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사건]
2005년 10월 3일
경북 상주 MBC가요콘서트장 압사 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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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명이 사망하고 109명이 부상한 경북 상주의 대형 압사사고는 지방자치단체 및 경찰의 안이함과 행사 주최측의 무성의함이 빚어낸 후진국형 참사였다.
3일 오후 5시40분쯤 경북 상주시 계산동 상주시민운동장 직3문 입구에서 상주자전거축제 행사의 하나인 MBC가요콘서트 녹화 무대를 보기 위해 5000여명의 시민들이 한꺼번에 몰리면서 사고가 발생했다. 사망자와 부상자 중에는 앞줄에 서 있던 노인과 어린이들이 많았다. 이번 사고의 가장 큰 책임은 상주시와 경찰 등에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상주시가 MBC를 초청하고, MBC가 양자 협의를 통해 행사 진행과 안전·경비 등의 문제를 상주시에 맡겼기 때문이다.
행사 진행을 상주시로부터 위임 받은 국제문화진흥협회는 지난달 30일 경찰측에 경찰관 200명을 파견해 줄 것을 요청했지만, 경찰로부터 “안 된다”는 대답만 들었다고 했다. 그러나 경찰측은 “요청받은 바 없다”고 밝혔다.
행사 당일에는 경찰관 14명과 경비용역업체 직원 25명, 국제문화진흥협회가 보내 온 아르바이트생 50명 등 현장 관리자가 90여명에 불과해 현장 통제에 역부족이었다. 현장에 파견된 경찰관들은 교통질서에만 주로 투입됐을 뿐 관람 인파들에 대한 안전조치를 거의 취하지 않았다고 목격자들은 전했다.
특히 전문 공연 진행요원이 거의 없었던 점이 대형사고를 부른 한 요인이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모 공연기획사 간부는 “전문 교육을 받은 인원이 100명이면 이 같은 공연을 무리 없이 진행할 수 있지만 상주에서는 그런 인원이 거의 없었다”고 말했다. 공연 주최측이 시민들의 무질서를 부추긴 점도 사고의 한 원인으로 파악됐다.
노점상 이모씨와 강미경(여·21·상주시)씨 등 목격자들은 “주최측이 먼저 들어가는 사람이 자리를 잡을 수 있다고 해서 사람들이 줄을 안 서고 한꺼번에 확 몰려들었다”며 “뒤에서 미는 바람에 앞에 서 있던 노인들이 넘어져 연쇄적으로 깔리는 상황이 발생했다”고 말했다.
사상자 대부분은 노인과 어린이들이었다. 출입구 앞줄에 이들이 많이 서 있었기 때문이다.
사고 당시 상주시민운동장 1층의 직3문 출입구가 열리고 앞줄의 노인과 어린이들이 들어가려는 순간 뒤에 있던 관객들이 먼저 들어가려고 밀치면서 이들이 넘어졌다. 뒤에 있던 관객들은 앞쪽에서 사람들이 넘어진 사실도 모른 채 10여분 동안 계속 밀어붙여 피해가 더 커졌다.
경찰 조사 결과, 행사 주최측인 상주시는 시장 인척에게 행사를 맡겼고, 시장 인척이 운영하는 대행사인 국제문화진흥협회는 법규와 안전 수칙을 제대로 지키지 않았다. 또 MBC는 사고 가능성에 대한 대비 없이 빠듯하게 공연 일정을 진행한 것으로 밝혀졌다. 사고 이후에도 관련자들은 책임 떠넘기기에 급급해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상주 참사 이후 축제를 여는 각 지방자치단체는 비상이 걸렸다. 충남 논산시는 강경젓갈축제에 ‘이어 달리기’와 ‘경비행기 타기’ 등 사고 위험이 있는 행사는 아예 취소했다. 또 축제 보안 요원을 늘리고 뒤늦게 보험에 가입하는 경우도 늘어났다.
[오늘의 인물]
1971년 10월 3일
이소룡 영화 ‘당산대형’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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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초까지 홍콩 영화는 변방에 지나지 않았다. 제작 기술이 낙후한데다 스타 부재까지 겹쳐 외팔이 검객으로 유명한 ‘왕우’만이 홀로 고군분투했다. 그때 한 사내가 혜성처럼 나타나 홍콩 영화계를 일거에 평정하더니 곧 아시아 젊은 청춘들의 우상으로 급부상했다. 이소룡(1940~1973)의 전설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이소룡의 사실상 데뷔작인 ‘당산대형’이 1971년 10월 3일 홍콩에서 개봉되었을 때, 젊은이들은 충격에 빠졌다. 현란한 발놀림과 신기에 가까운 액션으로 적들을 쓰러뜨리는 장면은 전율이었고, 준수한 외모에 군살 하나 없는 근육질 몸매는 경이였다.
태국의 얼음공장을 배경으로 비열한 음모와 맞서 싸우는 화교 노동자 청년의 복수극을 그린 ‘당산대형’은 그때까지 홍콩의 박스오피스 기록을 모두 갈아치우고 곧 아시아의 극장들을 접수하다시피 하며 최고의 흥행 성적을 기록했다.
이소룡이라는 예명을 처음 사용한 영화는 ‘인지초’(1951)였으며 첫 주연을 맡은 영화는 청소년 시절 마지막 영화이자 홍콩 최초의 컬러영화 ‘인해고흥’(1958)이었다.
