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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창소인(臧倉小人)
장창과 같은 소인이라는 뜻으로, 몰래 중상하거나 이간질하는 아첨꾼을 비유하는 말이다.
臧 : 착할 장(臣/8)
倉 : 곳집 창(人/8)
小 : 작을 소(小/0)
人 : 사람 인(人/0)
출전 : 맹자(孟子) 양혜왕(梁惠王) 하편(下篇)
높은 자리에 앉은 상관이 특히 주의해야 할 것은 아랫사람이 전하는 말을 잘 판단하는 일이다. 옳은 말을 아무리 강조해도 귀에 거슬린다고 배척하면 발전이 없다. 윗사람의 성향을 꿰뚫고 있는 부하들이 달콤한 말만 늘어놓거나 속마음은 숨기고 아부하는 사람이 득시글거리기 때문이다.
이보다는 덜하다고 해도 어떤 일을 자의로 판단하거나 사실을 왜곡하여 높은 사람을 잘못 인도했다고 영원히 욕먹는 사람이 있다. 모시는 임금이 만나려고 하는 맹자(孟子)를 온갖 구실로 막은 장창(臧倉)이란 신하인데 소인(小人)의 대명사가 됐다. ‘맹자’의 양혜왕(梁惠王) 하편(下篇)에서 비롯된 말이다.
중국 전국시대(戰國時代)에 널리 알려진 맹자를 각국의 군주들이 서로 만나고 싶어 했다. 노(魯)나라의 평공(平公)도 맹자의 제자 악정자(樂正子)를 통해 접견일정을 잡고 행선지를 말하지 않은 채 수레를 준비시켰다. 평공의 총애를 받는 장창이 뒤늦게 알고 막아섰다.
어진 사람이라는 맹자가 어머니 장례를 아버지보다 성대하게 치렀다면서 왕이 몸을 낮추어 찾아 간다는 것은 옳은 처신이 아니라는 이유였다. 실제 맹자는 유년기에 아버지가 돌아 가셨기에 가정 형편상 예법에 의한 장례를 치르지 못했다. 평공은 장창의 말대로 맹자를 만나러 가지 않았다.
악정자가 스승을 찾아 말했다. ‘제가 왕께 말하여 만나러오려 했으나(克告於君 君爲來見也/ 극고어군 군위래견야), 총신 장창이 만류하여 오지 못했습니다(嬖人有臧倉者沮君 君是以不果來也/ 폐인유장창자저군 군시이불과래야).’ 克(극)은 성실하고 선한 제자 악정자의 이름이고, 嬖(폐)는 사랑할 폐, 아부하여 임금의 신임을 받는 폐신(嬖臣)이나 동성애를 말하는 단수지폐(斷袖之嬖)라 할 때 쓴다.
전후사정을 들은 맹자가 임금을 만나지 못한 것은 사람의 힘으로 결정하는 것이 아니고 하늘의 뜻이라 받아들였지만 속 좁게 판단한 평공보다 엉뚱한 정보를 제공한 장창이 폐신으로 비난받는다. 소인배뿐만 아니라 남을 중상하거나 이간질하는 모략꾼의 대명사로 남았다.
남을 헐뜯는 장창이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에는 공자(孔子)를 낮잡아 본 양화(陽貨)와 함께 쓴 성어로도 나온다. 조조(曹操)가 인재로 발탁한 예형(禰衡)이 막무가내로 행동하여 자신을 모욕하자 잔치 때의 북치기를 시켰다. 예형이 천하명사를 북이나 치게 한다고 분통을 터뜨린다.
‘이것은 양화가 공자를 업신여기고, 장창이 맹자를 헐뜯는 것과 같다(是猶陽貨輕仲尼 臧倉毀孟子耳/ 시유양화경중니 장창훼맹자이).’ 남을 깎아내리는 간신이나 아첨배는 예나 지금이나 욕을 먹는다. 하지만 귀에 쏙 드는 말만 받아들이고 여러 의견을 들어 밝게 판단하는 능력을 갖지 못한 윗사람은 더 나쁘다.
