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약용(丁若鏞)-淡泊(담박)(담박함을 즐기다)
淡泊爲歡一事無(담박위환일사무) 담박함을 즐길 뿐 아무 일도 없고
異鄕生理未全孤(이향생리미전고) 타향살이도 외로운 것만은 아니라네
客來花下攜詩卷(객래화하휴시권) 손님 오면 꽃그늘로 시집 들고 가고
僧去牀間落念珠(승거상간낙염주) 스님 떠난 평상에는 염주가 떨어져 있네
菜莢日高蜂正沸(채협일고봉정비) 장다리 주변에 해 높이 뜨면 벌들 잉잉거리고
麥芒風煖雉相呼(맥망풍난치상호) 보리 까끄라기에 훈풍 불면 꿩들 서로 부르네
偶然橋上逢鄰叟(우연교상봉인수) 우연히 다리 위에서 이웃 영감 만나
約共扁舟倒百壺(약공편주도백호) 조각배 띄우고 일백 병 취하도록 마시자 약속했네
*위 시는 “한시 감상 情정, 사람을 노래하다(한국고전번역원 엮음)”(다산시문집茶山詩文集)에 실려 있는 것을 옮겨 본 것인데, 정약용이 1801년(순조 1) 신유옥사로 장기현에 유배되었다가 황사영백서 사건에 연루되어 강진으로 이배되어, 1807년 4월, 강진의 제자 이청(李청)의 집에 머물면서 유배 생활의 담박함을 즐기며 평온한 마음으로 이 시를 지었다고 합니다.
*하승현님은 “다산은 꽃그늘 아래서 손님을 맞아 함께 시집을 읽으며 그리움과 쓸쓸함을 잊는다. 승려가 찾아왔다 남기고 간 염주를 주워들며 그가 떠난 자리에 남은 담박한 마음을 챙긴다. 벌들이 잉잉거리는 장다리 밭이며, 꿩들이 꺼겅대는 보리밭이며 모두 고향에서 익히 보았던 풍경이다. 이런저런 번잡한 생각이 다 날아가고 평화로운 마음 상태가 된다. 타향살이라 해도 낯설지만은 않다고 느끼게 해주는 고마운 벗들이다. 어디 그뿐일까?, 오며 가며 만나는 이웃 영감은 언제라도 만나서 술 한 잔 할 수 있는 친구다. 작은 배에 앉아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을지는 알 수 없지만 몇 동이 술을 함께 비울 만큼 허물없는 사이임에는 틀림없다. 고향이 주는 편안한 느낌은 내가 관계 맺고 있는 대상들과의 조화에서 온다고 볼 수 있다. 타향에 산다 해도 만난 사람들과 좋은 감정을 나누고, 생활 속에서 담박한 마음을 유지할 수 있다면 그곳이 어디든 내 고향처럼 느껴질 것이다. 일터도 그렇다. 내가 부족한 부분을 누군가 채워주고 누군가 부족한 부분을 내가 채워 주면서 서로를 인정하고 일을 성취해 간다면, 일터 또한 고향처럼 될 수 있을 것이다. 향기로운 차를 마시다 한잔 타 주고 싶은 사람, 어깨가 아플 때 망설임 없이 찾아가 주물러 달라고 할 수 있는 사람, 아무 얘기나 생각나는 대로 해도 듣고 바로 잊어 주는 사람이 있다면 직장 생활하면서 만나는 어려운 고비들을 함께 넘길 수 있을 것이다. 마음을 한없이 담박하게 먹는다면 어디든 내 고향과 같을 것이고, 누구든 고향 친구와 같을 것이다”라고 감상평을 하셨습니다.
*정약용[丁若鏞, 1762년(영조 38) 6월 16일 ~ 1836년(헌종 2) 2월 22일, 자는 미용(美庸), 호는 다산(茶山), 사암(俟菴), 여유당(與猶堂), 채산(菜山), 경기도 남양주시 출생]은 실학을 집대성하여 부국강병의 꿈을 꾼 사람으로 어려서부터 이익의 유저를 공부하면서 근기학파의 학문을 접하였고, 과거 급제후 정조의 총애를 받아 한강에 배다리를 놓고 거중기 등을 고안하여 수원 화성 건축에 도움을 주는 등 기술적 업적을 남기기도 하였으며, 민본의 정치관을 지닌 개혁가로 민을 존중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였고, 유학 사상을 현실정치에 맞게 실현하고자 하였으며, 천주교를 접하고 이로 인해 장기로 유배를 당하였다가 강진으로 옮겨가며 18년 동안의 긴 유배생활을 하였으나 그곳에서 많은 문도를 거느리고 강학, 연구, 저술에 전념하여 실학적 학문을 완성시켰으며 육경과 사서에 관한 저술을 근본으로 하여 경세유표, 목민심서, 흠흠신서 등을 써서 경세를 위한 구체적인 실천 방안을 제시하기도 하였습니다.
*다산은 일생동안 2000여 수의 많은 시를 남겼는데, 시적 재능이 예사롭지 않아 7세 때 지은 시 “소산폐대산小山蔽大山, 원근지부동遠近地不同, 작은 산이 큰 산을 가리니, 멀고 가까움이 다르기 때문이네”라는 시가 아버지를 놀라게 했다 합니다.
*詩卷(시권) : 1.여러 편(篇)의 시(詩)를 모아서 편집(編輯)한 책(冊)., 2.과거(科擧)를 볼 때, 시(詩)를 짓던 글장.
*沸(비) : 끓을 비, 용솟음칠 불, 어지럽게 날 배
*麥芒(맥망) : 보리. 밀 따위의 까끄라기
*叟(수) : 늙은이 수, 1.늙은이, 2.어른, 3.쌀 씻는 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