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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clien.net/service/board/park/16969594
이제 드디어 본편인 우크라이나 2014년 정권 전복을 이야기할 시간이 왔습니다.
저는 앞서 글들에서 우크라이나가 독립한 이후, 우크라이나 정계에서 민족주의 열풍이 불었다는 이야기를 해왔습니다.
'우크라이나, 드네프르강의 슬픈 운명'이라는 책에서는 이 당시 상황과 독립후 초대 정부(1991-1994)에 대해 이렇게 묘사를 하고 있습니다.
"...크라프축 초대 대통령 정권의 집권층은 대부분 소련 시절의 기득권 세력인 노멘클라투라의 지위를 물려받아 당초부터 개혁과는 거리가 멀었다는 점이다. 이들은 소련이 붕괴되는 틈을 이용해 민족주의자로 변신에 성공했고 국가적 독립을 얻어냈지만, 소련 시절부터 만성화된 공산당식 부패와 관료주의적 습성은 고치기 힘들었다. 결국 독립후 '친서방'만 외칠 뿐이지 스스로 정치 및 사회 경제 시스템 개혁에는 크게 소홀했다. 이로 인해 크라프축 집권기에는 1만%에 달하는 인플레이션이 발생했고, GDP는 3년만에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다. 이에 많은 우크라이나인들은 독립만 하게 되면 소련 시절에 겪은 일방적인 수탈에서 벗어나 크게 잘 살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지만 현실에서는 완전히 환상이었음이 곧 드러났다."
독립후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1대 크라프축 > 2대 쿠치마 > 3대 유센코 > 4대 야누코비치 > 정권 전복후 4개월짜리 임시 정부 (투르치노프) > 5대 포로셴코 > 6대 젤렌스키 로 이어져 왔습니다. 이를 굳이 분류하자면 친서방 > 친러 > 친서방 > 친러 > 임시정부 친서방 > 친서방 이었습니다.
경제적으로는 내내 무능하다는 평이 걸맞겠습니다만, 그래도 우크라이나에서는 민주주의의 꽃이라는 투표를 통한 정권 교체가 이뤄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2014년 유로마이단 2차 시위가 터진 것입니다.
2차 시위라니? 그럼 1차 시위도 있었나 싶을 텐데요. 네 있었습니다.
2004년 오렌지 혁명이라고 불리는 것이 그것인데요, 2대 친러파 쿠치마 대통령 집권 말년에 대선 투표 결과 3대 대통령으로 친러파 야누코비치가 당선되었다고 발표가 되었으나 (49% vs 46%), 부정선거 사례가 대규모로 발각되어 친서방 진영에서 들고 일어나 대규모 시위가 일어났고, 중앙선관위와 대법원이 개입한 끝에 재투표 끝에 친서방 유셴코 후보가 52% 득표로 승리한 사건입니다.
이 유로마이단 1차 시위는 우리나라의 촛불시위처럼 비폭력 평화적 시위였던 것으로도 이름 높습니다.
아래 사진처럼 축제와도 같은... 그런 이미지였죠. 민주화 시위를 통해서 재선거를 이끌어 냈고, 대법원이 승인했고, 재선거를 해서 정권교체에 성공하였습니다.
아래는 2004년 오렌지 혁명을 다룬 미 NBC 방송의 동영상입니다.
그런데 2014년 2차 시위는 양상이 좀 달랐습니다.
2014년 2월 18일 유로마이단 시위대에 의해 일어난 정부 전복은 어떤 이는 시민혁명이라고 말하고, 어떤 이는 쿠데타라고 말하며, 저는 정부 전복이나 쿠데타 라는 표현을 쓰는 쪽입니다.
이 시위는 몇개월전부터 계속 되던 것이 점점 커진 끝에 정부 전복에 이르게 된 것인 데, 시발점은 11월이었습니다.
2008년 미국 금융위기가 터진 후 그 여파는 전세계로 퍼져나가며 유럽경제를 침체에 빠뜨렸는 데, 우크라이나는 이걸 극복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앞서 글에서 말씀드린 바 처럼, 우크라이나는 가난한 나라이고 (1인당 GDP가 베트남, 필리핀 수준), 경제적으로 무능하여 외채가 7백억불 (70조원)가까이 쌓인 상태였습니다. 그 중 절반이 러시아에 빚진 거였고 나머지 절반이 서방세계에 진 빚이었습니다. 경제가 악화되며 외환보유고가 고갈되어 가자 외채를 갚지 못해 디폴트를 선언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경제위기설이 돌 게 됩니다.