아첨꾼을 사랑한 임금
'폐(嬖)'란 사랑한다는 뜻이다. 그냥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미천한 사람을 특별히 사랑한다는 말이다. '행(幸)'은 '행(倖)'과 같은 글자로 아첨한다는 뜻이다. 그냥 아첨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받기 위해 유난을 떤다는 말이다. 두 글자를 합쳐 ‘폐행’(嬖幸)이란 말이 만들어졌다. 특별히, 임금에게 아첨하여 총애받는 사람을 가리킨다. 임금의 총애는 출세와 권력을 보장했다. 그래서 폐행이 생겨났지만, 이런 사람이 많을수록 정치는 부패하고 백성의 삶은 곤란해졌다.
중국의 환관, 고려의 폐행
'고려사'는 고려시대 폐행들을 모아 열전을 만들고 '폐행전(嬖幸傳)'이라 이름 붙였다. 그리고 서문에서 다음과 같이 밝혀놓았다. “자고로 소인배들은 임금이 좋아하는 것을 엿보아 영합하고 조장하였다. 때로는 아첨으로, 때로는 놀이와 여자로, 때로는 매사냥과 개사냥으로, 때로는 백성들을 가혹하게 착취해서, 때로는 토목공사를 일으켜서, 때로는 기예와 술수로써 그렇게 하였다. 모두 임금이 좋아하는 바를 좇아서 그 비위를 맞추고자 하였다. 고려는 나라가 오래되었으므로 간사하고 아첨하는 폐행(嬖幸)도 또한 많았다. 이제 옛 기록에 근거하여 폐행전을 짓는다.”
'폐행전'에는 모두 36명의 이름이 올라 있다. 그중 대부분은 고려 후기 사람들이다. '고려사'를 지은 사람들은 고려 후기에 폐행이 많아져서 정치가 혼란해졌고, 그래서 망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자신들이 세운 조선왕조의 정당성을 증명하려 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폐행전'엔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고 항변할 수만은 없는 역사적 진실이 담겨 있다. 고려가 폐행 때문에 망한 것이 어느 정도 사실이기 때문이다.
임금의 가까운 자리는 본래 환관들의 몫이었다. 그들은 궁중에서 임금의 수발을 들면서 임금이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았다. 임금 가까이서 많은 시간을 보낸다는 것도 이들의 ‘무기’였다. 환관의 한마디 말이 한 사람의 생명을 좌우할 수 있었다. 이들은 임금의 총애를 얻는 데 그치지 않고 그 뒤에서 호가호위하며 권력을 휘두르기도 했다. 중국 후한 말의 십상시(十常侍)가 대표적인 예다.
중국 역사에는 십상시 말고도 환관 권력자가 많았다. 진시황 사후 어린 황제를 세우고 권력을 휘두른, 지록위마(指鹿爲馬)의 주인공 조고(趙高)는 진나라의 환관이었다. 당나라에서는 현종 때 고력사(高力士)가 환관정치의 문을 열었다. 그는 관리들이 황제에게 올린 글을 중간에서 열어보고 걸러냈다.
명나라에는 희대의 환관 위충현(魏忠賢)이 있었다. 그는 황제 직속 정보기관인 '동창'의 책임자가 되어 황제 다음가는 2인자로 군림했는데, 자신이 나타나면 누구나 엎드려 '구천세'를 부르게 했을 정도다(황제에게는 '만세'를 불렀다). 명나라 말에는 환관이 모두 7만 명이나 되어 관료보다 많았다고 하니, 비단 청나라가 아니었어도 이 나라는 곧 망했을 것이다.
