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유(張維)-賣癡獃(매치애)(내 바보 사려)
街頭小兒呌(가두소아규) 소년들이 길에서 외치고 다니네
有物與汝賣(유물여여매) “당신께 팔 물건이 있어요.”
借問賣何物(차문매하물) 무엇을 팔려느냐 물어보니
癡獃苦不差(치애고불차) 끈덕지게 붙은 바보라고 하네
翁言儂欲買(옹언농욕매) 늙은이가 ‘내가 살게’라고 말하네
便可償汝債(변가상여채) 네게 그 값도 바로 치러주마
人生不願智(인생불원지) 살면서 지혜롭기 바라지 않네
智慧自愁殺(지혜자수쇄) 지혜란 원래 시름겹게 하는 것
百慮散冲和(백려산충화) 온갖 걱정 만들어 평정심을 깨뜨리고
多才費機械(다재비기계) 온갖 재주 다 부려 계산하는 데 힘을 쓰지
古來智囊人(고내지낭인) 예로부터 지혜롭다 소문난 이들
處世苦迫隘(처세고박애) 세상살이 몹시도 곤궁했다네
膏火有光明(고화유광명) 환하게 빛나는 기름 등불은
煎熬以自敗(전오이자패) 활활 타올라 스스로 꺼지고
鳥獸有文章(조수유문장) 무늬가 아름다운 짐승은
罔羅終見罣(망나종견괘) 끝내 덫에 걸리고 말지
有智不如無(유지불여무) 지혜가 있는 것이 없는 것만 못하니
得癡彌可快(득치미가쾌) 바보가 된다면야 더더욱 좋고말고
買取汝癡獃(매취여치애) 너에게서 바보를 사 오면서
輸却汝狡獪(수각여교쾌) 너에게 교활한 꾀를 건네주지
去明目不盲(거명목불맹) 밝게 보지 못한다 해서 눈머는 것도 아니고
去聰耳不聵(거총이불외) 분명히 듣지 못한다 해서 귀먹는 것도 아니네
新年大吉利(신년대길리) 새해 운수 크게 길하고 이롭겠다는 것을
不用問蓍卦(불용문시괘) 점쳐볼 것도 없이 바로 알겠네
*위 시는 “한시 감상 景경, 자연을 노래하다(한국고전번역원 엮음)”(谿谷集계곡집)에 실려 있는 것을 옮겨 본 것입니다.
*하승현님은 “조선 중기 한문사대가(漢文四大家) 중 한 사람인 계곡(谿谷) 장유의 오언 고시(五言古詩)이다. 심수경(沈守慶, 1516∼1599)이 편찬한 『견한잡록(遣閑雜錄)』에 보면, 새해 첫날 만나는 사람을 불러서 그가 대답을 하면 ‘내 허술함을 사시오[買我虛疏]’라고 했는데, 이를 ‘바보를 판다[賣癡]’고 하였으며, 이는 재액(災厄)을 면하기 위해 한 기록이 있다. 요즘도 정월 대보름에 ‘내 더위 사려’ 하며 더위를 팔듯, 새해 첫날 나의 어리숙함을 남에게 넘김으로써 어리숙함으로 인해 겪을 액운을 미리 떨어 버리려는 풍속이었던 듯하다.
계곡은 바보를 파는 아이에게 선뜻 그 바보를 사겠노라고 답한다. 그것도 값까지 치러 주면서 말이다. 이유는 분명하다. 재주를 부리지 않고 지혜를 쓰지 않아도 평범하게 사는 데에는 지장이 없는데, 재주를 부리고 계산을 하다 보면 스스로 화를 불러들이게 된다고 보아서다. 지혜로운 사람이 고단한 삶을 살고, 귀한 재주를 지닌 사람이 귀한 재주를 지닌 사람이 곤경에 처하는 것을 볼 때, 어리숙해야 액을 피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리고 새해에는 꾀를 버리고 바보를 샀으니 운수대통할 것이라고 자신한다. 과연 무엇이 액을 부르는가? 남에게 바보를 파는 사람처럼 모르는 것을 액으로 여겨야 할까? 아니면 앎 때문에 괴로움을 겪느니 아는 것이 액을 부른다고 여겨야 할까? 새해 첫날 누군가 내게 ‘내 바보 사려’라고 외칠 때 나는 기꺼이 지갑을 열어야 할까? 아니면 ‘떼기 이놈!’ 해야 할까?”라고 감상평을 하셨습니다.
