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월의 외출] 정병경.
ㅡ별난 학자ㅡ
벼슬을 마다한 학자 중에 별난 사람이 있다. 우계牛溪 성혼成渾(1535~1598)은 조선 선조 때 세 번이나 동지중추부사에 제수되나 거절한다. 호를 묵암默庵으로도 부른다. 우계 선생은 사육신 성삼문의 친족이다. 그의 시조는 성인보成仁輔이고 본관은 경남 창녕昌寧이다. 대지면 모산리에 사당이 있다.
부친인 성수침成守琛은 기묘사화와 을사사화를 거치면서 파주에 은둔한다. 조선 개혁 사림파士林派 정암靜庵 조광조趙光祖(한양조씨)의 수하에서 동생 성수종과 함께 공부한 문인이다.
성혼은 몸이 허약해 병치레를 하며 어렵사리 세상을 살아온 인물이다. 그의 스승이 백인걸이다.
김상용과 신흠, 안방준 등은 우계의 제자다. 많은 후학들을 배출한 존경받는 지도자다.
선비가 향교의 문묘에 배향되기는 하늘에 별따기다. 이들을 '동국18대명현'으로 부른다. 문묘에 배향된 인물로는 신라인 설총과 최치원이 있다. 고려의 인물은 안향과 정몽주다.
문묘에 배향된 조선시대 인물로는 14명이다. 김굉필, 정여창, 조광조, 이언적, 이황, 김인후는 순탄하게 문묘 배향에 결정된다. 당쟁 이후 이이, 조헌, 성혼, 김장생, 김집, 송시열, 송준길, 박세채는 우여곡절로 결정된다. 이들은 모두 서인(노론ㆍ소론)이다. 문묘 종사를 반대한 남인은 한 명도 없다.
숙종 대에 잠시 집권한 남인은 주자학에 비판적이다(유형원, 이익, 이가환, 이중환, 채제공, 정약용 등). 숙종 초에 남인 사이에 갈등으로 탁남과 청남으로 갈린다.
북인은 정인홍과 이발, 이산해 등이 중심을 이룬다.
성혼은 선조가 내리는 벼슬을 수십 차례 거부한다. 적성현감과 참봉, 공조좌랑 등의 직책을 모두 사양한다. 파주에 우계정사를 차리고 24년간 후학을 양성한 위대한 학자다.
ㅡ삼현ㅡ
성혼(1535생)은 30년간 절친인 율곡(1536생)과 송익필(1534생)도 파주가 고향이다. 기호학파 학통을 이은 세 사람은 삼현三賢으로 불린다. 파주는 성리학의 중심지다. 성혼은 율곡과 함께 1681년(숙종7년) 문묘에 배향된 인물이다. 창녕의 '물계서원'과 해주의 '소현서원', 파주 '파산서원'에 제향되었다.
영남학파에서 초기에는 김종직이, 중기에는 이황, 장현광 등이 영수로 활약한다. 류성룡柳成龍을 비롯한 우수한 성리학자들이 배출된다. 율곡의 기호학파와 쌍벽을 이루게 된다.
외조모 안돈후의 비첩婢妾이라는 신분으로 부친 송사련과 송익필 3형제가 안씨 집안 노비로 전락하지만 후에 신분이 환원된다. 송익필도 스스로 벼슬을 하지 않은 인물이다.
성혼은 17세(1551년)에 순천군수 신여량의 딸(21세)과 결혼해 아들이 둘이다. 장남 문영이 19살에 요절하고 차남 문중이 대를 잇는다.
성혼은 27세에 모친을 여의고 3년 후 아버지를 떠나보내니 의지할 데가 없어 마음 고생이 심했다.
6년 세월을 시묘살이로 자식의 도리를 다한 효자다. 성혼에겐 가슴 아픈 일이 자주 일어나지만 마음으로 삭인 성인이다.
성혼의 학문은 사위 윤황(尹煌,1571~1639)을 매개로 외손 윤선거(1610~1669), 외증손 윤증(1629~1714) 등으로 이어진다. 유학을 계승시킨 성혼은 64세 되는 해에 눈을 감는다.
ㅡ율곡의 숨결ㅡ
파주 '율곡선생유적지'로 향한다. '율곡기념관'엔 율곡의 행적이 고스란히 녹아있다. 여견문如見門을 들어서니 북쪽을 마주한 묘역엔 가족묘가 보인다.
모친 신사임당과 부친 이원수가 율곡의 묘지 아래에 묻혔다.
율곡의 영정이 있는 좌측 언덕 자운서원 삼문을 들어선다. 강인당講仁堂에서 유생들의 경전 외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446년을 이어온 고목 두 그루의 모습은 마치 율곡과 신사임당을 보는 듯하다. 후대에 남긴 업적은 글로 다 쓸 수 없는 존경스런 인물이다.
가을 날씨는 변화무쌍하다. 돌풍을 동반한 소나기를 만나니 죽비 소리인 듯 정신이 번쩍 든다. 가을비여서 옷깃을 여미게 한다.
ㅡ우계를 찾아ㅡ
파주 향양리 우계 기념관(성현로55)은 율곡기념관에서 15분 거리다. 현대식 미술관처럼 심플하게 지었다. 대체 휴일이어서 문이 잠겨있다.
묘역을 향해 50미터쯤 올라가니 주차장 건너에 사당과 홍살문이 눈에 들어온다. 좌측에는 작은 못에 비맞은 수련이 쓸쓸해 보인다. 신도비 왼쪽 산 언덕에 성혼 선생 가족 묘역이 동네를 굽어본다.
성혼 선생의 묘역이 제일 윗부분에 자리했다. 우측에 묘비가 세워져 있고 좌ㆍ우측에 동자석이 있다. 바로 아래 부친인 청송聽松 성수침成守琛 선생의 묘가 있다. 그 아래 이조참의 성경주成擎柱와 부인 해주오씨 묘와 묘비가 세워져 있다. 아버지 묘가 성혼의 묘보다 아래에 있어 역장逆葬 형태다. 경기도 기념물 제 59호로 지정되었다.
묘역 자취를 둘러본 후 발걸음을 돌린다. 단풍이 물들어갈 무렵 하늘을 가로지르는 구름은 유별나 보인다. 솜같은 구름이 먹구름으로 변해 비바람을 동반한 소나기가 이어진다. 이어서 햇살이 보인다. 가을 하늘에서 펼치는 별난 구름의 모습을 보느라 얼이 빠진다.
조만간 파주에 다시 다녀올 계획이다. 송익필의 흔적을 살피고 '우계기념관' 내부의 향취를 느껴보기 위해서다. 깊어가는 가을날 우계 평전 탐독중에 길을 나선 것이다. 백문이 불여일견 점입가경이다.
우계 선생이 후대에 남긴 '우계집'과 저서인 '주문지결', '위학지방'이 후학을 기다린다. 강직한 선비가 남긴 글을 읽으며 학자의 가르침을 새긴다.
2022.10.10.
첫댓글 잘 읽고 흔적 남기고 가네요 건강하세요 존경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