반면 우리 역사에서는 권력을 잡은 환관이 한 사람도 없다. 환관의 발호를 극도로 경계한 결과였다. 고려는 환관을 10명 이내로 제한하고 승진도 7품까지로 제한했으며, 조선은 환관을 천대하고 국정에 간여하지 못하도록 철저하게 감독했다. 그 대신 고려에서는 폐행이 출현했다.
'고려사' 열전에 올라 있는 최초의 폐행은 제7대 목종 때의 유행간(庾行簡)이다. 그는 남색(男色)으로 총애를 받았는데, 왕명을 내릴 때마다 그에게 먼저 물어봤으므로 사람들이 왕처럼 대우했다고 한다. 그는 문무 관리들에게 턱짓이나 얼굴 표정으로 지시할 정도로 위세를 부리다가 결국 목종이 시해되자 함께 죽음을 당했다.
몽골제국 간섭과 측근 정치 발호
고려의 폐행은 몽골과의 전쟁이 끝난 뒤 유난히 많이 출현했다. 당시 고려는 30년에 걸친 항전 끝에 나라를 지키는 데는 성공했지만 몽골제국의 정치적 간섭은 피할 수 없었다. 고려 국왕이 몽골에 의해 폐위되는 일이 벌어졌고, 국왕은 늘 폐위의 불안을 안고 살았다. 이런 상황에서 고려의 국왕들은 자신과 정치적 운명을 같이할 사람을 필요로 했고, 이것은 폐행이 자라날 최적의 환경이 되었다.
이 시기에는 몽골어 통역관, 응방(鷹坊)의 매 사육사, 고려 국왕과 혼인한 몽골 공주의 시종 등 특이한 이력을 가진 사람들이 폐행으로 등장했다. 모두 몽골과 외교하는 데 필요한 사람들이었다. 통역관은 물론이고, 매 사육사는 매를 사육해서 몽골에 진상했으며, 몽골 공주의 시종들은 몽골의 실력자들과 다리 놓는 역할을 했다. 모두 국왕의 사적인 외교였다.
이 밖에 한동안 자취를 감추었던 정치 환관도 다시 출현해서 폐행의 한 자리를 차지했다. 한 사람이 아니라 여러 명의 폐행이 동시에 등장해서 세력을 이룬 것이 이 시기의 특징이었다. ‘측근 정치’라 할 만한 정치 형태가 나타난 것이다.
측근 정치의 가장 큰 폐해는 권력이 폐행들에게 집중되면서 부패한다는 점이었다. 우선 자신들이 높은 관직에 오르기 위해 인사 규정을 어기는 일이 비일비재했고, 재산을 늘리기 위해 법을 어기는 것도 다반사였다. 감찰 관리들을 제멋대로 능욕하고 왕에게 모함하여 쫓아냈으니, 말 그대로 무소불위의 권력이었다.
이렇게 되자 관리 가운데 뜻있는 사람들은 자취를 감추고 소인배들은 폐행에게 아부하여 관직을 구하는 것이 풍조가 되었다. 그러니 유능하고 청렴한 관리를 어디서 찾을 수 있었겠는가. 그 피해는 그대로 백성에게 전가되어 권세가들에게 땅을 빼앗기고 과도한 수탈에 견디지 못해 고향을 떠나 유랑하는 사람이 줄을 이었다.
최충헌의 최준문, 우왕의 이인임
밖에서는 외세의 간섭이 강하게 미쳐오고, 안에서는 폐행들이 함부로 권력을 휘두르는 바람에 관료사회는 무너지고 민생은 파탄에 이른, 그래서 어디부터 손대야 할지 모르는, '나라 같지 않은 나라'가 되어버렸다. 그 원인은 국왕이 폐행을 중용했기 때문이고, 또 그것의 원인은 국왕이 공과 사를 구분하지 못하고 사적으로 총애하는 사람들에게 공적 영역의 정치를 맡겼기 때문이다. 결국 권력의 사유화가 문제였다.
