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젯 밤에는 MBC에서...
김정호의 일대기 비슷한 방송을 우연히 보게되었죠^^
개인적으로 좋아하던 가수인지라...
우연히 들른 채널이 그대로 고정되었던건데...
방송도중 그를 천재로 묘사하더만요^^
나는가수다에서 조관우가 그의 노래 하얀나비를 부른 이후...
김정호에 대한 재평가가 계속 되고 있는가 봅니다.
주~욱 방송을 보면서 그가 천재였음을 마음 깊이 인정하게 되드만요.
특히...그의 생전 마지막 인터뷰 장면...
폐결핵으로 허약해진 몸 때문이었을까요?
자신의 임박한 죽음을 암시라도 해주는 듯...
그의 노래인 "님"의 가사 부분..."간다~간다~~" 가 나올 때는...
에휴~그...한 어리고 절규하는 듯한 목소리에 절로 눈물 맺히는게...지금도 섬뜻~!
1952~1985 로 꽃다운 34세로 임종한 김정호^^
실제 대면했던 사이이고 생존해있다면... 존경하는 형님으로 모셨을법한 그...김정호^^
정서의 밑바탕에 그 무슨 공감대가 있는건지...그의 노래중 무지 좋아하는게 많죠^^
방송을 보다보니 어니언스의 대표곡 중에도 그가 작사/작곡한게 있드만요.
우리나라의 요절한 젊은 천재 가수 김정호...그리고 그의 대표곡중 하나 하얀나비~♬
(배경음악 끄고 이 곡만 들으려면 ☞ ESC 버튼을 누른 후...▶를 눌러주삼요^^)
검색을 해보니 예전에도 올라왔던 곡이드만...
원래 명곡을 두고 두고 재탕 삼탕을 해줘야하는 거니까요 ~.~...@.@...!!!
아래는 인터넷에서 카피한...그에 관한 비교적 잘 정리된 글이예요^^
우우
우우우..
밤바람이 차갑게 들려온다.
애틋, 처연한 단조음(短調音) "포크 천재"
김정호의 "하얀 나비"가
듣고 싶은 밤이다.
나는 가수 김정호를 무척이나 좋아했다.
길을 가다가도 그의 노래가 들리면
걸음을 멈추고 곡이 끝날 때까지 가로수 밑에서
귀를 모은 채 정신을 잃을 정도였다.
서른 셋,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포크가수 김정호는 짧지만 뜨거웠던
청춘의 한때를 불사른 가수였다.
판소리하는 홀어머니 밑에서 자랐고
70년대 초반 통키타 한 대 들고
명동에 왔을 때, 사람들은
신동(神童)에 가까운 작곡가가 나타났다고 했다.
어머니 덕분에 일찌감치 익힌
판소리를 바탕으로, 그는 5음계만을 사용하여
심금을 울리고 폐부를 찌르는
처연한 노래를 만들었다.
74년 데뷔앨범 "이름 모를 소녀" 를 내놨을 때
젊은이들의 반향은 폭발적이였다.
단조(短調)에서 오는 처연함과 애수를 느끼게 하는
그의 목소리는 듣는 이의 가슴을 후벼팠다.
버들잎 따다가 연못 위에 띄워놓고/
쓸쓸히 돌아서는 이름모를 소녀/
밤은 깊어가고 산새들은 잠들어/
아무도 찾지 않는 조그만 연못 속에/
달빛 젖은 금빛 물결 바람에 이누나/
"이름 모를 소녀"는 물론
"사랑의 진실" "잊으리라" "작은 새"
"빗속을 둘이서"에 이르기까지..
어느 곡 하나 버릴 것 없는 꽉 찬 앨범이였다.
"이름 모를 소녀"의 주인공은
훗날 결혼한 부인이였다고 한다.
많은 힛트곡을 있게 한
"몰래사랑"을 하고 있었던 셈이다.
75년 잇달아 "하얀 나비"를 내놓으면서
한(恨)이 느껴지는
포크가수로서 자리매김했다.
그러나 인기가 오를수록
그는 서서히 죽음 곁으로 다가서고 있었다.
대마초와 폐결핵,
그 두 단어가 결정적으로 그의 발목을 잡았다.
곡을 쓸 때면 변두리 여관에 장기 투숙하며
한달이고 두달이고,
곡이 나올 때까지 나오지 않았다.
매일 몇 갑씩 피워대는 줄담배로
그의 폐는 녹아들어 갔다.
75년 겨울은
당대의 다른 가수가 그러했듯이
김정호에게도 불행한 계절이였다.
대마초 가수들에게 철퇴가 내려졌다.
당시 김정호를 담당했던 검사는
딸이 열렬한 팬이라면서 훈방조치를 했지만,
다시 내려진 재수사 지시에,
당시 아들이 대마초를 피우는 것을
알게 된 대통령이 철저히 조사하여
일망타진 엄벌지시..
모진 고문에 시달린 뒤
가수활동이 금지됐다.
그참에 주위의 사람들이
그의 폐병치료를 위해
인천의 요양소에 수용시켰다.
그러나 김정호는 감시가 느슨할 때면
어김없이 서울에 올라와
통키타 업소에서 노래를 불렀다.
그의 노랫말에서 알 수 있듯이
인간에 대한 애틋함을 갖고 있었던 그는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다.
당시로서는 꽤 많은 돈을 벌었음에도
그는 집에 한푼도 가져가지 못했다.
