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2024.8.27.화요일 성녀 모니카(331-387) 기념일 2테살2,1-3ㄱ.14-17 마태23,27-32
행복하여라
“지혜로운 믿음의 자녀들이여!”
오늘도 옛 현자의 분별의 지혜를 강조한 가르침이 마음에 와 닿습니다.
“진정한 용기란 다퉈야 하는 상황에서 한 번 더 생각하는 분별이다.”<다산>
“공자가 말했다. ‘자로가 용맹을 좋아함은 나보다 낫지만, 사리를 헤아려 분별하는 바는 없다.”<논어>
오늘은 성녀 모니카 기념일입니다.
56년의 짧은 생애가 그대로 시공을 초월하여 한권의 감동적인 성경책 같습니다.
내일은 아드님 성 아우구스티누스 기념일입니다.
이렇게 모자분이 나란히 기념미사를 봉헌하는 일은 가톨릭교회 초유의 일이며 앞으로도 없을 것입니다.
어머니들이 가장 부러워하는 것이 잘 둔 자식들입니다.
이래서 성모님은 물론 성녀 모니카가 뭇 어머니들의 선망의 대상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은 어제 복음의 불행선언 셋에 이어 두 개의 불행선언이 뒤를 잇습니다.
얼마나 어리석은 눈먼 무지의 사람들인지 거듭 확인하게 됩니다.
이 고질적 무지란 병의 치유가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습니다.
치유의 답은 오직 하나 부단한 회개를 통한 하느님 중심의 지혜로운 삶뿐이겠습니다.
“불행하여라, 너희 위선자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아!
너희가 박하와 시라와 소회향은 십일조를 내면서, 의로움과 자비와 신의처럼 율법에서 더 중요한 것들은
무시하기 때문이다.”
십일조의 거부가 아니라 주객전도, 본말전도의 현실을 바로 잡으라는 것입니다.
우선순위를 확실히 하라는 것이요 이것은 분별의 지혜에 속합니다.
바로 우선적이 중심 가치인 의로움, 자비, 신의를 우선 분별의 잣대로 삼으라는 것이요,
하느님 중심의 삶에서 자연스럽게 도출되는 진리입니다.
“불행하여라, 너희 위선자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아!
너희가 잔과 접시의 겉은 깨끗이 하지만, 그 안은 탐욕과 방종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표리부동이 아닌 안과 밖이 같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안과 밖이 같은 사람이 진실하고 겸손한 사람입니다.
안이 깨끗하면 겉은 저절로 깨끗해지기 마련이니 겉은 전혀 신경쓰지 않아도 됩니다.
아주 오래전 중학교 시절 영어선생님 말씀이 생각납니다.
‘겉옷보다는 속옷이, 속옷보다는 마음이 깨끗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느님 중심의 질서있는 삶일 때 비로소 탐욕과 방종의 혼탁하고 무질서한 내적 현실도
비로소 정화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래서 오늘 강론 제목을 어제와 반대로 “행복하여라, 지혜로운 믿음의 자녀들이여!”로 정했습니다.
무지의 처방이 지혜요, 참지혜와 하나로 연결되어 있는 사랑이요 겸손입니다.
진정 지혜로운 자는 겸손하고 사랑이 많은 사람입니다.
겸손한 사랑에서 샘솟는 지혜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바오로 사도가 하느님 중심의 지혜로운 삶을 살 것을 촉구합니다.
당대의 테살로니카 교회 신도들은 물론 오늘 우리에게도 좋은 도움이 됩니다.
“주님의 날이 이미 왔다고 말하더라도, 쉽사리 마음이 흔들리거나 불안해하지 마십시오.
누가 무슨 수를 쓰든 여러분은 속아 넘어가지 마십시오.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복음을 통하여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그러니 이제 굳건히 서서 우리의 말이나 편지로 배운 전통을 굳게 지키십시오.”
‘늘 옛스러우면서도 늘 새로운(ever old, ever new)’ 하느님 중심의 전통을 충실히 지킴으로
정체성을 늘 새롭게 하라는 것입니다.
이어지는 격려도 참 목자의 가르침처럼 따뜻하고 큰 힘이 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또 우리를 사랑하시고, 당신의 은총으로 영원한 격려와
좋은 희망을 주신 하느님 우리 아버지께서, 여러분의 마음을 격려하시고 여러분의 힘을 북돋아 주시어
온갖 좋은 일과 좋은 말을 하게 해 주시기를 빕니다.”