권력이 사유화되면 반드시 좋지 않은 결과가 나타난다. 그 예로, 단연 무신정권을 꼽을 수 있다. 최충헌 집권기에 그 폐해를 보여주는 사례가 있는데, 말로 하기 민망하여 사료를 그대로 옮기면 다음과 같다. “최충헌의 여종 동화는 미인이었다. 마을 사람들과 많이 통정했고, 최충헌과도 통정했다. 하루는 최충헌이 장난 삼아 ‘너는 누구를 지아비로 삼겠느냐?’라고 물으니, 흥해의 공생(貢生)이던 최준문이라고 대답했다. 최충헌이 즉시 최준문을 불러다가 가노로 삼고 대정(隊正)에 임명했다. 최준문은 대장군까지 승진했는데, 나날이 최충헌의 신임이 두터워졌으므로 최충헌에게 청탁할 사람들은 모두 그에게 청탁했다. 그는 최충헌의 집 옆에 큰 집을 짓고 살면서 최충헌의 오른팔이 되었다.”
최충헌이 국왕을 능가하는 권력자가 되자 수많은 사람이 그의 오른팔이 되었지만, 그중에서도 최준문은 진정한 오른팔이었다(그는 최충헌이 죽자 바로 최우에게 죽음을 당했다). 최준문이 최충헌의 신임을 얻는 과정은 엽기적이었지만, 당시 관료들이 최충헌에게 청탁할 일이 있으면 그에게 청탁했으므로 그 덕에 권세를 부렸다. 최충헌의 의중을 가장 잘 아는 사람으로서 누리는 지위였다. 그 청탁이란 대개 관직이었을 것이니, 이렇게 해서 고위 관직에 오른 사람을 상관으로 인정해야 했던 문무 관료들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고려시대에 권력이 사유화된 또 하나의 시기는 단연 고려 말 우왕 때였다. 우왕은 공민왕의 아들로 왕위에 올랐지만, 그 출생의 석연치 않음 때문에 늘 불안해했다. 게다가 자신을 왕으로 세운 이인임이 정치를 좌우했으므로, 왕은 할 일 없이 노는 게 일이었다. 왕이 정치에 무관심하자 이인임은 자기 친·인척들로 조정을 채우는가 하면 매관매직을 일삼았다. 관리들이 권력자의 집을 찾아다니며 관직을 구걸하는 행위를 ‘분경’(奔競)이라고 하는데, 우왕 때 “분경이 풍속을 이루었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로 공공연하게 성행했다. 분경 피라미드의 정점에는 이인임이 있었다.
고려를 멸망시키고 조선을 건국한 사대부들은 정치의 공공성을 회복하려 했다. 대표적으로, 정도전은 권력이 국왕에게 있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국왕이 존재하는 한 폐행은 언제나 출현할 것이기 때문이다. 국왕을 없애지 못한다면 그 권력을 최소화하고, 청렴하고 유능한 재상이 국왕을 대신하여 국정을 담당해야 한다고 믿었다. 그는 또한 언관(言官)의 기능을 강화하여 깨끗한 정치가 계속되기를 바랐다. 그의 꿈이 이루어져 조선은 오랫동안 환관은 물론 폐행이 출현하지 않는 역사를 갖게 되었다.
폐행이 성할 때 폐행은 언제나 국왕이 무능하거나 정치에 무관심할 때 출현했다. 그래서 자격도 능력도 없는 사람들이 오로지 국왕의 총애를 등에 업고 권력을 휘둘렀고, 그들의 폭정은 나라를 망치고 국왕도 망쳤다. 실제 중국에서는 환관이 발호할 때마다 왕조가 멸망했다.
고려에서도 폐행이 성할 때마다 좋지 않은 결과가 나타났고, 결국 고려가 망한 것도 권력의 사유화 때문이었다. 그런 세상에서는 유능한 사람들이 인정받지 못하고, 강직한 사람들은 쓰이지 못하며, 뜻있는 사람들은 세상을 등지기 때문이다. 고려시대에도 정치는 공공의 것이어야 했다.