살림이 어려운 선배가수 집에 쌀을 보낸 미담이
뒤늦게 알려지기도 했고,
배고픈 동네 음악 후배들의 용돈은
거의 그의 주머니에서 나왔다.
77년 부인 이영희씨와의 사이에
쌍둥이 딸이 태어났다.
그러나 폐결핵은
그의 생명을 시나브로 단축시키고 있었다.
81년 활동금지가 풀리면서 "인생"을 내놨다.
83년 유작앨범이 된 "님" 은
그가 남긴 유언이 된 셈이었다.
"간다 간다 나를 두고 떠나간다"라는
절규가 담긴 노래를 녹음하면서
그는 삐적 말라 뼈만 남은 몸으로
가쁜 숨을 몰아쉬면서 죽음을 예감하고 있었다.
그가 부른 노래에는
국악과 가요를 접목하여
새로운 리듬과 멜로디를 만들어보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었다.
"내 죽거든 앞이 툭 트인 곳에 묻어 달라"는 유언을 남긴 채
그는 85년 서울대 병원에서
이 세상에 아픈(?) 목소리 한자락을 남기고 갔다.
서른셋이었고 겨울이었다.
그는 지금 경기 파주의
기독교 공원묘지에 잠들어 있다.
"이름 모를 소녀"의 주인공이었던
부인 이영희씨는 재가도 하지 않은 채
쌍둥이 딸을 키웠고,
큰딸 정선씨는 작곡가로 데뷔했다.
하늘과 바람, 새와 꽃잎..
무엇보다도 인간을 사랑할 줄 알던 가수
김정호는 지금 여기 세상에 없다.
그러나 그의 노래는
지금도 많은 이들의 가슴 속에 살아있다.
나는 지금도
그의 노래가 들리면 길을 가다가도 그 자리에 서서
그의 처절한 목소리가 끝날 때까지
넋을 잃고 움직일 줄을 모른다.
김정호의 아픈 목소리는
겨울바람이 불어오는 날이면
내 마음 저 깊은 곳에서 잠자다가도
한마리 하얀나비가 되어 가슴을 쥐어짜듯 날아올라
내 눈을 뜨게 한다.
"간다 간다 나를 두고 떠나간다"
그는 마지막 노래를 부르며 그렇게 떠났다.
찬바람 불어오는 북망산 겨울하늘(冬天)로
하얀나비가 되어 날아갔다.
그가 떠난 겨울이 오면
나는 그의 노래가 듣고 싶어서
깊은 밤에도 이렇게 잠을 설치고는 한다.
아,
이름 모를 소녀..
하얀 나비..
우우,
우우우..
♡
삭제된 댓글 입니다.
김정호 노래는 배경음악본이 아예 없드만요... 덕분에 동안님 돈 굳었다는... ㅡ,.ㅡ
글을 읽으며...
음악 들으며...
슬픈 듯한 그의 음률들이 단조음이었군요...
너무 맘 아파요~~
이 곡 첫 반주가 이렇게 서글픈 멜로디인 줄 오늘 알았어요.
잘 듣고 갑니다.
음계도 제대로 모르면서 작곡을 하는 분들 보면 참 신기해요.
김태원도 "비와 그리도 당신"을 음계도 제대로 모르던 고딩시절에 기타반주로 만든거라드만...신기^^
김정호가 죽었어요? 아니 저렇게 노래를 잘 하는 사람이 왜 죽었데요 글세, 제 친구 정호는 잘 살고 있구만. 너무 요란 떨면서 살지 말구 순리대로 살기.. 김정호 노래 참 좋은데 ~
음악사에 대한 상식이 심히 빈약하시구만요...심빈님...ㅡ,ㅡ
처음 '창밖에 잠수교가 보인다'란 영화를 보고는 그곳에 삽입곡인 '님'을 듣고는
한동안 그곡에 빠져서 김정호를 사랑하게 됐었다는 전설이... ㅋㅋ
한곡도 버릴곡 없이 정말 좋은곡을 많이 만들어낸 가수죠. 감사합니다.
"님"...그쵸...넘 처절...ㅜㅜ...ㅠㅠ~~~
어릴적 하얀나비 노래 많이 불렀는데....
12일날도 기회가 있또요 ~*~ ~~~
서른넷의 나이였군요..
52년생..
새삼 김정호를 다시 돌아보았습니다~
하얀나비 잘 듣고 가요. 좋은 글 감사~^^
컨여사님이 모르던걸 풍월 읊었다니...
어유~~~ 손발이 오구라둘락카는구만요(우리딸 버젼임)...ㅡ,.ㅡ
삭제된 댓글 입니다.
몇번 궁금했는데...원조 오여사님의 새론 닉은...
visison이 단수로 끝나지 않고 "s"를 부친 이유는 몰까요...욕심이 많아서 이거 저거 다 가지시려구~? @.@~~~ ㅋ
삭제된 댓글 입니다.
멋지자님도...

^^
사진방에서만 기거하심을 탈피하시어... 이제 음방 모임에도 행차하시쥬
울 큰오빠가 참 좋아하던 김정호..
여름날
밀짚모자 쓰고 집앞 언덕나무에 기대어 기타치며 불러주곤 하던 이름모를 소녀..
다시 한번 더 들어봅니다
그 시대...대부분의 사람들이 참 좋아라했던 분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