순구식(三旬九食), 오직 한가지 일에만 마음을 집중시키는 경지를 일컫는 말을 삼매경(三昧境), 유교 도덕의 바탕이 되는 세 가지 강령과 다섯 가지의 인륜을 일컫는 말을 삼강오륜(三綱五倫), 날마다 세 번씩 내 몸을 살핀다는 뜻으로 하루에 세 번씩 자신의 행동을 반성함을 일컫는 말을 삼성오신(三省吾身), 서른 살이 되어 자립한다는 뜻으로 학문이나 견식이 일가를 이루어 도덕 상으로 흔들리지 아니함을 이르는 말을 삼십이립(三十而立), 사흘 간의 천하라는 뜻으로 권세의 허무를 일컫는 말을 삼일천하(三日天下), 세 사람이면 없던 호랑이도 만든다는 뜻으로 거짓말이라도 여러 사람이 말하면 남이 참말로 믿기 쉽다는 말을 삼인성호(三人成虎), 형편이 불리할 때 달아나는 일을 속되게 이르는 말을 삼십육계(三十六計), 하루가 삼 년 같은 생각이라는 뜻으로 몹시 사모하여 기다리는 마음을 이르는 말을 삼추지사(三秋之思), 이러하든 저러하든 모두 옳다고 함을 이르는 말을 삼가재상(三可宰相), 삼 년 간이나 한 번도 날지 않는다는 뜻으로 뒷날에 웅비할 기회를 기다림을 이르는 말을 삼년불비(三年不蜚), 세 칸짜리 초가라는 뜻으로 아주 보잘것 없는 초가를 이르는 말을 삼간초가(三間草家), 봉건시대에 여자가 따라야 했던 세 가지 도리로 어려서는 어버이를 시집가서는 남편을 남편이 죽은 후에는 아들을 좇아야 한다는 것을 이르는 말을 삼종의탁(三從依托), 키가 석 자밖에 되지 않는 어린아이라는 뜻으로 철모르는 어린아이를 이르는 말을 삼척동자(三尺童子), 세 사람이 마치 솥의 발처럼 마주 늘어선 형상이나 상태를 이르는 말을 삼자정립(三者鼎立), 세 칸에 한 말들이 밖에 안 되는 집이라는 뜻으로 몇 칸 안 되는 오막살이집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삼간두옥(三間斗屋), 가난한 사람은 농사 짓느라고 여가가 없어 다만 삼동에 학문을 닦는다는 뜻으로 자기를 겸손히 이르는 말을 삼동문사(三冬文史), 삼생을 두고 끊어지지 않을 아름다운 언약 곧 약혼을 이르는 말을 삼생가약(三生佳約), 세 마리의 말을 타고 오는 수령이라는 뜻으로 재물에 욕심이 없는 깨끗한 관리 즉 청백리를 이르는 말을 삼마태수(三馬太守), 세 치의 혀라는 뜻으로 뛰어난 말재주를 이르는 말을 삼촌지설(三寸之舌), 얼굴이 셋 팔이 여섯이라는 뜻으로 혼자서 여러 사람 몫의 일을 함을 이르는 말을 삼면육비(三面六臂), 사귀어 이로운 세 부류의 벗으로서 정직한 사람과 성실한 사람과 견문이 넓은 사람을 이르는 말을 삼익지우(三益之友), 세 가지 아래의 예라는 뜻으로 지극한 효성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삼지지례(三枝之禮), 머리가 셋이요 팔이 여섯이라 함이니 괴상할 정도로 힘이 엄청나게 센 사람을 이르는 말을 삼두육비(三頭六臂), 세 번 신중히 생각하고 한 번 조심히 말하는 것을 뜻하는 말을 삼사일언(三思一言) 등에 쓰인다.