▶️ 臧(착할 장)은 형성문자로 뜻을 나타내는 신하 신(臣; 보다, 눈, 신하)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글자 戕(장)이 합(合)하여 이루어졌다. 그래서 臧(장)은 ①착하다 ②좋다 ③감추다 ④숨다 ⑤종, 노복 ⑥곳집(곳간庫間으로 지은 집) ⑦오장(五臟) ⑧회뢰 ⑨뇌물(賂物)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착할 선(善)이다. 용례로는 착함과 착하지 못함을 장부(臧否), 장은 사내종을 획은 계집종의 뜻으로 종과 하인을 이르는 말을 장획(臧獲), 좋은 때를 이르는 말을 장시(臧時), 양인良人을 달리 일컫는 말을 장인(臧人), 노자가 경계하는 것과 공자가 잘한 것이라는 뜻으로 노자는 말 많은 것을 경계하고 공자는 말을 삼가했다는 말을 노계공장(老戒孔臧) 등에 쓰인다.
▶️ 倉(곳집 창)은 ❶상형문자로 仓(창)은 간자(簡字), 仺(창)은 고자(古字)이다. 쌀 창고(倉庫)의 모양을 본뜬 글자로, 쌀 창고에는 모양이 둥근 것과 사각(四角)의 것이 있고 창(倉)은 사각쪽이라고 한다. 창(倉)은 파랑색, 서두르다의 뜻에도 쓰이므로 옛날 사람은 갓 거두어 들인 곡물(穀物)을 서둘러 치우는 곳이 창(倉)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❷상형문자로 倉자는 '곳간'이나 '창고'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倉자는 人(사람 인)자와 戶(지게 호)자, 口(입 구)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倉자는 人자가 부수로 지정되어 있지만, 사람과는 아무 관계가 없다. 갑골문에 나온 倉자를 보면 지붕과 외닫이 문, 그리고 주춧돌이 함께 그려져 있었기 때문이다. 倉자는 본래 쌀이나 곡식을 보관하던 작은 창고를 그린 것이다. 그래서 倉자에 쓰인 人자는 지붕을 뜻하고 그 아래로는 외닫이 문(戶)과 주춧돌(口)이 표현됐다. 그래서 倉(창)은 (1)곳집 (2)옛날 거리에 섯던 장을 선혜청(宣惠廳)으로 옮겨셔 그 창고(倉庫)를 가겟방으로 쓰게 된 데서 생친 말이다. 서울 남대문(南大門) (3)성(姓)의 하나 등의 뜻으로 ①곳집(곳간(庫間)으로 지은 집) ②창고(倉庫) ③옥사(獄舍) ④선창(船倉) ⑤바다 ⑥푸른색 ⑦꾀꼬리(까마귓과의 새) ⑧당황하다 ⑨푸르다 ⑩슬프다, 슬퍼하다 ⑪갑자기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곳집 고(庫)이다. 용례로는 물건을 저장하거나 보관하는 건물을 창고(倉庫), 곳집에 쌓아 둔 곡식을 창곡(倉穀), 미처 어찌할 사이 없이 급작스러움을 창졸(倉卒), 곳집 안에 있는 곡물을 창속(倉粟), 쌀 창고와 금고를 창탕(倉帑), 창고의 일을 보면서 행하는 간사한 짓을 창간(倉奸), 창고를 보살피며 감시하는 사람을 창감(倉監), 창고에서 부리는 노복을 창노(倉奴), 곡식을 쌓아 두는 창고의 내부를 창방(倉房), 창고의 일을 맡아보는 벼슬아치를 두루 이르는 말을 창사(倉司), 창고로 쓰는 건물을 창사(倉舍), 창고의 일을 맡아보는 사람을 창색(倉色), 창고를 보호하기 위하여 주위에 둘러 쌓은 성을 창성(倉城), 창고의 곡식을 사사로이 소비하여 축내는 일을 창포(倉逋), 군대에서 규율을 어긴 자를 가두는 건물 또는 거기에 가두는 처벌을 영창(營倉), 쌀을 넣어 두는 곳집을 늠창(廩倉), 곡식이 많이 나는 곳 또는 곡식을 넣어 두는 창고를 곡창(穀倉), 배 안에 짐을 넣을 수 있도록 간간이 막아 놓은 간 또는 바닷가에 시설한 창고의 일종을 선창(船倉), 바닷물을 끓이어 소금을 만들 때에 쓰는 큰 가마를 염창(鹽倉), 쌀 창고를 유창(庾倉), 지방 각 고을에 있는 곳집을 외창(外倉), 창고의 문을 잠그고 단단히 봉함을 봉창(封倉), 산 속에 있는 창고를 산창(山倉), 각 주에 있는 창고를 주창(州倉), 어떤 사물이 오래도록 변하지 않음을 이르는 말을 창씨고씨(倉氏庫氏), 미처 어찌할 수도 없는 사이를 일컫는 말을 창졸지간(倉卒之間) 등에 쓰인다.