우크라이나는 SOS를 쳤는 데, 러시아와 서방측으로부터 각각 제안을 받게 됩니다. 러시아는 150억불을 빌려주겠다고 했고, 서방세계는 200억 유로를 빌려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서방세계 제안에는 강도높은 구조개혁 이라는 전제조건이 붙어있었습니다. 러시아측 푸틴의 제안에는 이 꼬리표가 없었을 뿐 아니라 나중에 아예 탕감시켜 줄 수도 있다고 말을 흘렸습니다..
당시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러시아계인 야누코비치였고, 그는 양쪽으로 왔다갔다 하다가 러시아쪽 제안을 택합니다.
친러 여론이 강한 동부지역은 야누코비치를 지지하였고, 친서방 성향이 강한 서부지역은 이에 반대하였습니다 (수도 키에프는 서부지역에 속합니다).
당시 여론조사를 보면 어느쪽 제안을 받아들일 것인가를 두고 우크라이나 여론은 반반으로 엇갈린 상태였지만, 러시아측에서 계속 제안을 후하게 덧붙이면서 저울추가 그쪽으로 기울어졌습니다.
그러자 서부지역에서 상경한 사람들과 수도의 키예프 시민들이 모여, E.U.의 제안을 받고, 러시아 제안을 거부하라는 시위를 벌이기 시작합니다.
아래 사진은 2013년 11월 21일에 수도 키예프에 모여, E.U.제안을 받아들이라고 압박하던 유로마이단 시위대의 모습입니다. 시위대 한복판의 탑에 붙어있는 여자 사진은 율리아 티모센코입니다. 앞서 글에서도 적었었지만, 당시 친러파 야누코비치 대통령은 친서방파 티모센코를 부패 혐의로 투옥시킨 상태였습니다,
율리아 티모센코는 2010년 대선에서 친서방 진영의 대선 후보로 나와서 야누코비치 후보와 박빙의 승부를 벌이다가 3%차이로 떨어지고, 이후 대통령이 된 야누코비치가 정적 제거 차원에서 티모센코의 총리시절 저지른 부패 혐의를 들고나와 7년형을 받았었습니다. 친서방 시위대는 그들의 지도자 티모센코 사진을 들고 나온 것이죠.
우리나라 사람들은 티모센코라고 하면 이 사진으로 기억하실 겁니다. 이 여자 맞습니다.
율리아 티모센코에 대해서는 나중에 기회가 되면 좀 더 다루겠습니다.
처음 모인 인원은 불과 2만명이었다고 합니다.
12월에 우리나라 KOTRA의 우크라이나 지부에서 올린 보고에 따르면 11월까지는 평화적인 시위였다고 합니다. 당시 시위대의 요구는 세가지로 1. 총리의 퇴진, 2. 조기 총선과 대선 실시, 3. 티모센코 석방이었습니다.
우크라이나 반정부 시위, 혁명으로 이어질 것인가 - 2013. 12 KOTRA
그런데 이 시위대를 정부는 경찰 특수부대(전투경찰)을 투입해서 강경진압하였고,
이게 TV에 방영되면서, 반정부 여론이 높아지기 시작합니다.
2만명이었던 시위대는 40만명으로 커졌고, 시위는 거세집니다.
12월 1일 대통령 집무실 부근에서 불길이 치솟았고, 경찰 특수부대가 출동해서 시위대를 곤봉으로 진압합니다. 시위대는 12월 8일 수도에 있던 레닌 동상을 부수었고, 시위는 격화됩니다.
그러나 아직도 우크라이나의 여론은 향방이 정해지지 않았습니다.
미국 언론에 보도된 2013년 12월 설문조사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인들의 45-50%는 이 시위대를 지지하고, 나머지 절반 42-50%는 이 시위대에 반대한다고 답하였습니다. 국민 여론은 아직도 반반이었습니다.
어쨋거나 12월 들어서 시위대는 더 커지고 폭력시위로 변화되었습니다. 화염병과 각목이 등장하기 시작했고, 우크라이나 극우 민족주의자 조직들이 시위대의 선봉에 서서 돌격대 역할을 자임하였습니다.
야누코비치는 전경부대와 곤봉으로 이들을 진압하려고 하였습니다.
야누코비치는 1월 16일 시위대를 원천봉쇄하기 위한 반시위법을 통과시켰지만,
야권과 중도파는 이에 반발하여 시위대에 보다 우호적이 되었고, 시위대는 전경버스에 불을 지르고 각목을 휘두르기 시작합니다.
아래는 Euronews에 2014년 1월 20일 올라온 시위대 영상입니다.
야당이 시위에 참가하였고, 시위대는 화염병을 던지고, 인근 건물들을 점거하고, 도로에 벽돌과 푸대, 가구들로 바리케이드를 쌓고, 타이어를 태우고, 진지를 구축하여 경찰과 시가전을 벌이기 시작하였습니다.
2014년 2월 20일 유투브에 올라온 당시 시위 모습입니다.