이소룡은 1964년 5월 대학을 중퇴하고 그해 8월 캘리포니아주 롱비치에서 열린 국제 가라테 선수권대회에 초청을 받아 그 유명한 ‘1인치 펀치’를 비롯해 자신이 개발한 신기술을 선보여 관심을 끌었다.
이소룡의 쿵후 실력은 금세 할리우드의 눈길을 끌었다. ABC방송의 액션 드라마 ‘그린 호네트’(1966~1967)에서 악당과 싸우는 주인공을 돕는 일본인 조수 가토로 출연해 미국인에게 자신의 존재를 알렸다.
1969년 이소룡이 유일하게 출연한 극장용 미국 영화 ‘말로이’에 주연으로 등장하고 ABC의 액션 드라마 ‘롱스트리트’(1971~1972)에서도 주인공에게 무술을 가르치는 중국인 골동품 상인으로 등장하는 등 미국에서 나름대로 이름이 알려지자 홍콩 영화사 골든하베스트의 대표 레이먼 초가 그에게 출연을 제안했다. 전설의 시작 ‘당산대형’이었다.
두 번째 작품 ‘정무문’(1972.3)은 반일감정과 민족의식을 중요한 소재로 삼아 더욱 인기를 끌었다. 정무문의 주인공 첸이 사부를 살해한 간악한 일본 홍백파 무리를 향해 쌍절곤 하나만 들고 혈혈단신 쳐들어가 박살내는 장면에 중국인은 물론 한국과 미국 관객까지 열광했다.
가라테 고수 척 노리스가 등장해 이탈리아에서 이소룡과 대결하는 것으로 유명한 이소룡의 첫 각본·감독 작품인 ‘맹룡과강’(1972.12)까지 흥행에 성공했으나 기실 이소룡의 영화는 단순하고 조잡했다. 스토리도 평이하고 평면적이었다.
그런데도 인기가 하늘을 찌른 것은 완벽하고 예술적이기까지 한 이소룡의 몸이 화면을 가득 채우고, 기괴한 소리를 내며 가볍고 현란한 몸동작으로 상대의 얼굴과 가슴에 가하는 호쾌한 액션으로 젊은 청춘들의 넋을 빼앗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이소룡이 아니면 누구도 표현해낼 수 없는 최고의 경지였다.
그 해, 오늘 무슨 일이... 총 42건
ㆍ2010년 · 제주도 9개 명소,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 인증
ㆍ1999년 · 소니 창업자 모리타 아키오(盛田昭夫) 타계
ㆍ1996년 · 96 노벨문학상 폴란드의 쉼보르스카 선정
ㆍ1994년 · 집권연정의 사회민주당 소속 엔리케 카르도소 후보, 브라질 대통령 선거에 당선
ㆍ1991년 ·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소설가 나딘고디머, 노벨문학상에 선정
ㆍ1990년 · 한국-베냉 국교 수립
ㆍ1990년 · 동독·서독 통일
ㆍ1975년 · 방글라데시, 파키스탄 국교 수립
ㆍ1972년 · 전략무기제한협정(SALT 1) 발효
ㆍ1971년 · 이소룡 영화 ‘당산대형’ 개봉
ㆍ1970년 · 북한의 조류학자 원홍구 사망
ㆍ1969년 · 국제통화기금 특별인출권 창출 승인
ㆍ1969년 · 서독, 기민-사민 연립정권 수립
ㆍ1967년 · 상공부, 석유류 자유판매제 실시
ㆍ1967년 · 포항제철 기공식 거행
ㆍ1966년 · 간호보조원 114명 독일 파견
ㆍ1966년 · 튀니지, 아랍공화국과 단교
ㆍ1965년 · 파월 청룡부대 부산항 출발
ㆍ1963년 · 온두라스군 쿠데타, 모라레스대통령을 축출
ㆍ1963년 · 동학혁명기념탑 제막
ㆍ1962년 · 미국 3번째 인공위성 시그마7호 지구 6회 선회
ㆍ1954년 · 서방 9개국, 런던에서 서독재군비협정 조인
ㆍ1953년 · 신형법 공포
ㆍ1952년 · 영국 몬테헬로섬에서 첫 원폭실험
ㆍ1950년 · 국군, 38선돌파, 양양 탈환
ㆍ1948년 · 페루의 마누엘 아폴리나리오 장군 군사쿠데타
ㆍ1944년 · 연합군, 그리스에 상륙
ㆍ1935년 · 이탈리아, 에티오피아 침공
ㆍ1932년 · 이라크, 영국으로부터 독립
ㆍ1932년 · 228개의 소행성을 발견한 독일의 천문학자 볼프 사망
ㆍ1929년 · 바이마르 공화국의 총리. 외무장관 수트레제만 사망
ㆍ1928년 · 후버, 미국 대통령에 당선
ㆍ1918년 · 독일 수상에 막시밀리안공 취임
ㆍ1910년 · 청(淸) 자정원 개원식 거행
ㆍ1904년 · 모로코에 관한 프랑스-스페인협정 성립, 모로코 독립을 승인
ㆍ1900년 · 경기고 개교
ㆍ1900년 · 손문의 흥중회(興中會) 혜주에서 거병, 실패(혜주사변)
ㆍ1886년 · 프랑스, 초등교육법 성립
ㆍ1886년 · 프랑스의 작가 알랭 푸르니에 출생
ㆍ1867년 · 미싱 발명가 에라이아스 하우 사망
ㆍ1274년 · 고려-원 연합군 제1차 일본정벌
ㆍ1226년 · 聖프란체스코 선종
[출처 : 조선닷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