바로 이런 기도의 열매가, 하느님 은총의 열매가 오늘 기념하는 성녀 모니카입니다.
얼마나 슬기로운 성녀인지 아드님 성 아우구스티누스가 고백록을 통해 증언합니다.
고백록 9권 후반부 반은 성녀에 대한 아름다운 일화로 가득합니다.
“성녀는 나이가 훨씬 연상의 이교 남자 파트리치우스와 결혼했는데 그는 정력이 넘치고 폭력적 성향에
성적으로 방탕한 사람이었다.
당시는 가정폭력이 일상적이었지만 모니카는 남편에게 복종했기 때문에 그는 결코 그녀를 때리지 않았다.
그녀의 자선과 기도가 짜증나게 했지만, 그가 그녀를 존경하도록 이끌었다.
성녀의 상냥함(sweetness)과 인내는 다른 학대받는 아내들과 어머니들에게 좋은 영향을 주었다.
그들은 그녀가 그들처럼 고통을 겪었음을 알았고 그녀의 모범에 의해 감동을 받았다.
성녀는 매우 신심이 깊었고 매일 교회 전례에 참석했으며 그것은 인내의 덕을 닦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성녀는 힘든 결혼생활을 하는 다른 부인들에게 말하곤 했다.
‘너희가 혀를 잘 다스린다면, 너희는 더 이상 매를 맞지 않을 것이며, 언젠가 네 남편은 좋아질 것이다.’
사실 성녀는 단 시간에 시어머니를 사로 잡았고, 이교 남편도 개종에로 이끌었고,
그의 난폭했던 기질도 진정시켰다(calmed).
후에 아들은 마니교도가 되었고 성녀는 아들이 바뀌지 않자 주교에게 도움을 청하자 주교는 성녀에게 말했다.
‘아들을 위해 끊임없이 기도하십시오. 그렇게 많은 눈물의 아들이 멸망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남편이 죽자 성녀는 아들이 있는 밀라노로 갔고, 밀라노의 주교 성 암브로시오 덕분에 모니카는
17년 기도후 아들이 나이 28세, 개종하는 것을 보는 기쁨을 누렸다.
그가 밀라노의 성 요한 세례자 교회에서 세례를 받은후 모자는 아프리카로 돌아가던중
모니카는 티베르강 어귀 오스티아에서 387년 56세에 마지막 유언을 남기고 선종했다.
-‘내가 바라는 소원은 내가 죽기전에 네가 신자가 되는 것 하나뿐이었다.
내 하느님은 넘치도록 응답해 주셨다.
나는 이제 지상의 모든 행복을 멸시한 주님의 종이 된 너를 보게 되었구나.
내가 여기서 더 이상 무엇을 바라겠니?
이 몸이야 아무데나 묻어라. 그 일로 너희가 조금도 걱정하지 말거라.
오직 한 가지 부탁이니 너희가 어디 있든지 주님의 제단에서 나를 기억해다오.
하느님에게서 멀리 떨어진 것은 아무것도 없단다.
세상 종말에 그분이 어디에서 나를 부활시켜야 할지 모르실까 봐 두려워할 필요는 없단다.’-
바로 성 아우구스티누스 아드님의 증언입니다.
끝까지 옆에서 임종을 지켜본 성인의 결론 말씀입니다.
‘그렇게 병석에 누운지 아흐레 되던 날, 그이의 나이 쉰여섯, 제 나이 서른 셋 되던 해에
그 독실하고 경건한 영혼이 육신에서 놓여났습니다.’(성염, 고백록 337쪽)
모전자전 그 어머니에 그 아들입니다.
저절로 “행복하여라, 지혜로운 믿음의 성녀 모니카와 성 아우구스티누스여!”란 고백과 더불어
인류에게 위대한 성인 모자분을 선물한 하느님께 끝없는 찬미와 감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성녀 모니카는 인내와 아내들, 어머니들, 학대받는 이들의 수호성인이 됩니다.
날마다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 지혜로운 믿음의 하느님의 자녀들이 되어
참 행복한 삶을 누리도록 도와 주십니다. 아멘.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가톨릭사랑방 catholicsb
첫댓글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