▶️ 小(작을 소)는 ❶회의문자로 한 가운데의 갈고리 궐(亅; 갈고리)部와 나눔을 나타내는 八(팔)을 합(合)하여 물건을 작게 나누다의 뜻을 가진다. 小(소)는 작다와 적다의 두 가지 뜻을 나타냈으나, 나중에 小(소; 작다)와 少(소; 적다)를 구별하여 쓴다. ❷상형문자로 小자는 '작다'나 '어리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小자는 작은 파편이 튀는 모습을 그린 것이기 때문에 '작다'라는 뜻을 갖게 되었다. 고대에는 小자나 少(적을 소)자의 구분이 없었다. 少자도 작은 파편이 튀는 모습을 그린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의 小자는 '작다'로 少자는 '적다'로 뜻이 분리되었다. 그래서 小자가 부수로 쓰일 때도 작은 것과 관련된 뜻을 전달하지만 때로는 모양자 역할만을 하기도 한다. 그래서 小(소)는 크기에 따라 대(大), 중(中), 소(小)로 나눌 경우의 제일(第一) 작은 것의 뜻으로 ①작다 ②적다 ③협소하다, 좁다 ④적다고 여기다, 가볍게 여기다 ⑤삼가다(몸가짐이나 언행을 조심하다), 주의하다 ⑥어리다, 젊다 ⑦시간상으로 짧다 ⑧지위가 낮다 ⑨소인(小人) ⑩첩(妾) ⑪작은 달, 음력(陰曆)에서 그 달이 날수가 30일이 못 되는 달 ⑫겸양(謙讓)의 뜻을 나타내는 접두어 ⑬조금, 적게 ⑭작은, 조그마한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작을 미(微), 가늘 세(細), 가늘 섬(纖),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클 대(大), 클 거(巨)이다. 용례로는 적게 오는 눈을 소설(小雪), 일의 범위가 매우 작음을 소규모(小規模), 작은 수나 얼마 되지 않는 수를 소수(小數), 나이 어린 사람을 소인(小人), 어린 아이를 소아(小兒), 같은 종류의 사물 중에서 작은 규격이나 규모를 소형(小型), 자그마하게 포장한 물건을 소포(小包), 줄여서 작아짐 또는 작게 함을 축소(縮小), 가장 작음을 최소(最小), 공간이 어떤 일을 하기에 좁고 작음을 협소(狹小), 키나 체구가 보통의 경우보다 작음을 왜소(矮小), 아주 매우 작음을 극소(極小), 약하고 작음을 약소(弱小), 너무 작음을 과소(過小), 매우 가볍고 작음을 경소(輕小), 보잘것없이 작음을 비소(卑小), 마음을 조심스럽게 가지어 언행을 삼감을 소심근신(小心謹愼), 작은 것을 탐하다가 오히려 큰 것을 잃음을 일컫는 말을 소탐대실(小貪大失), 혈기에서 오는 소인의 용기를 일컫는 말을 소인지용(小人之勇), 작은 나라 적은 백성이라는 뜻으로 노자가 그린 이상 사회 이상 국가를 이르는 말을 소국과민(小國寡民), 큰 차이 없이 거의 같음을 일컫는 말을 소이대동(小異大同), 어진 임금이 나라를 다스리면 소인들은 겉모양만이라도 고쳐 불의한 것을 함부로 하지 못함을 이르는 말을 소인혁면(小人革面), 마음을 조심스럽게 가지어 언행을 삼감을 일컫는 말을 소심근신(小心謹愼), 세심하고 조심성이 많다는 뜻으로 마음이 작고 약하여 작은 일에도 겁을 내는 모양을 일컫는 말을 소심익익(小心翼翼), 조그마한 틈으로 물이 새어들어 배가 가라앉는다는 뜻으로 작은 일을 게을리하면 큰 재앙이 닥치게 됨을 비유하는 말을 소극침주(小隙沈舟), 얼마 안 되는 작은 물 속에 사는 물고기라는 뜻으로 죽음이 눈앞에 닥쳤음을 이르는 말을 소수지어(小水之魚) 등에 쓰인다.