▶️ 年(해 년/연, 아첨할 녕/영)은 ❶형성문자로 禾(화)는 벼, 음(音)을 나타내는 人(인) 또는 千(천)은 많음을 나타낸다. 年(연)은 가을에 많은 수확이 있음, 익다, 나중에 벼가 자라는 기간에서 연월(年月)의 해란 뜻으로 쓰고, 익다의 뜻은 稔(임)으로 쓴다. ❷형성문자로 年자는 '해'나 '나이', '새해'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年자는 干(방패 간)자가 부수로 지정되어 있지만 '방패'와는 아무 관계가 없다. 年자는 禾(벼 화)자와 人(사람 인)자가 결합한 것이기 때문이다. 年자의 갑골문을 보면 人자 위로 禾자가 그려져 있었다. 이것은 볏단을 등에 지고 가는 사람을 표현한 것이다. 볏단을 등에 지고 간다는 것은 수확을 마쳤다는 뜻이다. 농부들에게 한 해의 마무리는 당연히 추수가 끝나는 시점일 것이다. 그래서 年자는 한해가 마무리되었다는 의미에서 '해'나 '새해'라는 뜻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 年(년, 녕)은 ①해 ②나이 ③때, 시대(時代) ④새해, 신년 ⑤연령(年齡) ⑥잘 익은 오곡(五穀) ⑦콧마루 ⑧사격의 하나 ⑨사람의 이름 ⑩익다 ⑪오곡(五穀)이 잘 익다 그리고 ⓐ아첨하다(녕)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한 해 동안을 연간(年間), 한해의 마지막 때를 연말(年末), 새해의 첫머리를 연초(年初), 일년 단위로 정하여 지급하는 봉급을 연봉(年俸), 해의 첫머리를 연두(年頭), 십 년 단위로 햇수를 셀 때 쓰는 말을 연대(年代), 사람이나 생물이 세상에 난 뒤에 살아온 횟수로 나이의 높임말을 연세(年歲), 직장에서 직원들에게 1년에 일정 기간씩 주는 유급 휴가를 연가(年暇), 지나가는 날이나 달이나 해를 연화(年華), 해마다 하게 되어 있는 관례를 연례(年例), 그 해의 안 또는 한 해 동안을 연중(年中), 한 해의 마지막 때를 연모(年暮), 지난해를 작년(昨年), 올해의 다음 해를 내년(來年), 열 살 안팎의 어린 나이를 충년(沖年), 매해나 하나하나의 모든 해를 매년(每年), 앞으로 남은 인생을 여년(餘年), 곡식이 잘 되고도 잘 여무는 일 또는 그런 해를 풍년(豐年), 완전히 성숙하지도 않고 아주 어리지도 않은 사내 아이를 소년(少年), 평상시의 해를 예년(例年), 한 해의 마지막 때와 새해의 첫머리를 아울러 이르는 말을 연말연시(年末年始), 한 해 동안 하루도 쉬는 일이 없음을 일컫는 말을 연중무휴(年中無休), 풍년이 들어 백성이 즐거워 함을 이르는 말을 연풍민락(年豐民樂), 세월이 매우 오래다는 말을 연구월심(年久月深), 나이가 젊고 한창 성함을 일컫는 말을 연부역강(年富力强), 나이가 많거니와 덕도 아울러 갖춤을 일컫는 말을 연덕구존(年德俱存), 백 년을 기다린다 해도 황하의 흐린 물은 맑아지지 않는다는 뜻으로 오랫동안 기다려도 바라는 것이 이루어질 수 없음을 이르는 말을 백년하청(百年河淸), 권세는 10년을 넘지 못한다는 뜻으로 권력은 오래가지 못하고 늘 변함 또는 영화는 일시적이어서 계속되지 않음을 일컫는 말을 권불십년(權不十年), 백년을 두고 하는 아름다운 언약이라는 뜻으로 부부가 되겠다는 약속을 일컫는 말을 백년가약(百年佳約), 부부가 서로 사이좋고 화락하게 같이 늙음을 이르는 말을 백년해로(百年偕老), 세상일에 미혹되지 않는 나이라는 뜻으로 마흔 살을 이르는 말을 불혹지년(不惑之年), 천명을 알 나이라는 뜻으로 나이 오십을 이르는 말을 지명지년(知命之年), 삼 년 간이나 한 번도 날지 않는다는 뜻으로 뒷날에 웅비할 기회를 기다림을 이르는 말을 삼년불비(三年不蜚), 언제나 깍듯하게 대해야 하는 어려운 손님이라는 뜻으로 사위를 두고 이르는 말을 백년지객(百年之客), 벽을 향하고 아홉 해라는 뜻으로 한 가지 일에 오랫동안 온 힘을 쏟음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을 면벽구년(面壁九年), 냄새가 만 년에까지 남겨진다는 뜻으로 더러운 이름을 영원히 장래에까지 남김을 일컫는 말을 유취만년(遺臭萬年) 등에 쓰인다.