이렇게 시위대가 커지고 폭력화된 것은
첫째, 정부의 폭력 진압, 반 시위법 제정 강경 방침이 문제였고,
둘째 시위대내에 우크라이나 민족주의자들 (자칭 민족주의자, 타칭 네오 나찌들)이 대거 유입되면서 부터입니다.
(잠깐, 저더러 민주화 시위대를 네오 나찌 깡패들로 몰고 있다고 주장할 사람들이 있을 것 같아서 미리 말씀드립니다만, 제 발언이 아니라 당시에 미국 언론들이 이미 그렇게 보도를 하고 있었습니다. 극우 섹터 들이 들어와 시위를 주도하면서 폭력화되고 있다고 우려하는 보도들이 당시에 있었습니다. 아래에 해당 기사를 출처 링크와 함께 인용할 것입니다)
2004년에 있었던 유로마이단 시위 (오렌지 혁명)은 비폭력이었고 사망자가 없었던 반면에, 2014년 유로마이단 시위는 극우 민족주의자(네오 나찌)들이 시위대의 핵심이 되면서 폭력시위로 변했습니다.
비교를 위해 2004년 오렌지 혁명 당시 유로마이단 시위대 사진을 첨부합니다.
우리나라 촛불 시위 비슷한 분위기지요.
제가 2004년과 2014년 유로마이단 시위를 비교하면서 후자의 폭력성에 주목하는 이유는,
이것이 우크라이나 내전발발의 계기가 되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글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우크라이나는 구조적으로 서부 vs 동부, 친서방 vs 친러시아로 반씩 갈려있는 정치지형입니다.
2004년 유로마이단 시위대는 친서방 시위대였지만 평화시위로 정권 교체를 이루어냈고, 양 진영이 모두 참여한 재투표에서 승리했기 때문에 친러진영으로부터도 수긍을 받아낼 수 있었습니다.
반면에 2014년 유로마이단 시위대는 폭력시위였고 무력으로 정부를 전복시키면서 친러진영으로부터 불법적인 쿠데타라는 비난을 받았습니다.
국가의 진로를 놓고 의견이 팽팽하게 갈렸을 때, 투표라는 서로 납득 가능한 수단이 아니라, 폭력시위가 벌엊지고, 그게 격화되자 서로 총격전 끝에 사망자가 나오고, 휴전협상을 한 후에 뒤통수를 쳐서 정부 청사를 점령하여 정권을 차지하였습니다. 상대의 이런 행동을 받아들일 수 있겠습니까.
이 차이로 인해 유로마이단 1차 시위와 달리 2차 시위후 동부지역은 독립선언을 하게 되고, 우크라이나 내전이 벌어지게 된 것입니다.
유로마이단 시위대의 심장에 있는 우크라이나 민족주의 - The Nation. 2014. 1. 21
https://www.thenation.com/article/archive/ukrainian-nationalism-heart-euromaidan/
"키예프에서 두달째 지속되고 있는 "Euromaidan"시위는 사람들이 마스크를 쓰면서 폭력적으로 변했다.
억압적인 시위법에 분노한 사람들은 의회의사당으로 행진하다가, 경찰들의 폴리스라인을 만나자 달려가면서 화염병을 던졌다. 경찰들은 최루탄을 던졌고, 물대포, 고무탄을 쏘면서 시위대를 막을려고 하였다.
경찰을 향한 시위대 돌격의 선봉에 서 있는 것은 "Right Sector" (우익)이라는 그룹으로, Patriots of Ukraine와 Trident라는 극 우익 집단과 연결되어 있는 곳들이었다. 그 다음날 성명서에서, 이 그룹은 일요일 시위를 자신의 공으로 돌리며, 야누코비치 대통령이 내려올때까지 투쟁을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약속하였다.
Right Sector에 의한 폭력의 물결은, 미디어들이 서방세계에 끈이 닿아있는 유로마이단 시위대의 지도자격인 극우 정당과 조직에 대해서 얼마나 무비판적이고 분별이 없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서방세계) 유럽과 통합되기 위해 시위를 하고 있다 는 주장과 야누코비치에 맞서서 싸우고 있다는 포장은, 민족주의 (자주 쇼비니스트적이기 까지 한) 수사를 번지르르하게 포장하여, 경찰에 맞서는 폭력 뿐만이 아니라 좌익에 대해 가해지는 폭력으로 이끌고 있다.
사회행동을 위한 센터 프로젝트의 NGO 간사인 Maksim Butkevich는 차별과 제노포비아 (외국인 혐오증)에 맞서는 일을 하는 데, 유로마이단 시위를 통해서 우익 집단들이 자랐다고 말을 하였다.