▶️ 人(사람 인)은 ❶상형문자로 亻(인)은 동자(同字)이다. 사람이 허리를 굽히고 서 있는 것을 옆에서 본 모양을 본뜬 글자. 옛날에는 사람을 나타내는 글자를 여러 가지 모양으로 썼으나 뜻의 구별은 없었다. ❷상형문자로 人자는 '사람'이나 '인간'이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人자는 한자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글자이기도 하다. 상용한자에서 人자가 부수로 쓰인 글자만 해도 88자가 있을 정도로 고대 중국인들은 人자를 응용해 다양한 글자를 만들어냈다. 이전에는 人자가 두 사람이 등을 서로 맞대고 있는 모습을 그린 것이라고 해석을 했었지만, 갑골문에 나온 人자를 보면 팔을 지긋이 내리고 있는 사람을 그린 것이었다. 소전에서는 팔이 좀 더 늘어진 모습으로 바뀌게 되어 지금의 人자가 되었다. 이처럼 人자는 사람을 그린 것이기 때문에 부수로 쓰일 때는 주로 사람의 행동이나 신체의 모습, 성품과 관련된 의미를 전달하게 된다. 그래서 人(인)은 (1)사람 (2)어떤 명사(名詞) 아래 쓰이어, 그러한 사람을 나타내는 말 등의 뜻으로 ①사람, 인간(人間) ②다른 사람, 타인(他人), 남 ③딴 사람 ④그 사람 ⑤남자(男子) ⑥어른, 성인(成人) ⑦백성(百姓) ⑧인격(人格) ⑨낯, 체면(體面), 명예(名譽) ⑩사람의 품성(稟性), 사람됨 ⑪몸, 건강(健康), 의식(意識) ⑫아랫사람, 부하(部下), 동류(同類)의 사람 ⑬어떤 특정한 일에 종사(從事)하는 사람 ⑭일손, 인재(人才)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어진 사람 인(儿),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짐승 수(兽), 짐승 수(獣), 짐승 수(獸), 짐승 축(畜)이다. 용례로는 뛰어난 사람이나 인재를 인물(人物), 안부를 묻거나 공경의 뜻을 표하는 일을 인사(人事), 사람으로서의 권리를 인권(人權), 한 나라 또는 일정 지역에 사는 사람의 총수를 인구(人口), 세상 사람의 좋은 평판을 인기(人氣), 사람을 다른 동물과 구별하여 이르는 말을 인류(人類), 사람의 힘이나 사람의 능력을 인력(人力), 이 세상에서의 인간 생활을 인생(人生), 학식과 능력이 뛰어난 사람을 인재(人材), 사람의 수효를 인원(人員), 사람으로서의 됨됨이나 사람의 품격을 인격(人格), 사람에 관한 것을 인적(人的), 사람을 가리어 뽑음을 인선(人選), 사람의 힘이나 능력으로 이루어지는 일을 인위(人爲), 사람의 몸을 