*장유[張維), 1587년(선조 20)~1638년(인조 16), 본관 덕수(德水), 자 지국(持國), 호 계곡(谿谷), 묵소(默所), 시호 문충(文忠)]-조선 중기 좌부빈객, 예조판서, 이조판서 등을 역임한 문신. 장례원사의 장자중(張自重)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목천현감 장일(張逸)이고, 아버지는 판서 장운익(張雲翼)이며, 어머니는 판윤 박숭원(朴崇元)의 딸이다. 우의정 김상용(金尙容)의 사위로 효종비 인선왕후(仁宣王后)의 아버지이다. 김장생(金長生)의 문인이다. 1605년(선조 39) 사마시를 거쳐 1609년(광해군 1) 증광 문과에 을과로 급제, 호당(湖堂: 독서당의 다른 이름)에 들어갔다. 이듬해 겸설서를 거쳐 검열 · 주서 등을 지냈다. 1612년 김직재(金直哉)의 무옥(誣獄)에 연루해 파직되었다. 1623년 인조반정에 가담해 정사공신(靖社功臣) 2등에 녹훈되고 봉교를 거쳐 전적과 예조 · 이조의 낭관을 지내고, 그 뒤 대사간 · 대사성 · 대사헌 등을 역임하였다. 1624년(인조 2) 이괄(李适)의 난 때 왕을 공주로 호종한 공으로 이듬해 신풍군(新豊君)에 책봉되어 이조참판 · 부제학 · 대사헌 등을 지냈다. 1627년 정묘호란이 일어나자 강화로 왕을 호종하였다. 그 뒤 대제학으로 동지경연사(同知經筵事)를 겸임했고, 1629년 나만갑(羅萬甲)을 신구(伸救)하다가 나주목사로 좌천되었다. 다음 해 대사헌 · 좌부빈객(左副賓客) · 예조판서 · 이조판서 등을 역임했으며, 1631년 원종추숭론(元宗追崇論)이 대두하자 반대하고 전례문답(典禮問答) 8조를 지어 왕에게 바쳤다. 1636년 병자호란 때 공조판서로 최명길(崔鳴吉)과 더불어 강화론을 주장하였다. 이듬해 예조판서를 거쳐 우의정에 임명되었으나 어머니의 부음(訃音)으로 18차례나 사직소를 올려 끝내 사퇴했고, 장례 후 과로로 병사하였다. 일찍이 양명학(陽明學)에 접한 그는 당시 주자학(朱子學)의 편협한 학문 풍토를 비판해, 학문에 실심(實心)이 없이 명분에만 빠지면 허학(虛學)이 되고 만다 하였다. 또한, 지행합일(知行合一)을 주장, 마음을 바로 알고 행동을 통해 진실을 인식하려 했던 양명학적 사고방식을 가졌다. 이식(李植)은 그의 학설이 주자(朱子)와 반대된 것이 많다 하여 육왕학파(陸王學派)로 지적했으나, 송시열(宋時烈)은 “그는 문장이 뛰어나고 의리가 정자(程子)와 주자를 주로 했으므로 그와 더불어 비교할만한 이가 없다.”고 칭송하였다. 천문 · 지리 · 의술 · 병서 등 각종 학문에 능통했고, 서화와 특히 문장에 뛰어나 이정구(李廷龜) · 신흠(申欽) · 이식 등과 더불어 조선 문학의 사대가(四大家)라는 칭호를 받았다. 많은 저서가 있다고 하나 대부분 없어지고 현재 『계곡만필』 · 『계곡집』 · 『음부경주해(陰符經注解)』가 전한다. 신풍부원군(新豊府院君)에 봉해졌으며 영의정에 추증되었다.
*賣(매) : 팔 매, 1.팔다, 2.속이다, 3.배신하다(背信--)
*癡(치) : 어리석을 치, 1.어리석다, 2.어리다, 3.미련하다
*獃(애) : 어리석을 애, 1.어리석다, 2.못생기다, 3.우두커니 서 있다
*儂(농) : 나 농, 1.나, 2.저, 3.당신(當身)
*愁殺(수쇄) : 몹시 슬프게 함. 시름에 잠기게 함.
*迫(박) : 핍박할 박, 1.핍박하다(逼迫--), 2.닥치다, 3.줄어들다
*隘(애) : 좁을 애, 막을 액, 1.(좁을 애), 2.좁다, 협소하다(狹小--), 3.곤궁하다(困窮--)
*煎(전) : 달일 전, 1.달이다, 끓여서 졸이다, 2.볶다, 3.(가슴을)태우다, 애태우다
*熬(오) : 볶을 오, 1.볶다, 2.눋다, 타다, 3.삶다
*罣(괘) : 걸 괘, 1.걸다, 매달다, 2.(마음에)걸리다, 3.거리끼다
*彌(미) : 미륵 미/두루 미/활 부릴 미, 1.미륵(彌勒), 2.두루, 널리, 3.더욱
*狡獪(교쾌) : 간사(奸邪)하고 꾀가 많음.
*聵(외) : 귀머거리 외, 귀머거리 회, 1.(귀머거리 외), 2.청각장애인
*蓍(시) : 톱풀 시, 1.톱풀(엉거시과에 속하는 여러해살이풀. 가새풀), 2.시초(蓍草), 3.서죽(筮竹: 점을 치는 데에 쓰는 댓가지)
*卦(괘) : 점괘 괘, 1.점괘(占卦: 점을 쳐서 나오는 괘), 2.괘(卦: 주역의 상징 부호), 3.점치다
첫댓글 새해를 맞이하는 각오인가요...
꾀를 버리고 바보처럼 우직하게 그리고 현명하게 살기 위한 지혜가 가득합니다....
총괄대장님도 2023년 정말 수고 많으셨고 갑진년에는 더욱 건승 하시길 기원합니다....
ㅎ, 회장님 올 한해 너무 수고 많으셨습니다.
멋진 시 해석과 댓글에 깊이 감사드리고,
새해에는 더욱 더 건강하시고 운수대통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