▶️ 不(아닐 부, 아닐 불)은 ❶상형문자로 꽃의 씨방의 모양인데 씨방이란 암술 밑의 불룩한 곳으로 과실이 되는 부분으로 나중에 ~하지 않다, ~은 아니다 라는 말을 나타내게 되었다. 그 때문에 새가 날아 올라가서 내려오지 않음을 본뜬 글자라고 설명하게 되었다. ❷상형문자로 不자는 '아니다'나 '못하다', '없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不자는 땅속으로 뿌리를 내린 씨앗을 그린 것이다. 그래서 아직 싹을 틔우지 못한 상태라는 의미에서 '아니다'나 '못하다', '없다'라는 뜻을 갖게 되었다. 참고로 不자는 '부'나 '불' 두 가지 발음이 서로 혼용되기도 한다. 그래서 不(부/불)는 (1)한자로 된 말 위에 붙어 부정(否定)의 뜻을 나타내는 작용을 하는 말 (2)과거(科擧)를 볼 때 강경과(講經科)의 성적(成績)을 표시하는 등급의 하나. 순(純), 통(通), 약(略), 조(粗), 불(不)의 다섯 가지 등급(等級) 가운데 최하등(最下等)으로 불합격(不合格)을 뜻함 (3)활을 쏠 때 살 다섯 대에서 한 대도 맞히지 못한 성적(成績) 등의 뜻으로 ①아니다 ②아니하다 ③못하다 ④없다 ⑤말라 ⑥아니하냐 ⑦이르지 아니하다 ⑧크다 ⑨불통(不通; 과거에서 불합격의 등급) 그리고 ⓐ아니다(불) ⓑ아니하다(불) ⓒ못하다(불) ⓓ없다(불) ⓔ말라(불) ⓕ아니하냐(불) ⓖ이르지 아니하다(불) ⓗ크다(불) ⓘ불통(不通: 과거에서 불합격의 등급)(불) ⓙ꽃받침, 꽃자루(불)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아닐 부(否), 아닐 불(弗), 아닐 미(未), 아닐 비(非)이고,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옳을 가(可), 옳을 시(是)이다. 용례로는 움직이지 않음을 부동(不動), 그곳에 있지 아니함을 부재(不在), 일정하지 않음을 부정(不定), 몸이 튼튼하지 못하거나 기운이 없음을 부실(不實), 덕이 부족함을 부덕(不德), 필요한 양이나 한계에 미치지 못하고 모자람을 부족(不足), 안심이 되지 않아 마음이 조마조마함을 불안(不安), 법이나 도리 따위에 어긋남을 불법(不法), 어떠한 수량을 표하는 말 위에 붙어서 많지 않다고 생각되는 그 수량에 지나지 못함을 가리키는 말을 불과(不過), 마음에 차지 않아 언짢음을 불만(不滿), 편리하지 않음을 불편(不便), 행복하지 못함을 불행(不幸), 옳지 않음 또는 정당하지 아니함을 부정(不正), 그곳에 있지 아니함을 부재(不在), 속까지 비치게 환하지 못함을 이르는 말을 불투명(不透明), 할 수 없거나 또는 그러한 것을 이르는 말을 불가능(不可能), 적절하지 않음을 이르는 말을 부적절(不適切), 하늘 아래 같이 살 수 없는 원수나 죽여 없애야 할 원수를 일컫는 말을 불구대천(不俱戴天), 묻지 않아도 옳고 그름을 가히 알 수 있음을 이르는 말을 불문가지(不問可知), 사람의 생각으로는 미루어 헤아릴 수도 없다는 뜻으로 사람의 힘이 미치지 못하고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오묘한 것을 이르는 말을 불가사의(不可思議), 생활이 바르지 못하고 썩을 대로 썩음을 일컫는 말을 부정부패(不正腐敗), 지위나 학식이나 나이 따위가 자기보다 아랫사람에게 묻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지 아니함을 두고 이르는 말을 불치하문(不恥下問), 세상일에 미혹되지 않는 나이라는 뜻으로 마흔 살을 이르는 말을 불혹지년(不惑之年), 필요하지도 않고 급하지도 않음을 일컫는 말을 불요불급(不要不急), 휘지도 않고 굽히지도 않는다는 뜻으로 어떤 난관도 꿋꿋이 견디어 나감을 이르는 말을 불요불굴(不撓不屈), 천 리 길도 멀다 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먼길인데도 개의치 않고 열심히 달려감을 이르는 말을 불원천리(不遠千里) 등에 쓰인다.
▶️ 窺(엿볼 규)는 형성문자로 闚(규)와 동자(同字), 窥(규)는 간자이다. 뜻을 나타내는 구멍 혈(穴; 구멍)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규(窺에서 穴을 제외한 부분)가 합(合)하여 이루어졌다. 그래서 窺(규)는 ①엿보다 ②훔쳐보다 ③살펴보다 ④꾀하다 ⑤반걸음 내디디다 ⑥반걸음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엿볼 사(伺)이다. 용례로는 몰래 엿봄을 규시(窺視), 엿보고 헤아림을 규형(窺衡), 엿보아 앎을 규지(窺知), 맡은 일이나 책임에서 벗어나려고 꾀함을 규면(窺免), 풍수설에서 묏자리의 안산 너머에 보일듯 말듯 솟아 있는 산봉우리를 규봉(窺峯), 남의 속뜻을 알아 보려고 살핌을 규의(窺意), 대롱을 통해 하늘을 봄이란 뜻으로 우물안 개구리를 일컫는 말을 이관규천(以管窺天), 대롱을 통해 하늘을 살핀다는 뜻으로 소견이나 견문이 좁음을 이르는 말을 용관규천(用管窺天), 대롱 구멍으로 표범을 보면 표범의 얼룩점 하나밖에 보이지 않는다는 뜻으로 시야가 매우 좁음을 이르는 말을 관중규표(管中窺豹), 버마재비가 매미를 엿본다는 뜻으로 눈앞의 이익에만 눈이 어두워 뒤에서 닥치는 재해를 생각하지 못함을 이르는 말을 당랑규선(螳螂窺蟬), 대롱으로 엿보고 송곳이 가리키는 곳을 살핀다는 뜻으로 작은 소견이나 자기 견해를 겸손하게 말하는 경우를 비유하여 이르는 말을 관규추지(管窺錐指) 등에 쓰인다.