"저는 극우 집단들이 크다거나, 다수의 행동가들이 이번 일 이후 극우 집단에 들어갈 거라고 말하지는 않겠지만, 이걸 통해서 그 극우들이 더 받아들여지고 주류가 되어 가고 있다고 말을 하겠습니다"
아직 유로마이단 시위의 결과물은 나오지 않았지만, 만약 그들이 선거로 이어진다면, 민족주의자들이, 특히 시위를 이끌고 있는 스보보다 (Svoboda)가 큰 정치적 파워를 갖게 될 것이라고 부케비치는 말했다."
이 기사를 쓴 The Nation은 미국에서 150년 넘게 발행되고 있는 정치 및 문화 주간지입니다.
시가전이 격화되자 1월 22일에는 우크라이나의 사제들이 키예프 광장에 나와 평화시위를 외쳤습니다.
사제들은 시위대의 평화시위를 주장할 뿐만 아니라, 전경들의 폭력진압을 강력하게 비난하였습니다.
그러나 시위는 지방으로도 확산되고 있었습니다.
유로마이단 시위대는 지방 정부 청사를 점거하기 시작합니다.
아래 영상은 2014년 1월 25일 우크라이나 서부의 Vinnytsia시 정부 청사를 점거하려는 시위대와 전경 부대간의 실내 격투를 러시아 방송이 보도한 것입니다.
시위가 확산일로를 걷고 멈출 줄 모르자, 친러파 정부는 굴복하기 시작합니다.
1월 28일 총리가 책임을 지고 사퇴합니다. 시위대의 첫번째 요구가 받아들여진 것입니다.
그러나 시위는 계속되었습니다. 극우 조직들은 시위대 내를 장악해 갑니다.
(시위대 내에 무슨 무슨 극우 조직들이 있었는지는 다음의 BBC기사에 설명되어 있습니다.
다시한번 말하지만 제가 민주화 시위대를 폭력 극우조직으로 묘사한 게 아닙니다. 당시만 하더라도 영, 미 저명 언론들은 시위대가 심하게 폭력화되었다고 우려하며 세부 내용들을 기사로 전달하고 있었습니다. BBC는 친서방 시위대만 깐 게 아니라, 친러 시위대도 같이 폭력 행사중이라며 일일이 조직들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로드 아일랜드 정치학과 교수는 대놓고 저건 폭동(riot)라고 지칭하며 미국 언론에 글을 기고하였습니다).
Groups at the sharp end of Ukraine unrest - BBC, 2014. 2. 1
http://www.bbc.com/news/world-europe-26001710
언급된 조직 이름들 : Right Sector, Common Cause, Vigilantes, Football fans, Oplot.
2월 16일 야누코비치 대통령은 야권인사 234명을 석방하고 사면하겠다고 발표합니다. 시위대의 두 번째 요구가 받아들여진 것입니다.
친러파 정부는 이로써 시위가 누그러질 것을 기대하였습니다.
하지만 이틀뒤 2014년 2월 18일에 일이 터집니다.
경찰이 키예프 시내에서 시위대에 발포하여 18명이 사망합니다.
(문제는... 이날 진압에 나섰던 경찰도 16명이 총기에 맞아 사살됩니다. 이건 시위대측에 의해 총기로 사살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는 데, 신정부는 이에 대한 조사는 스킵한 것으로 저는 알고 있습니다)
아래 기사는 정권이 전복된 후, 임시 정부가 발표한 내용입니다.
우크라이나 검찰, ‘시위대에 발포한 특수부대원 12명 체포’-CBS 노컷뉴스 2014. 4. 4
https://nocutnews.co.kr/news/4000830#csidx778a3ee204629baa33a326aa2233fff
"우크라이나 검찰이 지난 2월 야권의 반정부 시위 과정에서 시위대에 발포한 경찰 특수부대(베르쿠트) 대원 12명을 체포했다고 3일(현지시간) 밝혔다.
검찰은 이들이 지난 2월 18~20일 키예프 시내 ‘인스티투트스카야’ 거리 등에서 벌어진 대규모 시위 도중 시위대에 조준 발포해 대규모 희생자를 낸 것으로 보고 있다.
발포 명령은 빅토르 야누코비치 대통령이 직접 대통령 행정실과 내무부, 국가보안국 등을 통해 내렸다고 검찰은 설명했다. 검찰은 그러나 당시 시위 과정에서 시위대뿐 아니라 진압에 나섰던 경찰 16명도 총에 맞아 숨진 이유에 대해서는 밝히지 않았다.
지난 2월 키예프 시내 반정부 시위에서 시위대와 경찰이 무력 충돌하면서 양측에서 100명 가까이 숨지고 600여명이 부상을 입은 것으로 전해졌다. 사상자들은 주로 시내 건물 지붕에 자리 잡은 저격수들이 쏜 총에 맞은 것으로 알려졌다."
