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https://www.fmkorea.com/7502757061
장애를 이유로 사람을 차별해서는 안 되는 일이지만,
그런 의식이 희미했던 1970년대의 대한민국에는
공공연히 장애인을 차별하곤 했다.
장영희 양은 그러한 대한민국에서,
소아마비로 인해 두 다리와
오른손을 움직일 수 없는 상태에서
자라나 교육을 받아야만 했다.
중학교마저 체력장 점수를 모두 포기한 채
오로지 필기점수를 통해서만 합격할 수 있었지만,
고등학교를 졸업한 1971년에는
더 큰 시련이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안 돼!!!
당시 대한민국의 수많은 대학들이
장애인에게 입학시험 응시 자격을 주지 않아서
공부를 아무리 잘 해도 갈 수가 없던 것이다.
심지어 아버지가 서울대학교 영문학 교수인 장왕록 박사였고,
아버지의 절친인 총장에게 시험을 보게 해 달라고 사정했지만
'여러 교수들이 찬성하지 않을 것'이라며 거부당했다.
그렇게 시험을 볼 수 있는 학교를 찾아다니던 부녀는
서강대학교 영문학과의 학과장이었던
브루닝 신부를 찾아가게 된다.
(*서강대학교는 예수회가 1960년에 설립한 학교이기에
초기에는 예수회 신부님들이 교수직 등의 중책을 맡았다)
아버지는 똑같이 딸의 사정을 설명하며
입학시험에 응시할 수 있도록 해 달라고 간청했는데...
무슨 그런 이상한 질문이 있습니까?
당연히 시험을 볼 수 있습니다!
시험을 머리로 보지 다리로 봅니까?
당시 브루닝 신부는 이게 무슨 말인가 싶었는지
'경악하는 눈빛'으로 말했다고 한다.
그렇게 제롬 브루닉 신부의 예외적인 허락으로
장영희는 서강대학교 영문학 학/석사를 받을 수 있었다.
아버지는 그 때를 떠올리시며
신부님이 아버지를 '정신나간 바보'처럼 봤다고 하셨어요.
하지만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바보였다고도 하셨어요.
그렇게 제롬 브루닉 신부의 허락으로
장영희는 서강대학교 영문학 학/석사를 받았고,
이후에는 모교인 서강대로 돌아와
2009년, 간암으로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후배들을 가르치는 훌륭한 교수가 되었다.
참고로 장애학생의 고입 체력장 점수는 1972년에 면제되고,
1976년에는 장애를 이유로 불합격했던 소아마비 학생들이
대통령의 지시로 대거 합격되는 일도 있었답니다!
그리고 서강대학교는 국내대학 최초로
장애인의 입학을 허용한 대학교라는
영예로운 기록을 남기게 되었다.
그러나 원칙적으로는 서강대학교도 입시에서
장애인 응시 자격을 부여하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당시 기록을 확인하기가 어려워서, 만약 아니라면 댓글 달아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다만 1995년에 국내 대학 최초로 특별전형을 통해
장애인 25명을 정원 외 인원으로 선발한 기록이 있습니다.
-끝-
댓펌
장애인은 본고사 못본다는 규정은 왜 있는거임 뜬금없네
왜 있었는진 나도 모름
그러니까 신부님도 그게 대체 뭔 상관이냐고 물어봤겠지
'멀쩡한 애 뽑으면 되는데 굳이 장애 있는 사람이 들어오게 함?
걔 하나 때문에 시설도 막 바꿔야 되고 귀찮게 왜 그런 짓을 해'
대충 그런 느낌 아니었을까
그 암울한 시기라고 장애인을 인간 이하 취급을 해서 저런건 당연히 아닐테고,,,
장애인 위한 시설이나 별도 배려 등을 해줄 여유가 없으니깐 (즉 귀찮고 돈 나가니깐)
그냥 사지 멀쩡한 학생들만 받아 수업하려다 보니 저리 된건가 보네
결국 장애인들은 장애인 입학 허용하는 특수목적 사회사업 대학을
몇군데 정하곤 거기에서 받아주는 식이었겠지
1986년에도 가톨릭대 의대에서
점수 더 높게 받은 장애인 3명한테 '수학능력 없음'이라고 떨어뜨렸다가
김수환 추기경님이 다시 하라고 해서 겨우 합격한 거 보면
'장애인이니까 입학시켜 봤자 공부 제대로 못하겠지'생각한 거 아닌가 싶기도
우리나라는 아직도 장애인 인권이 부실함 이건 부자고 가난하고랑은 상관 없음. 우리나라 보다 가난해도 장애인들 친화적인 나라는 있으니.
우리나라에서 특정지역 빼고는 장애인들 보기 힘듬 그나마 근래에 전동 휠체어 나와서 그나마 나아진거임. 분명 다 낙태 하지는 않았을테고 집에 꽁꽁 숨겨 놓는거지. 장애인들 보기 쉬워야 진짜 살기 좋은 나라인데.
북한은 장애인을 아예 죽여 버리니 한민족은 장애인을 특별히 싫어하는 문화가 있었던 건가 싶기도 하고.
동남아에 가도 유럽에 가도 장애인을 쉽게 볼 수 있음 일 하는 것도 쇼핑 하는 것도 심지어 내가 장애인 분들 운동 하는거 처음 본게 유럽임 한국에서는 본적이 없음.
비교적 우리나라에서는 정상생활 하는 장애인 보기는 정말 힘들 더라고 해외에서는 특히 쇼핑몰에서 장애인 직원 보기 쉽다. 서비스직이라 그런듯 한데 캐셔 라거나 안내 쪽이나.
우리나란 거의 본적 없어 오히려 서비스직이라 안뽑을지도.
첫댓글 고 장영희 교수님 책 재밌게 잘 읽었는데
50년 뒤인 지금은 상상도 못할 일이네..
비 프라우드 오브 서강!
우리학교 너무 자랑스러워ㅠㅠㅠ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