▶️ 園(동산 원)은 ❶형성문자로 园(원)의 본자(本字)이다. 뜻을 나타내는 큰입구몸(囗; 에워싼 모양)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袁(원)이 합(合)하여 이루어졌다. 口(위)는 에워싸는 모양, 음(音)을 나타내는 袁(원)은 여유(餘裕)가 있는 모양, 즉, '과수원', 또는 '채마밭'을 말한다. ❷회의문자로 園자는 '동산'이나 '뜰'이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園자는 囗(에운담 위)자와 袁(옷 길 원)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袁자는 衣(옷 의)자의 옷깃 부분에 원을 그려 넣은 것으로 헐렁한 옷을 뜻한다. 옷깃이 헐렁해서 '여유'가 있다는 뜻이다. 동산이나 뜰은 마음의 여유를 찾기 위해 휴식을 취하는 장소이다. 그러니 園자는 여유를 뜻하는 袁자에 囗자를 결합해 '동산'이나 '뜰'을 뜻하게 된 글자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원리는 '멀다'라는 뜻을 가진 遠(멀 원)자도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園(원)은 ①동산(큰 집의 정원에 만들어 놓은 작은 산이나 숲) ②뜰(집 안의 앞뒤나 좌우로 가까이 딸려 있는 빈터) ③밭 ④구역(區域) ⑤능 ⑥원소(苑沼: 동산과 못) ⑦사원 ⑧별장(別莊) ⑨담, 담장(-牆) ⑩울,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채소나 과수나 정원수나 화훼 등을 집약적으로 재배하는 일을 원예(園藝), 정원과 못 또는 정원 안에 있는 못을 원지(園池), 집터에 딸린 수풀 또는 정원과 숲을 원림(園林), 여러 사람들의 보건이나 휴양이나 유락을 위하여 베풀어 놓은 큰 정원이나 동산이나 유원지 등을 공원(公園), 집안에 있는 뜰이나 미관이나 위락 또는 실용을 목적으로 수목을 심거나 그밖에 특별히 설계한 땅을 정원(庭園), 아무런 걱정이나 부족함이 없이 살 수 있는 즐거운 곳을 낙원(樂園), 논밭과 동산 즉 시골을 전원(田園), 언덕과 동산을 구원(丘園), 화초를 심은 동산을 화원(花園), 주로 원예 작물을 심는 농장을 농원(農園), 이름난 동산을 명원(名園), 경작하는 과수원이나 뽕나무 밭 따위를 경원(耕園), 차를 재배하는 밭을 다원(茶園), 복숭아 밭을 도원(桃園), 집 뒤에 있는 작은 동산을 후원(後園), 왕이나 왕비의 무덤인 능과 왕세자 등의 무덤인 원 곧 왕족들의 무덤을 능원(陵園), 학교 및 기타 교육기관의 총칭을 학원(學園), 문학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사회적 분야를 문원(文園), 동산의 풀은 땅속 양분으로 가지가 뻗고 크게 자람을 일컫는 말을 원망추조(園莽抽條), 도원에서 의형제를 맺다는 뜻으로 의형제를 맺음 또는 서로 다른 사람들이 사욕을 버리고 목적을 향해 합심할 것을 결의함을 이르는 말을 도원결의(桃園結義), 논밭과 동산이 황무지가 됨을 이르는 말을 전원장무(田園將蕪), 사람의 손이 가지 않은 그대로의 풍경을 감상할 수 있는 공원을 일컫는 말을 자연공원(自然公園), 인근의 시민들이 쉽게 드나들 수 있는 공원을 일컫는 말을 근린공원(近隣公園), 전원의 정경이나 생활을 소재로 한 문학을 일컫는 말을 전원문학(田園文學), 도시를 떠나 전원에서 농사 짓고 사는 생활을 이르는 말을 전원생활(田園生活)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