2월 18-19일 이틀동안 75명이 사망하고, 1100명이 다치는 유혈사태가 벌어졌습니다.
유혈 사태에 놀란 정부와 야당, 시위대는 다음날 휴전에 합의합니다.
정부의 유혈진압을 비난하던 서방세계가 중재에 나섰습니다.
독일, 프랑스, 폴란드 정부의 외무장관들이 중재한 결과, 국민들의 신임을 묻기 위해 조기 총선을 치르기로 하고, 더 이상의 유혈충돌을 막기 위해 우크라이나 정부는 경찰 병력을 수도바깥으로 빼내겠다고 약속합니다.
미국의 조 바이든 부통령은 이전부터 진압경찰을 철수시키라고 친러파 우크라이나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 요구하고 있었습니다.
바이든 "우크라이나 진압 경찰 철수해야" - SBS, 2014. 1. 28
https://news.sbs.co.kr/news/endPage.do?news_id=N1002206858
정부는 이를 받아들입니다.
경찰병력 철수와 조기 총선 수용은, 시위대의 3가지 요구중에서 마지막 요구를 받아들인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정부가 경찰 병력을 빼내자, 유로마이단 시위대는 즉시 총기를 들고 정부 관공서를 점령합니다. 키예프 시청과 정부 청사들이 속속 점령당하자, 야누코비치 대통령은 정부가 전복되었다고 느끼고 러시아로 도망칩니다 (2014년 2월 23일).
*나중에 푸틴은 러시아 TV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당시에 야누코비치 대통령이 전화를 걸어왔기에, '유혈진압을 해서는 안되지만, 경찰병력을 수도 바깥으로 철수시키는 것은 바보짓'이라고 충고했었다고 밝힙니다.
여하튼 야누코비치는 경찰을 철수시키는 길을 택했고, 무주공산이 되자 시위대는 관공서를 점거하였습니다. 정부는 전복되었고, 대통령은 도망갔습니다.
우크라이나 서부에서는 친서방 시위대가 지방 관공서들도 속속 점거하기 시작하였고,
이에 대항하여 우크라이나 동부에서는 친러시아 시위대가 관공서를 점거하기 시작합니다.
우크라이나 동부서 확산되는 (친러 시위대의) 관공서 점령시위 -연합뉴스. 2014. 4. 30
https://www.yna.co.kr/view/AKR20140430159151108
"우크라이나 동부의 친(親)러시아 분리주의 시위대가 관공서를 점거하는 사건이 늘어나고 있으나 중앙정부는 사실상 통제력을 상실해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동부 도네츠크주(州)를 중심으로 벌어진 시위대의 관공서 점거는 중앙정부의 진압작전 재개에도 지방 경찰의 소극적 대응에 따라 확산 추세를 보이고 있다....
동부에서 분리주의 세력이 확장하는 반면 우크라이나 중앙정부는 지방정부에 대한 통제력을 상실한 채 속수무책인 상황이다.
주요 외신 영상을 보면 전날 루간스크의 진압 경찰들은 시위대의 관공서 진입을 방관하는가 하면 친중앙정부와 분리주의 시위대 간의 충돌에도 소극적으로 대응했다.
알렉산드르 투르치노프 우크라이나 대통령 권한대행은 수도 키예프에서 열린 주지사 회의에서 동부의 통제력 상실을 시인하고 경찰을 비난했다. 그는 "인정하기 어렵지만 사실"이라면서 동부의 경찰 대다수가 "시민을 보호하는 의무를 수행할 능력이 없다"고 밝혔다.
그는 전날에도 경찰이 시위대에 대응하지 않거나 무력한 모습을 보였으며 일부 반역적 행동도 저질렀다고 비난하고 도네츠크와 루칸스크 지방정부의 내무 책임자를 해고하라고 지시했다."
한편 러시아로 도망가던 친러파 야누코비치 대통령은 어떻게 되었는가.
푸틴이 방송에서 한 인터뷰에 따르면,
'처음부터 우크라이나 사태 배후에 미국이 있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의 야누코비치 대통령이 처리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는 데, 그렇게 못했다. 도망가는 야누코비치를 제거하기 위해 정권 전복한 세력이 중기관총을 길목에 설치해놨다는 첩보가 들어왔었다. 러시아 특수부대 헬기를 급파하여 우크라이나 동부에서 한시간 반동안 수색한 끝에 야누코비치가 탄 차를 찾아냈다. 일단 크림으로 빼돌렸다가 나중에 러시아 본토로 데려왔다' 고 합니다.
푸틴 "크림 합병 앞두고 핵무기 준비"- 연합뉴스, 2015. 3. 15
https://www.yna.co.kr/view/AKR20150315062052080
정부를 전복한 유로마이단 시위대는 정부 장악에 들어갑니다.