인체(人體), 사람의 얼굴의 생김새를 인상(人相), 한 사람 한 사람이나 각자를 개인(個人), 나이가 많은 사람을 노인(老人), 남의 아내의 높임말을 부인(夫人), 결혼한 여자를 부인(婦人), 죽은 사람을 고인(故人), 한집안 사람을 가인(家人), 장사하는 사람을 상인(商人), 다른 사람을 타인(他人), 널리 세상 사람의 이야깃거리가 됨을 일컫는 말을 인구회자(人口膾炙), 인간 생활에 있어서 겪는 중대한 일을 이르는 말을 인륜대사(人倫大事), 사람은 죽고 집은 결딴남 아주 망해 버림을 이르는 말을 인망가폐(人亡家廢), 사람의 목숨은 하늘에 있다는 뜻으로 사람이 살고 죽는 것이나 오래 살고 못 살고 하는 것이 다 하늘에 달려 있어 사람으로서는 어찌할 수 없음을 이르는 말을 인명재천(人命在天), 사람의 산과 사람의 바다라는 뜻으로 사람이 헤아릴 수 없이 많이 모인 모양을 이르는 말을 인산인해(人山人海), 사람마다 마음이 다 다른 것은 얼굴 모양이 저마다 다른 것과 같음을 이르는 말을 인심여면(人心如面), 여러 사람 중에 뛰어나게 잘난 사람을 두고 이르는 말을 인중사자(人中獅子), 여러 사람 중에 가장 못난 사람을 이르는 말을 인중지말(人中之末), 사람의 죽음을 몹시 슬퍼함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인금지탄(人琴之歎),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뜻으로 사람의 삶이 헛되지 아니하면 그 이름이 길이 남음을 이르는 말을 인사유명(人死留名), 사람은 곤궁하면 근본으로 돌아간다는 뜻으로 사람은 궁해지면 부모를 생각하게 됨을 이르는 말을 인궁반본(人窮反本), 사람이면서 사람이 아니라는 뜻으로 사람의 도리를 벗어난 사람을 일컫는 말을 인비인(人非人), 인생이 덧없음을 이르는 말을 인생무상(人生無常), 사람의 근본은 부지런함에 있음을 이르는 말을 인생재근(人生在勤), 인생은 아침 이슬과 같이 짧고 덧없다는 말을 인생조로(人生朝露), 남의 신상에 관한 일을 들어 비난함을 이르는 말을 인신공격(人身攻擊), 아주 못된 사람의 씨알머리라는 뜻으로 태도나 행실이 사람답지 아니하고 막된 사람을 욕하는 말을 인종지말(人種之末), 남이 굶주리면 자기가 굶주리게 한 것과 같이 생각한다는 뜻으로 다른 사람의 고통을 자기의 고통으로 여겨 그들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최선을 다함을 이르는 말을 인기기기(人飢己飢), 인마의 왕래가 빈번하여 잇닿았다는 뜻으로 번화한 도시를 이르는 말을 인마낙역(人馬絡繹), 얼굴은 사람의 모습을 하였으나 마음은 짐승과 같다는 뜻으로 남의 은혜를 모름 또는 마음이 몹시 흉악함을 이르는 말을 인면수심(人面獸心), 사람은 목석이 아니라는 뜻으로 사람은 모두 희로애락의 감정을 가지고 있으며 목석과 같이 무정하지 않음을 이르는 말을 인비목석(人非木石), 정신을 잃고 의식을 모름이란 뜻으로 사람으로서의 예절을 차릴 줄 모름을 이르는 말을 인사불성(人事不省) 등에 쓰인다.