그런데 2월 28일 크림반도에 주둔중이던 러시아 흑해함대 소속 보병들이 크림 공항을 점거하고,
크림반도 자치정부는 러시아로 합병되는 것을 결정하는 주민투표를 실시하겠다고 발표합니다.
그리고 크림반도 주재 우크라이나 해군에게 투항하라는 요구를 합니다.
하루만에 우크라이나 해군 사령관 베레조프스키는 크림 공화국에 투항하겠다고 밝힙니다.
우크라이나 임시 정부는 베레조프스키는 반역자라며 해임을 발표합니다.
우크라이나, 해군사령관 하루 만에 해임 - SBS, 2014. 3. 3
https://news.sbs.co.kr/news/endPage.do?news_id=N1002274168
같은 날, 오바마는 존 케리 국무장관을 키예프로 보내서, 미국은 우크라이나 과도 정부를 지지한다고 발표하였습니다.
수도 키예프를 장악한 시위대와 야당들은 일단 과도정부를 유지하기로 합니다.
2주일 뒤 러시아계 주민이 대다수인 크림반도는 주민투표에서 97%의 합병찬성이 나왔고 (2014년 3월 16일), 러시아는 크림반도 합병을 선언합니다. 그와 함께 러시아인들이 많이 사는 우크라이나 동남부에서는 분리독립 움직임이 나타납니다. 루간스크, 도네츠크 주에서는 분리독립을 선언하고, 우크라이나 과도정부는 진압 명령을 내립니다. 이후 내전으로 이어집니다.
2014년 유로마이단 시위에서 제가 주목하는 점은, 고비마다 터진 우크라이나 극우 민족주의 세력의 개입입니다.
E.U.쪽으로 가느냐, 러시아쪽으로 가느냐를 놓고 국가가 5 대 5로 갈려 여론이 정해지지 않았을 때, 유로마이단 시위대가 나섰습니다.
우크라이나 서부쪽 사람들이 친서방 시위를 벌이는 것은 당연히 벌어질 법만한 일이고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십년전에 오렌지 혁명도 있었으니까요. 그러나 이번에는 시위가 격화되는 과정에서 극우 민족주의 조직들이 시위대를 주도하고 경찰과 싸우는 돌격대로 활약하면서, 화염병과 투석전, 건물 점거와 시가전을 벌인 것이 컸습니다. 인명살상과 무력에 의한 정부 전복으로 이어진 것이죠.
경찰이 시위대를 사살한 날, 시위대들도 경찰을 사살하였습니다.
경찰들이 시위대를 죽이는 데 저격수를 썼다고 하는 데, 시위대가 경찰들을 어떻게 사살했는지에 대해서는 아직도 오리무중입니다. 어디서 총기를 준비 하였던 걸까요.
(*그런데 시위대 사망자들과 경찰특공대 사망자들이 같은 라이플에 의해 살해된 것으로 보인다는 과도정부의 발표가 나옵니다. 그러자 친러파측에서는 정부를 뒤엎기 위해서 친서방측에서 일을 벌인 것이 아니냐는 음모론이 나오고, 친서방 신정부측에서는 러시아 특공대가 정부를 유지하기 위해서 일을 벌인 것이라는 음모론을 펼칩니다. 저는 솔직히 후자 음모론은 논리가 잘 이해가 안됩니다만... 여하튼 그런 말이 있습니다. 출처는 BBC.
Ukraine crisis: What we know about the Kiev snipers - BBC 2014. 4. 3
https://www.bbc.com/news/world-europe-26866069
"In one of the more unusual theories, based on similarities in the victims' bullet wounds, interim Health Minister Oleh Musiy has argued that protesters and police alike were shot with the same rifles as part of a plot by erstwhile Yanukovych allies to turn the people against him.
"I think it wasn't just a part of the old regime that [plotted the provocation] but it was also the work of Russian special forces who served and maintained the ideology of the [old] regime," he said."
미국의 요구대로 우크라이나 정부가 경찰을 철수시키자
즉각 시위대는 총기를 들고 정부 청사들을 장악하였습니다. 이 조직화된 무장과 점령은 누가 지시한 것일까요.
(극우 조직들은 사전에 어느 정부 청사를 누가 점령할지를 분배해 놨었다고 합니다)
스필나 스프라바
"스필나 스프라바(우크라이나어: Спільна справа)는 우크라이나의 반정부 단체이다. 이 단체는 2014년 초 유로마이단 시위 당시 키예프의 우크라이나 법무부, 농민부, 에너지부(1월 25일에 몇 시간만 점령했지만, 원하는 경우에는 계속 점령할 수 있었음을 보여줌) 등 몇몇 정부 기관 건물을 장악했다.
이 단체의 대표는 변호사이자 인권운동가이며 레오니드 쿠치마 전 대통령 반대 운동에 참가한 올렉산드르 다닐류크였다가, 이후에는 키예프의 시장인 레오나드 체르노베스키가 되었다.
유로마이단 기간 동안 스필나 스프라바는 다른 유로마이단 참가 단체와 협력을 거부했다. 스필나 스프라바 자체는 온건적이였고 오히려 더 "과격"한 반정부 단체들이 우크라이나의 대통령 빅토르 야누코비치의 제2 아자로프 정부에게 계염령을 발효할 구실을 준다고 반대하였다. 특히 스필나 스프라바와 우크라이나 민족주의 정당인 스보보다와는 관계가 매우 좋지 않아, 스보보다 운동가들은 스필나 스프라바의 우크라이나 농민부 및 키예프 시 청사 점령을 강제로 떠맡았다고 보고했다"
푸틴이 말한, 도망치는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길목에 기관총을 설치하고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누구였을까요.
우크라이나에서 정부가 전복된 지 일주일 후, 미국 CIA 부국장은 우크라이나 현지에서 인터뷰를 합니다. 우크라이나 사태가 터진 후 달려왔다고 하면서 미국이 우크라이나 사태를 예의주시하고 사태 안정화를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말을 하지요. (이 기사를 봤었는 데 링크를 못찾겠습니다. 죄송합니다 ;;;)
그런데 과연 나중에 들어온 것일까요, 이미 들어와 있었던 것일까요.
독일 언론 '빌트'지는 CIA 브레넌 국장이 가명으로 우크라이나에 들어와 우크라이나 내전에 개입하고 있었다고 다음과 같이 보도하였습니다.
美 CIA·FBI 요원들 우크라 정부 지원 - SBS, 2014. 5. 5
https://news.sbs.co.kr/news/endPage.do?news_id=N1002374511
"미국 중앙정보국 CIA와 연방수사국, FBI가 우크라이나 (과도) 중앙정부를 지원하고 있다고 독일 일간지 빌트 인터넷판이 보도했습니다. 이 신문은 독일 정보기관 소식통을 인용해 CIA와 FBI 요원 수십 명이 미국 정부 지시로 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에 머물며 현지 과도정부를 지원하고 있다면서 특히 우크라이나 동부 지역의 분리주의 세력 진압과 보안기관 개편 등의 문제를 조언하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미국 요원들은 그러나 동부 지역 진압작전에 직접 참여하지는 않으며 활동 범위가 키예프에 한정돼 있다고 이 소식통은 설명했습니다. FBI 요원들은 또 우크라이나 당국의 범죄조직 소탕 작전을 돕고 있으며 CIA 소속의 금융전문가들은 축출된 야누코비치 대통령 자산을 추적하는 작업을 지원한다고 소식통은 소개했습니다.
앞서 지난달 중순에는 비밀리에 이루어진 브레넌 CIA 국장의 키예프 방문으로 한바탕 소동이 일어났습니다. CIA 국장의 방문 사실을 처음 폭로한 우크라이나 의회 소식통은 브레넌이 가명으로 키예프를 방문했으며 현지에서 정부 지도자와 정보·수사기관 수장 등을 두루 만났다고 전했습니다.
이 소식통은 우크라이나 정부군이 지난달 15일 동부 도시 슬라뱐스크의 분리주의 민병대에 대한 진압작전을 개시한 것도 브레넌 국장의 조언에 따른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관련 소식이 알려지자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긴장이 고조된 상황에서 브레넌 국장이 우크라이나를 방문한 이유를 설명하라고 미국을 압박했습니다.
이에 카니 미 백악관 대변인은 브레넌 국장의 키예프 방문 사실을 확인하면서도 이것이 통상적 방문의 일환이었다고 주장했습니다.CIA는 별도 성명에서 브레넌 국장이 우크라이나 동부 지역 분리주의 진압작전 개시에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않았다고 반박했습니다."
CIA국장으로는 모자란다면, 다른 증거들이 있습니다.
2014년 유로마이단 시위대에서 활약한 우크라이나 민족주의 계열 정당 (이라고 쓰고 네오 나치라고 읽는) Svoboda (Freedom party) 당이 있습니다. 앞서 미국의 The Nation지 기사 마지막 부분에서 "시위를 이끌고 있는 스보보다 당"이라고 언급된 그곳입니다.
아래는 이 당의 당수 올레 타니복의 사진입니다. 나치 경례를 잘하는 군요.
존 맥케인 상원의원이 우크라이나를 찾아와 유로마이단 지지선언을 할 때 옆에 같이 서있는 스보보당 대표입니다.
스보보다 당은 나치를 추종하는 우크라이나 민족주의 계열 입니다. 스테판 판테라 기억나실 겁니다. 그 뿌리가 끊기지 않은 겁니다.
스테판 판테라 본인부터가 CIA가 빼돌려서 살아남기도 했었고...
존 매케인 사진은 날짜가 중요한 데, 유로마이단 시위대가 폭력을 사용하기 막 시작할 때입니다.
2013년 11월까지는 비폭력이었고 12월 8일 레닌 동상 파괴 이후부터 폭력이 시작되는 데,
12월 14일 존 맥케인 상원의원이 우크라이나 키예프의 유로마이단 시위대 단상에서, 미국은 여러분을 지지한다("America stands with you")고 연설하는 장면이거든요. 옆에 스보보다 당 당수가 서있다는 것은, 이때쯤에는 네오 나치가 시위대 단상위에 전면 등장하였고, 미국의 시위대 지지가 공식화된 시점이라는 거지요.
영국 데일리 메일지에 좀 더 많은 이날 사진들이 있습니다.
영국의 가디언지에서도 보도가 되었습니다.
https://www.theguardian.com/world/2013/dec/15/john-mccain-ukraine-protests-support-just-cause
존 맥케인 상원의원보다 더 열심히 격려방문을 하신 분도 계십니다.
Victoria Nuland 미 국무부 차관보인데요, 2013년 12월 11일 키예프를 방문해서 시위대를 격려하였고, 미국의 CBS뉴스에 보도되었습니다. 이 분은 현재 미 국무부 차관으로 승진해 있습니다.
두달 뒤인 2014년 2월 6일에 다시 와서 네오 나치 Svoboda 당수와 회담을 하셨답니다.
(붉은 글씨가 굵게 쓰여진 이 사진은 러시아측에서 열심히 퍼나르는 반면에, 미국은 애써 무시하는 사진입니다.
그런데 러시아가 퍼나르는 이 사진이 가짜는 아닙니다. 로이터 통신을 통해서도 그날 만남이 보도되었거든요)
Ukrainian opposition leaders Oleh Tyahnybok (left), Vitaly Klitschko (second right) and Arseny Yatsenyuk (right) with US Assistant Secretary of State for European and Eurasian Affairs Victoria Nuland during a meeting in Kiev February 6, 2014. — Reuters
기념 사진도 찍었더군요. =_=
오른쪽 안경쓴 분은 몇달 뒤 신 정부의 총리가 되는 야체뉵입니다. 이 분이 독일 TV ARD와의 회견에서 "우리 모두는 소련이 우크라이나와 독일을 침략했음을 기억하고 있다"라고 나치 역사관 발언을 해서 물의를 일으키게 되는 분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이 분이 유태계입니다. @_@
야체뉵 총리가 이 폭탄 발언을 하자 러시아 스푸트니크 통신 (미국으로 치면 미국의 소리 방송에 해당)이 신나서 보도하더군요.
Yatsenyuk Rewrites History: ‘USSR Invaded Germany’ - 2015. 9. 1 스푸투니크 통신
https://sputniknews.com/20150109/1016706636.html
Nuland 국무부 차관보가 스보보다를 방문한 게 2014년 2월 6일입니다. 유로마이단 시위대가 격렬한 시가전을 벌이고 있을 때고 스보보다가 거기서 한참 활약을 하고 있을 때이죠.
이 사진 찍고 나서 열흘 뒤인 2월 16일 시위대와 경찰들간에 총격전이 벌어져 사망자들이 쏟아지고,
정부가 경찰들을 철수시키자 시위대가 총기를 들고 정부 청사를 점거하여 정부 전복이 이루어집니다.
첫댓글 앞뒤 상황이 잘못된 게 몇 개 보이네요. 경찰은 1월 22일 흐루셰우시크가에서 총기사용하면서 시위대가 사망하기 시작했고, 2월 18일 전까지 경찰의 총격으로 10명 가까이 사망한 상황이었습니다.
2월 18일만 따지더라도 시위대 사망자는 점심때부터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고, 경찰의 첫 사망자는 저녁 6시 넘은 밤 되어서야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되게 현재 와서는 틀린 내용이 많네요...
@two2019 이제와서 시리즈 정독 중인데,
과거에 NATO가입국 범주(구 WTO국, 구소련구성국, CIS국 등)도 거하게 오류가 있더니,
정교회 내 관할권 이관을 "강제개종"이라고 하질않나(황당 그 자체),
아주 일관되게 한쪽방향으로만 오류가 꾸준하게 있네요.
저술하신 분이 독자 여론을 원하는 방향으로 끌고오도록 서술하는데에만 감정적으로 집중하다보니, 그런 오류의 정확성 여부가 차순위로 밀려서 그런 것 같습니다;;
근데 퍼오신 분도 이제는 탈퇴하신 것 같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